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필화 교수(여성학 전공)

eya 선생님께
올 6월 이화동산에서 열릴 ‘제 9차 세계여성학대회’소식을 궁금해 하신다고 해서 짧게나마 글을 드립니다. 조직위원들과 많은 후원자들이 헌신적으로 일하신 덕분에 정부와 기업의 지원을 받게 되어 큰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또 논문발표 신청자가 1천7백명이 넘는 것으로 미루어보면 대회 역사상 가장 큰 대회가 될 것 같은 예감도 드네요.

선생님, 이화 캠퍼스에서 싹을 틔운 ‘호주제 폐지’요구가 반세기가 지나서야 관철되는 걸 보면서 모든 중요한 일들은 이렇듯 여러 세대를 거친 노력으로 이루어지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성학 역시 그렇습니다. 이화가 ‘여성학’이라는 학명을 만들어낸 것부터, 석·박사 학위과정을 개설한 일들은 한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선구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학의 성과가 대학사회를 넘어서 여성 관련 법 개정 및 제정 그리고 여성부 설립 등 국가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 것 같아요.

하지만 선생님, 법적·정책적으로 여성의 주류화를 중심적 화두로 가져가면서 동시에 여성학의 존립과 방향에는 큰 도전이 던져지고 있습니다. ‘억압과 차별을 받아온 피해자 집단으로서의 여성’­이제까지 여성학은 이러한 정체성에 우선 순위를 두고 집단적 여성의 문제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과제에 집중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커지는 만큼 대안 제시와 변혁 전략에 대한 사회적 요구 또한 크게 대두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국면을 맞이해 여성학자들에게는 사회적 공감과 변혁을 이루어내야 할 새로운 과제가 놓여져 있는 것을 느낍니다. 다행히도 이화에서는 여성학이 특성화 사업으로 지정돼, 캠퍼스에서 일어나는 연구와 교육·사회봉사 전반을 여성주의 시각으로 재조명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여러 기관과 더불어 진행하고 있습니다.

가부장제 문화 패러다임을 변혁한다는 실로 엄청난 과제는 모든 학문분야 전공자들이 함께 역량을 결집해야 가능한 일이겠지요.

그 결집의 모습을 올 6월에 한반도 여성들과 전 세계 여성들이 화통하게 보여줄 때 선생님도 함께 하실 거지요? 꽃샘바람 부는데 감기 조심하세요.

◆필자 소개
저는 ‘제 9차 세계여성학대회’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장필화 교수입니다. 현재 연구 중인 ‘여성주의 리더십’은 어떻게 하면 여성이 사회개혁에 앞장서는 행위 주체가 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여성학이 정교한 가부장제 사회였던 우리나라에서 발전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역사의 역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작될 당시 오늘과 같은 변화를 상상도 못했던 여성학 연구처럼, 이화인들도 긴 안목을 갖고 원대한 꿈을 가지길 바랍니다.
다음 편지는 오정화 교수님께서 써주실 예정입니다. 선생님은 한국여성연구원장으로 여성주의 문학을 연구하면서 중국·북한 여성학자들과의 교류 증진에 힘쓰고 계십니다.

#이번학기 ‘연구실에서 쓰는 편지’ 는 ‘제 9차 세계여성학대회’ 특집으로 꾸려집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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