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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고교생 연구소’에서 재미있는 설문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소는 전국 대한민국 고교생 1000명을 대상으로 미래 성장가능성과 함께 대학 이미지 조사를 진행했다. 이 중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대학 이미지에 대한 조사였다. 이미지 조사는 각 대학 하면 바로 떠오르는 성별이나 전공 등을 묻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위 조사 결과를 종합해 각 학교를 상징하는 캐릭터의 이미지 및 학과와 이름도 함께 소개했다. 이는 각 학교별 홍보팀과 의견 조율을 거친 것이라고 하니 각 학교도 발표된 이미지에 어느 정도 동의한 셈이다. 서울대 캐릭터의 별명은 ‘설으뜸’(남)으로 어려운 내용도 이해할 때까지 파고드는 법학도, 연세대는 지적이면서도 밝은 모습의 의학 전공 엄친 딸의 이미지다. 그 밖에 성중기(성균관대), 한잡스(한양대) 등의 재미있는 이름도 등장했다. 고등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이긴 하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될 정도로 맞아 떨어지는 부분도 많았다. 그렇다면 우리 이화는 어떨까. 이화의 캐릭터 이름은 ‘이샘’. 고등학생들에게 핵심을 콕콕 짚어주며 학생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칠 선생님을 꿈꾸는 사범대생으로 비춰졌다. 타 여대와 비교해보니 확실히 애교가 넘친다거나 꾸민 듯 안 꾸민듯한 특유의 ‘여대생’의 느낌은 덜했지만, 그들에게는 없는 부드러운 전문성이 깃든 모습이었다. 또 외부인들이 이화에 대해 막연하게 떠올렸던 ‘차도녀’ 이미지는 다른 대학이 가져갔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화인이 생각하는 이화인의 이미지도 비슷한 듯 하다. 요즘 화제인 드라마 ‘미생’에서 극 중 안영이에 이대생이 빙의됐다고 보는 이화인들이 많다. 안영이에게는 열정과 영리함이 있지만 동시에 따뜻함도 느껴진다. 우리는 이 같은 혹은 이와 비슷한 여성상을 꿈꾸고 이화에 들어왔다. 그렇다고 우리가 마냥 완벽한가 하면 그건 아니다. 핵심을 콕콕 짚어 내다가도 허둥지둥 할 때가 있다. 또 애교가 없는 편이냐고 물으면 콧소리라도 내겠다. 그럼에도 ‘이샘’이라는 이미지가 우세한 것은, 이화는 분명히 이러한 여성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2주 간 그들은 수능을 마쳤고, 우리는 총학생회 선거를 마쳤다. 추운 ‘날씨에는 수능도 어려워진다는 법칙이 등장할 정도였지만, 정말 추운 날씨였음에도 이번은 달랐던 것 같다. 쉬웠는데, 쉬워서 망했다는 의견도 들려온다. 이화는 이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틀 전, 총학 선거를 끝내면서, 하나의 준비를 마친 셈이다. 이번 총학 선거는 투표를 하는 이화인 들에게도, 선거 당사자들에게도 힘겨운 선거였다. 투표는 끝났지만 우리 앞에는 아직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그렇지만 새로 맞이할 예비 이화인들이 꿈꾸는, 지금 이화에 다니는 우리가 바라는 이화의 모습은 분명히 정해져 있다. 그 이미지를 생각하고 핵심을 짚어주는 총학이, 학교가 되었으면 한다. 이화인 모두 ‘이샘’이 되자. 앞서 필자가 열거한 이미지에 동의하지 않는 이화인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만큼은 ‘이샘’의 이미지가 필요한 때인 듯 하다. 이화를 위해 때로는 예리하고 때로는 든든한 이화인이 되어보자.

학생칼럼 | 김서현(광고홍보·11) | 2014-11-24 11:37

3일째 오전으로 교환면접에서 물가폭탄이라는 스웨덴의 두 학교 사이에서 아무 정보도 없이 칼스타드를 고른 뒤 면접장을 나오며 허탈하게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좋아하는 빵 이름과 같아 칼스타드를 골랐다고는 차마 말을 못하고 나는 스웨덴에서 남들과 다른 경험을 할 것이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도착한 칼스타드에서 저는 지금, 제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스웨덴 디자인, 스웨덴의 복지. 한국에서의 스웨덴은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소위 ‘있어 보이는’ 단어입니다. 한국에서 스웨덴은 익숙한 듯 생소한 나라이기에 교환학생의 눈으로 본 스웨덴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스웨덴에 올 때 가장 걱정했던 것은 살인적인 물가였습니다. 그러나 스웨덴의 물가는 생각보다 그리 비싸지 않습니다. 특히 학생들의 경우 교통비, 식자재비로 생활비를 지출하게 되는데 식자재비는 오히려 한국보다 싸 예상보다 돈을 많이 아꼈습니다. 물론 인건비가 들어가는 외식비용은 한국에 비해 많이 비싸지만 이는 스웨덴 사람들에게조차 부담이 돼 그들도 외식을 잘 하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복지국가’임을 다시금 느꼈을 때는 대학교육 시스템을 본 후 입니다. 먼저 스웨덴의 수업 시스템은 한국과 굉장히 다릅니다. 한 학기 평균 6개 수업을 듣는 한국과 달리 스웨덴은 한 학기 평균 2~3개의 수업을 등록하고 2주에 한번 혹은 1주일에 한번 수업을 듣습니다. 스웨덴은 고등학교 졸업 후 일을 하거나 여행 등으로 휴식을 취한 뒤 진정한 학문을 하려는 학생만 대학으로 진학하는 편입니다. 때문에 스웨덴 학생들은 상당히 자신의 전공에 진지한 편입니다. 스웨덴 학생들은 한 수업 당 3~4권 정도의 두꺼운 추천 교재를 스스로 읽고 공부하며 자신이 공부하는 분야에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환을 올 때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영어’였습니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나라인데 과연 영어실력을 기를 수 있을 것인가 많이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나 스웨덴은 영어를 하기에 최상의 나라인 듯합니다. 스웨덴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를 불편함 없이 구사하는데 이유를 물으니 영어와 구조가 비슷해서인 이유도 있지만 어릴 적부터 영어로 된 TV 프로그램을 많이 시청해서라고 하였습니다. 대게 만 9세 정도만 되어도 영어를 자유자재로 쓰기 때문에 스웨덴의 어디를 가든 영어를 사용함에 불편함이 없고 모국어가 아니기에 말이 빠르지 않아 알아듣기가 수월합니다. 또한 제가 있는 대학이 스웨덴 현지 학생들과 교환학생들을 한 기숙사 단지에서 모여 살도록 하기 때문에 스웨덴 학생들과의 교류도 많고 각종 파티나 모임이 모두 기숙사 단지 내에서 열려, 어눌한 영어지만 이리저리 노력한 덕에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밤새 파티를 하고 늦게 일어나 함께 부엌에 모여 밥을 해먹고 수다를 떨고 게임을 하고 여행계획을 짜는 지금의 생활은 다시는 잊지 못할 제 인생의 황금기 입니다. 여기서 만난 사람들, 이 도시, 제가 느끼고 경험한 모든 것들이 너무나 소중해 벌써 돌아갈 생각을 하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저 같은 경우 부모님께 손을 벌리고 싶지 않아 모아둔 용돈과 인턴 월급을 모두 합쳐 남들보다는 늦게 교환 길에 올랐습니다. 돌아가면 채워야 할 학점들, 졸업시험, 졸업논문, 따야 할 각종 자격증과 영어점수를 생각하면 눈앞이 막막하지만 이곳에서의 생활이 이 모두를 상쇄할 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갈까 말까 망설이는 학생들, 꼭 가야하나 고민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제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학생칼럼 | 이지원(광고홍보·11) | 2014-11-24 11:27

