이상화 교수(철학 전공)

여성철학을 한다고 하면, 흔히들 여성철학이 기존의 철학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를 묻곤 합니다. 어찌보면 ‘여성’철학이라는 말 자체는 이상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철학이란 원래 보편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이므로 특정한 성(性)과 무관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여성철학이 존재하는 것은 이제까지의 철학이 결코 성중립적이지도, 보편적이지도 않았고 남성 중심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철학적 이론 역시 다른 이론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체험으로부터 생겨납니다. 남성에 의해서만 만들어진 철학은 남성의 체험만을 반영할 뿐입니다.

여성철학이 여타의 분과철학과 다른 점은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철학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남성의 경험과 병행해서, 혹은 남성의 경험에 추가해서 여성의 체험에 대해 말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새로운 객관성이나 중립성이 있다거나, 남성의 진리가 있듯이 여성의 진리가 따로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성의 관젼에 선다는 것은 ‘남성의 관젼에서 무엇이 잘못이고, 무엇이 왜곡되어 있는지를 성찰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교정하는 일입니다. 나아가 그것은 인간과 세계를 근본적으로 다르게 바라보고 새롭게 사유할 것을 요구합니다.

싱그러운 초여름 이화의 캠퍼스에서는 제 9차 세계여성학대회가 열리게 됩니다. 이화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여성학 강의가 개설되고 여성학과가 제도화된 대학입니다. 이러한 이화의 역사를 생각해볼 때, 이번 대회는 이화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동시에 이번 대회는 이화만의 대회도, 한국 여성만의 대회도 아닌 세계 모든 여성들의 대회입니다. 말하자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같이’ 모색하는 전 세계 여성들의 연대와 축제의 장인 것이지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개최되는 이번 대회에는 서구나 북구 뿐 아니라 아시아·남미·아프리카 대륙에서 많은 여성 철학자들이 참가할 것입니다.

기존의 남성중심적 학문 연구와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노력은 너무나 지난하고 힘겨운 일입니다. 아직도 전세계의 여성철학자들은 철학이 남성중심적 성격을 견고하게 유지하고 있고, 남성들이 대부분의 지적 권위와 권력을 장악하고 있음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여성주의 철학자들은 이제까지 여성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여성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공적 학문의 장에서 여성들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고 자신의 소리를 냄으로써 철학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필자 소개
저는 세계여성학대회 총괄기획위원장인 이상화 교수입니다. 제가 연구하는 여성철학은 ‘보편성과 획일성’만이 중시됐던 기존 철학을 ‘차이와 배려’란 여성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것입니다. 기존 철학이 ‘독립적 자아’를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본다면 여성철학은 ‘배려하는 자아’를 이상적으로 여기죠. 이화인이 자신에 대한 기대를 갖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 리더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다음 편지는 아시아여성학센터 소장으로 계시며, 여성의 관점을 통해 인류학을 연구해오신 김은실 교수님(여성학 전공)께서 써주실 예정입니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