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9일 오전12시. 본교 정문 근처 오피스텔촌에 위치한 전봇대 하나가 ‘펑’ 소리를 내며 터졌다. 순식간에 전기가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밝았던 집이 잠깐 어두워진 순간,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위협의 감정이 다가왔다. 걱정되는 마음에 본교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everytime.kr)의 ‘자취게시판’부터 들어갔다. 전기가 끊기면서 와이파이도 끊겨 데이터로 접속해야 했고, 아니나 다를까 다른 학생들도 무슨 일이냐며 걱정을 토해냈다. 같은 건물 입주민들이 들어갈 수 있는 오픈 채팅방에서도 당황스럽다는 반응이 실시간으로 쏟아져
본교 사회생활학과를 2000년에 졸업하고 동대학원 한국학과에 다녔다. 논문 학기에 논문 쓰기 싫어 시험 삼아 써본 첫 번째 이력서가 덜컥 붙는 바람에 한국콘텐츠진흥원에 입사해 어느새 21년째 근속 중이다. 콘텐츠라는 말이 낯선 시절, 회사명을 이야기하기 싫었는데 한국 콘텐츠 산업이 성장하면서 이제 귀찮게 회사명을 두 번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다.‘읽어야 산다’ 원고를 의뢰받고 ‘내가 써도 될까’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서점을 운영하시는 부모님 덕분에 책과 가까이 살아왔다고 자부했건만, 어느새 업무를 위한 참고자료용
본교 사회학과를 2022년 졸업하고 곧이어 본교 법학전문대학원 법학과 석사과정에 진학해 현재 2학년으로 재학 중이다.“엄마, 로스쿨에 가보니까 법조인은 왜 똑똑해야만 하는지 알 것 같아.”얼마 전 엄마에게 한탄하듯 한 얘기다. 대학교 학부에서의 공부는 물론 파고들면 깊이 있고 어렵지만, 열심히만 한다면 시험을 무사히 치러낼 정도는 되는 분량이었다. 리트(LEET), 자기소개서, 면접의 과정을 거쳐 겨우 입학한 자대 로스쿨은 한 학기라는 짧은 시간 동안 방대한 양을, 생각보다도 더 완벽하게 소화해 내어야 좋은 성적을 거두는 곳이었다.
“이번 주에 파리 못 가겠는데? TGV(프랑스 고속 열차) 다 취소됐어.” 프랑스에 와서 불편함을 겪는 것 중 하나는 파업이다. 3월7일, 프랑스에서는 6차 연금 개혁 반대 파업의 영향으로 3월8일부터 10일까지 파리를 포함한 여러 프랑스 지역의 교통이 감축 운행됐다. 릴도 그 영향을 피하지 못했다. 주말에 파리나 주변 도시들로 여행 가려던 친구들은 어쩔 수 없이 릴에 머물게 됐다. 그런데 이런 경험은 프랑스에 온 지 약 2달이 된 지금까지 여러 번 겪었다. 처음에는 시위가 있는 날은 위험하니까 기숙사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지만, 이
2월25일, 도쿄에 도착했다. 회사 방향으로는 잠도 안 자는 인턴의 끝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 하루 8시간씩 꼼짝없이 앉아있던 엉덩이가 기어코 자유를 요구했다. 새해는 밝았고, 엔데믹이 시작됐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대 여행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코앞으로 다가온 개강을 뒤로하고 5박 6일 자체 휴가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유난히 추운 1월이었다. 처음 다녀보는 회사의 시계는 느렸고 밤이 긴 계절인데도 퇴근만 하면 시간이 빠르게 달렸다. 인턴사원에게 주어지는 애매한 소속감은 불안과 불만에 기름을 부었다. 늘 같은 책상, 같은 의자,
편집자주|그때 학보가 다룬 그 문제, 지금은 해결됐을까? 1656호부터 본지에 실렸던 학내 이슈를 돌아보는 칼럼 '새로고침'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본교 구석구석, 지나치기 쉬운 순간들을 사진기자의 시선으로 포착합니다.2019년 8월30일 ECC에서 발생한 조류충돌 이슈를 다룬 ‘윈도우 스트라이크(window strike)’ 기사가 발행됐다. 2021년 5월15일에는 조류충돌에 대비하기 위해 구성된 교내 소모임 ‘윈도우 스트라이크 모니터링 팀’의 활동과 교내 윈도우 스트라이크 현황을 담은 기사가 후속 발행됐다.2022년 ‘야생생물 보
매주 월요일 아침 9시 반, 나는 사회대 학생 카페 U1으로 출근한다. 사회대 지하에 위치한 카페에 들어가 먼저 기본 블랙커피를 내린 뒤, 테이크아웃 커피잔들을 미리 꺼내놓는다. 10시가 되면 사회대 학생들이 한두 명씩, 가끔은 우르르 들어와서 커피를 주문한다. 아직 노르웨이어가 서툰 나는 영어로 주문을 받고 라떼면 라떼, 블랙커피면 블랙커피를 준비한 뒤 계산을 돕는다.카페 오픈 아르바이트와 다름없는 이 일을 오슬로 시내 카페에서 한다면 시급이 족히 삼만 원은 될 것이다. 하지만 내 시급은 0원이다. 학생카페의 인턴으로, 무료로 봉
