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 시네마떼끄 3월 3째주 기획 상영

 

 

2시

쳐녀들의 저녁식사 100m 

모리스 140m

안토니아스 라인102m

피아니스트

피아노121m

5시

휴관 

 

질투는 나의 힘124m

테스170m

36처녀88m

위험한 관계110m

 

이번 세미나는 ‘성적 주체성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질문이 쏟아내는 대답은 색동 저고리마냥 제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의 의문은 성적 주체성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그것이 결코 호락호락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절감하였다.

장시간의 세미나를 거치면서, 우리는 우리가 가졌던 의문에 대한 실낱같은 대답 몇 가지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의지’와 ‘관계’가 가지는 주체성과의 불가피한 연결점이다. 우리는 성적 주체성의 구체적인 모습을 살펴보기 위해 임의의 영화를 선정하였고 그를 토대로 하여 이러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음을 밝힌다. 

성적 주체성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의지’이다. 의지. 그것은 선택과도 긴밀히 연결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The Traveler's Gift에서 안네 프랑크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 중요한 것이 내용이라면, 그것은 곧 우리 자신이 그 안에 뭘 넣겠다고 선택한 것의 총합이에요.” 우리가 선택한 것의 총합. 그것의 전제가 되는 것이 바로 의지이다. 의지가 전제될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선택의 총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의지를 바탕으로 행동하는 자야말로 진정한 주체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성적 주체성에도 적용된다. 물론, ‘성적’이라는 단서가 주는 많은 제약들이 존재하지만 성적 주체자가 되기 위해서는 ‘의지의 실현’이 필수적으로 이행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곧 선택의 실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성적’이라는 단서가 동반하는 제약이 드러난다. 그것은 바로 ‘관계’이다. 삶의 주체성에 있어서 전제요소는 ‘나와 삶 그 자체’로 족할 것이다. 그러나 성적 관계에 있어서 주체성은 대상을 필요로 한다. 나와 성적인 관계를 이루는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대상의 대체 가능성이다. 대상은 언제나 대체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를 동반하는 ‘성적’ 주체성에 있어서 ‘의지’는 대상에 따라 그 모습이 변형될 수 있다. 따라서 성적 주체자의 유형은 두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나’에 중점을 두고 의지를 실현하는 경우와 ‘관계’를 중점에 두고 의지를 실현하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전자와 후자 중 어떤 것이 보다 바람직하고 말할 수는 없으나, ‘자의식’을 염두에 둘수록 성적 관계에 있어서 ‘나’(전자의 경우)는 매우 중요해진다.   

 

결국 성적 주체성은 ‘그들과 나의 성적인 관계 안에 나의 의지를 놓아둔다.’ 라는 문장으로 집약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적 주체성의 문제가 단지 ‘성적 관계 안에서의 의지 표명’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수많은 이데올로기들과 깊이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회 문화 속에 뿌리 깊게 내재해 있는 순결 이데올로기, 외모 이데올로기, 강간 이데올로기 등은 스스로에게 성적 주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을 쉽지 않게 만든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혹은 여성으로서 성적 주체성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므로 이번 기회를 통해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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