필자는 스스로를 과거지향적 인간이라고 생각해왔다. 어릴 때는 분명 남들보다 눈물이 많고 과거에 연연하는, ‘감수성 짙은’ 아이였다. 그런 필자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는 날의 반편성이었다. 친한 친구와 같은 반이 되었던 경험이 단 한번도 없을 정도로 반편성운은 언제나 나빴다. 그래서 친구대신에 1년간 쓰던 책상을 데리고 갔다. 그렇게 중학교 3년간 같은 책걸상을 쓰고 졸업했다. 졸업식이 있던 날 그 책상에 앉아 너무 오래 우는 바람에 졸업생 중 가장 마지막으로 학교를 나왔다. 이별을 유난히 힘들어 한 만큼 과거라 불러야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한동안 앓아야 했다. 그리고 그런 때의 필자는 좀 어두웠다. ‘현재에 충실하라!’는 진부한 명언이 늘 필자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밝게 명랑하게만 지내는 것 같은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때 느끼는 생각들을 붙잡아 기록하는 버릇을 들이라고들 말한다. 필자는 태생이 게을러서 계획을 세우는 것은 고사하고 어쩌다 겨우 플래너를 잡고 써둔 것을 지키는 일에도 소질이 없다(약속은 꼭 지킨다). 꾸준히 기록하기와 필자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도 가끔 감정이 너무 격해져서 어디다가 쏟아 내야 할 지 몰라 안절부절할 때는 두서없이 왕창 써 갈기곤 했다. 나 좀 봐달라고 한 글자 한 글자 몸부림을 쳐대면서 말이다. 가끔씩 써둔 글을 읽어 보곤 한다. 최근에 필자가 써왔던 글을 읽으면서 문득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것은 가끔 훔쳐보는 8살 어린 동생의 일기장을 볼 때와 같은, 아니 그보다 더한 것이었다. 자신이 써둔 글을 읽는 것은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면서 갖게 되는 주관적인 생각을 차갑게 만들어준다. 필자가 스스로를 과거지향적 인간이라고 오해한 데는, 사진과 동영상 속 그저 해맑기 그지없던 “그 순간만큼은 행복했던 나”의 표정이 있었다. ‘이별 후 몸살’기간에 사진 감상이 빠질 수 없다. 사진들을 볼 때 마다 ‘아 저 때는 참 행복했더랬지.’, ‘저 때는 내 옆에 함께 찍힌 저 사람과 참 좋은 사이였지.’, ‘왜 지금은 저들과 저리 웃을 수 없는 걸까.’, ‘아무래도 내가 잘못한 듯하다.’, ‘저 때처럼 저들과 함께 웃고 싶다.' 식의 후회를 늘어놓았다. 과거의 순간을 아름답게만 담아두는 데 성공한 사진과 동영상들은 당연히 그때를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도록 해줄 뿐이다. 그래서 사진을 보면 늘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이제야 알다니 스스로가 우습기도 하다. 하지만 글들은 그것을 쓰던 때의, 며칠이나마 더 어렸을 때의 스스로가 얼마나 어리고, 어리석고, 철없고, 무지했고, 이기적이었고 못됐었는지 깨닫게 해줌으로써 후회의 감정을 느끼게 하지만 사진이 부르는 후회와는 다른 마음을 먹게 한다. ‘과거에 조금만 더 잠겨있자.’가 아니라 ‘아! 저건 진짜 아니다. 좀 더 어른스러워 져야 할 텐데.’ 예전의 글들을 볼 때마다 그 글을 지우면 그때의 어리석은 ‘나’를 잊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자란 ‘나’로 하여금 스스로의 어리석었음을 이따금씩 느낄 수 있도록 이렇게 기록행위를 지속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어차피 부끄러움 밖에 남지 않을 이 글쓰기를 굳이 계속 할 필요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작가의 꿈은 꾸지 않아야겠다는 것이다.

