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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여성들이 말을 타던 시절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선 시대 여성에 대해 갖는 이미지는 남성에게 순종적이며 내외를 하는 정적인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이미지가 모두 맞는 것은 아니다. 조선 전기 세종대에 성리학적 질서를 강화하는 취지에서 내외법이 시행되었다는 것은 많이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남녀간의 자연스러운 신체 접촉을 금하는 내외법의 논리에 의해, 여성은 사방이 뚫려있는 가마인 평교자를 이용하는 것이 금지됐다. 대부분 조선 여성들이 이러한 법에 고분고분하게 따랐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조선 전기의 여성은 집밖으로 놀러 나가기 위해 필요한 교통수단이었던 평교자가 금지되자 말을 타기 시작했다. 조선 전기의 여성은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고려나 조선 전기의 여성과 다른, 흔히 상상하는 순종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인 것은 맞다. 열녀의 사례들로만 봐도 얼마나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순종적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역사의 기록의 이면을 간과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열녀는 스스로 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 여성사에 대한 논의를 통해 열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마냥 열녀가 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갈등 없이 한 몸 희생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남편을 따라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압박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쉽게 조선시대부터 여성들이 순종적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여성들은 끊임없이 저항해 왔다. 조선 후기로 넘어가면서 여권이 많이 하락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때도 여성들은 남성의 부속물이 아닌 주체로서 갈등하는 존재였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사회적 압박은 조선시대에 끝난 것이 아니다. 최근 개그맨 장동민의 여성비하 발언이 논란이 됐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수위 높은 농담에 각종 방송의 하차설까지 나돌았지만, 장동민을 옹호하며 비슷한 농담을 서슴지 않는 남성들의 댓글 등을 통해서 그러한 여성비하적인 사고를 장동민 혼자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성의 권위주의적 시각과 여성에게 순결을 요구하는 문화가 여전히 팽배한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뉴스도 있었다. 아주 미미한 수준이지만 남성의 육아휴직이 늘고 있다는 기사다. 여성만이 가사와 육아를 맡아야 하는 주체가 아니라 남성도 중요한 주체라는 인식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 그 수준은 미미하지만, 육아휴직이라는 개념이 없던 사회에서부터 남성도 육아휴직을 쓰는 사회로의 변화는 여성들의 저항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남자로 태어난 것이 스펙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여자가 취업과 직장 생활 등 사회 전체에서 불리한 면이 있다는 것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하지만 살아보니 여자인 것도 꽤 괜찮다. 멋있다. 사실 이런 글을 쓰는 것도 한국여성사 수업을 듣고 쓰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필자는 모두가 쉽게 순종적이라고 생각했던 조선시대 여성들도 말을 탔다는 것을 함께 알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만연한 남성위주의 사고와 갈등이 생겨도 여성들이 좌절하지 않기를 바랐다. 오늘도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면 한다. 어쩌면 더 먼 미래에는 대한민국 여성들의 노력으로 여권이 다시 회복됐다고 기록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학생칼럼 | 노지현(광고홍보·12) | 2015-05-04 13:34

'금융권을 생생하게 느껴 볼 수 있는 활동', '마케팅 실전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들의 대외 활동 모집 요강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문구다. 뿐만 아니다. 입사지원시 우대, 소정의 활동비 지원, 실무진과 접할 수 있는 기회. 취업난과 스펙 과열에 시달리는 대학생들을 현혹하는 달콤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말 그대로 라면 스펙과 어학 점수를 채우느라 바쁜 대학생들이 진로에 대한 작은 탐색이자 한 줄의 경력으로써 참여하기에 적합한 활동으로 보이는 문구다. 하지만 대학교 3학년이 된 지금에야 알았다. 모집 요강과 현실은 달랐다. 생각보다 많은 대학생들이 대외 활동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그토록 공들인 자기소개서로 선발된들, 만족감은 그리 높지 않았다는 얘기다. 기업의 입장은 어떤지 모르나, 대외 활동을 직접 경험하는 학생들의 시각에서 소정의 활동비로 많은 활동을 요구하는 기업의 대외 활동 모집은 '보수 없이 쓸 수 있는 아르바이트생 구인'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물론 소정의 활동비는 주어진다. 문제는 정말 소정이라는 것이다. 대부분 활동비가 지급되는 대외 활동은 팀 단위로 활동이 이루어지는데, 팀 미션 수행을 위한 단 한 번의 모임으로 활동비는 금방 바닥을 드러낸다. 최소한 팀활동을 위한 회의를 한 번 하는데 에도 장소가 필요한데 가장 만만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진행 될 경우, 인원 수 대로 음료만 주문해도 드는 돈은 만만치 않다. 여기에 밥 한 끼 먹게 되면, 그 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소정의 활동비는 정말 활동을 하는데 필요한 최저 수준의 비용이다. 물질적 보상 대신 좋은 경험은 얻을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특정 분야를 체험해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초반의 기대와는 달리, 대부분의 대외 활동은 SNS에 기업을 홍보하는 글을 올리는 것이 주 업무이다. 대외 활동 지원서에 블로그 일 방문 자수, SNS 팔로워의 수를 적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업이 전달하는 이슈 사항을 개인 SNS에 올리는 것이 과연 그들이 말하는 업계 체험인지 모르겠다. 구색 맞추기 식으로 현직자의 특강 일정을 짧게나마 넣는 곳들은 그나마 양반으로 보인다. 이제는 정말 금융권 체험, 마케팅 실전 체험을 바라는 지원자들도 없다. 해당 기업에 대한 정보는 빠삭해 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대학생들이 원하는 직무에 대한 이해인가. 물론 모든 기업의 대외 활동이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경험했고 내 친구들이 경험한 많은 활동들이 그랬다. 단 몇 건의 사례가 있더라도 문제가 된다면 개선되어야만 한다. 특히 취업 시장의 영원한 을이라는 대학생과 그에 비해 갑이 될 수밖에 없는 기업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부조리는 기업 측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개선하지 않으면 끝없이 되풀이 될 것이다. SNS에 홍보성 게시물을 올려 줄 사람을 찾는 것이라면, 저런 달콤한 문구는 쓰지 않길 바란다. 인턴사원만큼의 일을 시킬 거라면,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 주길 바란다. 실제로 한 친구가 했던 대외활동은 거의 인턴사원 수준의 업무였다. 외국어 특기자로 선발되어 밤낮없이 번역일을 하고, 기업과 전혀 관련 없는 노가다성 활동을 했다. 활동비를 못 받아도, 차라리 업계에 대한 무언가를 배워갈 수 있는 일이었다면 억울하지 않았을 것 이라고 했다. 친구는 자신의 어학능력으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이러니 무보수 아르바이트생 이라는 말이 안나올 수 없다. 우리는 취업을 위해 인턴십을, 인턴십을 위해 대외활동부터 시작한다. 다음 단계를 위한 수단으로써, 부당하다고 외치면서도 닥치는 대로 대외활동을 하는 우리가 문제인 것일까. 이런 점을 잘 이용하는 기업이 문제인 것일까. 문제가 누구에게 있든, ‘을’은 문제를 해결할 도리가 없다. 기업이 스스로 이 문화를 고쳐 주기를 바란다.

