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집」「브리짓 존스의 일기」

 ‘사랑이 아니라 연애란 말이지’
기고를 수락한 후 한참을 생각해보니‘연애’란 말에 담긴 의미가 사랑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문학·인문학 서적들이 사랑을 논하고 있지만 정작 ‘연애’를 제대로 말하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안타까운 사연 혹은 안나 카레니나가 브론스키와 불태웠던 열정이 연애보다 사랑이란 이름에 더 익숙한 것처럼 말이다.

달콤한 설렘과 함께 찾아오는 기묘한 연애의 감정을 영국 작가 헬렌 필딩의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 이 베스트셀러는 사랑보다 연애에 무게를 싣고 있다.

하지만 30대 독신 여성이 겪는 연애 과정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다. 데이트 이전 단계에서 벌어지는 희롱과 추파·데이트의 규칙·완벽한 결혼의 약속으로 끝나는 결말까지. 그 속엔 노처녀란 위기감을 이용하는 남자부터 연애의 책임을 회피하는 남자, 완벽한 조건을 갖춘 남자까지 다양한 연애 상대들이 등장한다. 연애에 대한 우리의 속물근성을 숨기지 않아 더욱 통쾌하기도 한 이 소설은 연애가 하나의 유희인 동시에 성공한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조건이라고 말한다.

반면 이러한 통념들을 모조리 뒤집어 엎고도 ‘완벽한’연애를 그려낸 책이 있다. 엘리자베스 맥크래큰의 「거인의 집」이 바로 그것이다. 시골 도서관에 처박혀 사랑 없이 살아가던 노처녀 사서는 거인병에 걸린 소년을 좋아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비극적인 삶을 사는 소년을 사랑하는 데 자신을 던져 삶의 의미를 찾겠다고 결심한다. 얼핏 보면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것 같은 두 사람의 연애는 계속 장애물에 부딪히면서 오히려 시시콜콜한 일상의 모습으로 펼쳐진다.

이 소설은 여성이 연애의 판타지를 실현하는 전혀 다른 길을 보여준다. 사회에서 실패하거나 사랑에 대해 달콤함과 설레임이 없더라도 완벽한 연애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이 책에서 연애는 성공이 아니라 책임·결단이며 사랑과 마찬가지로 소통인 동시에 삶의 의미로 나타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꿈꾸는 것은 완벽한 사랑보다는 완벽한 ‘연애’가 아닐까. 비록 진부하지만 사랑을 고백하고 특별한 날 꽃을 건네는 모든 연인들의 행동코드 말이다. 결혼에 끼어드는 나른한 권태나 지리한 일상·이별의 아픔도 면제된 이 미정의 상태에 오늘도 사람들은 행복을 기대하고 있다.

「거인의 집」 엘리자베스 맥크래큰 지음 / 김선형 옮김, 이안북스, 2004
「브리짓 존스의 일기」 헬렌 필딩 지음 / 임지현 옮김, 문학사상사, 1999


번역문학가 겸 영문학자 김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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