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이노션 광고기획자. 전 브랜드 마케터. 지금은 갭이어를 즐기는 ‘쩝쩝박사’. 본교 소비자학과(광고홍보학 복수전공)를 2015년 졸업하고 7년간 성실히 회사와 집을 오가다 돌연 퇴사, 황홀한 갭이어를 보내고 있다. 갭이어 8개월 차, 무사히 행복하고 많이 웃고 먹는다. 굳이 특별해지려 노력하지 않는 일상의 힘을 느낀다. 숲과 바다를 누비며 프리랜서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공간에서 눈을 떠 노트북으로 자료를 만들고 미팅을 한다. 스몰 브랜드의 컨설팅을 진행하고, 제품 론칭 프로젝트의 PM으로 일하며 브랜드의 세계관을 만
작년 겨울방학, 친구의 권유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정주행했다. 활자형 인간으로서 처음에는 보면서도 이걸 내가 끝까지 볼까? 긴가민가했는데 어느 순간 유튜브 리뷰 영상들까지 찾아보고 있었다. ‘슬의생’ 리뷰 영상들에 빼놓지 않고 등장했던 장면이 있다. 5화 막바지에, 갓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고 기쁨에 찬 아버지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다. 나도 그 장면을 보며 뭉클했던지라 궁금했다. 왜 사람들은 탄생과 죽음의 이야기에 이렇게 가슴 벅차하는 걸까?그것은 생명이 인간의 존귀함을 다루는 최고의 은유이기 때문이다. 제아
“혼돈이 지배한다는 것”, 그것은 결국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허무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혼돈은 곧 나아간다는 것이다. 시끄럽고 어지러운 사회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각을 멈추고 싶을 때가 많았다. 버젓이 존재하는 이들을 묵인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관념의 위계질서가 곧 정답이라는 말들이 버거웠다. 사람들을 끊임없이 나누고, 그 사이에서 정상성을 찾으려 하고 있다.완벽한 질서라는 환상을 유지하려는 시도는 계속 있었다. 책에서도 나오는 예시로, 나치는 게르만족이 우월한 혈통이며 그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 이민족들을 무
“학생이신가요? 그럼 무료입니다.”흔히 유럽으로의 교환학생 파견을 생각하면 비용이 많이 들 거로 생각한다. 나 역시 한국을 떠나오기 전 비용 걱정이 많았다. 매 학기 조금씩 돈을 모았고, 직전 학기 인턴을 하며 경비를 끌어모았다. 그러나 독일에 온 지 한 달이 넘은 지금, 누군가 지갑 사정 괜찮으냐고 물어본다면 “생각보다 괜찮다”고 답한다. 이곳에서 나는 바로 학생이기 때문이다.초반에는 독일에서 학생이란 신분이 마치 벼슬이라도 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학생증은 프리패스 입장권과 같다. 학생증만 내밀면 미술관, 박물관은 물론 심
2020년 3월 이후 2년 만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되었다. 언론에서는 ‘일상으로의 회귀’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쏟아내고 있지만, 문득 우리의 일상이 과연 2020년 이전의 그것과 동일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코로나 이후의 일상은 그 이전의 일상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을 띠고 있을 까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날의 꽃잎이 흩날리는 대학 캠퍼스를 오가는 학생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흔적을 까맣게 잊게 만든다. ‘청춘’이라는 단어는 어느 시기에나, 어떤 상황에서도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런데 과연 당사자인 청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2004년부터 본교 국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통일준비위원회 전문위원, 청와대 안보실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고, 2019년 민간통일운동에 이바지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현재 중앙일보 독자위원회 위원, (사)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 민화협 정책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고 (사)한국국제정치회장(2023년)으로 선출됐다. 2021년부터 본교 총무처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한국형 발전모델의 대외관계사』(편저), 『탈냉전사의 인식』(편저) 등이 있다.“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
