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800만 가지 죽는 방법」

영웅은 ‘깨달음을 얻어 자신이 속한 집단으로 그 깨달음을 실어 나르는 자’를 말한다. 조셉 캠벨의 역작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은 영웅이 등장하는 현대의 모든 서사의 원형을 체계적이고 촘촘한 사고로 뒤밟은 ‘신화 해설서’이다.

1940년대에 출간된 이 책의 생명력은 현재까지 시들지 않고 있는데, 신화 연구자뿐 아니라 소설가에서 시나리오 작가까지 참고할만큼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은 보편성을 지닌 탓이다.

현대의 ‘영웅’이라고 말하면 흔히 ‘수퍼맨’으로 대표되는 초인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영웅의 원형이지만 동시에 굉장히 좁은 의미의 영웅이기도 하다. 이런 초인들 말고 우리 곁에 영웅이란 존재는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고대의 ‘대영웅’만큼이나 많은 ‘소영웅’이 현대의 거리를 질주하고 있다.

우울하고 거친 뉴욕시를 묘사한 추리소설 「800만 가지 죽는 방법」에 등장하는 매튜 스커더는 언뜻 보면 도무지 영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인물이다. 영웅은 커녕 알코올 중독자에 가까운 그는 금주 모임에 나가 “저는 매트고요, 오늘은 그냥 듣기만 할게요”라는 말밖에 하지 못하는 전직 형사이자 무면허 탐정이다.

하지만 그는 한 사건을 뒤쫓으면서 조금씩 다른 여정을 걷는다. 빛을 잃고 메마른 황무지 뉴욕에서 모두 각자 다른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고 있을 때, 스커더만은 사신(死神)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친다.

사건을 해결한 그는 “저는 매트고요, 알코올 중독자입니다”라면서 눈물을 흘리는데, 결국 영웅 매튜가 자신이 속한 집단으로 가지고 돌아온 것은 800만 가지 사는 방법 가운데 한 가지다. 마침내 스커더는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것으로 영웅의 반열에 오른다.

「천의 얼굴을…」에서 캠벨은 한 가지 사실을 더 지적한다. 바로 깨달음을 얻어 귀환한 영웅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것. 영웅은 죽지 않으면 폭군이나 괴물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신이 물리쳐야 했던 대상과 똑같은 존재로 변모하는 것이다.

물론 영웅의 죽음은 상징이다. 매튜 스커더는 목숨을 끊는 방법이 아닌 다른 죽음을 택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삭막한 뉴욕의 밑바닥에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 길이었으니, 현대의 영웅은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다.

출판기획자 임지호

 (좌)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조셉 캠벨 지음 / 이윤기 옮김, 민음사, 2004
 (우) 「800만 가지 죽는 방법」 로렌스 블록 지음 / 김미옥 옮김, 황금가지, 2005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