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월 중국동포의 집을 취재했을 때의 일이다.

중국동포의 집은 중국에 돌아가지 못한 채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한국에 머물러 있는 동포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이화여대 신문사 기자가 취재하러 왔다는 소식을 들은 동포들, 그 중 특히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들은 5평 남짓한 방안에 빙 둘러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아버지들의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라는 질문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터져 나왔다. 형사들이 지키고 서 있어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가족들 얼굴을 못 본 지도 몇 달이 지났는지 모르겠다는 등 그 분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때였다. 한 할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곁에 앉아 있던 다른 할아버지들도 한 분씩 일어나 박수를 치며 “기자 학생, 기사 잘 써서 우리 좀 여기서 나갈 수 있게 해줘요”라고 울먹이셨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깜짝 놀란 난 멍하니 할아버지들을 바라봤다. 그 분들은 아마추어 학생 기자에 불과한 내게 그동안 가슴 속에 품고 있던 모든 기대·희망을 걸고 있었다. 단지 내가 ‘기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순간 이대학보사 기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참으로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부담감·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웠지만 한편으로는 뿌듯했다. 그동안 미처 몰랐던 나의 가치를 발견했다는 사실에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자신의 가치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얼마 전 한 인기 여배우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의 영화·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던 팬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가치있고 의미있는 존재였는지 미처 알지 못한 채 말이다.

그녀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씩씩하게 살아나가는 여주인공 역할을 맡았을 때, 누군가 그 모습을 보며 삶의 희망을 얻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연기자가 되고 싶어하는 누군가는 그녀를 선망하며 ‘나도 꼭 저런 연기자가 되겠다’는 각오를 다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포기해 버렸다. 그래서 이제 그녀의 가치는 우리의 과거 속에 묻혀 잊혀지고 빛이 바랬다.

대학생 자살이라는 안타까운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는 요즘, 처음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자. 내가 할아버지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의 가치를 깨달았 듯,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다.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누군가를 위해 해야할 일도 많은 사람들이다.
그러니 만약 지금 당신의 가치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있다면, 기억하길 바란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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