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시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언제나 데드라인에 쫓기는 기자에게 시간 엄수란 곧 죽어도 지켜야만 하는, 기자로서의 최대 필요조건 중 하나다.

그러나 명색이 이대학보사의 수습기자라는 나는 애초부터 시간관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 이었다! 친구들을 만날 때도 10~20분 정도 늦는 건 예사요, 한번은 1시간가량 늦은 적도 있었다.

아침 보충수업이 있던 고3때도 언제나 0교시가 끝날 무렵에야 간신히 학교에 도착하곤 했다. 심지어 재수학원에 다니던 시절엔 20번 지각하면 퇴원 조치한다는 규정이 있었음에도 늘 지각을 밥 먹듯이 해 실제로 퇴원 위기에 봉착하기도 했었다.

대학에 와서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아 수업이 있는 날은 항상 이대역에서 강의실까지의 숨 가쁜 뜀박질로 시작되기 마련이었다. 이토록 화려한 지각 편력이라니, 내가 학보사에 들어오자마자 지각 문제로 곤혹을 치르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던 셈이다.

학보사 수습기자에게 가장 먼저 주어지는 색인 과제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부터 이러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학보사 합격 소식을 전해들은 직후엔 이제까지의 나사 풀린 삶을 깨끗이 정리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고야 말겠다는 굳은 다짐을 몇 번이나 해보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색인 과제에 돌입하는 장한 모습을 연출했다. 사실 방학 둘째 주부터 학보사 첫 출근 바로 전날까지 이어지는 중국 여행 때문에 부득이하게 일찍 시작했던 것이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채 색인과제를 끝내지 못해 여행지에서까지 숙제를 해야만 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어디 여행지에서 하는 숙제가 제대로 될 리 있겠는가? 결국 마감을 지키지 못해 각 부 부장님들께 싹싹 빌어가며 제출 일자를 미루고 미루는, 최대의 비극을 맞이하고야 말았다.

예전부터 계획해 온 여행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곧 죽어도 시간은 엄수해야하는 기자에게 변명 따윈 있을 수 없는 법.

그렇지만 그 후에도 나의 지각은 계속됐다. 신문 상평 시간 지각에, OT 과제 지각 제출에, 정말 나는 75기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지각 대장이었다.

여기까지 계속 과거형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실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여전히 지각 대장의 굴레를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유감스럽게도 내 지각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하지만 이를 고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조금씩 느리게나마 변화해 가는 내 자신을 느낀다.

지금은 시간에 지배당하고 있지만 학보사 생활이 끝나는 2년 후엔 나도 시간을 지배하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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