학생칼럼 | 박소영(광고홍보·13) | 2015-04-06 19:41

몇 주 전, 강의 시간에 에 실린 기사를 봤다. ‘2014 취업 전쟁 보고서’라는 헤드라인의 기사였다. 스펙 좋은 서울대 문과생들이 취업을 못 하고 있다. 연세대도 고려대도 그렇다. 늘 보던 내용의 기사였지만 볼 때마다 착잡해지는 내용이었다. 강의가 끝난 뒤 후배는 우울해진다 말했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그 기사에 등장한 학생들의 스펙과 겹치는 스펙이 단 하나도 없었다. 2007년 경제학자 우석훈과 사회운동가 박권일이 쓴 출간 이후, 언론은 청년세대를 부정적으로 조명하고 나섰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삼포세대. 졸업 후 실업자 또는 신용불량자가 된다며 청년실신. 취업이 안돼 졸업을 계속 미룬다고 NG(No Graduation)족. 알바로 학자금을 충당한다고 알부자족. 장기간 미취업자라고 장미족. 31세까지 취업을 못하면 길이 막힌다고 삼일절. 이젠 이웃나라 일본의 사토리세대를 빌려와 달관세대라고도 한다. 이쯤 되면 작명소 수준이다. 그뿐인가. 용어에 맞는 케이스를 어떻게든 찾아낸다. 케이스가 없으면 아는 대학생을 앉혀놓고 준비해둔 대본을 읽게 한다. 흥신소와 연기까지도 손을 댄다. 미디어 이론에는 ‘프레이밍 이론’이라는 게 있다. 언론은 세상을 보는 ‘프레임’을 제공한다. 대중들은 그 프레임으로 세상을 본다. 즉 언론이 설정한 프레임은 대중들의 세계관과 가치관 등을 형성할 수 있다. 청년세대를 지칭하는 용어들 또한 언론이 설정한 프레임이다. 기성세대뿐만 아니라 청년세대조차 그 프레임으로 자신을 본다. 고3때와 같다. 수험생 생활은 당연히 힘들고 어렵지만 사람들이 주는 시선은 더 힘들다. ‘힘들지?’라는 물음은 ‘힘들어야지’라는 강요다. 365일 24시간 내내 힘들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괴했다. 지금도다. 취업만 준비한다 치면 ‘요즘 바쁘지?’, ‘놀 시간도 없지?’ 같은 말들을 한다. 바쁨과 피곤과 힘듦을 강요한다. 끊임없이 불안하고 우울해야 한다. 더 괴로워야한다. 청년세대조차 잠시라도 즐거운 자신을 마주할까 두렵다. 경쟁에서 도태되는 건 아닌가라는 우려가 불길처럼 번진다. 프레임에서 나갈 길을 잃는다. 청년세대에게 씌우는 프레임이 거짓은 아니다. 기업들은 돈이 없다며 임금을 동결하고 채용 인원을 줄인다. 취업 때문에 졸업을 유예한 사람도 많다. 취업을 못한 사람이 대졸자의 절반이라는 통계도 나온다. 그러나 언론은 취업한 절반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미 우울한 청년세대라는 프레임을 설정했다. 거기에 맞는 사람들을 골라 혹은 거기에 맞게끔 들이맞춰 보도할 뿐이다. 주위를 둘러봐라. 청년세대가 포기한다는 연애는 나만 빼고 다 한다. 난임 문제로 병원을 찾는 환자는 한 해 20만명이 넘는다. 2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출산을 원하고 있다는 말이다. 취업이 어렵다는 서울대 문과생들은 웬만한 대기업에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다. 포기와 달관을, 우울과 불안을 강요받고 있다. 교과서에나 나오던 비판적 사고를 동원해 프레임 브레이크를 해야만 한다. 달관이라는 말로 청년세대를 미화시키는 그들에게 분노해야 한다. 스펙 좋은 서울대생이 떨어졌다는 말은 누군가 붙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설혹 저 모든 프레임에 부합한다 해도 자괴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그대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대들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좋아하는 뮤지션 선우정아의 2집 의 수록곡인 를 빌려 말한다. 저 앞에 그대를 기다리는 함정에 겁먹지 마라. 그대가 가장 믿어야 할 것은 그들의 눈이 아닌 그대의 눈이다. 세상 가장 소중한 건 그들의 생각이 아닌 그대의 생각이다. 위로가 아니다. 프레임 밖 진실이다.

학생칼럼 | 조은혜(광고홍보·11) | 2015-03-30 19:08

봄이다. 나는 이쯤 되면 항상 심한 감기를 앓는다. 딱히 어디가 잘못된 것도 아닌데 항상 3월이 되면 감기를 종류별로 달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봄을 청춘의 계절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시작과 하늘을 수놓는 새하얀 벚꽃이 피어나는 시기. 만물이 성장하고 봄바람을 맞으며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한 시기. 하지만 나에게 있어 봄은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을 품은 잔인한 계절일 뿐이다. 군인이셨던 아버지 덕분에 내게 만남과 헤어짐은 그냥 일상 같은 개념이었다. 일 년에 한 번씩 전학을 다니며 배운 점은, 끝이 있으면 새로운 시작도 있다는 것. 덕분에 나는 헤어지는 것에 미련을 두지 않고 새로운 만남에 기대를 걸지도 않았다. 그런 삶의 반복이었다. 그래서 더 곁에 있는 것을 향한 소중함을 깨우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2011년 3월11일, 그 날을 계기로 나는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일본으로 전속을 가셨던 아버지 덕분에 나는 일본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따뜻한 봄바람이 도쿄 시내를 감싸는, 여느 봄날과도 같은 평화로운 하루였다. 비극은 점심시간 이후에 시작되었다. 갑자기 시작되는 진동에 모두 여느 때와 같이 가볍게 지나가는 여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땅은 지칠 기세를 보이지 않고 계속 흔들렸고 어느새 우리들은 공포를 직감하게 되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긴 5분이었다. 그 5분 동안 나는 죽음이라는 공포를 떨쳐낼 수 없었다. 가까스로 진동이 멎고, 서로 안전모를 쓰며 건물 밖으로 나오는 동안에도 공포는 계속되었다. 나는 단 한 가지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과연 우리 가족은 안전할지. 전화도 안 되는 상황에서 나는 아무런 정보도 없이 부모님을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당연시하게 내 옆에서 나를 지켜주던 우리 부모님도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구나.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세계는 이토록 쉽게 부서질 수 있는 것이었구나. 나는 철저히 세상에서 혼자가 될 수 있겠구나. 다행이도 세 시간이 지난 후, 엄마는 나를 찾으러 버선발로 학교로 달려오셨다. 엄마를 본 순간, 나는 엄마를 끌어안고 아기처럼 학교가 떠나가도록 펑펑 울 수밖에 없었다. 그 울음은 내 곁에 다시 돌아와서 고맙다는 하나의 인사였을 것이다. 그때 나는 만남과 헤어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던 내가 한없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나는 자만했던 것이다. 내가 헤어짐에 익숙할 리가 없는데. 그 후로 내겐 만남과 헤어짐이 익숙하지 않다. 2011년 3월 11일. 일본에서 대지진이 일어난 이후에도 나는 수많은 이별을 겪었다. 하지만 이제는 옛날처럼 사람과의 이별을 물 흘러 보내듯이 미련 없이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 찾아와줘서 고맙다고, 앞으로 헤어지더라도 너는 행복하라고 이렇게 생각하고 싶다. 이것저것 재는 걸 떠나 당신이 갑자기 사라진다는 생각 그 하나만으로도 나는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릴 걸아니까. 나는 결코 만남과 헤어짐이 아무렇지도 않은 게 아니라 익숙했을 뿐이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이별을 경험하게 될 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분명 누군가는 나에게 새로 다가오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내 곁을 떠나가겠지.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인연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싶다. 그리고 그 인연의 소중함을 뒤늦게 깨달아 후회하는 일도 없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래서 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오늘 말하고 싶다. 지금, 여기,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학생칼럼 | 정윤조(국제·13) | 2015-03-23 19:38

