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대학보입니다.지난 9일, 따뜻한 봄기운을 느끼며 학교 정문을 들어서던 저는 정문 근처에 비치된 두 개의 이대학보 배포대가 모두 텅 비어 있는 걸 봤습니다. 배포대에 놓인 신문이 작년보다 눈에 띄게 빨리 줄어드는 걸 보니, 캠퍼스에 감도는 활기가 새삼 반갑게 느껴지네요. 하루빨리 코로나19 상황이 끝나 더 많은 독자 여러분을 만날 수 있길 바라봅니다.언제나 교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가장 주의 깊게 들여다보는 이대학보 구성원들이지만, 지난 몇 주 동안은 더 먼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대학보입니다.잿빛 어둠이 걷히고 말간 하늘이 떠오르는 것을 보니 진정 봄이 오고 있나 봅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겨울이 이렇게 막을 내리네요. 영영 한적할 것만 같던 캠퍼스도 요즘 제법 활기를 찾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어디서든 충만한 순간 보내고 계시길 바랍니다.이번 1633호를 준비하면서도 참 많은 교내외의 사건들을 접했는데요. 그 중 이화인으로서, 나아가 지성인으로서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고(故) 이어령 선생님의 별세 소식이었습니다. 2017년 췌장암 발병 이후에도 항암치
2일 오후7시23분.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초청 3차 토론회가 시작되기 약 30분 전이었다. 3차 토론회는 사회 분야가 중심 논제였다. 2월 23일 멈춘 ‘출근길 지하철 탑시다’의 재개 여부가 달린 토론이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이 토론에서 대통령 후보들이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약속하길 요청했다. 혜화역 벽면은 전장연에서 붙인 벽보가 반은 붙은 채로, 반은 떨어진 채로 덮여 있었다. 혜화역은 장애인 이동권 시위인 ‘출근길 지하철 탑시다’가 시민들의 출근길에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엘리베이터를 폐쇄했다가 논란이 됐던
상당히 불온적인 말이다. 권리에도 우선순위가 있다니. 철학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포스트 모더니즘을 넘어서고 있는 현대 사조를 거스르는 말일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을 비롯해 소수자성에 집중하는 세계 전반의 트렌드와도 맞지 않는다. 어쩌면, 흐름에 뒤떨어지는 수준을 넘어 파시스트적인 말이 될지도 모른다.다름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왜 시대에 역행하는 듯한 말을 던지냐고 묻는다면 나는 으레 롯데리아 '어썸버거'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2020년, 롯데리아가 내놓은 신메뉴 스위트 어스 어썸 버거(Sweet Earth
“인간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관용어로 완전히 자리 잡은 말이다. 동시에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이기도 했다. 인간은 고쳐 못 쓴다니. 내겐 고쳐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어떡하면 좋지? 믿기지 않겠지만,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런 걱정부터 했다.나는 계획적이지 못하고 충동성이 짙다.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한 것은 아니지만 가까운 사람들이 자주 지적하는 정도는 된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내가 당장 하고 싶은 일은 당장 해야 했으며, 갖고 싶은 게 떠오르면 어떻게든 손에 넣어야만 직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이대학보입니다.2022년이 아직 낯선데, 벌써 3월 개강을 목전에 뒀네요. 여러분의 방학은 어땠나요? 이대학보 구성원들은 학보의 각종 개편을 준비하느라 꽤나 분주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새로운 모습으로 여러분께 인사드릴 것을 상상하며, 꿀 같은 휴식을 반납하고 회의와 발표를 거듭 진행했습니다.2월3일엔 삼청동의 한 회의 공간에서 6시간가량 워크숍을 열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서로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든 요즘, 다양한 부서의 기자님들이 함께 모여 얘기 나눌 기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뜻깊은 시간이었지요.