기억은 시간과 함께 흘러 아프지 않은 것들만 남는다. 시간은 그 조각을 휩쓸며 아름다운 것들만 남긴다. 더는 힘들지 말라는 누군가의 배려일까. 중간고사 한 문제에 정말 목숨을 걸었던 지독했던 학창 시절도 지금 돌아보면 풋풋한 추억이듯이, 그렇게 기억은 아름다운 부분만 남긴 채 흐른다. 우리는 이 남겨진 조각을 추억이라 부른다.하지만 어떤 조각들은 너무 깊게 박혀버려서 아무리 강한 시간이 지나가도 그 자리에 머문다. 아무런 의도도 없이 투명하게, 계속 그 자리에 머물며 남아있다. 그런 것들은 슬프게도 마음을 아리게 하는 것들이 대부분
드라마/스위트 투스: 사슴뿔을 가진 소년(2021)우리는 스스로의 삶에 생각보다 많은 제약을 걸며 살아간다. 이건 안 될 거야, 이건 너무 어려워, 나는 못 해... 자신의 발밑에 이러한 선을 긋고 그 안에 갇혀 나오지 못한 적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선은 훗날 자신에게 후회의 화살로 되돌아오곤 한다. 현재의 내가 쌓여 미래의 나를 만든다. 지금의 선택 하나하나가 앞으로의 내 삶의 여정에서의 방향을 조금씩 틀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조금의 틀어짐이 굉장히 큰 차이를 만들기도 한다.에는 전염병이 돌아 인류가 한차례
매해 3월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1908년 3월 미국 뉴욕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단축, 임금 인상, 노동환경 개선, 여성의 참정권 쟁취를 위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여성들의 대규모 시위였다. 당시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은 먼지가 가득하고 쉴 곳도 없는 환경에서 하루 12시간 이상 일했지만, 임금은 남성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고 선거권도 갖지 못했다. 1910년 뉴욕의 의류공장에서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 수백 명이 화재 사고로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고, 당시 미국의 여성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이대학보입니다.새학기가 돌아왔습니다. 캠퍼스에 흐르는 빗방울 하나, 바람 한 자락에도 봄기운이 풍깁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개강은 어땠나요? 처음 듣는 수업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모르는 얼굴들을 잔뜩 마주하는 봄날이었으리라 여깁니다.우리는 살면서 모르는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나게 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이들을 만나 관계를 맺고, 서로의 마음에 저마다의 크기로 자리잡습니다. 두 세계의 조우입니다. 저 또한 이화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알게 되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제가 평생 동안 모르
여자들과 함께하는 것이 익숙하다. 매일 수많은 언니와 친구와 동생들을 본다. 여대에 다니고 있으니 당연하다. 몸담고 있는 학보사도 마찬가지다. 여대 신문사니 만드는 사람도 모두 여자다. 매주 정성을 쏟아 기사를 쓰고 월요일에 나온 지면을 펼쳐보면 보람차다.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다. 우리가 만드는 신문에는 수많은 여성의 얼굴이 있다. 그러다 보니 다들 세상의 반이 여자라는데, 내 세상은 대부분이 여자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음을 알고 있지만 가끔은 너무 익숙해서 잊기도 한다.그런 학보사의 기자로 일하면
편집자주|프랑스 릴 가톨릭대 교환학생으로 파견된 김현수(불문·21)씨가 '미드나잇 인 릴' 칼럼을 2023-1학기 제작기간 중 격주로 연재합니다. 릴 대학에서의 흥미로운 일상을 전합니다.‘선택하신 과목은 수강인원이 초과되었습니다.’ 이화여대, 아니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들은 적어도 한 번씩은 봤을 문구이다. 대학에서는 매 학기 시작하기 전, 자신이 들을 과목을 정하여 수강신청을 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인터넷에 접속하여 각 학교의 포탈 서비스에 들어가서 과목별로 배정된 코드를 입력하여 일명 ‘장바구니’에 과목을 등록해놓은