학생칼럼 | 정채은(광고홍보·11) | 2014-11-17 13:56

한 학기 동안의 독일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이화로 돌아 온지 어느덧 3개월이 지났다. 지금은 내가 정말 독일에 살다 온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한국생활에 완벽히 적응해버렸지만, 시험과 과제에 치여 힘들 때면 가끔씩 그 곳에서의 여유로웠던 생활이 그리워지곤 한다. 독일에서의 추억들이 완전히 잊혀 지기 전에, 지난 6개월간의 교환학생 생활을 기록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내가 독일로 교환학생을 갔다 왔다고 하면, 많은 이들이 미국 혹은 영국 교환학생이 아닌 왜 독일 교환학생을 선택했냐고 묻곤 한다. 독일로 교환학생을 가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영미권으로 가서 그저 영어실력을 늘리기보다는 유럽으로 가서 다양한 문화체험을 해보고 싶었다. 유럽으로 시선을 돌리고 나니 문득, 전공 수업시간에 많이 접해왔던 독일이 눈에 들어왔다. 마르크스, 베버, 짐멜 등 독일 사회학자들의 이론을 접하면서 독일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독일의 대학교들 중 가장 상위에 있던 오스나브뤼크 대학교를 선택하였다. 하지만 독일로 떠난다는 기쁨도 잠시, 출국준비를 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우리나라 포털 사이트에는 오스나브뤼크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는 것이 아닌가! 혹시 내가 스펠링을 잘 못 친 건 아닐까 하고 다시 검색해보기도 했지만, 결과는 역시나 똑같았다. 해외 사이트를 통해 정보를 겨우 얻을 수 있었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정보가 턱없지 부족한 곳이었다. 지난 3월, 나는 그렇게 미지의 세계로 떠났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착륙 후, 4시간 정도 기차를 탄 후에야 비로소 오스나브뤼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중앙역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동안의 걱정들이 기대로 바뀌었다. 오스나브뤼크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도시였다. 게임 ‘심즈’에서나 볼법한 주택들이 즐비해있었고, 백화점·레스토랑 편의시설들도 잘 갖추어져 있었다.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들판에서 뛰노는 말과 양도 만나볼 수 있었다. 대학 생활 역시 만족스러웠다. 중세시대에 성으로 썼던 건물을 대학본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수업은 정원 30명 미만의 소수강의에 토론식으로 진행되었다. 미드나 영화 속에서만 봤던 강의실에 내가 앉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굉장히 설렜다. 동화 속 마을 같은 도시, 아름다운 자연환경, 잘생긴 게르만 청년들, 친절한 친구들 등등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모두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독일에서의 시간이 언제나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다. 꿈만 같던 독일생활에 적응을 할 때 쯤, 가혹한 현실들이 나를 괴롭혔다. 언어실력 때문에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힘들었고, 문화가 다른 친구들과 깊은 관계를 맺기도 어려웠다. 또한 한국에서 스펙을 쌓고 있는 동기들을 보면서, ‘여기서 이렇게 놀아도 될까?’하는 조바심이 들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교환학생을 통해 대단한 것을 경험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던 것이다. 그 때 ‘무엇인가를 얻지 않아도 괜찮다’는 친구의 조언덕분에 우울한 시기를 견뎌낼 수 있었다. 욕심을 내려놓고, 한국에서 느낄 수 없는 여유를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남은 기간 동안은 남에게 보여 지기 위한 것이 아닌 나만을 위한 삶을 살도록 노력했다. 그 덕분에 독일에 대한 좋은 추억만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교환학생 생활을 통해 대단한 무엇인가를 얻진 못했다. 하지만 지난 6개월 동안 한국 음식 대접 , 칸 영화제 참석, 지역 라디오 쇼 녹음 등 한국에서 하기 힘든 경험들을 나만의 추억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에 만족한다. 9개월 전, 낯선 땅이었던 오스나브뤼크는 이제 제2의 고향이 되었다. 이 글을 쓰고 나니, 문득 그 곳의 가을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학생칼럼 | 김지아(사회·11) | 2014-11-17 13:46

오는 13일 개봉하는 영화 는 일방적으로 해고 통보를 받은 마트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우리는 항상 을입니다'라는 문구가 붙어있는 직원실에서 생활하고 벌점 50점이 넘으면 반성문도 써야 했다. 정규직만 바라보며 모든 걸 견뎌왔던 이들은 부당함에 맞서기 위해 투쟁을 시작한다. 영화 의 줄거리이자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영화 는 2007년 이랜드 파업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2007년 7월, 비정규직보호법의 시행으로 2년이 넘게 근무한 계약직 근로자를 무기계약으로 전환해야 하자 이랜드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무더기로 해고해버렸다.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법이 시행된 지 어느덧 7년인데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얼마 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근무하던 20대 비정규직 여직원 권씨가 자살한 일이 드러났다. 권씨는 2년을 근무하는 동안 7번이나 나눠서 계약을 해야 했고 근무 기간 동안 무수한 성추행과 성희롱을 당했다. 정규직만을 바라보며 참아왔지만 24개월의 노동 뒤에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해고였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8월 기준, 비정규직 근로자가 전체 임금근로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2.4%나 된다. 관련 조사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비정규직 근로자가 600만명을 넘어섰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사이의 임금 차이도 크다. 정규직의 임금이 월평균 260만원대인데 비해 비정규직의 경우 145만원대에 그쳤다. 비정규직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데 처우는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임금 외에 또 다른 차별은 복지 문제이다. 비정규직의 경우 정규직에 비해 퇴직금이나 시간외수당을 비롯한 근로복지도 매우 열악하다. 정규직이 82%의 퇴직금 수혜율을 보인 반면 비정규직은 39.5%에 불과했다.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이다. 사실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이라는 교양수업을 듣게 되면서부터이다. 근로기준법부터 근로자의 정의, 채용과 임금에 대한 내용까지 배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동에 대한 기사나 영화에 눈이 가게 되었다. 내가 취업을 눈앞에 둔 대학생이라는 점도 한 몫을 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내 문제가 되지 않으면 바로 옆에 있는데도 잘 보지 못한다. 새내기 시절 학교 벽에 붙은 노동 관련 포스터를 봤을 때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투쟁중인 노동자들을 내다볼 때도 무심코 지나쳤다.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말 그럴까? 우리나라 비정규직 근로자 600만 명 중 2030 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35%를 넘었다. 바로 우리의 이야기라는 의미다. 얼마 전 비정규직 노동자의 근로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는 법안을 추진 중이라는 기사를 봤다. 경제단체들은 '경제 살리기'의 물살을 타고 비정규직 근로기간을 자율적으로 연장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또 지난 달에는 휴일근로 가산임금 규정을 삭제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근로’라는 이슈의 당사자가 된 한 사람으로서 머지 않아 스크린에서 근무한지 3년이 되던 날 해고 당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만나게 될까봐 걱정이 된다.

