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가을이다. 조금씩 선선해지는 날씨와 쓸쓸함을 느끼는 계절에서 어느덧 2023년이 절반도 채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 사실이 믿기지 않는 요즈음이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지난날을 되돌아보곤 한다. 올해는 유독 안타까운 소식들로 가득하다. 신림역 칼부림부터 시작된 연쇄적인 흉기 난동과 예고 글들로 많은 사람들이 공포감을 느꼈으며, 등산로에서 성폭행 살인이 벌어지는 등 몇 달 사이에 순식간에 몰아친 사건들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일들이 가득하다. 수많은 사건·사고 속에서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며 최근에는 흔하게 볼 수 없는
“음악 공부하러 가는 거야?” 오스트리아 교환학생이 되었다고 이야기했을 때 단언컨대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아예 아니라고는 대답할 수 없겠다. 그 옛날부터 흥얼대던 콧노래, 그저 해맑기만 했던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어진 나의 낭만. 하지만, 처음부터 오스트리아를 바라보며 교환학생을 준비했던 것은 아니다.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교환학생 파견 확정 후 매일같이 생각했던 말이다. 토플만 잘 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많은 할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줄은 몰랐다.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합격이 됐다고 해서 파견이
책/지구에서 한아뿐(2019) 수상하다. 남자친구가 여행을 다녀온 뒤로 달라졌다.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달라졌다.스무 살 때부터 11년간 만난 경민은 자유분방한 성격이었다. 한아보다도 자신의 꿈이 더 중요한 그런 남자였다. 그 성격 어디 안간다고, 경민은 유성우를 보기 위해 한아를 두고 캐나다로 떠나버렸다. 서운한 마음을 누르고 그를 기다리던 중, 캐나다에 운석이 떨어졌다는 뉴스를 보게 된다. 그래도 ‘사랑하는’ 경민이었기에 걱정하며 전화도 걸어보고 문자도 보내 봤지만 돌아오는 소식은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민
‘흐르는 강물에 인생을 맡기지 마라.’ 학창 시절 친언니의 책상 앞에 붙어있던 사설의 제목이다. 공부하기 싫을 때면 몇 번이고 고개를 들어 그 칼럼을 다시 읽었다. 그 스크랩의 잔상 때문인지, 나는 내 인생을 흐르는 강물에 맡기지 않으려 발버둥 쳤다.항상 자유를 갈망하던 학생이었다.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묵묵히 책임감에 응답하는 삶을 시시하게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했고, 납득가지 않는 일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아이였다. 다행히 좋아하는 것의 범주가 넓었던 터라, 고등학생 시절 다양한 활동을 하며 가능성을 확장했고
7월3일 오후4시, 인생 첫 교육봉사를 위해 복지관 방과후교실로 향했다. 사범대생이지만 3학기째 학교에 다니며 들은 교직 과목이라고는 고작 2개. 인생을 살아오며 교사라는 직업은 생각조차 해 본 적도 없으며 대학에 들어온 지금도 임용고시를 볼 생각은 꿈에도 없는 나에게 교육봉사란 솔직히 말해 많고 많은 졸업 요건 중 하나일 뿐이었다.매주 4시간씩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두렵고 힘들기도 했지만, 예상외로 금방 적응해 나갔다. 아이들의 이름도 제대로 외우지 못해 “친구야”라고 부르던 날들에서 이름뿐만 아니라 아이들
본교 사회학과를 2005년 졸업하고 2008년 중앙일보에 입사했다. 기자로 일하며 기술의 발전과 그로 인한 산업의 변화를 목도하고 기술이 인간의 삶을, 제도를 바꾼다고 믿게 됐다. 현재 중앙일보의 프리미엄 구독 서비스 The JoongAng Plus 안에서 밀레니얼 양육자를 위한 콘텐츠를 만드는 ‘헬로 페어런츠(hello! Parents)’ 팀장으로 일한다. “(기사에) 쓸 말이 없다면, 네가 질문을 잘못한 거야.”16년째 기자로 사는 동안, 늘 가슴에 새기는 말입니다. 질문의 수준이 답변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얘기죠. 뜬금없이 ‘질
신화학자, 중문학자. 본교에 1984년부터 33년간 재직하고 2017년 은퇴했다. 현재 본교 명예교수이자 영산대 석좌교수로 있다. 국내 최초로 중국신화의 고전 『산해경』을 역주하고 연구하여 학계와 문화계에 동양신화 및 상상력의 붐을 일으켰다. 저서로 『이야기 동양신화』(2004), 『사라진 신들과의 교신을 위하여』(2007), 『동아시아 상상력과 민족서사』(2010) 『산해경과 한국문화』(2019) 등 다수가 있다. 비교문학상(2008), 우호 학술상(2008), 이화학술상(2015) 등을 수상했다. 명색이 평생 책과 함께 살아온