본교 시청각교육과(교육공학과)를 1987년 졸업했다. 국회도서관에서 30년 넘게 일하며 서양서 구입, 홍보CS, 의회정보서비스총괄, 전자정보정책 등의 업무를 했고 현재 기록정책과장으로 있다. 미국 USC 동아시아도서관에서도 1년 반 정도 일했다. 이때 도서관과 영화 이야기를 엮어 국회도서관보에 ‘영화 속 도서관 이야기’를 몇 편 게재한 이후로 동명의 시리즈를 쓰고 싶다는 야망을 수년째 품고 있다.생각해보니 나의 책읽기는 외로움에서 시작된 것 같다. 만 10세, 초등학교 4학년. 언니 오빠들과 도시 유학을 떠나 군민에서 도청소재지 시
영화/애프터썬(2022) 속 소피와 캘럼이 방문했던 페르시안 카펫 상점, 상인은 말했다. “Each Of These Carpets Tell A Different Story(각각의 카펫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졌어요)”.은 어른이 된 소피가 아버지 캘럼과 함께 튀르키예에서 보냈던 열한 살 여름 휴가의 기억을 관객에게 ‘엿보이는’ 영화다. 이십여 년 전의 추억이 담긴 캠코더를 조작하는 소피의 손동작은 마치 닫혀 있는 방문을 여는 듯 하다. 조심스레 문고리를 열어젖히듯 재생버튼을 누르는, 이제는 뼈들이 제법 단단하게 여
본교 경영학과를 2009년 졸업하고 삼성화재 해상보험팀으로 입사했다. 일반보험손익파트와 IFRS추진파트를 거쳐 현재 투자전략파트에서 인오가닉 전략수립 및 해외피투자사 관리, 글로벌 신흥시장 B2C 마켓 및 일반보험 시장 확대 전략 기획 등을 맡고 있다.요즘 유행하는 MBTI로는 ENFP(재기발랄한 활동가). 사람 만나길 좋아하고 항시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며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충동적 성향까진 갖춘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다는 보험회사에 다니게 될 줄 누가 알았던가. 별 사고 없이 무탈하게 지나가는 하루가 가장 큰 복인 보험회사
2월 28일 오후 2시 7분, 낮 일정을 마치고 당 충전이나 할 겸 아이스크림 할인점에 들렀다. 그런데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수정된 가격표였다. 그 옆에는 ‘아이스크림 전 제품 인상’이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과자 또한 편의점에서 살 법한 가격대로 판매되고 있었다. 친구에게 사진을 찍어 이 상황을 얘기하니, 아이스크림 가격이 그렇게 오른 지는 꽤 되었다고 했다.요즈음 물가가 끝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사소한 간식 소비조차 함부로 하기가 어려워졌다. 파리바게는 2월부터 95개 품목의 가격을 평균 6.6% 인상
호크마대에서 사회학과로 진입한 후, 첫 전공 수업으로 고전사회학이론을 수강했다. 고전이라 불리는 마르크스, 베버, 뒤르켐의 이론을 원문으로 읽으며 관련된 생각을 나누는 수업이었다. 사회학의 기초가 되는 수업이고, 유명한 사회학자들의 이론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호기롭게 신청했다. 다만, 영어강의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들뜬 마음을 가지고 수강한 첫 번째 전공 수업에서 영어의 벽을 맞닥뜨렸다. 하고 싶은 말은 잔뜩이었다. 그러나 한국어로도 읽기 어려운 저서를 영어로 읽고, 해석이 잘 되지도 않는 내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영어강
편집자주|노르웨이 오슬로대 교환학생으로 파견된 김해인 선임기자가 2023-1학기 '노르웨이에서 행복을 묻다' 칼럼을 제작기간 중 격주로 연재합니다. 노르웨이에서의 행복을 담은 일상의 순간을 전합니다.노르웨이라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연어, 순록, 겨울왕국, 그리고 비싼 물가. 노르웨이는 북유럽 중에서도 가장 비싼 물가를 자랑하는 나라다. 맥도날드 빅맥버거 약 12000원, 버블티 한 잔 약 9000원, 커피 한 잔 8000원, 맥주 한 잔 12000원, 담배 한 갑 15000원 정도이며, 패스트푸드점이 아닌 번듯한 식당에서 밥
방학 중 인상 깊게 읽었던 책 한 편에 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한정현 작가의 장편소설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나를’)이다. ‘정상적’인 ‘남성’ 위주의 역사 속에서 여성, 성소수자, 혹은 둘 모두의 정체성을 가진 이들의 존재는 끊임없이 배제되어 왔다. 이렇게 편향적으로 쓰인 역사를 경계하는 소설 ‘나를’은 긴장감 있는 추리물의 형식을 빌려 배제된 이들이 겪어야 했던 억압과 대상화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고발한다.‘나를’의 구체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성형외과 의사인 ‘연정’과 문화 연구자 ‘설영’에게 낯선 단어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