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고립·은둔 청년을 지원합니다.” 요즘 매일 아침 버스에 올라타면 들리는 경쾌한 목소리다. 이 버스에 고립·은둔 청년은 몇이나 탔을까. 비몽사몽인 잠결에도 드는 생각이다.서울시는 정서적·물리적 고립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된 경우를 고립 청년, 외출이 거의 없는 생활이 6개월 이상 지속되고 한 달 이내에 직업·구직 활동이 없는 경우를 은둔 청년으로 규정했다.그들이 말하는 고립·은둔 청년에 해당하는 이는 적어도 그 시간에 출근 버스에 앉아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그 목소리를 듣고, 주변에 있는 고립·은둔 청년을
서울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한예종 영상이론과와 베이징대 중국어언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런던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8년부터 본교에 재직하면서 중국어권 영화 및 동아시아 영화, 중국어권 대중문화와 시각 문화 등에 대해 강의·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적대와 연대: 홍콩영화 (十年, 2015)과 지역 정체성의 (재)구성」(2020), 「놀이로서의 민족주의, 혹은 인정투쟁의 병리학-『아이돌이 된 국가』 읽기」(2022) 등이 있다.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에는 꽤 많이 읽었던 것 같다. 읽는 데
13년차 초등교사. 본교 초등교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초등수학 분야에 관심이 많아 관련 연구를 수행하는 중이다. 현재 이화영재원(초등수학논리영역)에서 8년째 지도교사를 맡고 있으며, 2022 개정 초등수학 검정교과서 집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다. 올해는 본교 초등교육과 강의를 맡아 예비교사를 가르친다.처음 교사가 됐을 때 언젠가 다시 모교에서 후배들을 만날 수 있기를 소망했다. 올해 그 소망이 현실이 됐다. 후배들에게 배움을 나눠줄 수 있어서 그랬을까? 첫 강의가 있던 날, 이화의 교정을 내딛는 발걸음
푸를 청(靑), 봄 춘(春).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세상은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이르는 젊은이들을 청춘이라고 부른다. 청춘이라고 일컫는 나이에 저마다 삶의 새싹을 틔워낸다는 뜻으로 만든 말이 아니었을까. 나에겐, 듣기만 해도 마음속에서 핑크빛 꽃가루가 휘날리는 ‘사랑한다’는 말보다 ‘청춘’이라는 말이 더 설렌다.청춘이라는 말을 좋아해서였을까. 중학생이었던 내 마음속에 드라마 ‘청춘시대(2016)’가 들어왔다. 여대생 다섯 명이 셰어하우스에 모여 살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드라마였는데, 딱 한 명의 주인공 없이 다섯 명
기숙사에 떨어졌다. 집을 구해야 한다. 기숙사에서 떨어지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6개월 동안 머물 집을 이 먼 타지에서 어떻게 구한다는 말인가. 막연한 두려움이 나를 덮쳐왔다.어떻게든 집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검색하던 중 ‘WG gesucht’라는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 일부 지역에서 집을 거래하는 사이트로, 주로 셰어하우스(독일어로 ‘WG’이다.) 형태의 매물이 올라오는 곳이었다. 오히려 좋다고, 외국인과 함께 살아볼 기회라고 생각하며 기대에 찼던 것도 잠시. 난관에 봉착했다.
