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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문화관 1층 화장실 어느 칸에 보면 2006년에 MBC에서 방영했던 라는 드라마의 명대사 중 하나가 쓰여 있다. “누가 그러더라. 남자는 운명의 여자를 만나면 더 나은 여자가 있을 거라며 내 앞에 여자를 놓치고, 여자는 운명의 남자를 만나면 운명인 걸 알면서도 현실을 선택한다. 그냥 무조건 사랑하는 거야. 이 사람 보다 더 사랑할 사람이 없겠구나하고 사랑하면 그게 운명이고 이 사람밖에 없다하고 사랑하면 그게 또 운명이 되는 거지.” 남녀, 사랑, 운명, 결혼에 대해서 이것 보다 더 공감 가는 정의를 할 수 있을까 싶다. 운명이라는 같은 문제를 두고 남녀는 이렇게나 다른 생각을 한다. 생각은 그렇게 다르게 하면서 어떻게 보면 운명을 놓친다는 같은 불행을 맞는다. 그 사실을 떠올리니 남자건 여자건 하나같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에 인간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는 영원히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것 말이다. 다시 말해 진정한 사랑이란 영원할 수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어릴 때 읽은 동화에서는 분명 공주님과 왕자님이 결혼을 하면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그래서 결혼을 하면 사랑을 영원히 지켜갈 수 있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결혼이 영원한 사랑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영화 를 보면서 발견한 결혼의 모순성은 이러한 내 생각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연희(엄정화)와 준영(감우성)은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사랑의 힘을 믿을 만큼 용기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결혼을 하면 곧 그 사랑은 깨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말 사랑한다면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그 사람과 결혼하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연희와 준영은 그들의 사랑을 지키기 위한 선택을 했다. 연희가 준영을 끝까지 보채서 결혼했을 경우, 그들은 얼마 못 가 현실적인 문제로 남들처럼 뻔히 예상되는 파국에 치달았을 것이다. 준영은 연희에게 의사와 결혼하라고 한다. 대신 그들은 연희의 남편 몰래 마련한 옥탑방에서 “소꿉놀이”를 한다. 결혼을 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사랑을 지키고자 하지만 그들도 자주 다투었다. 다만 그 다툼은 일반적인 부부간에 일어나는 것과는 다른 이유로 발생했다. 그들의 위태로운 관계로 인한 것이었다. 연희는 두 사람의 사진을 앨범에 채워나간다. 나는 이 앨범을 통해서 결혼의 이상성과 모순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연희가 앨범을 열심히 만든 이유를 알아 내기 위해서는 극 중 앨범이 의미하는 바를 짚어볼 필요가 있었다. 앨범의 상징적 의미를 생각해보면, 앨범은 연희가 원망하는 이상적인 세계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앨범 속의 “사진”은 모두 행복한 얼굴을 한 연희와 준영의 “이미지”이다. 이는 현재 행복하지 못한 이들의 현실과 대조를 이룬다. 결국 사진은 허상, 허구, 가짜인 것이다. 이러한 허구적 특성은 이들이 맺고 있는 가짜 부부관계와 일맥 상통한다. 연희에게 있어 준영과의 “옥탑방 신혼생활”은 연희가 오랫동안 품었던 결혼에 대한 로망을 간접적으로나마 성취하는 수단이다. 그 생활 속에서 만큼은 자신이 현실에서 끝내 선택하지 못한 길을 가고 싶은 것이다. 준영과의 신혼생활이 이상적일 수 있는 것은 의사와 결혼함으로써 현실적인 문제를 이미 해결하고, 가상의 부부관계라는 장치를 통해서 보통의 부부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원천적으로 방지했기 때문이다. 결국 연희가 앨범을 만든 이유는 옥탑방을 꾸민 이유와 상통하고 이는 곧 준영과 가짜 부부관계를 맺는 이유와 같다. 앨범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결혼상에 대한 연희의 소망이 발현된 결과물이다.