“커뮤니케이션은 우리가 관련을 맺고 있는 사람 혹은 세상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고, 받고, 해석하는 과정(process)이다.” 미국 출신의 석학, 사회학자 찰스 호튼 쿨리는 소통을 이렇게 정의했다. 그는 스스로 내린 커뮤니케이션의 정의에서 과정이 가장 중요한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소통의 과정에서 학생을 빠트린 채 학내 주요사안을 결정한 학교는 학생들에게 혼란을, 어쩌면 당연한 결과를 가져다주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학과 개편으로 학교 전체가 어수선한 분위기에 둘러싸였다. 국제사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필자의 친구는 방학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오니 소속 단과대학이 바뀌었다며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슬슬 졸업을 생각할 때가 됐는데 이렇듯 갑작스럽게 교육과정에 변화가 생기면 계획에 차질이 생길까봐 걱정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만은 학생 개인에 그치지 않고 있다. 신산업융합대학에 소속될 각 학과생회 대표 역시 “각 학과 대표마저 평의원회 회의 직전에 알았다”며 사전 논의가 있어야했다는 의견을 제기하고 있다. 가장 높은 단계의 교육기관인 대학에서 학제를 개편하는 일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학과 명칭 변경, 신설 같은 변동은 1년에 한두 번 꼴로 있었지만 대대적으로 새로운 단대가 마련된 것은 2007년 ‘대학구조개혁 추진계획’ 이후 8년만이다. 문제는 이렇듯 큰 사안을 학생들과의 소통도 거의 하지 않은 채로 추진했다는 것이다. 의견 충돌이 있을 때마다 그랬듯 이번에도 학교 측은 적당한 답변을 내놓았다. 학생들에게 좋은 취지를 설명하기 위한 ‘융합교육의 필요성’, ‘학생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고민한 결과’ 답변 등은 충분히 납득할 만 했다. 그러나 수요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학과별로 신청을 받았다’는 답변의 중심에는 학생이 없었다. 정말 아쉬운 대목은 갑작스런 통보 외에도 다른 대안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특히 대학구조개혁 추진계획이 시행됐던 2007년과 비교했을 때 드러난다. 그 당시, 학교는 본격적인 시행 약 2년 전인 2005년에 학부대학 운영을 골자로 하는 가안을 발표했다. 또한 가안이 발표된 당해 연도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단대, 학과별로 학생과 교직원 간담회와 학생대상 기획처 설명회 등을 여러 차례 열었다. 물론 당시에도 여러 학생들의 반발이 일었지만 논의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더 길었고 기획처와 학생이 직접 대화할 수 있는 장도 마련됐다. 취임 직후 총장과의 열린 토론, 전체 교수회의 등으로 자칭·타칭 ‘파격’을 보였던 최경희 총장의 행보와 지금 학교의 분위기는 사뭇 대조적이다. 임기 초기에 이런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구성원과 허심탄회하게 소통하고 싶다는 그의 의도와 진정성마저 의심스럽게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학교가 보여줬던 노력을 다시 믿고 싶다. 이번 일을 통해 학교가 진정한 소통이 무엇인지 다시 재고해 봤으면 한다. 파격도 좋다. 그러나 기본부터 지켜 달라.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개념부터 지켜달라는 것이다. 과정이 없는 커뮤니케이션은 반쪽짜리만도 못하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는 학생의 역할도 중요함을 절대 잊지 말자. 의견교류의 장을 만들고 이를 원활하게 하는 원동력은 소통의 주체인 학생의 자발적인 참여에서 나온다. 변화는 항상 쟁론을 수반한다. 기존의 것을 지키고자하는 의견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나뉘게 돼있기 때문이다. 그 변화가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 지는 서로 다른 의견간의 소통 과정에 달려있다. 학교와 학생 간의 원만한 소통을 통해 ‘변화가 시작되는 곳’ 이화여대에서 또 다른 좋은 변화를 이뤄내길 기대한다.

학생칼럼 | 김지현(언론·11) | 2015-03-16 12:14

나는 문득 학교 가는 길에 하늘이 참 푸르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오랜만에 본 하늘이었다. 집에 나와서 하늘을 보기 전까지 내 시선은 언제나 바닥을 향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학교 오는 지하철 안, 내 맞은 편 사람이 무슨 옷을 입었고,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를 스친 수많은 사람과 익숙한 길거리의 분주함을 기억하지 못했다. 사실 기억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보지 못해서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을 얼마가 지난 후에야 깨달았다. 언젠가부터 고개를 들어 주변을 응시하는 순간이 줄어들었다. 주변을 바라보는 대신 손안에 들린 작은 휴대폰에만 집중했다. 어느 날 하늘을 보기 전까지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나를 스쳐 가는 무엇들을 흘려만 보냈다. 여러분은 그런 적이 없었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꽤 많은 사람이 익숙했던 거리를 둘러볼 때 낯섦을 느끼거나 정말 오랜만에 올려다보는 하늘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 고 하더라도 앞을 보지 않고 걷다가 사람들과 부딪히는 경험도 한 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주변 일상에 무관심해졌다. 대신에 우리의 눈과 귀는 핸드폰에 매료되었다. 아침을 시작하는 시작부터 밤을 맞이하는 끝까지 많은 시간을 휴대폰과 함께한다. 하지만 이러한 순간은 무심한 일상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조금만 생각을 더듬어 보면 간직하고 싶은 추억 속에도 휴대폰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날의 한 순간을, 한 장면을 추억하는 것이 오로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 말이다. 그리고는 의심해봐야 한다. 그것이 정말 그 날을 기억하고 있는지 말이다. 나는 예전이라면 지금보다 더 많은 감각으로 그날을 기억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추억하고 싶었던 그 날의 바람의 냄새와 거리의 소음들, 눈에 담았던 다소 왜곡된 감각들로 더 아련하게 기억했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점점 순수한 기억을 잃고 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정 부분 기억하고 싶은 그 순간 나는 카메라에 비친 화면으로 순간을 저장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기억 일부분은 차가운 기계의 저장공간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렇지 않은 일이 아니다. 나는 떠올릴 때마다 조금씩 변색되는 머릿속에 맴도는 기억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다가 사람들은 기억을 외부화시킨다는 문구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문구가 딱지금의 우리 같다. 사람마다 조금은 다르겠지만, 기억을 외부화시킨다는 말이 내게는 좋게 들리지 않는다. 나는 소리와 눈 그리고 내게 닿았던 느낌과 냄새로 기억하는 것이 훨씬 좋다. 이 느낌이 기억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계속 상기시켜야 할 것만 같은 책임감마저 들게 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라도 정말 담고 싶은 순간에는 주변을 돌아보고, 깊이 숨을 들이마셔 보려 한다. 기록하는 것보다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한 번쯤은 정말 소중할 것 같은 순간이 다가온다면 순간을 저장하기보다는 시간과 공간을 담아보기를 바란다. 어느 날 희미하게 더듬어 그날의 시간을 추억해보기를, 기억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 떠올리려고 노력해보는 경험을 다시 한 번 느껴보기를 바란다. 그리고는 공유했던 머릿속 기억의 퍼즐이 얼마나 변했는지 어떻게 더 미화시켰는지 이야기해보는 것도 좋겠다. 네가 어떤 모습으로 웃었는지 머릿속으로 상상해보며, 무엇을 닮았었는지 우리의 이야기는 어땠는지 맞추어보는 재미가 정말 ‘기억하는 것’ 같지 않을까?

