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처음 탈 때 가장 어려운 건 중심 잡기다. 균형을 잡지 못하고 넘어져 버리기 쉽다. 대학에 합격하고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자전거를 처음 탔던 날이 떠올랐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는데 아빠가 걱정하지 말고 앞만 보라며 자전거 안장을 잡아줬다. 아빠의 말을 믿고 힘차게 발을 굴렀다. 어느샌가 아빠는 없고 나 혼자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그렇게 자전거를 배웠다. 학교 기숙사에 입사하던 날은 아빠가 몰래 안장을 놓았던 순간처럼 준비되지 않은 채로 훌쩍 떠나버린 느낌이었다.홀로서기를 시작한 뒤 다른 사람들보다 뒤처지지 않
3월2일 오후5시. 인생 첫 ‘통학러‘가 된 나는 개강 후 첫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발목을 다쳤다. 깁스만은 피하고 싶었지만 결국 붕대를 칭칭 감은 채 병원에서 나왔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50분. 그중에서 걸어야 하는 시간 15분, 지하철 20분, 버스로 환승해 또 15분. 물론 택시를 타고 가면 편하겠지만 가난한 대학생에게 택시비는 사치다. 지도 앱을 켜고 최소 도보 경로를 한참 찾아 헤맸다.다음날 만반의 대비를 한 채 통학길에 나섰다. 깁스를 한 채 역까지 힘들게 걸어가 탄 지하철에 나를 위한 자리는 없었다. 한 칸에 6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3주간의 휴간을 마치고 돌아온 이대학보입니다. 이번 학기 하반기 발행이 시작됐습니다. 편집국 칼럼으로 독자 여러분께 인사드릴 수 있는 기회도 한 번이 남았네요.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간 것 같아 아쉽습니다.이대학보 1660호의 메인 콘텐츠는 해외취재 기획입니다. 기획의 주제는 청년 주거였습니다. 운 좋게 5학기째 기숙사에서 살고 있는 저지만 졸업이 하루하루 다가오니 독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왕이면 학교 근처에서 괜찮은 집을 구하고 싶었지만 이것저것 알아볼수록 망설여졌습니다. 전세는 목돈을 구
언젠가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들이 언젠가 나를 떠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 언제가 당장 지금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막연한 생각들. 내 옆에 당연하게 존재하는 누군가가 한순간에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인간의 생이란 참 기묘해서 그렇게 쉽게 끊기지 않는 것 같다가도 이렇게 허망하나 싶을 정도로 한순간에 끝이 난다.어느 날은 문득 버스를 타고 나를 만나러 오는 친구가 혹여나 오는 길에 사고가 나진 않을까 두려웠다. 불안한 마음에 약속 시간이 많이
“여러분의 새 학기는 안녕하신가요?”어느새 새 학기가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믿을 수 없이 빨리 지나갔다. 이번 한 달 동안 공강 없이 매일 학교에 갔고 2년 동안 했던 과외 수업을 그만두고 제과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으며 학보의 디지털 콘텐츠 마케팅부 부장으로 본격적으로 일했다. 되돌아보면 새로 시작한 일들이 이리도 많다는 것이 놀랍다. 공강 없는 대면 학기에 적응하기도 아직 벅찬데, 아르바이트에 활동까지 새롭게 적응하려니 생각보다 힘든 게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난생처음 대상포진에 걸려서 일주일간 고생했고
23일 오후2시40분, 얼룩말 ‘세로’가 서울어린이대공원을 탈출했다. 올해로 4살이 된 세로는 인간의 수명으로 환산하면 고작 10대 중반의 사춘기 얼룩말이다. 비록 탈출한 지 3시간만에 다시 동물원으로 끌려가야 했지만, 세로는 무얼 찾아 울타리 밖으로 나갔을까.2005년 코끼리, 2010년 말레이곰, 2018년 퓨마 탈출에 이은 발생한 동물원 탈출 사건이다. 이번 사건은 어떠한 재산상의 피해나 인명피해 없이 세로가 마취총에 맞아 쓰러지는 것으로 종결됐다. 서울시설공단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탈출 2개월 전 올린 소개 영상에 따르면,
지난 2학기 종강 날, 책상 위에 있던 빈 몬스터 캔 10개를 치웠다. 종강 전 마지막 5일 동안의 총 수면시간은 4시간이었다. 이쯤 되면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들 생각 첫 번째, ‘왜?’ 안타깝지만 몬스터 10캔을 마신 장본인도 그 이유를 모른다. 두 번째, ‘미련하다’ 동의한다. 다시 세 번째, ‘근데 진짜 왜?’ 왜 그렇게 살았을까? 작년 말에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떠올려보면 응급실에 실려 가지 않고 지금 멀쩡히 ‘그땐 그랬지’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 주변에서는 나더러 ‘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이대학보입니다. 어느덧 3월도 거의 끝나가고 캠퍼스 곳곳에서 봄의 정취가 느껴지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아직 낮과 밤의 일교차가 커 날씨의 장단에 맞추는 게 어렵습니다. 지난 한 주 저의 마음은 마치 이 일교차 같이 봄과 겨울을 몇 번이나 오갔습니다. 1657호에 이태원 참사 유족 인터뷰를 낸 후 걱정과 기대의 마음으로 독자 분들의 반응을 살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사를 읽어주길 바라면서도 과연 독자들에게, 또 유족에게 내용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많은 걱정을 했습니다. 사실 해당 인터뷰 기사를 발행하기까지