우리의 일상이 음악, 영화, 미술, 웹툰, 방송 등 수많은 콘텐츠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휴대폰이나 태블릿 PC와 같이 휴대와 이용이 간편한 디지털 기기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콘텐츠를 손쉽게 즐길 수 있다. 메타버스로 대표되는 가상공간을 배경으로 한 콘텐츠,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을 활용한 콘텐츠는 이제 영화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콘텐츠 산업의 부가가치가 증가하고 특히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콘텐츠 제작이 용이해짐에 따라 1인 크리에이터에 의한 콘텐츠 창작 역시 급
‘소년이 온다’라는 책을 읽고 나서, 여름 계절 강의를 들으면서 느낀 것이 있다. 개인들은 역사의 흐름 위에 있고, 사회의 패러다임 아래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모르고 있던 사실은 아니지만, 완전히 깨닫지 못한 상태로 살아오고 있었음은 분명하다.중고등학생 때 역사는 나에게 그저 암기해야 할 텍스트일 뿐이었다. 시험 3일 전에 시작해서 미친 듯이 머릿속에 구겨 넣어지고, 시험이 끝나면 휘발되어 버리는 과목이었다. 상황에 대한 작은 이해와 각종 왕과 정부가 시행한 정책, 전쟁 상황 등의 암기만으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역
전시/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2023 시작하며 : 우리는 왜 미술관에 갈까?영국 내셔널갤러리는 세계 대전 시기에도 많은 관람객이 방문했다고 한다. 불안한 현 실 속 사람들을 위안해주는 존재가 바로 ‘미술’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시대에 따라 등장한 미술 작품들을 살펴보면 우리를 위로하는 것들의 변화도 알 수 있다. 올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명화전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그려왔고, 우리를 위로하는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살펴보자.르네상스, 인간 곁으로 온 신 명화전은 시대순으로 전시되는데 르네상
“근데 왜 하필 헝가리야?”교환학생 합격 소식을 주변에 알리면 대략 두 명 중 한 명꼴로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그도 그럴 것이, 헝가리는 교환학생을 꿈꾸는 학생들이 목표를 정할 때 쉬이 떠올리는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미국, 영국, 독일 등의 국가를 선호하며, 실제로 해당 국가들은 뚜렷한 장점을 갖는다. 예컨대 미국과 영국은 영미권 국가이기에 어학연수에 적합하다. 독일은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는 아니지만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혜택이 쏠쏠하다. 하지만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야경이 아름답다는 것 외에는 잘 알려지지 않
두 번의 이대학보가 세상에 나오고서야 처음 인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이대학보 편집부국장 김민아입니다. “이대학보 취재기자 김민아입니다”가 익숙했던 1년이 지나 편집부국장이라는 자리에 익숙해지고 있는 요즘입니다.저의 첫 번째 ‘FROM 편집국’을 쓰기 위해 편집국 칼럼들을 읽었습니다. 시사 이슈에 관한 생각을 담기도, 자기 경험을 쓰기도 하더군요. 어떤 내용으로 첫 인사말을 전할지 고민하며 키보드 위에 손을 얹었습니다. 생각이 복잡할 때는 단순하게 가는 게 정답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에게 전하고 싶은 말’
"서울시가 고립·은둔 청년을 지원합니다.” 요즘 매일 아침 버스에 올라타면 들리는 경쾌한 목소리다. 이 버스에 고립·은둔 청년은 몇이나 탔을까. 비몽사몽인 잠결에도 드는 생각이다.서울시는 정서적·물리적 고립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된 경우를 고립 청년, 외출이 거의 없는 생활이 6개월 이상 지속되고 한 달 이내에 직업·구직 활동이 없는 경우를 은둔 청년으로 규정했다.그들이 말하는 고립·은둔 청년에 해당하는 이는 적어도 그 시간에 출근 버스에 앉아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그 목소리를 듣고, 주변에 있는 고립·은둔 청년을
