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소 보러 갈래?” 오스트리아에 와서 처음 사귄 외국인 친구가 한 제안이다. ‘소’를 보러 가자니, 내가 아무리 유럽의 시골 마을에 와 있다고 하지만 여기에선 소를 보고 노는 것이 흔한 것이었던가? 고층 건물이 즐비한 서울에 지쳤던 사람으로서 놓치기 싫은 제안이었다.행사가 열리는 마을에 도착했다. 기차 문이 열리고 보이는 광경은 활기가 가득했다.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음악 소리, 오스트리아 전통 음식을 파는 천막들,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노부부, 친구들끼리 온 사람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즐기고
9월28일 오전6시12분, 졸린 눈을 비비며 명절 귀성길 고속버스에서 내렸다. 줄을 서니 4살 아이가 보인다. 시선을 내리니 보이는 모녀의 커플 운동화. 모녀가 사랑스럽기 때문인지, 오랜만에 가족 얼굴이 보고 싶어서인지 카메라를 들었다. 집에 오니 뉴스에서 ’취업 부담에 고향 못 내려가는 20대’에 대해 말하고 있다. “표도 구하기 힘들고 내려가면 가족 얼굴 보기도 힘들어서….”라고 말하는 축 처진 어깨. 밀린 숙제 해나가듯 ‘처리’하기 바쁜 인생의 관문들이 우리를 힘들게 만들었을까. 10명 중 3명이 혼자 사는 대한민국, 그 많은
편집자주|그때 학보가 다룬 그 문제, 지금은 해결됐을까? 본지가 취재한 학내 이슈를 돌아보는 코너 ‘새로고침’을 두 달 간격으로 연재합니다. 본교 구석구석, 지나치기 쉬운 순간들을 사진부의 시선으로 포착합니다.본지 1639호(2022년 5월9일자)에 따르면, 본교 청소 노동자 휴게실의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청소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현장에 투입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이후 본지 1646호(2022년 9월19일자)에서는 학내 노동자 시위 이후 공공운수노동조합 서울지부 이화여대분회(공공운수노조)와 하청업체가 임
영화/어바웃 타임(2013)우리는 때때로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다. 뭐라도 먹고 나가라며 챙겨 주시는 부모님께 귀찮다며 신경질 낸 기억부터 친구와 의견 충돌로 싸우며 심한 말을 했던 기억, 누군가와의 이별 후에 그리워한 기억, 길 가다 만난 이상형을 붙잡지 못한 기억까지. 하지만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고, 늘 속절없이 도망가 버린다. 영화 ‘어바웃 타임(2013)’은 현실에서 벗어나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았다.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인생과, 일상과 시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이다.영화
지난 학기의 끝을 떠올린다. 어쩌다 이른 종강을 맞았으나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게는 후편집이라는 역할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후편집은 내용 구성을 마친 영상이 보기 좋도록 어울리는 옷을 입히는 작업이다. 어떤 옷이 어울릴 지 충분히 고민해야 하지만 전날까지 세 전공을 오가며 다변수함수와 메타버스를 논하던 내게 그런 창의력은 솟지 않았다. 아직 종강까지 달리느라 바쁜 동료 기자를 붙잡고 어떤 자막, 효과음, 색상, 모션이 좋은지 질문을 던지는 스스로가 부담스러웠다. 종강을 맞아 오랜만에 찾은 본가에서 편히 쉬기는 커녕 새벽 내내 뜨거
“금요일에 파티 갈 거지? 그때 봐.” “너 안 와? 언제쯤 도착해? 만나서 같이 가자.”개강을 맞이한 지 약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은 현시점, 학교에서 열린 행사는 족히 일곱 개가 넘었다. 신입생 환영 파티, 고향 소개하기 파티, 학생문화관 슬립오퍼 파티 등등. 각종 행사가 줄지어 이뤄졌다. 어제 뭐했어? 파 티 갔어. 오늘은 뭐해? 파티 가려고. 오, 내일 은? (장보고) 파티갈 것 같아. 물론 학기 초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한국과는 달리 파티에 ‘진심’인 학생들을 보며 경외감을 느꼈다. 파티 좋지. 하지만 파티는 주말의
어김없이 가을이다. 조금씩 선선해지는 날씨와 쓸쓸함을 느끼는 계절에서 어느덧 2023년이 절반도 채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 사실이 믿기지 않는 요즈음이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지난날을 되돌아보곤 한다. 올해는 유독 안타까운 소식들로 가득하다. 신림역 칼부림부터 시작된 연쇄적인 흉기 난동과 예고 글들로 많은 사람들이 공포감을 느꼈으며, 등산로에서 성폭행 살인이 벌어지는 등 몇 달 사이에 순식간에 몰아친 사건들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일들이 가득하다. 수많은 사건·사고 속에서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며 최근에는 흔하게 볼 수 없는