3월9일 오전12시. 본교 정문 근처 오피스텔촌에 위치한 전봇대 하나가 ‘펑’ 소리를 내며 터졌다. 순식간에 전기가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밝았던 집이 잠깐 어두워진 순간,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위협의 감정이 다가왔다. 걱정되는 마음에 본교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everytime.kr)의 ‘자취게시판’부터 들어갔다. 전기가 끊기면서 와이파이도 끊겨 데이터로 접속해야 했고, 아니나 다를까 다른 학생들도 무슨 일이냐며 걱정을 토해냈다. 같은 건물 입주민들이 들어갈 수 있는 오픈 채팅방에서도 당황스럽다는 반응이 실시간으로 쏟아져
2월25일, 도쿄에 도착했다. 회사 방향으로는 잠도 안 자는 인턴의 끝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 하루 8시간씩 꼼짝없이 앉아있던 엉덩이가 기어코 자유를 요구했다. 새해는 밝았고, 엔데믹이 시작됐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대 여행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코앞으로 다가온 개강을 뒤로하고 5박 6일 자체 휴가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유난히 추운 1월이었다. 처음 다녀보는 회사의 시계는 느렸고 밤이 긴 계절인데도 퇴근만 하면 시간이 빠르게 달렸다. 인턴사원에게 주어지는 애매한 소속감은 불안과 불만에 기름을 부었다. 늘 같은 책상, 같은 의자,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이대학보입니다.새학기가 돌아왔습니다. 캠퍼스에 흐르는 빗방울 하나, 바람 한 자락에도 봄기운이 풍깁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개강은 어땠나요? 처음 듣는 수업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모르는 얼굴들을 잔뜩 마주하는 봄날이었으리라 여깁니다.우리는 살면서 모르는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나게 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이들을 만나 관계를 맺고, 서로의 마음에 저마다의 크기로 자리잡습니다. 두 세계의 조우입니다. 저 또한 이화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알게 되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제가 평생 동안 모르
여자들과 함께하는 것이 익숙하다. 매일 수많은 언니와 친구와 동생들을 본다. 여대에 다니고 있으니 당연하다. 몸담고 있는 학보사도 마찬가지다. 여대 신문사니 만드는 사람도 모두 여자다. 매주 정성을 쏟아 기사를 쓰고 월요일에 나온 지면을 펼쳐보면 보람차다.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다. 우리가 만드는 신문에는 수많은 여성의 얼굴이 있다. 그러다 보니 다들 세상의 반이 여자라는데, 내 세상은 대부분이 여자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음을 알고 있지만 가끔은 너무 익숙해서 잊기도 한다.그런 학보사의 기자로 일하면
호크마대에서 사회학과로 진입한 후, 첫 전공 수업으로 고전사회학이론을 수강했다. 고전이라 불리는 마르크스, 베버, 뒤르켐의 이론을 원문으로 읽으며 관련된 생각을 나누는 수업이었다. 사회학의 기초가 되는 수업이고, 유명한 사회학자들의 이론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호기롭게 신청했다. 다만, 영어강의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들뜬 마음을 가지고 수강한 첫 번째 전공 수업에서 영어의 벽을 맞닥뜨렸다. 하고 싶은 말은 잔뜩이었다. 그러나 한국어로도 읽기 어려운 저서를 영어로 읽고, 해석이 잘 되지도 않는 내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영어강
