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학은 활발한 논의 이뤄져… 예민한 정치상황으로 인한 분야별 편중 극복해야

지난 2월20일(일) 금강산에서는 남북한 학술교류의 큰 성과로 ‘겨레말 큰사전’의 편찬위원회가 출범했다. 이같은 남북한 학술교류는 어떻게 진행돼 왔으며 현재 어떤 상황일까.

통일연구원 기초연구사업본부장인 조한범 연구위원은 “남북한 학술교류는 타 분야에 비해 양적으로 활발한 편”이라고 평가했다. 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전까지 저조한 양상을 보인 남북한 학술교류는 이후 대북포용정책에 따라 활성화의 기류를 타기 시작했다.

위에서 언급한 ‘겨레말 큰사전’은 남한의 표준어·북한의 문화어·남북한 각 지역 방언을 담아내, 남북한의 국어학자·문인들이 통일의 밑거름이 되는 ‘언어 통일’에 합의한 것이다. 남측 편찬위원장을 맡고 있는 연세대 홍윤표 교수(국어국문학 전공)는 “군 단위의 방언 조사와 문학 작품 속 단어 조사까지 함께 병행해 남북한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언어를 실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작년 6월에는 ‘근현대사 항일민족운동의 역사적 경험과 일본의 우경화’를 주제로 ‘제 4회 남북공동학술회의’가 경기도 성남에서 열린 바 있다. 남측의 한국학중앙연구원(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과 북측의 조선사회과학자협회 등이 공동 주최한 이 행사는 제 3국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열린 행사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이서행 교수는 “앞으로 정기적인 학술대회를 여는데 남북학자가 의견을 모았다”며 “이후 진행될 회의를 통해 남북한의 공동 대응이 필요한 동북공정·발해사 등 인문사회과학 교류에 더욱 힘을 쏟을 것”이라고 전했다.

포항공대 박찬모 총장은 “IT 등의 과학기술 분야는 학술교류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기업이 평양에 가서 공동연구를 벌이기도 한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남북한 학술교류가 비정치적이고 북한이 필요로 하는 분야로 한정된다는 점을 한계로 꼽는다. 이로 인해 형식적인 만남에 그치는 사회과학분야부터 풍성한 논의가 오가는 국어학분야까지 학문에 따라 교류의 정도차가 존재한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윤대규 부소장은 “현재 학술교류는 북한이 추구하는 이익에 따라 시장 경제 및 과학기술 분야와 자신들의 논리에 힘을 싣는 통일정책 등에 한정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경남대 북한대학원장 최완규 교수는 “북한의 사회과학 분야는 주체사상 연구가 주를 이루고 있어 북한 체제의 특성에서 오는 남북 간의 벽이 존재한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심지어 한 학문 내에서도 남북한이 민감하게 여기는 부분은 교류에서 외면당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역사학 내에서도 현 정치 체제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근·현대사에 대한 연구 및 교류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이에 대해 조한범 연구위원은 “북측은 현 정권의 안정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고대사 영역을 상대적으로 부각시키려 한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남북한 학술교류는 보여주기식의 일회성 차원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 정기적인 학술회의로 발전하기 힘들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또 대부분이 남과 북이 직접 왕래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일본 등 제 3국에서 이뤄져 질적인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조한범 연구위원은 “교류의 성과를 논하기 보다는 중·장기적으로 남북한 간의 관계 진전을 바라보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이어질 학술교류에 기대를 내비쳤다.

한국학술진흥재단에서 남북학술교류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국제교류팀 이영수 팀장은 “북한 내의 여러가지 변수로 인해 사업을 추진하는데 어려움이 있지만 효율적으로 교류를 확대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 또 전문가들은 앞으로 통일을 위해 가치관의 이질화를 극복하는 과제도 남아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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