이대학보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지난 8월 여러분께 첫인사를 전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에 접어 들었습니다. 이대학보는 네 번의 발행을 마쳤고, 이번 호를 제외하고 상반기 한 번의 발행만을 앞두고 있습니다.그동안 이대학보는 취업 정보를 원하는 독자 수요를 반영하고자 커리어 코너 ‘취업 A to Z’를 신설했고, 뉴스레터 서비스를 통해 받은 독자 여러분의 피드백도 꼼꼼히 읽었습니다. 직접 독자님들께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창구가 마땅치 않아 보내주신 모든 이야기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최근
지난 2020년 7월 헌법재판소(헌재)는 여자대학교들에 설치된 로스쿨과 약대가 “헌법 상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당시 약대 편입학을 준비하고 있던 한 학생이 여대들에 배정된 보건·의료계열 정원이 “직업 선택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에 대해, 헌재가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여대들에 설치된 로스쿨이나 의대, 약대를 둘러싼 논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2009년에도 세 명의 남성이 이화여대 로스쿨에 대해 남성 역차별을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함으로써 세간의 이목을
“음악 공부하러 가는 거야?” 오스트리아 교환학생이 되었다고 이야기했을 때 단언컨대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아예 아니라고는 대답할 수 없겠다. 그 옛날부터 흥얼대던 콧노래, 그저 해맑기만 했던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어진 나의 낭만. 하지만, 처음부터 오스트리아를 바라보며 교환학생을 준비했던 것은 아니다.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교환학생 파견 확정 후 매일같이 생각했던 말이다. 토플만 잘 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많은 할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줄은 몰랐다.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합격이 됐다고 해서 파견이
책/지구에서 한아뿐(2019) 수상하다. 남자친구가 여행을 다녀온 뒤로 달라졌다.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달라졌다.스무 살 때부터 11년간 만난 경민은 자유분방한 성격이었다. 한아보다도 자신의 꿈이 더 중요한 그런 남자였다. 그 성격 어디 안간다고, 경민은 유성우를 보기 위해 한아를 두고 캐나다로 떠나버렸다. 서운한 마음을 누르고 그를 기다리던 중, 캐나다에 운석이 떨어졌다는 뉴스를 보게 된다. 그래도 ‘사랑하는’ 경민이었기에 걱정하며 전화도 걸어보고 문자도 보내 봤지만 돌아오는 소식은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민
‘흐르는 강물에 인생을 맡기지 마라.’ 학창 시절 친언니의 책상 앞에 붙어있던 사설의 제목이다. 공부하기 싫을 때면 몇 번이고 고개를 들어 그 칼럼을 다시 읽었다. 그 스크랩의 잔상 때문인지, 나는 내 인생을 흐르는 강물에 맡기지 않으려 발버둥 쳤다.항상 자유를 갈망하던 학생이었다.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묵묵히 책임감에 응답하는 삶을 시시하게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했고, 납득가지 않는 일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아이였다. 다행히 좋아하는 것의 범주가 넓었던 터라, 고등학생 시절 다양한 활동을 하며 가능성을 확장했고
7월3일 오후4시, 인생 첫 교육봉사를 위해 복지관 방과후교실로 향했다. 사범대생이지만 3학기째 학교에 다니며 들은 교직 과목이라고는 고작 2개. 인생을 살아오며 교사라는 직업은 생각조차 해 본 적도 없으며 대학에 들어온 지금도 임용고시를 볼 생각은 꿈에도 없는 나에게 교육봉사란 솔직히 말해 많고 많은 졸업 요건 중 하나일 뿐이었다.매주 4시간씩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두렵고 힘들기도 했지만, 예상외로 금방 적응해 나갔다. 아이들의 이름도 제대로 외우지 못해 “친구야”라고 부르던 날들에서 이름뿐만 아니라 아이들