학생칼럼 | 임주연(언론·11) | 2014-11-10 13:51

교과서에서 ‘다문화’라는 말을 처음 접했을 때 그 아래 사진에 담긴 한복 입은 외국인의 모습은 참 어색했었다. 지금은 약 170만이라는 많은 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하니 이상할 일도 아니다. 이들은 결혼, 취업 등의 다양한 이유로 제 2의 국가, ‘한국’을 살고 있다. 방송도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고 움직여왔다. 방송사 마다 적게는 한 두 개씩 다문화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고, 프로그램에 곳곳에 조금씩 녹여내고 있기도 하다. 장르도 교양, 예능 구분 없이 다양하다. 대중문화를 잘 보여주는 장치 중 하나가 방송이라는 점에서 뚜렷해진 ‘다문화 시대’가 실감난다. 한 예로 저녁 시간대의 맛집 프로그램에서는 ‘가나댁’, ‘러시아 미녀 리포터’등 다양한 외국인 리포터들이 등장해 방송을 진행한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그들은 한국인 뺨치는 우리말 구사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진짜 맛있어요’, ‘짱이에요’와 같은 말만 되풀이할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완벽한 식감 표현으로 시청자의 미각을 자극한다. 거기다 식당 주인 분들에게 스스럼없는 모습은 영락없는 우리나라 사람이었다. 정서마저 닮아있는 것이다. 다문화시대 방송에서 외국인의 역할은 적극적인 위치로 변화해가고 있는 것 같다. ‘미수다’와 같이 MC를 중심으로 패널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프로그램이 그 출발점이라면, 지금은 이렇게 그들이 직접 진행도 하고, 방송의 핵심 인력이 되기도 한다. 그 중심에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예능프로그램 ‘비정상 회담’있다. 처음에 호기심에 봤다가 이내 그들의 우리말 실력에 놀라고, 한국을 사랑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괜한 뿌듯함도 느끼면서 ‘팬’이 되었다. 필자 뿐 만 아니라 대세라 불릴만큼 많은 시청자들이 애청하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 받는 방송에 대한 이미지가 최근 ‘기미가요’ 논란으로 얼룩졌다. 방송에서 일본인 출연진의 등장과 함께 ‘기미가요’를 배경음악으로 내보낸 것이다. 기미가요는 일본의 국가이기 전에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이 겪은 아픔이 담긴 곡이다. 또 이전에도 일본방송에 출연한 한 국내 연예인이 ‘기미가요’를 불러 질타 받은 적이 있을 정도로 주의해야할 부분이기도 하다.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 중 아시아인의 비율이 가장 높다고 한다. 이들 국가는 우리와 인접해서 역사적으로 연관된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특히 중국과 일본은 가깝지만, 동시에 멀게 느껴지는 나라이기도 하다. 때문에 ‘실수’로 변명하기에는 예민한 ‘역사문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낄낄거리며 보던 대중도 이내 손가락질을 할 수 밖에 없다. 앞으로 이런 일은 또 다른 국가와 관련해서 등장할 수 있다. 이제 각 방송사에서 다문화 시대의 방송에 대한 ‘메뉴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 지침보다 중요한 것은 방송을 만들어내는 이들의 의식에 있다. 방송의 성패는 화면상에 보이는 이들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이들의 역할에 달려있다. 그들이 먼저 올바른 책임감을 가지는 것, 매사에 준비하는 자세를 가졌으면 한다. 역사 교육에 관한 문제부터 골이 깊어지는 국가 간 관계까지 참 복잡한 현재에 살고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 중심축이 되어줄 방송을 만들어 나가고 싶은 사람으로서 생각해보고 싶은 문제다.