본교에서 정치외교학과 동아시아학을 전공하고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창원대 사회과학연구소에서 한국과 대만의 이주배경 청소년을 비교 연구하며 대학과 초·중·고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공저로 『민간중국: 21세기 중국인의 조각보』, 『문턱의 청년들: 한국과 중국, 마주침의 현장』을 썼다.“선생님, 다문화 교육 시간은 그냥 자는 시간이에요. 너무 힘들게 가르치지 않으셔도 되어요.”코로나19가 잠깐 주춤하던 어느 날의 고등학교 교실이었다. 문화인류학을 전공하는 인류학자로서 나는 대학에서 ‘문화’를 가르치기도 하지
소설/목소리를 드릴게요오랫동안 유토피아(Utopia)를 생각했다. 우리에게 유토피아란 존재할까? 관념의 모습이든, 실재의 모습이든 유토피아의 존립 가능성과 건설 방식에 관해 고민했다. 이 글은 정세랑 작가 소설집 ‘목소리를 드릴게요’를 읽고 썼다.인간은 최초의 유토피아인 어머니의 포궁으로부터 세상이라는 디스토피아(Dystopia)로 추방된다. 따라서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으로의 회귀를 바란다. 살아있는 한 우리는 매 순간 죽음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멈춰서는 안 된다. 멈추는 순간 죽음이니 말이다. 인간의 탄생이 낙
지난 1월, 프랑스 북부 도시 릴에 도착했다. 프랑스에서 생활하며 보고 겪은 중 가장 낯설게 느껴졌던 것은 ‘프랑스 타임’이라는 것. 이곳에서는 Quart d’heure de politesse, 15분의 예절라고도 하는 이 개념은 약속 시간보다 15분 정도 시간 여유를 두고 참석하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친구가 오후 7시에 집으로 초대했다면 적어도 7시15분 이후에 도착하는 것이 좋다. 사람들을 초대한 호스트에게 집을 정돈하고 음식을 준비할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준다는 의미에서다.실제로, 6시30분에 모이기로 약속한 날 나는 6시
그날은 자격증 시험 전날이었다. 대단한 건 아니었지만 두 달을 쏟은 공부였고 해당 분야의 ‘취준’을 위해서라면 으레 따고 간다는 자격증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입국 허용 소식을 들을 줄이야.불과 하루 전, 계속된 입국 금지에 더는 기다릴 수 없었던 막학기생은 눈물을 머금고 교환학생 파견 포기서를 냈다. 포기 각서를 낸 다음 날 새벽, 입국 금지가 풀렸다는 소설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일 년을 기다렸는데 고작 하루 차이로 운명이 바뀌었다. 타이밍이 참 얄궂었지만 나의 사정을 설명해도 예외는 없었다. 마침 공부하던 곳이 자유열람실이라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에 피티(PT), 필라테스와 같은 고비용의 운동 강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서양에서 들어온 이런 고비용 운동 강풍도 한국식으로 변환됐다는 것이다. 서양인들은 주로 자신의 건강을 위해 헬스를 하지만, 한국인들은 보여주기식의 운동을 한다는 점에서 한국식 패치가 붙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타인의 눈길을 신경 쓰는 국가다. 그래서 특정 행동을 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눈길을 의식해서 하는 사람들이 많다. 헬스장도 똑같다. 초반에 붐이 불 때에 비해서는 다양한 사
3월 21일 월요일, 학교 안에서 빈티지 의류 마켓이 열렸다. 학생문화관과 같은 스튜던트유니온(Student Union) 건물 2층에 올라가니 후드티부터 가죽 재킷, 알록달록한 셔츠, 청바지 등 다양한 중고 옷들이 걸려있었다. 학생들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건지기 위해 이것저것 대보며 옷을 살펴보고 있었다.학교 안에 빈티지 의류 마켓이라니! 한국에선 볼 수 없는 생소한 광경이 꽤 신기했다. 사실 영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중고 의류 매장(second hands clothing shop)이나 자선중고품 가게(charity shop)를
영화 모가디슈에서의 깻잎반찬과 온라인상의 깻잎논쟁. 공감의 힘과 깻잎 떼어주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아하겠지만 이 장면이야말로 공감의 상황이 잘 반영된 사례이다. 영화에서는 마주앉은 상대방이 깻잎을 떼어내기가 어려운 것을 알고 그 난감한 느낌을 교감한 후 그 상황을 빨리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행동으로 나타난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그런 상황이었다면 얼마나 난감했을지 상대방과 똑같이 느낄 수 있었기에 그런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영화를 감상하고 있던 우리도 비슷하게 그 감정을 느꼈다. 이것이 공감이다. 반면 깻잎논쟁에서는 공
