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예술’이 자유롭고 감성적인 만큼 예술계 또한 여성이 보다 쉽게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여성 화가는 기교는 있지만 창조력은 없다’, ‘여성은 가요 작곡은 해도 오케스트라 작곡은 절대 못한다’. 이러한 인식들이 현재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듯 예술계에는 여성의 진출이 활발하지 못한 ‘금녀의 구역’이 존재한다.

특히 기술직이나 여러 사람을 통솔해야 하는 분야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수적으로 적은 경우가 많다. 또 활발히 활동을 해도 그 가치와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기도 한다. 여성영화인모임의 사무간사 우현민씨는 “연출·조명·촬영 분야는 여성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이 분야 여성 종사자들이 함께 남성과의 마찰 등의 문제점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 이에 대해 여성문화예술기획의 간사 라이씨는 “예술계를 책임질 여성 인력이 많이 배출돼 여성이 주체적으로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문화계 내에서 여성의 활동이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고 여성으로서 당당히 성공한 여성 문화인들이 있다. 이들을 만나 꿋꿋하게 우리나라 예술계를 이끌어나가는 그들의 ‘지혜’와 ‘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합창지휘자 김혜옥씨

▲ 합창지휘자 김혜옥(55)씨.
2004년 12월3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솔리스트 앙상블 제 21회 정기연주회’에서 창단 20년 사상 최초 여성지휘자로 활약하고 있는 김혜옥(55)씨를 만났다. 특히 ‘솔리스트 앙상블’은 유수의 남성 성악가들이 모인 합창단이기에 ‘여성 지휘자’라는 이름은 더욱 빛날 수 있었다.

큰 단체의 지휘자는 감히 여성이 엄두를 내지 못하는 분야였다고 한다. 남성우월주의가 팽배한 현실에서 사람들은 지휘는 남성적인 분야여서 여성들이 하기엔 힘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줄리아드 음대에서 유학생활을 한 그는 “미국에서도 여성 지휘자에 대한 편견이 있어 여성 지휘자들은 교회·어린이 합창단같은 작은 단체에서만 지휘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여성 지휘자가 늘어나는 추세지만, 여전히 시립합창단 등에서 지휘자는 남성의 차지”라며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그는 사회로 진출하고자 하는 여성들이 스스로 자신을 남성보다 떨어진다고 비하하거나, 남성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또 “남성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시했을 경우에도 주눅이 들거나 화를 내지 말고, 그를 인격적으로 대우하면서 정확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방식을 연구해야 한다”고 전했다. 또 “어떤 분야건 여성과 남성이 서로를 이해하고 보완하며 관계를 조화롭게 유지해야 발전을 이뤄낼 수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훌륭한 지휘자에 대해 그는 “그저 지휘봉을 휘두르고 단원에게 군림하는 자가 아니고 개개인의 특성과 재능을 잘 발굴해 그 역량을 최고로 키워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또 지휘자란 직업이 많은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하기 때문에 “여성이 갖고 있는 섬세함·참을성·포용력이란 귀중한 재산을 발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극연출가 방은미씨

서울에서 활동하는 여성 연극연출가는 약 10여 명 남짓. 그 중 극단 ‘아리랑’의 대표

▲ 연극연출가 방은미(46)씨. [사진:신진원 기자]
방은미(46)씨를 만났다.

그는 연출활동을 하며 주변사람의 여성에 대한 편견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일을 하다보면 나이가 많은 남자 배우가 은연 중에 여자라고 무시하는 말을 하거나 골탕 먹이기도 한단다. 그는 담배 한 대를 피워물며 “한 번은 술자리에서 나이 어린 남자배우가 나를 두고 ‘속좁은 여자라 연출이 그 따위’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고 그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당시 그 사람을 피하는 대신 오히려 더 인격적으로 대해 좋은 결과를 이끌어냈다고 한다. 그 후로도 그런 경우가 생기면 배우와 스텝을 한자리에 불러놓고 연출의 역할을 강조하고 각자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는 ‘정면승부’의 방법을 사용한다고. 그는 “어느 여성 연출가의 경우 카리스마로 무장해 문제 제기할 틈을 주지 않는 ‘연출지상주의’를 추구한다”며 “여성 연출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런 방법도 결코 나쁘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전했다.

방은미씨가 최근 준비하고 있는 작품은 정신대 할머니를 주제로 다루는 ‘나비’라는 연극이다. 그는 이 연극에 대해 “정신대 할머니의 삶은 셰익스피어가 지은 그 어떤 작품보다 극적인 이야기”라며 “할머니들의 고통이 담긴 극본을 읽는 순간 가슴 속이 뜨거워지며 ‘나도 여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소재의 경우 여성이 더 공감하기 쉽기 때문에 오히려 남성 연출가에게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많은 여성들이 배우나 무대미술 분야 뿐 아니라 연극 연출을 비롯한 스텝분야에도 진출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는 안전이 보장돼 있지만 항해하는 재미는 느낄 수 없다”며 “고난과 역경이 있지만 그만큼의 기쁨과 희열을 얻을 수 있는 연극의 길로 과감하게 돛을 올리고 항해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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