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313건)

요즘 나는 종종 과거에 상상도 못한 분야에 관심과 흥미를 느끼고 있는 현재의 나를 과거의 내 자신과 비교해보며 신기해하곤 한다. 어릴 적 나는 내 자신이 의심할 여지없이 이공계열에 진학하고 관련 직업을 가질 것이라 굳게 믿었다. 또한 인문이나 사회 계열은 지루하며 내가 그쪽으로 관심을 갖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단언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 현재의 나는 그 당시의 예상과 매우 달라졌다. 나는 생물학, 광고학, 언론학, 범죄학에 큰 흥미를 보이다가 요즘 교직 수업을 들으며 교육학에도 관심이 생겼다. 이렇게 다방면을 거쳐 오면서 드는 생각은 ‘저건 나와 전혀 맞지 않을 거야’라고 지금의 나를 기준으로 함부로 미래를 속단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 분야에 관심과 흥미를 쏟고 있지만 미래의 나는 어떤 흥미를 갖게 될지 알 수 없다. 시간이 지난 미래엔 흥미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고용정보원에서 대학 졸업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전공을 다시 선택하고 싶은지 묻는 질문에 절반에 가까운 약 49.0%가 그렇다고 했고 그 이유로 ‘관심과 흥미의 변화’를 꼽았다 또 경험을 통해서 숨겨진 자신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다. 가끔 한 분야만을 바라보고 그 분야의 전문가만을 꿈꾸던 사람 중에서 자신에게 찾아온 변화를 낯설어 하며 그 변화를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낯설어하며 두려워하기 보다는 그 변화를 당당히 인정하고 바뀐 내 자신을 북돋아줘야 한다. 우리는 ‘직접 어떤지 겪어보자’ 하는 도전정신과 내 숨은 면모가 발휘될 수도 있다는 자신의 잠재성을 믿어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여론광장 | 원동심(사교·14) | 2015-05-04 13:36

내가 대학에 온 후 가장 어려워하는 일 중 하나는 하루하루 끼니를 때우는 것이다. 제대로 된 밥을 먹기엔 돈도 없고 시간도 없어 컵라면으로 대충 배를 채우기 일쑤다. 항상 먹는 똑같은 음식에 질려 하루 종일 굶다 힘이 빠지기 시작할 때서야 뭔가를 먹기도 한다. 내 친구들의 경우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서로의 형편없는 식생활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상대편 안부를 물을 적 가장 먼저 입에서 나오는 말은 ‘밥은 잘 먹고 다니니?’가 되어 버렸다. 그야말로 살기 위해 먹고 있던 나에게 제대로 된 음식에 대한 욕구를 돌려준 건 바로 ‘쿡방(요리 방송)’이었다. ‘삼시세끼’, ‘냉장고를 부탁해’ 등 요리 과정을 중심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에서 음식은 툭 튀어나온 선물이 아니다. 그것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에서 볼 수 있듯 자연과 인간을 이어 주는 매개체이며, 때로는 먹는 사람의 습관과 감정을 드러내는 창과도 같다. 좋은 음식은 행복을 가져다 줄 뿐 아니라 자신감을 회복시켜 주는데, 우리가 먹는 것이 어느 정도 우리 자신을 정의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나에게 말해준다면, 나는 당신이 어떤 인간인지 말해주겠다.’ 19세기 미식가인 장 앙텔므 브리야 사바랑(Jean Anthelme Brillat-Savarin)의 이 구절은 여전히 유효하다. 자신이 현재 어떤 상황에 있는지, 또 자신을 얼마나 보살피고 있는지 그 여부가 한 끼 식사에 고스란히 보이지 않는가. 그러므로 제대로 된 음식을 먹으려 노력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큰 의미를 지니게 된다. 학기가 시작된 지도 한 달이 지난 지금, 모두가 하루를 즐겁게 해 줄 점심을 먹기 바란다.

여론광장 | 김선우(불문·14) | 2015-04-06 19:43

20대를 부르는 말 중에 삼포세대라는 말이 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는 말이다. 연애와 결혼을 포기했다고 하는데, 어찌 된 것이 내 주변에는 온통 커플뿐인 것만 같다. SNS를 켜 봐도, 뉴스 기사를 봐도 친구들도, 연예인들도 연애를 포기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활동 범위가 넓어지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휴대폰 전화번호부에는 몇 백 명의 사람들이 저장되어 있지만, 그 중 연락하는 사람의 수는 매우 한정적이다. 우리는 과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지만 훨씬 더 외로워졌다. 눈앞의 친구보다는 핸드폰 안의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점점 상대에게 ‘충실해지는’ 방법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핸드폰 안의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수록 우리는 더욱 더 외로워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연애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지만 끊임없이 연애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일지 모른다. 다른 관계에서는 충족될 수 없었던 외로움이 충족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시작된 연애는 결코 좋은 결말을 가져올 수 없다. 요즘 청년 세대의 연애가 과소비적 경향을 띠고, SNS에 보여주기식 연애가 만연하는 이유이다. 상대에 대한 충실함 없이 외로워서 시작된 관계는 상대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기 마련이며, 서로에게 생채기를 남기기 마련이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결코 한 사람과의 사랑이나 연애로서 충족될 수 없다. 봄이 온다, 벚꽃이 핀다.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스마트폰을 보며 외로움을 일시적으로 달래기보다는 홀로 이화동산을 걸으며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본인에게 충실하고 자신의 마음을 아는 사람만이 상대에게 충실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론광장 | 유가환(사회·13) | 2015-03-30 19:10

고3 수험생 시절, 대학은 로망 그 자체였다. 대학에 입학하면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많을 것이라 기대하며 견뎌냈다. 하지만 이화에 온지 3년이 된 지금, 나는 고등학교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바로 ‘친구’ 때문이다. 20살이 된 후 고등학교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어디에든 새로운 사람들로 넘쳐났다. 처음에는 마냥 신기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들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졌다. 누군가와 진정한 ‘친구’가 된다는 것이 처음으로 어렵게 느껴졌다. 왜 일까. 더 자유로운 환경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났음에도 3년이 지난 지금, 어째서 여전히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일까. ‘요령’이 생겼기 때문이다. 감정을 소비하지 않는 ‘요령’.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그와 나 사이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면 쉽게 그 인연을 끊어 버린다. “나랑 안 맞아”라는 말을 덧붙이며. 말다툼을 하거나 몸싸움을 하며 친구가 돼 가는 과정을 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주변에는 대부분 형식적인 관계만 남았다. 새 학기마다 가장 많이 하고, 듣는 말이 “예뻐졌다”, “살 빠졌어?”, “나중에 밥 한 번 먹자”라는 의미 없는 말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등학교 때는 지긋지긋했던 친구와의 말다툼이 이제는 그립다. 울고불고 싸워도 며칠 후면 언제 그랬냐는 듯 꼭 붙어 다니던 친구들이 그립다. 내가 조금 피해보더라도 친구가 가장 소중했던, 항상 진심으로 서로를 대했던 그 때가 그립다. 최근 새로운 동아리에 들어갔다. 1, 2학년 시절 저질렀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다. 혹 나와 같은 실수를 한 사람이 있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다. 새로운 만남과 인연을 쌓아가는 학기가 되길 기대하자.

여론광장 | 김은총(기독·13) | 2015-03-23 1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