8월27일 오후9시. 친구들과 학교 앞 와인 바에서 적당한 술기운을 빌려 적당히 진지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나누는 밤이었다. 타인과 함께하는 데에서 큰 행복감을 얻는 친구가, 자신의 고민이라며 ‘홀로 서지 못하는 자신’을 단단하지 못하다고 여기고 자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사회적으로 보이기에 독립적인 사람이라, 그 친구의 고민이 이해되면서도, 함께 할 때의 아름다움을 아는 친구의 모습이 멋있어 보였기에 적잖은 충격을 받고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혼밥’, ‘혼영’ 등, 1인 행위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사회가 되었다. 소위
드라마/완다비전(2021)“비전, 당신은 내 안에 사는 마인드스톤의 조각이야. 당신은 내가 만든 전선, 피와 뼈로 만든 몸이고, 나의 슬픔이고 희망이야. 그리고 나의 온전한 사랑이야.”‘완다 막시모프’는 어벤져스 유니버스 내 일원 중 가장 슬픈 배경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 때 그녀의 곁에 있던 유일한 가족이자, 사랑이었던 ‘비전’마저 떠나보낸 이후 그녀의 삶을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완다비전’에서 보여주고 있다. 1화에서 2화 중반부까지는 시트콤 속 완다와 비전의 신혼 이
영화/업(2009) ‘업’(2009)은 모험을 좋아하던 소년 ‘칼(에드워드 애스너)’과 소녀 ‘엘리(엘리닥터)’가 만나 인생이라는 모험을 시작하는 장면으로 출발한다. ‘칼’은 ‘엘리’와 어린 시절부터 함께 파라다이스 폭포에 가기로 했던 약속을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 흘려보내며 꿈을 미루고 미루다 이루지 못한 채 ‘엘리’를 먼저 하늘로 보내게 된다. 혼자 남겨진 ‘칼’은 ‘엘리’와의 과거에 스스로를 가둔 채 살아가지만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의 평생이 담긴 집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칼’은 ‘엘리’와도 같은 집을 두고 떠날
더위, 습기, 그리고 불쾌지수. 올해 여름은 이 세 개의 단어로만 설명해도 부족함이 없다. 우리가 지나온 그 어떤 여름보다도 덥고, 습 하고, 불쾌했던 여름에 이보다 더 심해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여름은 앞으로의 미래를 보여주는 예고편이다. 여기까지 읽었으면 기후 위기를 제시하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기후 위기는 물론이고, 현 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연쇄적인 칼부림 사건과 같은 혼란스러운 사회도 모두 올해 여름에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났다. 이런 현상은 과연 정말 갑작스럽게 일어났을까? 가속화된 기후
아주 예전 1990년대 초 유학 시절에 다른 한국 유학생들에게서 자주 듣던 질문이 있다. “이 대학교와 도시에서는 장애인들이 많이 눈에 띄는데 한국에 있을 때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이 도시가 장애인이 유난히 많은 곳이냐”는 것이다. 물론 그건 아니었다. 그 당시 서울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어느 곳도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나와서 다니는 것이 매우 어려웠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에 또는 시설에, 특수학교 안에만 주로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본교 특수교육과 학부 재학 시절인 1985년경에 장애학생과 함께 어딘가로 이동하려고 택시를 잡으
“다시 말해 봐. 그거 말 되는데?”공강 시간에 밥을 먹는데 친구가 소속 학과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놨다. 누구나 무엇이든 조금씩 불만이 있기 마련이고, 친한 친구사이니 지나가듯 하소연한 걸 거다. 하지만 그냥 친구의 푸념 정도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말 되는 얘기였다. 그러니까 기삿거리를 찾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날 친구에게 무슨 일인지 꼬치꼬치 캐묻고 이걸 주제로 기사 기획안을 쓰기 시작했다.어딜가나 늘 ‘말 되는’ 것들을 찾아다니는 나를 보며 나름 기자가 됐다고 느끼지만 그렇다고 기사를 쓰는 게 쉬워진 건 아니다. 학보에
4.3 만점에 2.1. 숫자의 구성에서 어렴풋이 티가 났겠지만, (누군가의) 학점이다. 학우들의 교환학생 경험을 공유하고, 각자의 배움과 느낌을 자유로이 표현하고자 마련된 본 코너의 성격을 감안한다면 다소 당황스러운 도입일 것 같다. 졸업 직전 헝가리행을 택했다더니 갑자기 성적 공개? (심지어 당당히 꺼내 보이는 저의가 도저히 읽히지 않는 미천한 점수다.)2018년도부터 이화에 발을 들여 졸업을 한 학기 앞둔 나의 1학년 첫 학기 성적은 4.3 만점에 2.1이었다. 맞다. 너무 재밌는 학기를 보낸 나머지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러울 학
안녕하세요, 이대학보 독자 여러분.기분좋은 설렘과 긴장을 안고 편집국장으로서 첫 인사를 올립니다. 유난히도 뜨겁던 여름, 독자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지내셨나요?학보의 첫 호는 학기 시작을 알리는 졸업과 개강을 주제로 합니다. 특히 이번 호에는 약 2년 반의 재건축 공사를 마친 후 학생 곁으로 돌아온 학관을 함께 담았습니다. 학관은 ‘마법의 화장실’, ‘미로’라 불리는 독특한 건물 구조를 자랑했습니다. 이제 많은 학생들의 추억에 자리하던 그 모습 대신 반짝이는 학관이 우리를 새롭게 맞이합니다. 이번 학보는 옛 기억과 변화를 기록하며,