학생칼럼 | 정채은(광고홍보·11) | 2014-09-15 22:09

올해 초,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학업 성적이 좋으면서 토플 점수가 높은 학생들이 많이 지원하여 일반 교환이 아닌 특별 교환으로 CSUF에 교환학생으로 가게 되었다. 지난 1학기에는 전공 수업들과 교환교에 제출할 서류, 비자 준비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지나갔고 드디어 8월이 되어 지금은 미국에서 이 글을 작성할 수 있게 되었다. 주변의 친구들은 대부분 교환학생을 가면 기숙사에 살거나 학교 근처에 아파트를 구하여 지내지만,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는 홈스테이 프로그램을 지원해준다. 그래서 학교와는 거리가 있지만 미국 가정이라는 특별한 문화체험을 하고 있다.미국에 도착하였을 때 홈스테이 아주머니께서 직접 나와, 방은 따로 쓰지만 함께 살게된 일본인 룸메이트를 데리고 버스정류장과 집 주변 지리를 알려주셨다. 학교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집 근처에서 서기 때문에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배차 간격이 60분이다 보니 버스 시간을 확인하는 것은 미국 생활 4주차가 된 나의 일상이 되었다. 얼마 전에는 캘리포니아의 강한 햇빛을 피하려 그늘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버스가 나와 룸메를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바람에 룸메와 학교를 하루 빼먹고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우리학교 교환 학생들 중에서도 홈스테이를 하는 학생이 소수이다 보니, 초반에는 홈스테이를 선택한 것 자체에 대한 회의를 많이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홈스테이 아주머니네 가족들 파티에 초대받아 미국 가정의 홈파티에 참석도 해보고 저녁 시간 마다 서로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하고 감사하다.학교 생활은 이화와 다른 점이 많다. 과목에 따라 시험을 4번 보기도해 항상 2번 시험 보던 나로서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자유롭게 질문하고 많은 지식을 함께 나누는 면은 부러웠다. 그래도 항상 말하는 학생만 말한다는 것은 크게 다르진 않은 듯 하다. (캬ㅑ캬캬캬)처음에는 전공 4개를 수강하다보니, Lecture식 강의를 많이 선택하게 되어 미국인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단 점이 아쉬웠었다. 하지만 앉은 자리 앞뒤의 학생들과 가볍게 한 두 마디로 시작한 대화가 수업자료를 공유하기도 하는 친구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또한 국제 PR 수업은 국제적인 이슈를 다루다보니, 한국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오고 친구들이 진짜냐고 물어봐주어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한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관하여 프로젝트를 기획할 뻔도 하였으나, 한국에는 자원 관련된 심각한 문제가 없어 다른 나라를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었다. 다른 학생들이 중국과 일본에서는 오염 관련 문제를 찾아 프로젝트를 기획하는데 한국은 문제없는(?) 나라가 되어 괜히 뿌듯하기도 했다.지난 주말에는 국제학생 파티가 열려 독일, 인도, 베트남 등의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초반에는 외국인 친구를 못 사귈까봐 조바심을 느끼기도 했는데, 이러한 자리에 가서 열심히 웃고 짧은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페이스북 친구가 되었다. ㅋㅋ아직 여기서 보낸 시간은 짧지만, 물어보고 말을 걸고 하는 것에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홈스테이 아주머니는 저녁시간 마다 “Don't be shy!!"라고 하신다. 한국에서는 그저 소심하고 걱정 많은 사람이고 아직도 걱정도 많고 소심하지만, 내일은 내가 먼저 같이 시간 보내자고 연락한 중국친구랑 점심을 먹는다. 교환 학생으로 왔으니 외국인 친구를 사귀어야만 한다는 스트레스가 있기도 했지만, 이제는 말을 걸기도 하고 농담도 친다. 물론 짧게. ㅋㅋ한국음식이 벌써부터 그립고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보고 싶기도 하지만, 교환 학생 생활이 내 사고방식이나 성격적인 측면에 긍정적인 영향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짧지만 4개월이라는 시간 뒤에 지난 3~4주 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긍정적으로 변화한 나를 기대한다!

