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하게도 나는 첫 상록탑을 쓰게 됐다. 그것도 마감 하루 전에 결정된 일이었다. 하지만 평소 사회 여러 사안에 대해 확고한 의견을 피력하던 나였기에, 아무도 내가 상록탑을 쓰는 일에 난항을 겪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나조차도 ‘그깟 상록탑 쯤이야’라며 배짱을 부렸다.

그러나 데드라인을 5시간 넘긴 오전3시32분. 나는 컴퓨터 앞에 멍하니 앉아 상록탑의 주제를 생각하고 있다. 벌써 이틀 동안 ‘다시 시작하기’, 영화 ‘그때 그 사람들’, ‘가식’ 등등 수많은 꺼리들이 내 머릿속을 거쳐 갔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완결성 있는 글로 정리할 수가 없었다. 절반 정도 쓰다보면 생각이 막히고 혼란스러워져 도저히 끝을 맺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문득 내 생각, 내 주장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목청껏 부르짖었던 나의 사고방식과 의견들이 과연 내 것이기는 한 것일까. 매스컴에 보도되는 전문가의 의견을 읽기 전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나 혼자만의 생각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던가.
나는 내 자신이 여태까지 대다수 타인의 의견에 적당히 동조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의견이라고 믿은 채, 스스로 생각해보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간혹 독자적인 의견을 갖게 되더라도 논리력으로 내 주장을 탄탄히 해야겠다고 여기기보다는 대다수 사람들의 의견이나 전문가의 의견을 먼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곤했다. 마치 수학 문제를 풀 때, 답을 맞추듯 타인에게서 내 주장의 ‘맞고, 틀림’을 확인 받으려 했던 것이다.

이런 습관들은 내 의견을 표현하는 것에도 영향을 끼쳤다. 만일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알 수 없는 경우에는 남 앞에서 선뜻 내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회 저명 인사의 주장이나 내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찾지 않으면 마치 내 생각이 틀린 것처럼 불안해 하곤 했다.

내 경우처럼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온전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없게 돼 버린 것 같다. 진지하게 스스로의 의견을 생각할 시간조차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는 개개인이 그들만의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소위 ‘모범답안’을 내놓고, 개인은 아무 비판 없이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있다. 마치 동물원에 갇힌 맹수가 사냥방법을 잊어버린 것처럼 우리들도 주어지는 답안에 익숙해져 자신만의 답안을 찾는 방법을 잊어버리고만 것이다.

우리는 하루빨리 독자적인 사고능력을 길러야 한다. 언제까지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여론에 휘둘릴 수는 없다. 한 두번 기대다보면 언젠가 여론에 갇혀 버릴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다보면 결국 주관식이 아닌, 주어진 보기만을 바라보는 객관식형 인간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남의 생각만을 따라하느라 녹이 슬어버린 두뇌회로에 기름을 칠하고 나만의 답을 찾아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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