서울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한예종 영상이론과와 베이징대 중국어언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런던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8년부터 본교에 재직하면서 중국어권 영화 및 동아시아 영화, 중국어권 대중문화와 시각 문화 등에 대해 강의·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적대와 연대: 홍콩영화 (十年, 2015)과 지역 정체성의 (재)구성」(2020), 「놀이로서의 민족주의, 혹은 인정투쟁의 병리학-『아이돌이 된 국가』 읽기」(2022) 등이 있다.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에는 꽤 많이 읽었던 것 같다. 읽는 데
13년차 초등교사. 본교 초등교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초등수학 분야에 관심이 많아 관련 연구를 수행하는 중이다. 현재 이화영재원(초등수학논리영역)에서 8년째 지도교사를 맡고 있으며, 2022 개정 초등수학 검정교과서 집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다. 올해는 본교 초등교육과 강의를 맡아 예비교사를 가르친다.처음 교사가 됐을 때 언젠가 다시 모교에서 후배들을 만날 수 있기를 소망했다. 올해 그 소망이 현실이 됐다. 후배들에게 배움을 나눠줄 수 있어서 그랬을까? 첫 강의가 있던 날, 이화의 교정을 내딛는 발걸음
8월27일 오후9시. 친구들과 학교 앞 와인 바에서 적당한 술기운을 빌려 적당히 진지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나누는 밤이었다. 타인과 함께하는 데에서 큰 행복감을 얻는 친구가, 자신의 고민이라며 ‘홀로 서지 못하는 자신’을 단단하지 못하다고 여기고 자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사회적으로 보이기에 독립적인 사람이라, 그 친구의 고민이 이해되면서도, 함께 할 때의 아름다움을 아는 친구의 모습이 멋있어 보였기에 적잖은 충격을 받고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혼밥’, ‘혼영’ 등, 1인 행위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사회가 되었다. 소위
드라마/완다비전(2021)“비전, 당신은 내 안에 사는 마인드스톤의 조각이야. 당신은 내가 만든 전선, 피와 뼈로 만든 몸이고, 나의 슬픔이고 희망이야. 그리고 나의 온전한 사랑이야.”‘완다 막시모프’는 어벤져스 유니버스 내 일원 중 가장 슬픈 배경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 때 그녀의 곁에 있던 유일한 가족이자, 사랑이었던 ‘비전’마저 떠나보낸 이후 그녀의 삶을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완다비전’에서 보여주고 있다. 1화에서 2화 중반부까지는 시트콤 속 완다와 비전의 신혼 이
기숙사에 떨어졌다. 집을 구해야 한다. 기숙사에서 떨어지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6개월 동안 머물 집을 이 먼 타지에서 어떻게 구한다는 말인가. 막연한 두려움이 나를 덮쳐왔다.어떻게든 집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검색하던 중 ‘WG gesucht’라는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 일부 지역에서 집을 거래하는 사이트로, 주로 셰어하우스(독일어로 ‘WG’이다.) 형태의 매물이 올라오는 곳이었다. 오히려 좋다고, 외국인과 함께 살아볼 기회라고 생각하며 기대에 찼던 것도 잠시. 난관에 봉착했다.
푸를 청(靑), 봄 춘(春).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세상은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이르는 젊은이들을 청춘이라고 부른다. 청춘이라고 일컫는 나이에 저마다 삶의 새싹을 틔워낸다는 뜻으로 만든 말이 아니었을까. 나에겐, 듣기만 해도 마음속에서 핑크빛 꽃가루가 휘날리는 ‘사랑한다’는 말보다 ‘청춘’이라는 말이 더 설렌다.청춘이라는 말을 좋아해서였을까. 중학생이었던 내 마음속에 드라마 ‘청춘시대(2016)’가 들어왔다. 여대생 다섯 명이 셰어하우스에 모여 살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드라마였는데, 딱 한 명의 주인공 없이 다섯 명
영화/업(2009) ‘업’(2009)은 모험을 좋아하던 소년 ‘칼(에드워드 애스너)’과 소녀 ‘엘리(엘리닥터)’가 만나 인생이라는 모험을 시작하는 장면으로 출발한다. ‘칼’은 ‘엘리’와 어린 시절부터 함께 파라다이스 폭포에 가기로 했던 약속을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 흘려보내며 꿈을 미루고 미루다 이루지 못한 채 ‘엘리’를 먼저 하늘로 보내게 된다. 혼자 남겨진 ‘칼’은 ‘엘리’와의 과거에 스스로를 가둔 채 살아가지만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의 평생이 담긴 집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칼’은 ‘엘리’와도 같은 집을 두고 떠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