학생칼럼 | 김희선(방송영상·11) | 2014-12-01 20:36

얼마 전 ‘고교생 연구소’에서 재미있는 설문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소는 전국 대한민국 고교생 1000명을 대상으로 미래 성장가능성과 함께 대학 이미지 조사를 진행했다. 이 중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대학 이미지에 대한 조사였다. 이미지 조사는 각 대학 하면 바로 떠오르는 성별이나 전공 등을 묻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위 조사 결과를 종합해 각 학교를 상징하는 캐릭터의 이미지 및 학과와 이름도 함께 소개했다. 이는 각 학교별 홍보팀과 의견 조율을 거친 것이라고 하니 각 학교도 발표된 이미지에 어느 정도 동의한 셈이다. 서울대 캐릭터의 별명은 ‘설으뜸’(남)으로 어려운 내용도 이해할 때까지 파고드는 법학도, 연세대는 지적이면서도 밝은 모습의 의학 전공 엄친 딸의 이미지다. 그 밖에 성중기(성균관대), 한잡스(한양대) 등의 재미있는 이름도 등장했다. 고등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이긴 하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될 정도로 맞아 떨어지는 부분도 많았다. 그렇다면 우리 이화는 어떨까. 이화의 캐릭터 이름은 ‘이샘’. 고등학생들에게 핵심을 콕콕 짚어주며 학생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칠 선생님을 꿈꾸는 사범대생으로 비춰졌다. 타 여대와 비교해보니 확실히 애교가 넘친다거나 꾸민 듯 안 꾸민듯한 특유의 ‘여대생’의 느낌은 덜했지만, 그들에게는 없는 부드러운 전문성이 깃든 모습이었다. 또 외부인들이 이화에 대해 막연하게 떠올렸던 ‘차도녀’ 이미지는 다른 대학이 가져갔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화인이 생각하는 이화인의 이미지도 비슷한 듯 하다. 요즘 화제인 드라마 ‘미생’에서 극 중 안영이에 이대생이 빙의됐다고 보는 이화인들이 많다. 안영이에게는 열정과 영리함이 있지만 동시에 따뜻함도 느껴진다. 우리는 이 같은 혹은 이와 비슷한 여성상을 꿈꾸고 이화에 들어왔다. 그렇다고 우리가 마냥 완벽한가 하면 그건 아니다. 핵심을 콕콕 짚어 내다가도 허둥지둥 할 때가 있다. 또 애교가 없는 편이냐고 물으면 콧소리라도 내겠다. 그럼에도 ‘이샘’이라는 이미지가 우세한 것은, 이화는 분명히 이러한 여성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2주 간 그들은 수능을 마쳤고, 우리는 총학생회 선거를 마쳤다. 추운 ‘날씨에는 수능도 어려워진다는 법칙이 등장할 정도였지만, 정말 추운 날씨였음에도 이번은 달랐던 것 같다. 쉬웠는데, 쉬워서 망했다는 의견도 들려온다. 이화는 이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틀 전, 총학 선거를 끝내면서, 하나의 준비를 마친 셈이다. 이번 총학 선거는 투표를 하는 이화인 들에게도, 선거 당사자들에게도 힘겨운 선거였다. 투표는 끝났지만 우리 앞에는 아직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그렇지만 새로 맞이할 예비 이화인들이 꿈꾸는, 지금 이화에 다니는 우리가 바라는 이화의 모습은 분명히 정해져 있다. 그 이미지를 생각하고 핵심을 짚어주는 총학이, 학교가 되었으면 한다. 이화인 모두 ‘이샘’이 되자. 앞서 필자가 열거한 이미지에 동의하지 않는 이화인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만큼은 ‘이샘’의 이미지가 필요한 때인 듯 하다. 이화를 위해 때로는 예리하고 때로는 든든한 이화인이 되어보자.

학생칼럼 | 김서현(광고홍보·11) | 2014-11-24 11:37

3일째 오전으로 교환면접에서 물가폭탄이라는 스웨덴의 두 학교 사이에서 아무 정보도 없이 칼스타드를 고른 뒤 면접장을 나오며 허탈하게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좋아하는 빵 이름과 같아 칼스타드를 골랐다고는 차마 말을 못하고 나는 스웨덴에서 남들과 다른 경험을 할 것이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도착한 칼스타드에서 저는 지금, 제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스웨덴 디자인, 스웨덴의 복지. 한국에서의 스웨덴은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소위 ‘있어 보이는’ 단어입니다. 한국에서 스웨덴은 익숙한 듯 생소한 나라이기에 교환학생의 눈으로 본 스웨덴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스웨덴에 올 때 가장 걱정했던 것은 살인적인 물가였습니다. 그러나 스웨덴의 물가는 생각보다 그리 비싸지 않습니다. 특히 학생들의 경우 교통비, 식자재비로 생활비를 지출하게 되는데 식자재비는 오히려 한국보다 싸 예상보다 돈을 많이 아꼈습니다. 물론 인건비가 들어가는 외식비용은 한국에 비해 많이 비싸지만 이는 스웨덴 사람들에게조차 부담이 돼 그들도 외식을 잘 하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복지국가’임을 다시금 느꼈을 때는 대학교육 시스템을 본 후 입니다. 먼저 스웨덴의 수업 시스템은 한국과 굉장히 다릅니다. 한 학기 평균 6개 수업을 듣는 한국과 달리 스웨덴은 한 학기 평균 2~3개의 수업을 등록하고 2주에 한번 혹은 1주일에 한번 수업을 듣습니다. 스웨덴은 고등학교 졸업 후 일을 하거나 여행 등으로 휴식을 취한 뒤 진정한 학문을 하려는 학생만 대학으로 진학하는 편입니다. 때문에 스웨덴 학생들은 상당히 자신의 전공에 진지한 편입니다. 스웨덴 학생들은 한 수업 당 3~4권 정도의 두꺼운 추천 교재를 스스로 읽고 공부하며 자신이 공부하는 분야에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환을 올 때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영어’였습니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나라인데 과연 영어실력을 기를 수 있을 것인가 많이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나 스웨덴은 영어를 하기에 최상의 나라인 듯합니다. 스웨덴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를 불편함 없이 구사하는데 이유를 물으니 영어와 구조가 비슷해서인 이유도 있지만 어릴 적부터 영어로 된 TV 프로그램을 많이 시청해서라고 하였습니다. 대게 만 9세 정도만 되어도 영어를 자유자재로 쓰기 때문에 스웨덴의 어디를 가든 영어를 사용함에 불편함이 없고 모국어가 아니기에 말이 빠르지 않아 알아듣기가 수월합니다. 또한 제가 있는 대학이 스웨덴 현지 학생들과 교환학생들을 한 기숙사 단지에서 모여 살도록 하기 때문에 스웨덴 학생들과의 교류도 많고 각종 파티나 모임이 모두 기숙사 단지 내에서 열려, 어눌한 영어지만 이리저리 노력한 덕에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밤새 파티를 하고 늦게 일어나 함께 부엌에 모여 밥을 해먹고 수다를 떨고 게임을 하고 여행계획을 짜는 지금의 생활은 다시는 잊지 못할 제 인생의 황금기 입니다. 여기서 만난 사람들, 이 도시, 제가 느끼고 경험한 모든 것들이 너무나 소중해 벌써 돌아갈 생각을 하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저 같은 경우 부모님께 손을 벌리고 싶지 않아 모아둔 용돈과 인턴 월급을 모두 합쳐 남들보다는 늦게 교환 길에 올랐습니다. 돌아가면 채워야 할 학점들, 졸업시험, 졸업논문, 따야 할 각종 자격증과 영어점수를 생각하면 눈앞이 막막하지만 이곳에서의 생활이 이 모두를 상쇄할 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갈까 말까 망설이는 학생들, 꼭 가야하나 고민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제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학생칼럼 | 이지원(광고홍보·11) | 2014-11-24 11:27