학생칼럼 | 김서현(광고홍보·11) | 2014-11-03 13:31

“인생 뭐 별거 있나요, 월세 아니면 전세 아니겠어요?” 1년 전에 보았던 SNL의 최일구 앵커의 클로징 멘트이다. 세월을 지나 돌이켜 본 어른들은 ‘그렇더라, 인생 뭐 별거 없더라’하며 그의 말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20대인 우리들은 인생의 모든 것이 별 일이다. 월세에서 전세를 꿈꾸며, 전세에서 내 집 마련을 희망한다. 그래서인지 내 미래의 안정을 위해 우리는 이것저것 생각해야 할 것들과 계산해야 할 것들이 많다. 그래서 더욱 움츠리게 되고 계산할 것들이 많아 용기를 내기란 쉽지 않다. 흔히 말하는 ‘20대의 패기’는 취업난과 경쟁사회, 고용의 불안정이라는 단어 아래 주눅들고 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나는 인생을 소풍이라 여기기 보다는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한 기나긴 여정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들은 모두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전념한다. 바삐 지나는 시간 위에 소소한 행복을 찾아내기엔 너무 바쁘다. 친구와 잠깐 밥을 먹는 것, 어쩌다 여행을 빼고는 마음 깊은 곳에는 늘 불안이 함께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전문직과 비전문직으로 나뉘는 삶에서 뒤쳐지지 않으려 늘 달린다. 세상은 너무 많은 기준으로 우리를 재단하고 있다. 그 기준 속에 자신을 포장하면서 얻는 것이 안정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확인해 봐야 한다. 호주로 워킹홀리를 떠난 내 지인은 훗날 안정적인 삶을 위해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다. 그가 정의롭거나, 슬기롭다고는 할 수 없다. 단지, 그는 청춘들에게 요구됐던 수많은 계산을 뒤로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도 월세보다는 전세를 꿈꿨고, 자신만의 공간을 소유하길 희망했다. 그 방법이 조금 달랐을 뿐이다. 나는 그의 선택에 많은 용기가 필요했음을 자신한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비정규직’인 것에 대해 왠지 모를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아도 됐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워킹홀리를 온 외국인이 정규직인 경우는 기술직 뿐이다. 자신의 학벌에 대해서도 여자친구의 친구들에게서 타의에 의한 움츠림을 느끼지 않아도 됐다. 서울대건 지방국립대건 그들에게는 한국의 어느 한 대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타인의 시선 으로 상처받아야 했던 일이 사라지자 더욱이 활기를 되찾았다. 이제 그의 손에는 자격증 기출 문제집이 아닌 철학책과 소설책이 들려있다. 그가 외국에 나가서 마음만은 편하게 지내는 것을 보고 있자면,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이 그를 짓눌러왔는지 알게 된다. 같은 속성의 것들로 억압받은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잘나가는 직장을 다닌다면 그것은 평범한 것이 될 것이다. 게다가, 모든 사람이 그러한 삶을 살 수 없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누구는 의사를 꿈꾸고, 누구는 제주도의 게스트하우스 주인을 꿈꾼다. 제각기 성공의 기준은 다르므로, 타협 기준 또한 다르다. 그러나 세상은 성공과 안정을 기준으로 선택하길 강요한다. 오늘날은 사람들과의 담소를 좋아하는 사람이 선술집 사장을 꿈꿀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우리의 인생은 월세 아니면 전세일 것이다. 그러나 월세와 전세만으로는 나의 행복과 성공을 가늠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는 인생 뭐 별거 있나 싶다. 월세이건 전세 이건 내가 사는 곳이 행복이면 그만인 것을! 그가 비정규직이건 정규직이건 간에 행복하다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으려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남들과 같은 길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 도망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세상의 기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길 바란다.

학생칼럼 | 김희선(방송영상·11) | 2014-10-06 10:05

2학년 2학기, 전공이 정해진 지 한 학기 만에 이화를 떠나 1년 동안 미국생활을 하겠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있는 지금,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고등학생 때부터 나는 항상 교환생활을 꿈꿔왔다. 외국인 친구들과 서슴없이 대화하고 조금 더 자유로운 수업 분위기에서 토론하며 외국인 룸메이트와 같이 방을 쓰는 행복한 꿈들을 꾸곤 했다. 이화에 와서 교환학생을 가고 싶다는 꿈은 더 커졌다. 많은 동기들이 유학생활을 한 것을 알고 나도 꼭 미국에 가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영어실력을 키워오겠다는 다짐을 했다. 내가 한 학기가 아닌 1년 동안 교환학생을 고집한 이유도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부푼 꿈을 가지고 교환학생을 지원했지만, 실질적인 절차가 시작되는 순간 모든 것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미국에 가기 전 서류정리와 은행업무, 비자를 혼자 준비하면서 시작부터 이렇게 힘든데 과연 미국에서 홀로 잘 생활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비행기를 타는 순간에도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웠다. 혼자 22시간의 장시간 비행을 하는 것마저 나에겐 도전이었다. 비행기를 2번 갈아타고, 중간에 수화물을 찾고, 예기치 못하게 시간이 연착되면서 ‘제발 도착만 제대로 하자’ 라는 생각을 몇 번을 되새겼는지 모른다. 하지만 정신이 혼미해질 때마다 생각했다. 이것도 하나의 경험이고 이 짧은 순간에도 나는 성장하고 있다고. 무사히 미국에 도착한 후 일주일이 지나 가을학기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았다. 영어실력 향상이 목표였기 때문에 ‘영어로 생각해야지, 항상 영어로 말해야지, 영어로 매일 일기를 써야지.’ 라는 부담감 때문에 괴로웠다. 하지만 영어에 대한 부담감을 조금은 털어놓고 그 순간순간을 즐기려 노력했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됐다. 특히 미국 가정집과 교환학생을 맺어주는 호스트 패밀리 프로그램(Host Family Program)과 외국인 친구와 문화교류를 할 수 있는 컨버세이션 리더(Conversation Leader Program)프로그램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이 곳 사람들과 정을 나누고 영어 또한 접할 수 있었다. 그랬더니 부담감과 괴로움이 새로움과 설렘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친구들과 장을 보고 요리하는 것, 잠들기 전에 룸메이트와 새벽 2시까지 떠드는 것, 문학 수업시간에 푸욱 빠지는 것, 일상적인 나날들이 행복해졌다. 마음이 편안해지니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나에 대해 조금 더 관대해지려 노력했다. 그러니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작은 것에 감사하며 내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미국에 오기 전에 나의 가장 큰 목표는 영어 실력 향상이었다. 하지만 미국에 와서 느낀 점은 영어를 배우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대하는 것, 미국에 와서 장을 보는 것, 은행 업무를 보는 것, 요리하는 것, 어쩌면 한국에서는 평범했을지 모르는 모든 사소한 행동들로부터 나는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나와 다른 생활습관을 가진 사람들과 지내면서 과거의 나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고 앞으로 나는 어떤 가치관을 갖고 살아야 할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해야 할 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미국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서 기쁘고 남은 기간 얼마나 새롭고 재밌는 일이 일어날지 생각만 해도 흥분이 된다. 그리고 그 새로운 일들 속에서 계속 성장할 나의 모습도 기대된다.