2월 28일 오후 2시 7분, 낮 일정을 마치고 당 충전이나 할 겸 아이스크림 할인점에 들렀다. 그런데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수정된 가격표였다. 그 옆에는 ‘아이스크림 전 제품 인상’이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과자 또한 편의점에서 살 법한 가격대로 판매되고 있었다. 친구에게 사진을 찍어 이 상황을 얘기하니, 아이스크림 가격이 그렇게 오른 지는 꽤 되었다고 했다.요즈음 물가가 끝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사소한 간식 소비조차 함부로 하기가 어려워졌다. 파리바게는 2월부터 95개 품목의 가격을 평균 6.6% 인상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이대학보입니다.지난 학기 발행을 마무리하며 마지막 인사를 전한 날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개강을 목전에 두고 다시 인사드립니다. 다들 새로운 학기 잘 준비하고 계신가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대학보사 밖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합니다. 4년 만에 대면으로 열린 입학식 때문이죠. 대강당을 향하는 설레는 발걸음을 보니 이번 학기가 유난히 밝고 활기차게 시작하는 느낌입니다.최근 이대학보에는 기쁜 소식이 있었습니다. 바로 저희 기자들이 시사인 대학기자상을 수상했다는 것인데요. 지난 학기 이대학보
열한 살,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시절. 새로운 가족을 처음 만났다. 갈색 파마머리를 가진 작은 푸들. 이름은 초리. 그 아이는 자연스레 유‘리’의 동생 초‘리’가 됐다. 언제나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던, 아침마다 방문을 긁으며 찾아오던, 늘 내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던 아이.우리는 함께였지만, 시간은 다른 속도로 흘러갔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대학생이 됐지만, 아기 강아지였던 초리는 노견이 됐다. 살이 찌기 시작했고, 아픈 곳이 늘어났다. 어느 날은 문득 초리를 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섭고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대학보입니다.어느덧 이번 학기에 전하는 마지막 인사입니다. 편집국장으로 칼럼을 쓰기 시작하며 여러분께 어떤 말로 첫 인사를 드릴지 고민하던 날이 생생합니다. 매번 독자 여러분께 편지 한 통을 함께 보낸다는 생각으로 한 자 한 자 적어보았는데, 저의 생각이나 마음이 잘 전달됐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대학보는 이번에 발행되는 1653호를 끝으로 2022년 발행 일정을 마칩니다. 그동안 학교 곳곳을 뛰어다니며 취재하느라 바쁜 일상을 보낸 이대학보 구성원들에겐 이번 주가 나름 큰 의미로 다가올 것 같습니다.특히 이
대학생은 과도기적 단계이다. 입학했던 당시를 돌이켜 보면,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또는 또 같이 별생각 없이 이대에 들어왔다. 나는 내가 싫어하는 걸 억지로 시키면 차라리 죽고 싶은 사람인데, 그런 나는 고등학교에 다니며 입시를 할 당시 미래에 대한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부터 뚜렷한 미래의 스케치를 가진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냐마는 나는 정말 고등학교 이후에 대한 기대가 아무 것도 없었다.입학한 후에도 큰 자유가 찾아온다거나 특별한 해방감, 소속감과 안정감이 찾아오지는 않았다. 첫 1년은 코로나가 심각해 배달 음식을 주
지난 13일, 내 생일을 맞아 코트를 사고자 가족들과 백화점 나들이를 나갔다. 하지만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왔다. 생각보다 옷의 가격대가 지나치게 높았다. 오빠는 “여자 옷은 잘 몰랐는데, 질도 별로 안 좋으면서 비싸기만 한 게 많다. 너는 괜찮은 옷 사려면 나보다 돈을 2배는 내야 할 것 같다.”며 혀를 찼다. 남성 의류보다 여성 의류가 질과 가격, 두 가지 면에서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힘들다는 사실이 그는 나름 충격적인 것 같았다.우리는 이따금 일상적인 소비에서 성차별을 마주한다. 기장이 비슷한데도 남녀 요금을 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공기 냄새가 바뀐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어느 순간 갑자기 훅 찬 바람이 파고들며 풍겨오는 쌉싸름한 비릿한 냄새. 나는 이걸 ‘수능 냄새’라 부른다. 수능이 끝난 지 3년이 지났지만, 매년 찾아오는 이 계절의 수능 냄새는 잊을 수 없다. 시간은 언제나처럼 무심하게 지나가고, 나는 예전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음에도 말이다.과거의 난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찾아볼 거라나. 경계의 그늘진 구석을 외면하는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비틀린 사회의 균형점을 찾고 싶었다. 그러나 학창 시절의 수많을 밤을 지새웠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