필자는 스스로를 과거지향적 인간이라고 생각해왔다. 어릴 때는 분명 남들보다 눈물이 많고 과거에 연연하는, ‘감수성 짙은’ 아이였다. 그런 필자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는 날의 반편성이었다. 친한 친구와 같은 반이 되었던 경험이 단 한번도 없을 정도로 반편성운은 언제나 나빴다. 그래서 친구대신에 1년간 쓰던 책상을 데리고 갔다. 그렇게 중학교 3년간 같은 책걸상을 쓰고 졸업했다. 졸업식이 있던 날 그 책상에 앉아 너무 오래 우는 바람에 졸업생 중 가장 마지막으로 학교를 나왔다. 이별을 유난히 힘들어 한 만큼 과거라 불러야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한동안 앓아야 했다. 그리고 그런 때의 필자는 좀 어두웠다. ‘현재에 충실하라!’는 진부한 명언이 늘 필자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밝게 명랑하게만 지내는 것 같은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때 느끼는 생각들을 붙잡아 기록하는 버릇을 들이라고들 말한다. 필자는 태생이 게을러서 계획을 세우는 것은 고사하고 어쩌다 겨우 플래너를 잡고 써둔 것을 지키는 일에도 소질이 없다(약속은 꼭 지킨다). 꾸준히 기록하기와 필자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도 가끔 감정이 너무 격해져서 어디다가 쏟아 내야 할 지 몰라 안절부절할 때는 두서없이 왕창 써 갈기곤 했다. 나 좀 봐달라고 한 글자 한 글자 몸부림을 쳐대면서 말이다. 가끔씩 써둔 글을 읽어 보곤 한다. 최근에 필자가 써왔던 글을 읽으면서 문득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것은 가끔 훔쳐보는 8살 어린 동생의 일기장을 볼 때와 같은, 아니 그보다 더한 것이었다. 자신이 써둔 글을 읽는 것은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면서 갖게 되는 주관적인 생각을 차갑게 만들어준다. 필자가 스스로를 과거지향적 인간이라고 오해한 데는, 사진과 동영상 속 그저 해맑기 그지없던 “그 순간만큼은 행복했던 나”의 표정이 있었다. ‘이별 후 몸살’기간에 사진 감상이 빠질 수 없다. 사진들을 볼 때 마다 ‘아 저 때는 참 행복했더랬지.’, ‘저 때는 내 옆에 함께 찍힌 저 사람과 참 좋은 사이였지.’, ‘왜 지금은 저들과 저리 웃을 수 없는 걸까.’, ‘아무래도 내가 잘못한 듯하다.’, ‘저 때처럼 저들과 함께 웃고 싶다.' 식의 후회를 늘어놓았다. 과거의 순간을 아름답게만 담아두는 데 성공한 사진과 동영상들은 당연히 그때를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도록 해줄 뿐이다. 그래서 사진을 보면 늘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이제야 알다니 스스로가 우습기도 하다. 하지만 글들은 그것을 쓰던 때의, 며칠이나마 더 어렸을 때의 스스로가 얼마나 어리고, 어리석고, 철없고, 무지했고, 이기적이었고 못됐었는지 깨닫게 해줌으로써 후회의 감정을 느끼게 하지만 사진이 부르는 후회와는 다른 마음을 먹게 한다. ‘과거에 조금만 더 잠겨있자.’가 아니라 ‘아! 저건 진짜 아니다. 좀 더 어른스러워 져야 할 텐데.’ 예전의 글들을 볼 때마다 그 글을 지우면 그때의 어리석은 ‘나’를 잊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자란 ‘나’로 하여금 스스로의 어리석었음을 이따금씩 느낄 수 있도록 이렇게 기록행위를 지속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어차피 부끄러움 밖에 남지 않을 이 글쓰기를 굳이 계속 할 필요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작가의 꿈은 꾸지 않아야겠다는 것이다.

학생칼럼 | 정채은(광고홍보·11) | 2014-11-17 13:56

한 학기 동안의 독일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이화로 돌아 온지 어느덧 3개월이 지났다. 지금은 내가 정말 독일에 살다 온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한국생활에 완벽히 적응해버렸지만, 시험과 과제에 치여 힘들 때면 가끔씩 그 곳에서의 여유로웠던 생활이 그리워지곤 한다. 독일에서의 추억들이 완전히 잊혀 지기 전에, 지난 6개월간의 교환학생 생활을 기록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내가 독일로 교환학생을 갔다 왔다고 하면, 많은 이들이 미국 혹은 영국 교환학생이 아닌 왜 독일 교환학생을 선택했냐고 묻곤 한다. 독일로 교환학생을 가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영미권으로 가서 그저 영어실력을 늘리기보다는 유럽으로 가서 다양한 문화체험을 해보고 싶었다. 유럽으로 시선을 돌리고 나니 문득, 전공 수업시간에 많이 접해왔던 독일이 눈에 들어왔다. 마르크스, 베버, 짐멜 등 독일 사회학자들의 이론을 접하면서 독일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독일의 대학교들 중 가장 상위에 있던 오스나브뤼크 대학교를 선택하였다. 하지만 독일로 떠난다는 기쁨도 잠시, 출국준비를 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우리나라 포털 사이트에는 오스나브뤼크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는 것이 아닌가! 혹시 내가 스펠링을 잘 못 친 건 아닐까 하고 다시 검색해보기도 했지만, 결과는 역시나 똑같았다. 해외 사이트를 통해 정보를 겨우 얻을 수 있었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정보가 턱없지 부족한 곳이었다. 지난 3월, 나는 그렇게 미지의 세계로 떠났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착륙 후, 4시간 정도 기차를 탄 후에야 비로소 오스나브뤼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중앙역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동안의 걱정들이 기대로 바뀌었다. 오스나브뤼크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도시였다. 게임 ‘심즈’에서나 볼법한 주택들이 즐비해있었고, 백화점·레스토랑 편의시설들도 잘 갖추어져 있었다.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들판에서 뛰노는 말과 양도 만나볼 수 있었다. 대학 생활 역시 만족스러웠다. 중세시대에 성으로 썼던 건물을 대학본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수업은 정원 30명 미만의 소수강의에 토론식으로 진행되었다. 미드나 영화 속에서만 봤던 강의실에 내가 앉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굉장히 설렜다. 동화 속 마을 같은 도시, 아름다운 자연환경, 잘생긴 게르만 청년들, 친절한 친구들 등등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모두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독일에서의 시간이 언제나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다. 꿈만 같던 독일생활에 적응을 할 때 쯤, 가혹한 현실들이 나를 괴롭혔다. 언어실력 때문에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힘들었고, 문화가 다른 친구들과 깊은 관계를 맺기도 어려웠다. 또한 한국에서 스펙을 쌓고 있는 동기들을 보면서, ‘여기서 이렇게 놀아도 될까?’하는 조바심이 들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교환학생을 통해 대단한 것을 경험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던 것이다. 그 때 ‘무엇인가를 얻지 않아도 괜찮다’는 친구의 조언덕분에 우울한 시기를 견뎌낼 수 있었다. 욕심을 내려놓고, 한국에서 느낄 수 없는 여유를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남은 기간 동안은 남에게 보여 지기 위한 것이 아닌 나만을 위한 삶을 살도록 노력했다. 그 덕분에 독일에 대한 좋은 추억만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교환학생 생활을 통해 대단한 무엇인가를 얻진 못했다. 하지만 지난 6개월 동안 한국 음식 대접 , 칸 영화제 참석, 지역 라디오 쇼 녹음 등 한국에서 하기 힘든 경험들을 나만의 추억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에 만족한다. 9개월 전, 낯선 땅이었던 오스나브뤼크는 이제 제2의 고향이 되었다. 이 글을 쓰고 나니, 문득 그 곳의 가을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학생칼럼 | 김지아(사회·11) | 2014-11-17 13:46

