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우러 9,10일 양일간 서울에서 열렸던 한·미 금융정책회으의 피날레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틀간의 마라톤 회의를 끝낸 우리 재무부대표들은 애써자제력을 발휘하고 있었지만 벌레 씹은 듯한 표정을 아주 감추지는 못하는 모습이었다.

우리 대표들과 대충 작별인사를 마친 미국대표들은 그 길로 미국문화원으로 옮겨가진 기자회견에서 『실망했다』, 『재고해야겠다』는 등 듣기 거북한 표현까지 서슴지 않으며 한국정부의 소극적인 금융시장개방정책을 성토했다.

주한미대사관측은 한술 더떠 이같은 미국대표의 회견내용이 「워싱턴의 분위기」라는 것을 우리 재무부에 친절히 전달해 주었다.

올들어 국내 금융시장 개방문제는 한·미 양국간의 주요 현안으로 급속히 부상하고 있다.

여기에는 특히 올해부터 정례화된 한·미 금융정책회의가 한몫을 톡톡히 했다.

이 회의는 당초 양국 정부대표들이 상대국의 금융정책에 관해 비공식적으로 의견을 교환하되 어떤 합의나 발표도 남기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실시된 것이다.

그러나 지난 2월 첫 회의가 열리자마자 미국측은 한국에 진출한 미국금융기관들이 그동안 쌓아두었던 불만과 요구사항들을 한꺼번에 쏟아놓았다.

우리 대표들은 미국의 금융정책은 제대로 따져보지도 못한채 해명에 급급한 상황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지난 9, 10일 양일간 열린 2차회의는 아예 『한국금융정책 청문회같았다』는게 우리 대표들의 진땀어린 고배이다.

이같은 양상은 회의를 거듭할 수록 더욱 두드러질 전망이다.

1차회의 당시만 해도 미국측의 주공격목표는 환율분야였다.

그러나 11월의 2차회의에서는 미국측의 공격목표와 강도가 판이하게 달라졌다.

미국측은 막바지에 접어든 우르과외라운드 금융부문협상의 쟁점까지 한데 묶어 한국정부에 포괄적이고도 전면적인 금융시장 개방을 요구해왔다.

예컨대, 미국측 수석대표인 「달라라」차관보는 2차회의 첫날한국의 금융개방정책기조를 OECD 국가들과 같은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꿀 것을 요구했다.

즉 이것만은 개방할 수 없다는 분야만을 공표하고 나머지는 무조건 국내외 금융기관들이 제도적, 실질적으로 똑같은 조건하에서 경쟁할 수있도록하라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이제껏 우리 정부가 하나하나 개방해도 문제가 없을 부분을 가려 문을 열어온 「포지티브방식」을 버리라는 주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측은 ▲외국은행의지적 추가설치및 업무영역확대 ▲국내은행 공동전산망가입 ▲외환규제철폐등을 요구했다.

자본시장개방과 관련해서는 ▲현지법인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증권산업진출 허용 ▲국내 증권사와 동등한 업무영역보장 등의 주문을 쏟아놓는다.

쉽게 말해 한꺼번에 시장을 열어젖혀 똑같은 조건으로 영업할 수 있도록 보장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같은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미국측은 한국내의 과소비억제 캠패인을 「정부작품」으로 몰아치기도 했으며, 애당초 미국정부가 반대해서 의회에 계류중인 「리글법안」(금융분야에 대한 보복조치관련법률)의 처리방침을 「재고」할 수 있다고 을러대기도 했다.

물론 미국의 이같은 공세가 목표한만큼의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우리 정부는 ▲외국은행에도 국내은행과 동일한 신탁업무취급허용 ▲지점당 최고 1백20억원인 외국은행지점의 기금증액 ▲영업시간내 현금자동인출금기(ATM)설치, 운영허용들을 양보했다.

그러나 「네거티브방식」전환과 제도적·실질적인 내국인 대우등 본질적인 문제에서는 입장을 굳히지 않아 미국대표들을 「실망」시킨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문제들이 일단락 된 것은 결코 아니다.

실망만하고 그만 둘 미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은 오히려 회의를 거듭하면서 그동안 묶여왔던 업무영역을 하나하나 따내가면서 집요하게 미국식기준에 따른 전면적인 시장개방을 관찰시키려들 것이 분명하다.

우리 정부 입장에서 보면 이같은 미국의 전략에 맞서 협상의 주도권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당장 맡겨놓은 보따리 내놓으라는 식으로 다그친다해서 어물쩡 밀리다보면 비교우위가 확실한 미국자본 앞에 국내금융장은 여지없이 유린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최근의 한국은행 통계는 이같은 가능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 8월말 현재 국내은행전체의 수신고는 62조 3백 39억원으로 89년말에 비해 12.1%증가에 그쳤다.

그러나 같은기간 외국은행들의 수신고는 1조 5천 18억원으로 89년말보다 1백30%이상 늘어났다.

특히 미국측의 요구를 받아들여 외국은행들의 수신기반인 CD (양도성예금증서)발행한도를 지점별로 기금의 1백%에서 1백 50%로 늘려준 이후 외국은행들의 수신고는 두달동안 무려 65.2%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차 한·미근ㅁ융정책회의에서 다시 외국은행지점의 기금을 늘려주기로 했으니 내년이후 외국은행들의 수신고는 더욱 늘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우리 정부가 미국의 개방압력에 당당히 맞서기 위해서는 국내 금융산업의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마스터 플랜이 시급히 완성돼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관주도 금융에 길들여진 국내금융기관들도 차제에 정부의 보호막을 벗어버리고 홀로서기에 나설 수 있도록 의식과 체질을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가 성장을 거듭할 수록 개방압력도 가중될 수밖에 없다.

실물경제가 날로 국제화·개방화되가는 마당에 금융부분만 꽁꽁 닫아둘 수도 없다.

국내 금융산업이 경쟁속에 커갈 수 있도록 개방을 활용하되, 속도와 폭을 조절할 수 있는 지혜와 노력이 정부·업계 모두에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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