학생칼럼 | 임소영(영문·13) | 2014-10-06 10:00

필자는 매일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에 하루 운동량과 식단, 몸무게를 기록한다. 그러면 어플리케이션은 필자에게 더 필요한 영양소와 운동량을 제시해 준다. 이처럼 인간에게 스마트폰은 ‘건강 관리자’가 되었을 정도로 중요한 존재가 됐다. 실제로 이미 우리는 스마트폰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또 어떤 의미에서는 스마트폰과의 관계를 ‘우정’ 더 나아가서는 ‘사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만약 스마트폰이 이런 인간의 우애에 보답해 함께 사랑해 줄 만큼 똑똑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제86회 아카데미시상식, 제71회 골든 글로브시상식 등 올해 개최된 유수의 영화제에서 총 43개의 상을 휩쓸며 흥행에 성공한 영화 ‘그녀(Her)’에서 그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이 영화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사랑의 모습으로 컴퓨터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진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준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은 iOS의 음성인식 시스템 시리(Siri)로부터 영감을 받아 이 영화를 제작했다고 한다. 즉, 시리로부터 인공지능과 사람이 교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바로 이 ‘교감’은 영화에서 핵심 요소가 된다. 주인공 ‘테오도르’는 자필 편지를 대신 써주는 회사의 대필 작가이다. 타인의 진솔한 마음을 전해주는 일을 하지만 정작 자신은 아내와 별거 중이고, 또 너무나도 공허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인공지능 운영체제인 ‘사만다’를 만나게 된다. 자신의 상황을 잘 이해해주고 도와주는 컴퓨터 속의 여인 사만다와 대화하면서 행복을 되찾기 시작한 그는 결국 그녀와 연인이 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iOS인 사만다는 테오도르 이외에도 8316명의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으며 641명의 다른 사람들과도 동시에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실토하게 되고, 결국 다른 운영체계들이 그러하듯 마찬가지로 테오도르를 떠나게 되면서 둘 사이의 관계는 끝을 맺는다. 일부에서는 ‘과연 인공지능과 감정을 교환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의구심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정녕 기계는 기계에 불과하고 인간에게 우정과 사랑의 대상은 될 수 없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우리 자신만 알지 못했을 뿐 이미 기계와 사랑에 빠져 있을 지도 모른다. 친밀한 관계를 필요로 하는 현대인의 욕구를 영화는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다만 그 대상이 기계로 표출되었을 뿐. SNS가 발달한 사회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 알게 모르게 관계를 맺고 살지만 진정 사랑을 나누며 살지 못한다. 이런 사실은 친밀성에 대한 갈증이 더욱 깊어지는 현실을 깨닫게 한다. 작금의 정보화 사회에서 현대인들에게 컴퓨터나 스마트 폰 같은 기계는 신체의 일부나 다름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SNS에 접속하고, 인터넷 쇼핑을 통해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는 것은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된지 오래다. 대중교통을 이동할 때도 사람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눈 마주침 한번 없이 스마트 폰에 열중하는 오늘 날, 과연 우리가 기계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학생칼럼 | 성예지(로스쿨 2학기) | 2014-09-29 09:42

재작년 개봉한 영화 '러브픽션'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바로 여주인공 희진(극중 공효진)의 '겨드랑이 털'이 등장하는 베드신이다. 으레 없어야 할 것이 갑자기 나타나자 남주인공 주월(극중 하정우)은 당황하고 희진은 그런 남주인공의 모습에 실망한다. '너도 있지 않느냐'며 그를 쏘아붙이는 희진에게 주월의 다급한 변명이 이어진다. '아니, 남자하고 여잔 다르지!' 지난학기 수강한 대중문화 관련 수업에서 필자는 '여성 체모 담론'을 주제로 조모임을 했다. 이 주제를 통해 우리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대두된 여성 체모 담론은 무엇이고, 이 담론이 어떤 사회적 배경 속에서 형성되었는지를 알아보았다. 연구를 위해 다양한 미디어 텍스트들을 수집해 살펴본 결과 우리 조는 여성 체모 담론을 성(性)적 층위와 상업적 층위에서 살펴보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성적 층위에서 보았을 때, 여성의 체모는 여성성의 강화를 위해 관리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과거 이슬람권 문화에서 성인 여성의 체모를 제거함으로써 여성을 사회적으로 미성숙한 존재로 남겨둘 수 있었던 점, 서양의 미술 작품에서 여성이 체모 없이 재현되었던 점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인간이 대립적으로 성을 구분, 재현하고 이를 강화해나가는 과정에서 털이 많은 것은 '남성적'인 것으로, 반대로 털이 없는 것은 ?여성적?인 것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근대에 이르러 여성체모담론은 상업적 이데올로기와 만나 수면위로 떠오르게 된다. 과거 미시적인 실천행위였던 체모 제거가 자본 아래 제모 관련 산업으로 확대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면도기 회사 질레트는 20세기 초 처음으로 여성용 면도기를 출시하고 대대적인 겨드랑이 캠페인을 벌였다. 그 결과 여성용 면도기는 질레트의 면도기 판매 수치를 2년 만에 두 배로 끌어올리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푸코는 권력이 인간의 몸에 직접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이르러 '생체권력' 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체권력을 내면화하여, 끊임없이 나와 타인을 응시한다. 이 과정에서 권력은 정상ㆍ비정상을 범주화하고 사람들은 정상범주에 들기 위해 자율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러브 픽션' 에서 주월이 희진의 겨드랑이 털에 보였던 부정적 반응, '색계'에 등장하는 여배우의 겨드랑이 털에 대한 대중의 관심 등은 이러한 범주가 얼마나 잘 내재화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체모가 관리된 것은 정상, 그렇지 않은 것은 비정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요즘 들어 이 정상, 비정상 범주에 점점 더 많은 신체 부위들이 적용되고 있는 것 같다. 직각 어깨, 꿀벅지, 소두 등 최근 들어 몸에 관련한 신조어들이 많아졌다. 허벅지는 굵어야 하지만 발목은 가늘어야 하고 허리는 가늘면서 골반은 넓어야 한다. 이에 따라 '자기관리' 라는 이름 아래 놓인 신체부위가 늘어나게 됐다. 어쩌면 머지않아 사람들의 발가락 모양까지 관리해주는 업체가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학생칼럼 | 임주언(언론·11) | 2014-09-22 18:04