오는 13일 개봉하는 영화 는 일방적으로 해고 통보를 받은 마트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우리는 항상 을입니다'라는 문구가 붙어있는 직원실에서 생활하고 벌점 50점이 넘으면 반성문도 써야 했다. 정규직만 바라보며 모든 걸 견뎌왔던 이들은 부당함에 맞서기 위해 투쟁을 시작한다. 영화 의 줄거리이자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영화 는 2007년 이랜드 파업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2007년 7월, 비정규직보호법의 시행으로 2년이 넘게 근무한 계약직 근로자를 무기계약으로 전환해야 하자 이랜드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무더기로 해고해버렸다.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법이 시행된 지 어느덧 7년인데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얼마 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근무하던 20대 비정규직 여직원 권씨가 자살한 일이 드러났다. 권씨는 2년을 근무하는 동안 7번이나 나눠서 계약을 해야 했고 근무 기간 동안 무수한 성추행과 성희롱을 당했다. 정규직만을 바라보며 참아왔지만 24개월의 노동 뒤에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해고였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8월 기준, 비정규직 근로자가 전체 임금근로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2.4%나 된다. 관련 조사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비정규직 근로자가 600만명을 넘어섰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사이의 임금 차이도 크다. 정규직의 임금이 월평균 260만원대인데 비해 비정규직의 경우 145만원대에 그쳤다. 비정규직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데 처우는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임금 외에 또 다른 차별은 복지 문제이다. 비정규직의 경우 정규직에 비해 퇴직금이나 시간외수당을 비롯한 근로복지도 매우 열악하다. 정규직이 82%의 퇴직금 수혜율을 보인 반면 비정규직은 39.5%에 불과했다.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이다. 사실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이라는 교양수업을 듣게 되면서부터이다. 근로기준법부터 근로자의 정의, 채용과 임금에 대한 내용까지 배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동에 대한 기사나 영화에 눈이 가게 되었다. 내가 취업을 눈앞에 둔 대학생이라는 점도 한 몫을 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내 문제가 되지 않으면 바로 옆에 있는데도 잘 보지 못한다. 새내기 시절 학교 벽에 붙은 노동 관련 포스터를 봤을 때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투쟁중인 노동자들을 내다볼 때도 무심코 지나쳤다.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말 그럴까? 우리나라 비정규직 근로자 600만 명 중 2030 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35%를 넘었다. 바로 우리의 이야기라는 의미다. 얼마 전 비정규직 노동자의 근로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는 법안을 추진 중이라는 기사를 봤다. 경제단체들은 '경제 살리기'의 물살을 타고 비정규직 근로기간을 자율적으로 연장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또 지난 달에는 휴일근로 가산임금 규정을 삭제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근로’라는 이슈의 당사자가 된 한 사람으로서 머지 않아 스크린에서 근무한지 3년이 되던 날 해고 당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만나게 될까봐 걱정이 된다.

학생칼럼 | 임주연(언론·11) | 2014-11-10 13:51

교과서에서 ‘다문화’라는 말을 처음 접했을 때 그 아래 사진에 담긴 한복 입은 외국인의 모습은 참 어색했었다. 지금은 약 170만이라는 많은 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하니 이상할 일도 아니다. 이들은 결혼, 취업 등의 다양한 이유로 제 2의 국가, ‘한국’을 살고 있다. 방송도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고 움직여왔다. 방송사 마다 적게는 한 두 개씩 다문화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고, 프로그램에 곳곳에 조금씩 녹여내고 있기도 하다. 장르도 교양, 예능 구분 없이 다양하다. 대중문화를 잘 보여주는 장치 중 하나가 방송이라는 점에서 뚜렷해진 ‘다문화 시대’가 실감난다. 한 예로 저녁 시간대의 맛집 프로그램에서는 ‘가나댁’, ‘러시아 미녀 리포터’등 다양한 외국인 리포터들이 등장해 방송을 진행한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그들은 한국인 뺨치는 우리말 구사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진짜 맛있어요’, ‘짱이에요’와 같은 말만 되풀이할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완벽한 식감 표현으로 시청자의 미각을 자극한다. 거기다 식당 주인 분들에게 스스럼없는 모습은 영락없는 우리나라 사람이었다. 정서마저 닮아있는 것이다. 다문화시대 방송에서 외국인의 역할은 적극적인 위치로 변화해가고 있는 것 같다. ‘미수다’와 같이 MC를 중심으로 패널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프로그램이 그 출발점이라면, 지금은 이렇게 그들이 직접 진행도 하고, 방송의 핵심 인력이 되기도 한다. 그 중심에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예능프로그램 ‘비정상 회담’있다. 처음에 호기심에 봤다가 이내 그들의 우리말 실력에 놀라고, 한국을 사랑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괜한 뿌듯함도 느끼면서 ‘팬’이 되었다. 필자 뿐 만 아니라 대세라 불릴만큼 많은 시청자들이 애청하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 받는 방송에 대한 이미지가 최근 ‘기미가요’ 논란으로 얼룩졌다. 방송에서 일본인 출연진의 등장과 함께 ‘기미가요’를 배경음악으로 내보낸 것이다. 기미가요는 일본의 국가이기 전에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이 겪은 아픔이 담긴 곡이다. 또 이전에도 일본방송에 출연한 한 국내 연예인이 ‘기미가요’를 불러 질타 받은 적이 있을 정도로 주의해야할 부분이기도 하다.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 중 아시아인의 비율이 가장 높다고 한다. 이들 국가는 우리와 인접해서 역사적으로 연관된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특히 중국과 일본은 가깝지만, 동시에 멀게 느껴지는 나라이기도 하다. 때문에 ‘실수’로 변명하기에는 예민한 ‘역사문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낄낄거리며 보던 대중도 이내 손가락질을 할 수 밖에 없다. 앞으로 이런 일은 또 다른 국가와 관련해서 등장할 수 있다. 이제 각 방송사에서 다문화 시대의 방송에 대한 ‘메뉴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 지침보다 중요한 것은 방송을 만들어내는 이들의 의식에 있다. 방송의 성패는 화면상에 보이는 이들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이들의 역할에 달려있다. 그들이 먼저 올바른 책임감을 가지는 것, 매사에 준비하는 자세를 가졌으면 한다. 역사 교육에 관한 문제부터 골이 깊어지는 국가 간 관계까지 참 복잡한 현재에 살고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 중심축이 되어줄 방송을 만들어 나가고 싶은 사람으로서 생각해보고 싶은 문제다.