본교 사회학과를 2005년 졸업하고 2008년 중앙일보에 입사했다. 기자로 일하며 기술의 발전과 그로 인한 산업의 변화를 목도하고 기술이 인간의 삶을, 제도를 바꾼다고 믿게 됐다. 현재 중앙일보의 프리미엄 구독 서비스 The JoongAng Plus 안에서 밀레니얼 양육자를 위한 콘텐츠를 만드는 ‘헬로 페어런츠(hello! Parents)’ 팀장으로 일한다. “(기사에) 쓸 말이 없다면, 네가 질문을 잘못한 거야.”16년째 기자로 사는 동안, 늘 가슴에 새기는 말입니다. 질문의 수준이 답변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얘기죠. 뜬금없이 ‘질
신화학자, 중문학자. 본교에 1984년부터 33년간 재직하고 2017년 은퇴했다. 현재 본교 명예교수이자 영산대 석좌교수로 있다. 국내 최초로 중국신화의 고전 『산해경』을 역주하고 연구하여 학계와 문화계에 동양신화 및 상상력의 붐을 일으켰다. 저서로 『이야기 동양신화』(2004), 『사라진 신들과의 교신을 위하여』(2007), 『동아시아 상상력과 민족서사』(2010) 『산해경과 한국문화』(2019) 등 다수가 있다. 비교문학상(2008), 우호 학술상(2008), 이화학술상(2015) 등을 수상했다. 명색이 평생 책과 함께 살아온
전시/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2023 시작하며 : 우리는 왜 미술관에 갈까?영국 내셔널갤러리는 세계 대전 시기에도 많은 관람객이 방문했다고 한다. 불안한 현 실 속 사람들을 위안해주는 존재가 바로 ‘미술’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시대에 따라 등장한 미술 작품들을 살펴보면 우리를 위로하는 것들의 변화도 알 수 있다. 올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명화전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그려왔고, 우리를 위로하는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살펴보자.르네상스, 인간 곁으로 온 신 명화전은 시대순으로 전시되는데 르네상
우리의 일상이 음악, 영화, 미술, 웹툰, 방송 등 수많은 콘텐츠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휴대폰이나 태블릿 PC와 같이 휴대와 이용이 간편한 디지털 기기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콘텐츠를 손쉽게 즐길 수 있다. 메타버스로 대표되는 가상공간을 배경으로 한 콘텐츠,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을 활용한 콘텐츠는 이제 영화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콘텐츠 산업의 부가가치가 증가하고 특히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콘텐츠 제작이 용이해짐에 따라 1인 크리에이터에 의한 콘텐츠 창작 역시 급
‘소년이 온다’라는 책을 읽고 나서, 여름 계절 강의를 들으면서 느낀 것이 있다. 개인들은 역사의 흐름 위에 있고, 사회의 패러다임 아래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모르고 있던 사실은 아니지만, 완전히 깨닫지 못한 상태로 살아오고 있었음은 분명하다.중고등학생 때 역사는 나에게 그저 암기해야 할 텍스트일 뿐이었다. 시험 3일 전에 시작해서 미친 듯이 머릿속에 구겨 넣어지고, 시험이 끝나면 휘발되어 버리는 과목이었다. 상황에 대한 작은 이해와 각종 왕과 정부가 시행한 정책, 전쟁 상황 등의 암기만으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역
“근데 왜 하필 헝가리야?”교환학생 합격 소식을 주변에 알리면 대략 두 명 중 한 명꼴로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그도 그럴 것이, 헝가리는 교환학생을 꿈꾸는 학생들이 목표를 정할 때 쉬이 떠올리는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미국, 영국, 독일 등의 국가를 선호하며, 실제로 해당 국가들은 뚜렷한 장점을 갖는다. 예컨대 미국과 영국은 영미권 국가이기에 어학연수에 적합하다. 독일은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는 아니지만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혜택이 쏠쏠하다. 하지만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야경이 아름답다는 것 외에는 잘 알려지지 않
두 번의 이대학보가 세상에 나오고서야 처음 인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이대학보 편집부국장 김민아입니다. “이대학보 취재기자 김민아입니다”가 익숙했던 1년이 지나 편집부국장이라는 자리에 익숙해지고 있는 요즘입니다.저의 첫 번째 ‘FROM 편집국’을 쓰기 위해 편집국 칼럼들을 읽었습니다. 시사 이슈에 관한 생각을 담기도, 자기 경험을 쓰기도 하더군요. 어떤 내용으로 첫 인사말을 전할지 고민하며 키보드 위에 손을 얹었습니다. 생각이 복잡할 때는 단순하게 가는 게 정답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에게 전하고 싶은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