학생칼럼 | 노지현(광고홍보·12) | 2014-09-15 21:27

두 달 전, 이화의 ‘신축 기숙사 기공식’이 개최되었다. 앞으로 2년 뒤면 보다 많은 이화인들이 지낼 공간이 생기게 된다. 4년 동안 ‘집 고민’을 빼놓을 수 없었던 나로서는 너무 기쁘고, 새내기 때의 ‘한우리집’은 내게 너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곳이기에 안심도 된다.이화에 있는 4년 동안 참 많은 ‘집’에 살았다. 첫 번째 집은 기숙사 ‘한우리집’이었다. 대부분의 절친한 벗들을 그 곳에서 만났다. 기숙사 내부 특유의 느낌, 서울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야경부터 나를 신데렐라로 만들었던 통금 시간까지 모든 것이 그리운 집이다. 두 번째 집은 ‘친구들과 함께한 집’이었다. 타지생활의 설움을 달래보자며 기숙사에서 만났던 친구들과 집을 구했다. 아파트 비슷한 곳이라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이들은 큰 돈을 내고 산다고 생각했겠지만, 여럿이서 월세를 나눠내고 생활비를 필사적으로 아꼈더니 혼자 사는 것보다 훨씬 부담이 덜했다. 3학년이 되자 새내기 시절부터 함께하던 우리들은 각자의 계획에 따라 집을 옮겼다. 이 때 세 번째 집인 학교 근처 ‘하숙집’으로 옮겨왔다. 방은 좁았지만 챙겨주는 분들이 있어 든든했다. 주방 바로 옆에 자리한 방이라 식사시간 때마다 소란스러웠는데, 방을 옮겨주신다고 하셨지만 고향집에 내려온 듯한 기분이 들어 오히려 고마웠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네 번째 집, ‘혼자 사는 집’에 살기 시작했다. 온전히 혼자만 있는 공간은 처음이라 부푼 마음이었는데 이따금씩 심심하고 외롭기도 하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올라오시면 머무를 수 있는 곳, 고향친구가 오면 묵을 수 있는 곳이 생겼다고 생각하면 금세 즐거워진다. 조금 우스운 일 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집을 옮겨 다니며 짐을 꾸릴 때 마다 괜히 눈물을 훔치곤 했다. 1년밖에 살지 않았는데 짐이 두 배로 늘어나고 그걸 혼자 옮겨야 된다는 데에 대한 부담이 너무 버거웠던 것 같다. 때문에 새내기 때는 집에서 통학하는 친구들을 마냥 부러워했다. 그러던 내가 어느덧 ‘타지생활 대 백과’가 되어있다. 다른 지역에서 온 이화인이라면 살아볼 법한 거의 모든 집에 살아본 것이다. 이제는 누군가 물어본다면 한마디쯤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돌아보면 네 개의 집에 살던 때의 나는 각각 다른 모습이었다. 친구들과 야식을 먹으며 밤새 떠들던 모습, 친구들과 함께 가족들하고만 했었던 대형 마트 쇼핑을 하던 모습, 좁은 방에 들어가기 싫어 일부러 늦게 들어가던 모습도 있다. 그럼에도 공통적인 것이 있다면 기분이 안 좋다가도 귀가하면 마음이 안정될 수 있는 곳. 그날의 모든 그림자가 걷히는 곳. 그런 공간을 찾아 헤매왔던 모습이다. 이런 모습은 내 개인의 모습만은 아닌듯하다. 요즘 ‘셀프 인테리어’ 페이지나 커뮤니티가 활발하게 운영되는데, 곰팡이 가득하던 옥탑방도, 겨우 한 사람이 누울 공간의 방도 페인트칠부터 가구배치의 변화까지 다양한 방법을 거쳐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 이렇게 제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모두 마음의 평화를 위한 공간을 찾아 나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사는 곳은 마냥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때로는 열악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외로움을 주기도 한다. 또 외로움을 주진 않지만 떠나고 싶게 만들 때도 있다. 그래도 그 집들은 각각의 매력이 있고, 그 안에서 더욱 완전한 ‘나’를 만들어 준다. 글을 보고 있는 이화인들이 어디에 있든 그 공간이 따뜻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 나가기를 응원한다.

학생칼럼 | 김서현(광고홍보·11) | 2014-09-01 17: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