“네 이름을 기억해.”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중 등장하는 대사다. 여기서 이름은 정체성을 의미하며, 이 대사는 곧 ‘네 자신이 누구인지 잊지 말라’는 뜻을 함축한다. 독일 헤센 주에 위치한 작은 대학 도시 마르부르크에서 일 년간 유학 생활을 시작한 나는, 스스로에게 ‘나를 잊지 말자’는 일종의 임무를 부여했다. 2월의 마지막 날 이곳에 도착했고, 길었던 오리엔테이션 기간도 끝이 났다. 일주일 동안 오전에는 비대면 프로그램에 참여해 학교에 대한 각종 정보를 전달 받았고, 저녁에는 펍(Pub)에서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며
마음산책 출판사 대표. 본교 정치외교학과를 1985년 졸업했다. 1985년 편집자로 출판계에 입문해 2000년 마음산책을 창업하고 한결같이 출판인의 길을 걷고 있다. 1992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했고 2019년 올해의 출판인 본상을 받았다. 시집 『비밀을 사랑한 이유』, 『나만의 것』, 책 만들며 사는 삶에서 정리한 인문서 『편집자 분투기』, 『책 사용법』, 마음산책 스무 살에 스무 문인과 이야기를 나눈 인터뷰집 『스무 해의 폴짝』 등을 출간했다.아침의 루틴이 된 시집 펼치기를 고백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읽는다기보다 거의
주중에는 애플에서 일하고 주말엔 강원 금진해변에서 서핑을 한다. (직무와 업무에 관한 내용은 애플의 사내 규정 상 공개할 수 없어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부탁드린다.)평균 학점 3.0이 안 되는 문과생이 어쩌다 IT 업계에 7년째 몸을 담고 있다. 이 파도, 저 파도, 내 앞에 닥쳐온 파도를 타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나는 경영학 전공도, 공학 전공도 아닌 인문학도다. 입학식은 귀찮아서 자체 생략했고, 대학에서는 가슴 뛰는 강의를 들어야 한다는 낭만을 고수하며 관심 있는 수업만 골라 들었다. 학교생활보다 경제 활동에 더 열심이었고,
“네가 착한 줄 알았는데 내 예상과 벗어나는 행동을 해서 놀랐어.”2021년 초, 연예계에 가스라이팅 논란이 일며 가스라이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인식이 높아졌다.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조작해 타인이 자신을 의심해보게 만들고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려는 정서적 학대이며 모든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행위이다.가스라이팅 용어의 기원이 된 것은 연극 이다. 이 연극에서는 ‘잭’이라는 남성이 자신이 살고 있던 집 위층의 보석을 훔치고자 가스등을 켠다. 집끼리 가스등을 나눠 쓰는 상태였기에 이
램프를 만지면 소원을 들어주는 요술램프 지니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라비안나이트의 천일야화를 바탕으로 하는 ‘알라딘은 인도의 사회 제도와 구전을 반영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1992년에 최초로 개봉된 후 27년 만에 리메이크를 통해 다시 선보인 ‘알라딘’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이전과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살펴보자.알라딘에서는 신분을 기준으로 등장인물이 네 부류로 나누어지는데 천민, 왕족, 귀족, 노예로 구분된다. 이는 작품이 인도를 배경으로 창작되었기 때문이다. 인도는 여전히 관습적으로 신분 제도가 만연하고
오랜 기간 드라마 입문 수업에서 비극의 전범인 을 학생들과 함께 읽었지만 테베에 퍼진 전염병은 플롯의 ‘발단’일 뿐 수업의 중심 주제가 되지 못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의 공포가 극에 달했던 2020년 봄 학기, 작품 초반에 나오는 역병에 대한 생생하고 구체적인 묘사가 문학적 은유가 아닌 체험적 사실로 읽혀지기 시작했다. 소포클레스가 이 극을 집필한 기원전 430년 경 아테네는 전쟁과 역병이라는 이중의 재난 속에 허덕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인구의 사분의 일의 목숨을 앗아간 역병은 신화 속 사건도, 문학적 상징
영국에 도착한 지 일주일쯤 되었던 날, 설레는 마음을 안고 학교 근처에 있는 펍(Pub)에 처음으로 술을 마시러 나갔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에 분홍색, 파란색 등의 색조명이 벽에 쏘아져 있는 펍에서는 술이 마른 퀴퀴한 냄새가 났다. 설렘 반 긴장 반의 마음으로 기숙사 플랫 메이트 에밀리(Emily)와 함께 테이블에 앉아있는데 에밀리의 친구가 다가와서 말했다. “나 어제 스파이크 당했어(I got spiked yesterday).”처음 들어본 단어에 어리둥절했다. ‘뭔가에 찔렸다는 뜻인가’ 하며 혼자 뜻을 유추해 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