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

소설가 강석경(조소·74년 졸) 선배

얼마 전 지면에서 세계인의 정체성에 대한 조사 발표를 보니 한국인의 70% 이상이 가족에게서 자기 정체성을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핏줄 의식이 유난히 끈끈한 민족이라 삶의 조건으로 가족을 가장 먼저 내세우지만 가족은 나의 근원이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서로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의 관계임이 틀림없다.

현실의 반영인 문학에서도 사회의 최소단위로서, 또 세계의 축소판으로서 가족을 주제로 많이 다루는데 작가 자신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보편적 진실로 승화시킨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도 그 중 하나다.

돈에 대한 집착으로 자신의 인생과 가정을 망치고 마는 이류 연극배우 제임스 티론과 마약 중독자인 아내 메리, 술에서 도피처를 찾는 두 아들의 모습은 바로 유진 오닐과 그 가족의 자화상이다.

그 환부를 들여다보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던지 유진 오닐이 밤으로의 긴 여로를 쓸 때 “들어갈 때 보다 10년은 늙은 듯한 수척한 모습으로, 때로는 울어서 눈이 빨갛게 부은 채로 작업실에서 나왔다”고 작가의 아내가 뒷날 증언했다. 유진 오닐은 이 작품을 그의 사후 25년 뒤에 발표하고 무대에는 올리지 말 것을 유언하기도 했다.

가정이란 사랑의 보금자리로서 구원이지만 또한 상처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완전한 인간은 없고 가족 역시 불완전한 인간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불완전함을 껴안지 않으면 안 되는데 ‘피의 부정’은 자기 부정이며 이것은 파괴로 치닫기 때문이다.

유진 오닐 역시 그를 괴롭히고 당황하게 만든 가족을 뒷날 깊은 연민으로 용서해 작품에 반영했다고 한다. 지난날의 상처가 그의 밑거름이 되었듯 삶의 고통은 인간을 성숙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형벌일지도 모른다.

<필자 인터뷰>

강석경 선배는 대학 시절, 채플 시간에도 책을 읽을 만큼 독서를 좋아했지만 작가가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3학년이 되던 해, 등록금에 보탬이 되고자 이대학보 현상문예에 응모했던 것이 그를 작가의 길로 인도했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이어령 교수가 그의 작품이 기성 문인의 것보다 낫다며 등단을 권유한 것이다.
그는 젊은 시절 정신적 방황을 겪었던 자신의 모습이 그의 대표작 「숲속의 방」의 주인공 ‘소양’으로 형상화 됐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작가의 운명은 자신이 경험했던 상처를 기억해 작품 속에 드러내는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이화인들에게 “현실적인 것만 추구하는 삶은 공허하다”며 “올바른 가치관을 만들어주는 책을 가까이해 의미있게 살라”는 말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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