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때 우리 반은 매번 전교 꼴찌를 했다. 단합심이 좋기로 유명했지만, 우리는 ‘꼴찌반’이란 자격지심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매사에 소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단합심마저 점점 사라져 체육 대회·환경 미화 등에서도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공부 못하고 떠드는 반’이란 스스로에 대한 인식이 결국 우리를 ‘진짜 꼴찌’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런 예는 꼭 작은 범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미국 아이오와 대학 김재온(사회학 전공) 석좌교수가 분석·발표한 통계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객관적인 국력은 세계 10위지만, 국민이 생각하는 ‘세계에 미치는 정치적 영향력’은 조사 대상인 34개국 중 33위로 집계됐다. 이는 국력에 대한 객관적인 현실과 국민이 느끼는 주관적인 인식 사이의 괴리가 심각하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더군다나 과학·예술·군사력·정치적 영향력 등 10개 항목 중 국제 평균을 넘은 한국인의 유일한 자부심은 스포츠 단 하나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나머지 9개 항목의 자부심은 모두 평균치에 크게 미달한 셈이다.

이렇게 현실에 비해 국민 스스로가 자국이 세계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나칠 정도로 낮다고 평가하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결과가 외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집단 내부인’에 의해 자행됐다는 점이다. 자기 비하로 자신을 낮추는 행위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좋은 평가를 해주지 않는다. 자신이 속한 집단, 더 나아가 자국에 대한 자부심 결여는 결국 자멸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자부심 없는 국민들이 어떻게 자부심을 갖게 하는 나라를 만들 수 있겠는가.

‘제 살 깎아먹기’식의 소모적인 행위는 우리를 나락 끝으로 내몰기만 할 뿐이다. 필요 이상의 약소국 콤플렉스는 독(毒)이다. 강대국·약소국의 구분은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서부터 출발한다. 언제까지 약소국 콤플렉스에 빠져 나라 탓만 할 수는 없다. 일본·중국과의 역사 분쟁이 심각하게 터진 지금 상황에서 자신과 자신의 나라를 깎아내리는 어리석음은 더욱 위험하다. 자신의 뼈를 스스로 깎아 버린다면, 결국 제대로 서있기 조차 힘든 위기가 찾아오는 것은 시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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