비건이 유행이란다. 과거 ‘채식주의’는 이효리나 이하늬 등 유명인의 ‘유별난 행보’로 언급될 뿐이었다. 채식주의 일종인 비건이 비로소 진지한 생활 형태로 다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2013년부터였다. “동물을 소비하지 마세요, 동물을 죽이지 마세요.” 꾸준히 공장식 축산업과 환경파괴 문제를 지적하고 그 존재감 을 알리더니 근 3년간은 ‘열풍’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한국채식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채식 인구가 2008년 15만 명에서 2018년 150만 명으로 약 10배 뛰었다고 하니 근거 없는 말은 아니다.그래서 비건은 이제 유별난
수동 필름 카메라를 쓰면 필름을 끼우고 처음 찍는 두세 장은 아예 안 나오거나 이런 식으로 덜 나온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다음 장면으로 쉽게 이전 장면을 잊는다. 그렇게 36장을 다 찍고 현상한 필름을 본다. 그제서야 내가 잡았지만 끝내 놓친 것을 회상한다.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도망간 수백 분의 1초를 그리워한다. 무엇이 찍히다 말았을까. 내가 뭘 보고 셔터를 눌렀더라. 36장을 빨리 채우면 기억이 나서 아쉽고, 느리게 채우면 기억이 안 나서 아쉽다. 36분의 1을 소비할 만큼 마음에 들었던 순간도 제대로 기록하지 않으면 쉽게 사
말하고 싶은데 말할 자리가 없는 것만큼 슬픈 일도 없을 것이다. 공간을 허락받지 못한 시위대가 마이크를 놓고, 갈 곳 잃은 전단지가 비 맞고 울듯이 말이다. 그런데 참 우습게도, 이번 학기 학보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말할 공간이 있어도 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학보에는 정기적으로 부장이 글을 쓰는 ‘상록탑’이 있어, 이번 학기에는 2번 글 쓸 기회가 있었다. 본교 재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직원들까지 읽는 대학신문에 대표로 글을 낸다는 것은 뿌듯한 일이다. 특히 사진기자로서 학보에 내 ‘글’을 싣는 일은 드물고, 취재 내용이
‘사람을 모집합니다아무렴요, 내년에는 꼭 사람이 될 예정입니다‘최근에 읽은 김경인 시인의 시 한 구절입니다. 제 처지를 그대로 그려놓은 것 같은 시를 보며 필사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와 같이 학교를 다니고 계신 이대학보 독자분들도 사람이 되기 위해 매일을 살아가시겠죠.제가 학보에 들어왔던 이유도 사람이 되기 위함이었습니다. 언론사가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선택해 학보에 들어왔고, 효율성을 추구하는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최대한의 시간을 투입해 기사 하나를 얻는 삶을 택했습니다.저 역시 학보에 들어올 때 걱정이 많았습니다. 당시
카페 마감 아르바이트가 끝날 때쯤 쓰레기를 버리러 간다. 밤이 되면 쓰레기들은 내 키보다도 높이 쌓인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에 오는 길거리에도 여기저기 쓰레기봉투가 놓여있다. 아침이 되면 모두 사라진다. 길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깨끗해진다.눈앞에서 치워진다고 없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태워지든 땅에 묻히든, 여전히 이 지구상에 잔존한다. 무심코 쓰고 버린 것들이 곧 사방에서 숨통을 조여오리라는 확신이 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포위하고 한 발짝씩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10L짜리 종량제 봉투는 250원이다. 250원으로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이라는 SNS 계정이 있다. 말 그대로 그날 일을 하다가 사망한 노동자들의 부고 소식을 싣는 계정이다. 2021년 0월 0일 노동자 n명 사망, 그리고 사망 경위에 대한 짧은 한마디를 전하는 방식으로 매일 글이 업로드 된다. 노동자들의 죽음이 단순한 숫자들의 통계 나열에 불과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를 시작했다는 계정주는 2021년 1월부터 어느덧 439명의 죽음을 전달했다. 대학에 들어와 노동자의 입장에 있을 수 있는 나이가 되니, 나 또한 노동문제에 관심이 생겼다. SNS로 관련 글들을 찾던 와
"나는 선배들의 비아냥을 매일같이 들으면서도 공강이면 중도에 가서 그날 들은 수업 내용을 바로바로 정리했고, 학점을 관리하느라 재수강과 계절학기를 마다하지 않았고, 동아리마저 이력서에 쓰기 좋은 것들로 매년 바꿔가며 가입했고, 방학이면 괜찮은 아르바이트와 잘나가는 기업의 업무와 관련 있는 대외 활동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스펙을 쌓아놨더니 이제 와서 끼와 개성, 창의성을 펼치라니.”장류진의 ‘펀펀 페스티벌’에서 주인공은 대기업 합숙 면접 마지막 관문으로 팀원들과 공연 무대를 꾸며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갖은 노력으로 온갖 스펙을