학생칼럼 | 김서현(광고홍보·11) | 2014-11-03 13:31

“인생 뭐 별거 있나요, 월세 아니면 전세 아니겠어요?” 1년 전에 보았던 SNL의 최일구 앵커의 클로징 멘트이다. 세월을 지나 돌이켜 본 어른들은 ‘그렇더라, 인생 뭐 별거 없더라’하며 그의 말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20대인 우리들은 인생의 모든 것이 별 일이다. 월세에서 전세를 꿈꾸며, 전세에서 내 집 마련을 희망한다. 그래서인지 내 미래의 안정을 위해 우리는 이것저것 생각해야 할 것들과 계산해야 할 것들이 많다. 그래서 더욱 움츠리게 되고 계산할 것들이 많아 용기를 내기란 쉽지 않다. 흔히 말하는 ‘20대의 패기’는 취업난과 경쟁사회, 고용의 불안정이라는 단어 아래 주눅들고 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나는 인생을 소풍이라 여기기 보다는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한 기나긴 여정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들은 모두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전념한다. 바삐 지나는 시간 위에 소소한 행복을 찾아내기엔 너무 바쁘다. 친구와 잠깐 밥을 먹는 것, 어쩌다 여행을 빼고는 마음 깊은 곳에는 늘 불안이 함께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전문직과 비전문직으로 나뉘는 삶에서 뒤쳐지지 않으려 늘 달린다. 세상은 너무 많은 기준으로 우리를 재단하고 있다. 그 기준 속에 자신을 포장하면서 얻는 것이 안정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확인해 봐야 한다. 호주로 워킹홀리를 떠난 내 지인은 훗날 안정적인 삶을 위해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다. 그가 정의롭거나, 슬기롭다고는 할 수 없다. 단지, 그는 청춘들에게 요구됐던 수많은 계산을 뒤로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도 월세보다는 전세를 꿈꿨고, 자신만의 공간을 소유하길 희망했다. 그 방법이 조금 달랐을 뿐이다. 나는 그의 선택에 많은 용기가 필요했음을 자신한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비정규직’인 것에 대해 왠지 모를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아도 됐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워킹홀리를 온 외국인이 정규직인 경우는 기술직 뿐이다. 자신의 학벌에 대해서도 여자친구의 친구들에게서 타의에 의한 움츠림을 느끼지 않아도 됐다. 서울대건 지방국립대건 그들에게는 한국의 어느 한 대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타인의 시선 으로 상처받아야 했던 일이 사라지자 더욱이 활기를 되찾았다. 이제 그의 손에는 자격증 기출 문제집이 아닌 철학책과 소설책이 들려있다. 그가 외국에 나가서 마음만은 편하게 지내는 것을 보고 있자면,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이 그를 짓눌러왔는지 알게 된다. 같은 속성의 것들로 억압받은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잘나가는 직장을 다닌다면 그것은 평범한 것이 될 것이다. 게다가, 모든 사람이 그러한 삶을 살 수 없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누구는 의사를 꿈꾸고, 누구는 제주도의 게스트하우스 주인을 꿈꾼다. 제각기 성공의 기준은 다르므로, 타협 기준 또한 다르다. 그러나 세상은 성공과 안정을 기준으로 선택하길 강요한다. 오늘날은 사람들과의 담소를 좋아하는 사람이 선술집 사장을 꿈꿀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우리의 인생은 월세 아니면 전세일 것이다. 그러나 월세와 전세만으로는 나의 행복과 성공을 가늠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는 인생 뭐 별거 있나 싶다. 월세이건 전세 이건 내가 사는 곳이 행복이면 그만인 것을! 그가 비정규직이건 정규직이건 간에 행복하다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으려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남들과 같은 길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 도망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세상의 기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길 바란다.

학생칼럼 | 김희선(방송영상·11) | 2014-10-06 10:05

2학년 2학기, 전공이 정해진 지 한 학기 만에 이화를 떠나 1년 동안 미국생활을 하겠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있는 지금,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고등학생 때부터 나는 항상 교환생활을 꿈꿔왔다. 외국인 친구들과 서슴없이 대화하고 조금 더 자유로운 수업 분위기에서 토론하며 외국인 룸메이트와 같이 방을 쓰는 행복한 꿈들을 꾸곤 했다. 이화에 와서 교환학생을 가고 싶다는 꿈은 더 커졌다. 많은 동기들이 유학생활을 한 것을 알고 나도 꼭 미국에 가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영어실력을 키워오겠다는 다짐을 했다. 내가 한 학기가 아닌 1년 동안 교환학생을 고집한 이유도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부푼 꿈을 가지고 교환학생을 지원했지만, 실질적인 절차가 시작되는 순간 모든 것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미국에 가기 전 서류정리와 은행업무, 비자를 혼자 준비하면서 시작부터 이렇게 힘든데 과연 미국에서 홀로 잘 생활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비행기를 타는 순간에도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웠다. 혼자 22시간의 장시간 비행을 하는 것마저 나에겐 도전이었다. 비행기를 2번 갈아타고, 중간에 수화물을 찾고, 예기치 못하게 시간이 연착되면서 ‘제발 도착만 제대로 하자’ 라는 생각을 몇 번을 되새겼는지 모른다. 하지만 정신이 혼미해질 때마다 생각했다. 이것도 하나의 경험이고 이 짧은 순간에도 나는 성장하고 있다고. 무사히 미국에 도착한 후 일주일이 지나 가을학기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았다. 영어실력 향상이 목표였기 때문에 ‘영어로 생각해야지, 항상 영어로 말해야지, 영어로 매일 일기를 써야지.’ 라는 부담감 때문에 괴로웠다. 하지만 영어에 대한 부담감을 조금은 털어놓고 그 순간순간을 즐기려 노력했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됐다. 특히 미국 가정집과 교환학생을 맺어주는 호스트 패밀리 프로그램(Host Family Program)과 외국인 친구와 문화교류를 할 수 있는 컨버세이션 리더(Conversation Leader Program)프로그램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이 곳 사람들과 정을 나누고 영어 또한 접할 수 있었다. 그랬더니 부담감과 괴로움이 새로움과 설렘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친구들과 장을 보고 요리하는 것, 잠들기 전에 룸메이트와 새벽 2시까지 떠드는 것, 문학 수업시간에 푸욱 빠지는 것, 일상적인 나날들이 행복해졌다. 마음이 편안해지니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나에 대해 조금 더 관대해지려 노력했다. 그러니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작은 것에 감사하며 내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미국에 오기 전에 나의 가장 큰 목표는 영어 실력 향상이었다. 하지만 미국에 와서 느낀 점은 영어를 배우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대하는 것, 미국에 와서 장을 보는 것, 은행 업무를 보는 것, 요리하는 것, 어쩌면 한국에서는 평범했을지 모르는 모든 사소한 행동들로부터 나는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나와 다른 생활습관을 가진 사람들과 지내면서 과거의 나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고 앞으로 나는 어떤 가치관을 갖고 살아야 할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해야 할 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미국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서 기쁘고 남은 기간 얼마나 새롭고 재밌는 일이 일어날지 생각만 해도 흥분이 된다. 그리고 그 새로운 일들 속에서 계속 성장할 나의 모습도 기대된다.

