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아내도 살려면 돌아올 수 밖에

‘젊음의 거리’ 신촌은 하루종일 사람들로 몰아치는 곳이다. 대형쇼핑센터와 유흥주점들이 즐비한 거리에는 사람들의 열기가 넘친다.

하지만 이렇게 번화한 신촌 인근에서 사람들은 의외의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보자기를 풀어놓고 나물이나 각종 잡화를 파는 노점상 노인들의 모습이 그것이다. 사람들에게 이제 노점상 노인들은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 돼버렸다. 그래서인지 그림 속 ‘박제’된 풍경인양 사람들은 무심히 그들을 스쳐간다.

▲ 신촌역 7번 출구 쪽에서 한 할머니가 더덕을 팔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장소지만 대부분 무심히 할머니를 스쳐 지나간다. 현대 백화점의 로고와 사람들의 무관심은 할머니를 더욱 작아보이게 한다. [사진:신진원 기자]
노점상 노인들은 주로 자녀의 경제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보조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신촌역 4번 출구에서 면봉과 달고나를 판매하는 최형식 할아버지(73세) 역시 스스로 생계비를 벌기 위해 길거리에서 하루 9∼10시간 일한다. 그렇게 일해도 방세와 식비대기가 빠듯한데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더욱 수입이 떨어졌다고 한다. 사람들이 넘쳐나는 신촌의 거리를 바라보며 할아버지는 “지나가던 중 노인네가 불쌍해뵈는 사람들이나 하나씩 팔아주고, 그런거지 뭐”라고 말한다.

현대백화점과 이어지는 7번 통로 쪽에서 더덕을 파는 정 할머니(80세)는 “못죽어서 하는거야”라며 한탄한다. 아들이 척추를 다쳐 돈을 못 버는데도 자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정부의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할머니는 방세낼 돈을 벌기 위해 신촌역에 온다. 오전7시 경동시장에서 물건을 떼와 줄곧 신촌역 냉기도는 바닥에서 일하는 것이다. 단속이 덜한 날엔 하루 9시간씩 장사하지만 많이 벌어야 고작 1만5천∼2만원이 전부다. 다리가 아프다는 할머니는 장사하는 내내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지 못한 채 쪼그리고 앉아 있다. “뭐라도 깔고 앉으세요”라고 말을 건네자 “단속이 뜨면 얼른 도망가야한다”고 대답한다.

갑자기 노점상들이 보자기를 추스려 바퀴달린 카트에 싣는다. 단속이 시작된 것이다. 노점상들은 순식간에 각자의 짐을 들고 흩어진다. 곧 신촌역 역무실 직원이 와서 미처 피하지 못한 노점상들을 추궁한다. 하지만 5분 내지 10분을 역에서 서성이던 상인들은 이내 눈치를 보며 다시 그 자리에 짐을 푼다. 역내는 하루종일 이런 상황의 반복이다.

“술래잡기하는 거예요. 먹고살려고 하는 거니 안타깝지만, 민원이 자꾸 들어오니까 우리도 별 수 없죠” 의미없는 싸움에 지친듯 역무실 직원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당역 관리자들이 노점상들을 고발하면 이들은 3만원 내지 5만원의 벌금을 물어야한다. 더욱이 고발을 3번 이상 당하면 형사입건돼 법원의 판결을 기다려야 하는 실정이다.

“쫓을 땐 쫓아도 고발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스타킹 파는 할머니가 보자기 속에서 엉킨 스타킹 더미들을 정리하며 말한다. 한달에 20∼30만원 버는 이들에겐 고발당할 때마다 내야하는 3만원·5만원의 벌금은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우리는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이니 정부가 벌금을 줄여주려는 노력이라도 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가슴을 치며 호소한다. “벌금을 물어도 다시 오는거야. 총으로 쏴죽이기 전에는 올 수 밖에 없는거야. 죽을 수는 없으니까”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얼굴에는 고단한 삶의 문양인양 주름살이 가득하다.

노년의 한숨과 젊음의 활기. 보자기 위의 작은 노점과 백화점. 오늘도 신촌역에는 양극의 풍경이 공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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