21년 6월 20일 서울 강남역 11번 출구 앞, 나는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독대했다. ‘척 져왔던’ 20대 여성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펼칠 것이냐는 질문을 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국민의힘 지지율의 문제는 20대 남성이 아니라 20대 여성인데, 20대 여성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생각이신지 여쭙고 싶습니다”라고 질문했다. 또 한국 갤럽의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국민의힘의 20대 여성 지지자 비율이 8%를 벗어나지 못함을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현재 20대 여성의 대부분은 거대 양당 모두 지지하지 못하
별을 보러 평창에 갔다. 서울보다는 많았지만 쏟아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모두의 카메라에 하늘을 가득 채운 별이 담겼다. 별들은 그 하늘을 다 덮고 있었다. 지금도 하늘엔 별들이 그렇게 빛을 내고 있을 테다. 삼각대에 카메라를 놓고 10초에서 15초 동안 길게 촬영하면 내 눈이 놓친 빛들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도 그만큼의 세상이 존재한다는 게 새삼 놀랍다.평창에서 나는 사진을 통해 별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느끼고도 행복해했다. 서울에서보다 더 많은 별을 평창에서 보고, 내 두 눈으로 본 것보다 더 많은 별을
‘00구에서 실종된 000씨(여, 79세)를 찾습니다.’, ‘00구에서 배회 중인 000씨(남, 72세)를 찾습니다.’요즘 재난 문자로 자주 받는 알림 내용이다. 10월 한 달 동안만 서울에서 이러한 알림이 27회나 발송됐다. 모두가 예상할 수 있듯, 실종자의 대다수는 노인이었다.알림을 보고 있자니 중고등학생 때 노인 요양센터에서 봉사활동 한 경험이 떠올랐다.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센터에 발을 들이면 바삐 움직이는 도심과는 완전히 상반된, 착 가라앉은 분위기에 압도되곤 했다. 그 안에서도 어르신들과 요양보호사분들은 치열한 하루를 살
안녕하세요, 이대학보 독자 여러분. 중간고사 공부를 하며 가을이 찾아왔음을 깨닫고 계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방금 전 저는 ‘할 것 같다’는 말로 글을 시작했는데, 이는 제가 자주 사용하는 언어 습관 중 하나였습니다.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리면서 제 의견을 부드럽게 피력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쁘지 않은 화법이라고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타인과의 충돌을 피하면서 나름대로 결과물을 이끌어낼 수 있었으니까요.그러나 말하는 습관이 인생에도 스며들었는지 점점 유예하는 시간이 늘어갔습니다. 어떤 결정이 필요할 때에
달력에는 여름이 끝났다고 하지만, 한동안은 덥기 마련이다. 비로소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건 무심코 문을 열었다가 얼굴에 훅 끼치는 공기. 세상의 것들이 차가워져서 풍기는 냄새다. 그리고 그건 나의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작년 가을에 놀이치료를 했었다. 내가 내담자였다. 누군가가 ‘다 커서 무슨 놀이치료를 받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할 말 없다. 왜냐면 나는 진짜 ‘아동’ 놀이상담의 일환으로 받은 거니까. 하지만 나름대로 그럴듯한 사정이 있다.5월에 집에 안 좋은 일이 생겼었다. 우울한 여름을 보내고 문득 맞은 찬 바람에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다시 유리창에 비쳐 사진 찍는 나의 옆모습을 직접 뷰파인더로 목격했다. 사진을 찍고 노래 하나가 떠올랐다. 유재하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1987)이다. “이제 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을 / 못 그린 내 빈 곳 무엇으로 채워지려나 /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가리” 후렴구 가사가 마음에 가득 채워져 여러 생각이 들었다.벌써 4학년이 됐다. 매 학기 시간표를 만들고 수업 외 시간에는 아르바이트와 동아리를 끼워 넣으며 바쁘게 살았다. 스스로
‘내가 뭐라고’ 병에 걸린 적 있나. ‘내가 뭐라고’ 병은 ‘내가 뭐라고’ 이런 도전을 하나, ‘내가 뭐라고’ 이 호사를 누리나, ‘내가 뭐라고’ 이 어려운 시험을 통과할 거라고 믿나 등등 다양한 변이를 가지고 있는 아주 악독한 병이다. 이 병에 익숙하고 환절기 감기처럼 자주 겪는 사람으로서 이 병으로 끙끙 앓고 있는 이들에게 가벼운 비타민 같은 글을 남겨보고자 한다.티켓팅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대개 티켓팅 실력은 동체 시력과 반응속도, 인내심으로 구성된다. 나는 앞의 둘 다 그다지 좋지 않은데 공연에 대한 애정이 클수록 긴장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