학생칼럼 | 임소영(영문·13) | 2014-10-06 10:00

필자는 매일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에 하루 운동량과 식단, 몸무게를 기록한다. 그러면 어플리케이션은 필자에게 더 필요한 영양소와 운동량을 제시해 준다. 이처럼 인간에게 스마트폰은 ‘건강 관리자’가 되었을 정도로 중요한 존재가 됐다. 실제로 이미 우리는 스마트폰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또 어떤 의미에서는 스마트폰과의 관계를 ‘우정’ 더 나아가서는 ‘사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만약 스마트폰이 이런 인간의 우애에 보답해 함께 사랑해 줄 만큼 똑똑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제86회 아카데미시상식, 제71회 골든 글로브시상식 등 올해 개최된 유수의 영화제에서 총 43개의 상을 휩쓸며 흥행에 성공한 영화 ‘그녀(Her)’에서 그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이 영화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사랑의 모습으로 컴퓨터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진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준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은 iOS의 음성인식 시스템 시리(Siri)로부터 영감을 받아 이 영화를 제작했다고 한다. 즉, 시리로부터 인공지능과 사람이 교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바로 이 ‘교감’은 영화에서 핵심 요소가 된다. 주인공 ‘테오도르’는 자필 편지를 대신 써주는 회사의 대필 작가이다. 타인의 진솔한 마음을 전해주는 일을 하지만 정작 자신은 아내와 별거 중이고, 또 너무나도 공허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인공지능 운영체제인 ‘사만다’를 만나게 된다. 자신의 상황을 잘 이해해주고 도와주는 컴퓨터 속의 여인 사만다와 대화하면서 행복을 되찾기 시작한 그는 결국 그녀와 연인이 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iOS인 사만다는 테오도르 이외에도 8316명의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으며 641명의 다른 사람들과도 동시에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실토하게 되고, 결국 다른 운영체계들이 그러하듯 마찬가지로 테오도르를 떠나게 되면서 둘 사이의 관계는 끝을 맺는다. 일부에서는 ‘과연 인공지능과 감정을 교환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의구심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정녕 기계는 기계에 불과하고 인간에게 우정과 사랑의 대상은 될 수 없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우리 자신만 알지 못했을 뿐 이미 기계와 사랑에 빠져 있을 지도 모른다. 친밀한 관계를 필요로 하는 현대인의 욕구를 영화는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다만 그 대상이 기계로 표출되었을 뿐. SNS가 발달한 사회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 알게 모르게 관계를 맺고 살지만 진정 사랑을 나누며 살지 못한다. 이런 사실은 친밀성에 대한 갈증이 더욱 깊어지는 현실을 깨닫게 한다. 작금의 정보화 사회에서 현대인들에게 컴퓨터나 스마트 폰 같은 기계는 신체의 일부나 다름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SNS에 접속하고, 인터넷 쇼핑을 통해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는 것은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된지 오래다. 대중교통을 이동할 때도 사람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눈 마주침 한번 없이 스마트 폰에 열중하는 오늘 날, 과연 우리가 기계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학생칼럼 | 성예지(로스쿨 2학기) | 2014-09-29 09:42

재작년 개봉한 영화 '러브픽션'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바로 여주인공 희진(극중 공효진)의 '겨드랑이 털'이 등장하는 베드신이다. 으레 없어야 할 것이 갑자기 나타나자 남주인공 주월(극중 하정우)은 당황하고 희진은 그런 남주인공의 모습에 실망한다. '너도 있지 않느냐'며 그를 쏘아붙이는 희진에게 주월의 다급한 변명이 이어진다. '아니, 남자하고 여잔 다르지!' 지난학기 수강한 대중문화 관련 수업에서 필자는 '여성 체모 담론'을 주제로 조모임을 했다. 이 주제를 통해 우리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대두된 여성 체모 담론은 무엇이고, 이 담론이 어떤 사회적 배경 속에서 형성되었는지를 알아보았다. 연구를 위해 다양한 미디어 텍스트들을 수집해 살펴본 결과 우리 조는 여성 체모 담론을 성(性)적 층위와 상업적 층위에서 살펴보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성적 층위에서 보았을 때, 여성의 체모는 여성성의 강화를 위해 관리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과거 이슬람권 문화에서 성인 여성의 체모를 제거함으로써 여성을 사회적으로 미성숙한 존재로 남겨둘 수 있었던 점, 서양의 미술 작품에서 여성이 체모 없이 재현되었던 점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인간이 대립적으로 성을 구분, 재현하고 이를 강화해나가는 과정에서 털이 많은 것은 '남성적'인 것으로, 반대로 털이 없는 것은 ?여성적?인 것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근대에 이르러 여성체모담론은 상업적 이데올로기와 만나 수면위로 떠오르게 된다. 과거 미시적인 실천행위였던 체모 제거가 자본 아래 제모 관련 산업으로 확대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면도기 회사 질레트는 20세기 초 처음으로 여성용 면도기를 출시하고 대대적인 겨드랑이 캠페인을 벌였다. 그 결과 여성용 면도기는 질레트의 면도기 판매 수치를 2년 만에 두 배로 끌어올리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푸코는 권력이 인간의 몸에 직접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이르러 '생체권력' 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체권력을 내면화하여, 끊임없이 나와 타인을 응시한다. 이 과정에서 권력은 정상ㆍ비정상을 범주화하고 사람들은 정상범주에 들기 위해 자율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러브 픽션' 에서 주월이 희진의 겨드랑이 털에 보였던 부정적 반응, '색계'에 등장하는 여배우의 겨드랑이 털에 대한 대중의 관심 등은 이러한 범주가 얼마나 잘 내재화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체모가 관리된 것은 정상, 그렇지 않은 것은 비정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요즘 들어 이 정상, 비정상 범주에 점점 더 많은 신체 부위들이 적용되고 있는 것 같다. 직각 어깨, 꿀벅지, 소두 등 최근 들어 몸에 관련한 신조어들이 많아졌다. 허벅지는 굵어야 하지만 발목은 가늘어야 하고 허리는 가늘면서 골반은 넓어야 한다. 이에 따라 '자기관리' 라는 이름 아래 놓인 신체부위가 늘어나게 됐다. 어쩌면 머지않아 사람들의 발가락 모양까지 관리해주는 업체가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학생칼럼 | 임주언(언론·11) | 2014-09-22 1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