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톨 프랑스의 「무희 타이스」

하자작업장학교 길잡이 교사 이숙인 선배(교육·84년 졸)

 

나는 ‘불의 연대’라 일컬어지는 80년대의 80학번이다. 새내기가 되자마자 나는 그동안 내 가슴과 머리를 차지했던 모든 감정·기억·사고를 새로운 ‘의식화’의 과정과 결과물들로 대체해야 했다. 그 경험의 세례가 어찌나 ‘찐∼’했던지 그 외 대학시절의 독서경험은 도통 생각나질 않는다. 글쎄, 이런 내가 나 자신의 독서편력을, 그 중 단 한 권의 책만을 떠올리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행동하는 지성’의 막중한 의무감 속에 읽었던 사회과학서적, 즉 역사서적·철학서들은 20대 후반까지 지속된 내 독서편력의 제 1기였다. 그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일했던 7·8년간은 각종 교육 관련 저서들이 주를 이룬다. 그것이 2기쯤 된다면 이어 소설 한 권·뮤지컬 한 편을 세상에 내놓고, 페미니스트 저널 기사·방송용 패널 원고를 쓰던 시기의 독서편력이 한 3기쯤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세 시기를 모두 관통하며 내내 내 마음에 울림을 줬던 책들이 있다. 이 계열의 책들을 축약, 설명하면 ‘매우 탐미적인 책들’로 이름붙일 수 있다. 여기엔 모옴의 「달과 6펜스」, 뭉크의 전기, 신디 셔먼의 사진집이 포함된다. 그중에서도 한 권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나톨 프랑스의 「무희 타이스」를 들겠다.

중세 유럽, 눈부시게 아름다운 무희로 유명한 고급 매매춘 여성 타이스에게 사막의 은자이자 내공이 대단한 수도사가 진리의 말씀을 전하러 온다. 황진이와 선사의 만남만큼이나 드라마틱하게. 그리고 타락한 여인 타이스는 사막의 수도사에게 깊이 감화돼 성녀가 된다. 하지만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수도사는 거꾸로 무희 타이스를 잊지 못해 마침내 파멸에 이르고 만다.

모래시계 같은 이 소설은 생의 끝없는 순환과 어리석은 반복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삶이란 알면 알수록 불가사의하고 총체적이며 끔찍하게 모순투성이다. 마치 자극적인 아름다움으로만 직조되는 조각보같다. 이는 빛나는 청춘의 송가와는 거리가 멀었던 나의 대학 시절의 나날들이 내게 묵시했던 그대로다. 그래서 이 책은 당시 내게 전율 어린 예감을 줬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내겐 슬프고도 아름다운 기억의 한장으로 깊이 각인돼 있는 것이다.

 

이숙인 선배는 도시형 대안학교인 하자작업장학교에서 학생 활동을 돕는 코디네이터로 학습·진로 상담도 맡고 있다.

허무주의에 시달리던 10대 시절 그는 밝게 봉사하는 수도사를 본 뒤 모순된 학교를 바꾸는 교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한 때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제도권 학교의 한계를 체감하기도 했다.

이숙인 선배는 이화여대란 특별한 공간에서 만들어진 감정·체험·지식이 그의 삶을 창조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화인들에게 “체험으로 삶이 향상된다”며 “마음에 귀를 기울여 삶을 바칠 가치를 찾으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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