학생문화관 1층 화장실 어느 칸에 보면 2006년에 MBC에서 방영했던 라는 드라마의 명대사 중 하나가 쓰여 있다. “누가 그러더라. 남자는 운명의 여자를 만나면 더 나은 여자가 있을 거라며 내 앞에 여자를 놓치고, 여자는 운명의 남자를 만나면 운명인 걸 알면서도 현실을 선택한다. 그냥 무조건 사랑하는 거야. 이 사람 보다 더 사랑할 사람이 없겠구나하고 사랑하면 그게 운명이고 이 사람밖에 없다하고 사랑하면 그게 또 운명이 되는 거지.” 남녀, 사랑, 운명, 결혼에 대해서 이것 보다 더 공감 가는 정의를 할 수 있을까 싶다. 운명이라는 같은 문제를 두고 남녀는 이렇게나 다른 생각을 한다. 생각은 그렇게 다르게 하면서 어떻게 보면 운명을 놓친다는 같은 불행을 맞는다. 그 사실을 떠올리니 남자건 여자건 하나같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에 인간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는 영원히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것 말이다. 다시 말해 진정한 사랑이란 영원할 수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어릴 때 읽은 동화에서는 분명 공주님과 왕자님이 결혼을 하면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그래서 결혼을 하면 사랑을 영원히 지켜갈 수 있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결혼이 영원한 사랑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영화 를 보면서 발견한 결혼의 모순성은 이러한 내 생각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연희(엄정화)와 준영(감우성)은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사랑의 힘을 믿을 만큼 용기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결혼을 하면 곧 그 사랑은 깨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말 사랑한다면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그 사람과 결혼하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연희와 준영은 그들의 사랑을 지키기 위한 선택을 했다. 연희가 준영을 끝까지 보채서 결혼했을 경우, 그들은 얼마 못 가 현실적인 문제로 남들처럼 뻔히 예상되는 파국에 치달았을 것이다. 준영은 연희에게 의사와 결혼하라고 한다. 대신 그들은 연희의 남편 몰래 마련한 옥탑방에서 “소꿉놀이”를 한다. 결혼을 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사랑을 지키고자 하지만 그들도 자주 다투었다. 다만 그 다툼은 일반적인 부부간에 일어나는 것과는 다른 이유로 발생했다. 그들의 위태로운 관계로 인한 것이었다. 연희는 두 사람의 사진을 앨범에 채워나간다. 나는 이 앨범을 통해서 결혼의 이상성과 모순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연희가 앨범을 열심히 만든 이유를 알아 내기 위해서는 극 중 앨범이 의미하는 바를 짚어볼 필요가 있었다. 앨범의 상징적 의미를 생각해보면, 앨범은 연희가 원망하는 이상적인 세계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앨범 속의 “사진”은 모두 행복한 얼굴을 한 연희와 준영의 “이미지”이다. 이는 현재 행복하지 못한 이들의 현실과 대조를 이룬다. 결국 사진은 허상, 허구, 가짜인 것이다. 이러한 허구적 특성은 이들이 맺고 있는 가짜 부부관계와 일맥 상통한다. 연희에게 있어 준영과의 “옥탑방 신혼생활”은 연희가 오랫동안 품었던 결혼에 대한 로망을 간접적으로나마 성취하는 수단이다. 그 생활 속에서 만큼은 자신이 현실에서 끝내 선택하지 못한 길을 가고 싶은 것이다. 준영과의 신혼생활이 이상적일 수 있는 것은 의사와 결혼함으로써 현실적인 문제를 이미 해결하고, 가상의 부부관계라는 장치를 통해서 보통의 부부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원천적으로 방지했기 때문이다. 결국 연희가 앨범을 만든 이유는 옥탑방을 꾸민 이유와 상통하고 이는 곧 준영과 가짜 부부관계를 맺는 이유와 같다. 앨범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결혼상에 대한 연희의 소망이 발현된 결과물이다.

학생칼럼 | 정채은(광고홍보·11) | 2014-09-15 22:09

올해 초,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학업 성적이 좋으면서 토플 점수가 높은 학생들이 많이 지원하여 일반 교환이 아닌 특별 교환으로 CSUF에 교환학생으로 가게 되었다. 지난 1학기에는 전공 수업들과 교환교에 제출할 서류, 비자 준비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지나갔고 드디어 8월이 되어 지금은 미국에서 이 글을 작성할 수 있게 되었다. 주변의 친구들은 대부분 교환학생을 가면 기숙사에 살거나 학교 근처에 아파트를 구하여 지내지만,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는 홈스테이 프로그램을 지원해준다. 그래서 학교와는 거리가 있지만 미국 가정이라는 특별한 문화체험을 하고 있다.미국에 도착하였을 때 홈스테이 아주머니께서 직접 나와, 방은 따로 쓰지만 함께 살게된 일본인 룸메이트를 데리고 버스정류장과 집 주변 지리를 알려주셨다. 학교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집 근처에서 서기 때문에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배차 간격이 60분이다 보니 버스 시간을 확인하는 것은 미국 생활 4주차가 된 나의 일상이 되었다. 얼마 전에는 캘리포니아의 강한 햇빛을 피하려 그늘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버스가 나와 룸메를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바람에 룸메와 학교를 하루 빼먹고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우리학교 교환 학생들 중에서도 홈스테이를 하는 학생이 소수이다 보니, 초반에는 홈스테이를 선택한 것 자체에 대한 회의를 많이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홈스테이 아주머니네 가족들 파티에 초대받아 미국 가정의 홈파티에 참석도 해보고 저녁 시간 마다 서로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하고 감사하다.학교 생활은 이화와 다른 점이 많다. 과목에 따라 시험을 4번 보기도해 항상 2번 시험 보던 나로서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자유롭게 질문하고 많은 지식을 함께 나누는 면은 부러웠다. 그래도 항상 말하는 학생만 말한다는 것은 크게 다르진 않은 듯 하다. (캬ㅑ캬캬캬)처음에는 전공 4개를 수강하다보니, Lecture식 강의를 많이 선택하게 되어 미국인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단 점이 아쉬웠었다. 하지만 앉은 자리 앞뒤의 학생들과 가볍게 한 두 마디로 시작한 대화가 수업자료를 공유하기도 하는 친구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또한 국제 PR 수업은 국제적인 이슈를 다루다보니, 한국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오고 친구들이 진짜냐고 물어봐주어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한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관하여 프로젝트를 기획할 뻔도 하였으나, 한국에는 자원 관련된 심각한 문제가 없어 다른 나라를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었다. 다른 학생들이 중국과 일본에서는 오염 관련 문제를 찾아 프로젝트를 기획하는데 한국은 문제없는(?) 나라가 되어 괜히 뿌듯하기도 했다.지난 주말에는 국제학생 파티가 열려 독일, 인도, 베트남 등의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초반에는 외국인 친구를 못 사귈까봐 조바심을 느끼기도 했는데, 이러한 자리에 가서 열심히 웃고 짧은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페이스북 친구가 되었다. ㅋㅋ아직 여기서 보낸 시간은 짧지만, 물어보고 말을 걸고 하는 것에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홈스테이 아주머니는 저녁시간 마다 “Don't be shy!!"라고 하신다. 한국에서는 그저 소심하고 걱정 많은 사람이고 아직도 걱정도 많고 소심하지만, 내일은 내가 먼저 같이 시간 보내자고 연락한 중국친구랑 점심을 먹는다. 교환 학생으로 왔으니 외국인 친구를 사귀어야만 한다는 스트레스가 있기도 했지만, 이제는 말을 걸기도 하고 농담도 친다. 물론 짧게. ㅋㅋ한국음식이 벌써부터 그립고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보고 싶기도 하지만, 교환 학생 생활이 내 사고방식이나 성격적인 측면에 긍정적인 영향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짧지만 4개월이라는 시간 뒤에 지난 3~4주 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긍정적으로 변화한 나를 기대한다!