“제가 학보사 기자가 된다면 학보에 24/7 매진하겠습니다!”지난 2022년, 이대학보 108기 면접에서 외쳤던 말이다. 차분하게 이어갔어야 할 면접에서 긴장을 주체하지 못하고 내뱉은 말이었다. 면접이 끝나고 낭패였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긴장하지 않으려고 수없이 연습했던 순간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 같았다. 퇴임을 앞둔 기자가 된 미래의 내가 보면 코웃음을 칠 일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무 살 새내기만 할 수 있는 대사이지 않았을까. 패기 하나만으로 기자 일에 정진하겠다고 한 배짱이 왠지 모르게 눈에 띄었을 것이다.돌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이대학보입니다. 적당히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던 5월도 끝나가고, 캠퍼스의 녹음은 나날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제게는 꼭 영원할 것 같았던 이번 학기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갑니다. 팀 프로젝트며 과제에 시험 준비로 많이 바쁘시지요. 모두 각자의 마무리를 위해 애쓰는 요즘입니다. 이대학보도 1664호를 끝으로 이번 학기 발행을 마칩니다. 저 역시 퇴임을 목전에 두고 비로소 정신없이 달려온 길을 돌아봅니다. 마지막 편집국 칼럼에서는 독자 여러분께, 또 수고한 이대학보 구성원들에게 조금은 개인적인 감회를 나눠볼까 합
2023년 1학기, 대학 캠퍼스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활기로 가득 차 있다. 강의실에서 학생들이 웃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배움을 위해 눈을 반짝이며 질문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수업하는 즐거움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청년들의 취업과 독립 문제를 다룬 소설을 함께 읽으면서 오늘날 우리가 감내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현실의 고달픔을 누군가에게 표현하지도 못하고 홀로 인내해야 했던 학생들이 자신의 마음을 내보일 때면, 문학 속 현실을 어떻게 재맥락화하고, 학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겨야 할지 다시
영화/빅피쉬(2003)“때로는 초라한 진실보다 환상적인 거짓이 더 나을 수도 있단다. 더구나 그것이 사랑에 의한 것이라면.”윌리엄은 아버지 에드워드와 불편한 사이다. 아버지는 윌리엄이 어렸을 때부터 수십 년 동안 자신의 젊었던 시절에 대한 비현실적인 영웅담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자신의 결혼반지를 집어삼킨 커다란 물고기를 하필 윌이 태어나던 날 잡게 된 이야기부터, 마을에 살던 거인 이야기, 유령마을에서 만난 신발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드넓은 수선화밭을 만들어 청혼한 이야기, 한국전쟁에 참전하
‘왜 살아야 하는가’삶을 왜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며 물음표가 머릿속을 가득 채운 시기가 있었다. 수능이 끝나자 매일 하던 공부를 더는 할 필요가 없었고 무얼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동안은 모든 시간을 공부에 쏟기 위해 노력했고 그게 맞다고 생각했기에 갑자기 주어진 너무 많은 자유와 시간은 나를 방황하게 했다. 하나에 집중하는 게 아닌, 공부, 동아리, 인간관계, 진로에 대한 고민, 이 모든 것들을 해야 하는 대학 생활이 버거웠고, 특히나 뭘 좋아하는지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좋아하는
2019년 9월30일, 본지는 이화・포스코관에 자동문이 설치됐지만 여전히 장애학생의 이동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캠퍼스 현실에 대해 지적했다. 2022년 11월28일에는 본교 캠퍼스와 독일 마르크부르크의 필립스 대학을 비교하며 시각장애인 유도 블록 부족 등 여전히 존재하는 장벽에 대해 비판했다. 지난 4월20일은 43회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었다. 이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은 대통령실이 있는 4호선 삼각지역에서 출발, ‘장애인 권리 예산 확보를 위한 지하철 타기 선전전’을 진행했다. 전장연은 시민의 인식에 대한 변화를 직접적으
북유럽의 정서를 보여주는 유명한 사진이 있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적어도 5미터는 되는 거리를 두고 서 있는 모습. 노르웨이에 산 지 1년이 되어가는 나에게 누가 이 사진이 진짜냐고 묻는다면 아마 맞다고 대답할 것이다.오슬로에서 대중교통을 타면 버스나 지하철 안의 좌석이 꽉 차지 않았더라도 사람들이 자리에 앉지 않고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차가 만원인 경우에만 더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도록 자리를 채워서 앉고 대부분 모르는 사람의 바로 옆자리에는 잘 앉지 않는다. 서로 사회적 거리를 두는 것이다.노르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