학생칼럼 | 노지현(광고홍보·12) | 2014-09-15 21:27

두 달 전, 이화의 ‘신축 기숙사 기공식’이 개최되었다. 앞으로 2년 뒤면 보다 많은 이화인들이 지낼 공간이 생기게 된다. 4년 동안 ‘집 고민’을 빼놓을 수 없었던 나로서는 너무 기쁘고, 새내기 때의 ‘한우리집’은 내게 너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곳이기에 안심도 된다.이화에 있는 4년 동안 참 많은 ‘집’에 살았다. 첫 번째 집은 기숙사 ‘한우리집’이었다. 대부분의 절친한 벗들을 그 곳에서 만났다. 기숙사 내부 특유의 느낌, 서울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야경부터 나를 신데렐라로 만들었던 통금 시간까지 모든 것이 그리운 집이다. 두 번째 집은 ‘친구들과 함께한 집’이었다. 타지생활의 설움을 달래보자며 기숙사에서 만났던 친구들과 집을 구했다. 아파트 비슷한 곳이라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이들은 큰 돈을 내고 산다고 생각했겠지만, 여럿이서 월세를 나눠내고 생활비를 필사적으로 아꼈더니 혼자 사는 것보다 훨씬 부담이 덜했다. 3학년이 되자 새내기 시절부터 함께하던 우리들은 각자의 계획에 따라 집을 옮겼다. 이 때 세 번째 집인 학교 근처 ‘하숙집’으로 옮겨왔다. 방은 좁았지만 챙겨주는 분들이 있어 든든했다. 주방 바로 옆에 자리한 방이라 식사시간 때마다 소란스러웠는데, 방을 옮겨주신다고 하셨지만 고향집에 내려온 듯한 기분이 들어 오히려 고마웠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네 번째 집, ‘혼자 사는 집’에 살기 시작했다. 온전히 혼자만 있는 공간은 처음이라 부푼 마음이었는데 이따금씩 심심하고 외롭기도 하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올라오시면 머무를 수 있는 곳, 고향친구가 오면 묵을 수 있는 곳이 생겼다고 생각하면 금세 즐거워진다. 조금 우스운 일 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집을 옮겨 다니며 짐을 꾸릴 때 마다 괜히 눈물을 훔치곤 했다. 1년밖에 살지 않았는데 짐이 두 배로 늘어나고 그걸 혼자 옮겨야 된다는 데에 대한 부담이 너무 버거웠던 것 같다. 때문에 새내기 때는 집에서 통학하는 친구들을 마냥 부러워했다. 그러던 내가 어느덧 ‘타지생활 대 백과’가 되어있다. 다른 지역에서 온 이화인이라면 살아볼 법한 거의 모든 집에 살아본 것이다. 이제는 누군가 물어본다면 한마디쯤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돌아보면 네 개의 집에 살던 때의 나는 각각 다른 모습이었다. 친구들과 야식을 먹으며 밤새 떠들던 모습, 친구들과 함께 가족들하고만 했었던 대형 마트 쇼핑을 하던 모습, 좁은 방에 들어가기 싫어 일부러 늦게 들어가던 모습도 있다. 그럼에도 공통적인 것이 있다면 기분이 안 좋다가도 귀가하면 마음이 안정될 수 있는 곳. 그날의 모든 그림자가 걷히는 곳. 그런 공간을 찾아 헤매왔던 모습이다. 이런 모습은 내 개인의 모습만은 아닌듯하다. 요즘 ‘셀프 인테리어’ 페이지나 커뮤니티가 활발하게 운영되는데, 곰팡이 가득하던 옥탑방도, 겨우 한 사람이 누울 공간의 방도 페인트칠부터 가구배치의 변화까지 다양한 방법을 거쳐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 이렇게 제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모두 마음의 평화를 위한 공간을 찾아 나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사는 곳은 마냥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때로는 열악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외로움을 주기도 한다. 또 외로움을 주진 않지만 떠나고 싶게 만들 때도 있다. 그래도 그 집들은 각각의 매력이 있고, 그 안에서 더욱 완전한 ‘나’를 만들어 준다. 글을 보고 있는 이화인들이 어디에 있든 그 공간이 따뜻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 나가기를 응원한다.

학생칼럼 | 김서현(광고홍보·11) | 2014-09-01 17: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