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학보는 저에게 아르바이트를 구해주는 정보지이자 자투리 시간을 보내는 소일거리였고, 대학 로비의 우편함에 꽂혀 있는 여대생 친구의 학보는 우리들에게 작은 기쁨이기도 했습니다. 또 암울한 시절, 학보에 실린 어느 교수님의 용기 있는 논단은 저항정신에 고취된 청년학도들에게 행동하는 지성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용기를 주는 시금석이기도 했습니다. 활자매체
이대학보의 창간 53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긴 시간 동안 이대학보에서 많은 변화의 움직임이 있었으리라고 감히 짐작해본다. 이대학보는 학내 언론매체 중에서도 발행부수가 가장 많고, 1주일에 한 번씩 발행되어 학내에서 이화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이화지가 1년에 2번 발간되어 항상 시의성이 맞지 않을까 봐 걱정했었던 기억을
이대학보의 창간 53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대학보는 우리나라 민족과 여성의 앞날을 위하여 창간되었으며, 53년이 지난 지금도 학생들의 교양 함양과 학업생활을 도우며, 대학 사회의 소식을 객관적인 자세로 보도ㆍ논평하고 대학 내의 건전한 여론을 형성하여 그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대학들은 세계화 또는 글로벌화의 기치를 들고 서로
월요일 아침, 수업을 들으러 혹은 동아리 활동이나 발표준비가 있어서 학내 곳곳을 누비는 이화인들이 습관처럼 펼쳐드는 것이 있습니다. 학생들의 활동이 일어나는 곳이면 어김없이 함께하는 이대 학보가 바로 그 것이지요. 때문에 이화인들은 강의실 책상 한 모퉁이에 앉아있다 하더라도 일주일동안 이화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가 학보사 기자로 있었던 93년. 이대학보 1천호 기념 학보를 제작했습니다. 1천호 기념 학보에 실렸던 신영복선생님의 휘호가 지금도 기억납니다. “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배꽃처럼 피어나리.” 1천호 기념 학보를 제작하며 참 언론의 언약과 독자와의 참 만남을 가슴에 새겼던 것 같습니다. 대학 졸업 후 이대학보를 접할 기회가 없었지만, 이대학보 창간
신문은 어느 사회, 어느 계급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그것은 신문이 갖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 비판 의식과 여론 규합 능력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신문 언론이 얼마만큼의 자유로운 비판 능력을 갖고 있는 지가 민주주의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지난 80년대 기성 일간지들이 모두 ‘용비어천갗를 읊어댈 때 우리들은
53년 동안 학보사에 몸담았던 이화인은 총 421명. 과연 이들의 퇴임 후 모습은 어떨까. 본지는 ‘이대학보 동창 주소록’을 바탕으로 퇴임기자 373명의 졸업 후 동향을 분석했다. 그 결과, 언론인이 가장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학계·시민단체·출판계 등이 뒤를 이었다. 언론계 진출 가장 두드러져 퇴임기자 373명 가운데 66명(17.69%)이 신문 및 방송
이대학보가 창간 53주년을 맞았다. 이에 본교 문리대 교수로 20여 년 재직한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을 만나 대학언론과 이대학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 봤다. 인터뷰는 7일(수) 중앙일보 고문실에서 이뤄졌다. -대학언론의 정체성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대학언론은 기성언론과 달리 연관된 인간관계나 사회 관계가 적다. 우리를 약하게 만들기 쉬운
학보사 기자생활 2년이 졸업 후 10년을 결정했다. 이대학보 학술부 기자로 활동하며 ‘과학’의 재미에 빠져 지금까지 과학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시사저널 안은주 기자(45기·국문·93년 졸)를 만났다. -15년 전 학보의 모습이 궁금하다. 당시 학보의 인기는 대단했다. 다른 대학 학생들과 학보 안에 편지를 넣어서 주고 받는 것이 유행인 시절이었다.
#사례 1=ㄱ씨는 학교 앞 ㅈ가게에 옷을 구경하러 들어갔다. 계속 구경만 하는 그에게 주인은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며 눈치를 줬다. 옷가게 주인은 가게를 나가는 ㄱ씨에게 “옷 안 살 거면 그냥 가던 길이나 가지”라고 말했다. ㄱ씨는 옷을 사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모욕을 주는 주인이 기분 나빴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 #사례 2=ㄴ씨는 학교 앞 ㅌ
‘Yes! apM’(apM)에 이어 정문 앞에 쇼핑몰 ‘메르체’가 들어선다. 앞으로 이대 앞에는 대형 쇼핑몰들이 계속 생겨날 것으로 전망된다. 쇼핑몰 ‘메르체’는 지하2층·지상7층 규모로 11월 완공될 예정이다. 메르체 이태진 실장은 “건축 및 분양 모두 서대문구청으로부터 허가를 받은 상태라 12월부터 점포들의 입주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교육문화환경 개선
‘처녀보살·계룡산도사’등 구석진 골목에 있던 점집이 대로로 나왔다. 비싼 복채를 내고 운명을 예견하는 기존의 점집은 이제 구식이다. 젊은이들에게 흡수된 ‘신(新) 사주문화’는 때로는 대학생들의 상담가로, 때로는 재미있는 놀이로 변하고 있다. 사주카페는 본교 앞 뿐 아니라 신촌·대학로·강남역 등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다. 그 중에
“사람 목소리와 가장 비슷한 첼로 음색으로 인생을 담았어요” 지난 11월,‘사랑·열정·믿음·기억’을 테마로 앨범을 발표한 이화첼리(Ewha Celli). 그들은 본교 배일환 교수(첼로 전공)를 포함해 첼로 전공 학부생과 대학원생으로 이뤄진 첼로 앙상블이다. 그 중 서지원(관현·4)·김윤희(관현·3)·김혜리(관현·3)씨와 만나 앨범 발매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그냥 하면 됩니다. 안 되면 또 하고 그래도 안 되면 또 하면 됩니다.” 국내 최초로 ‘바이놀 유도체’를 발명한 김관묵 교수(나노과학 전공)와 박현정(나노과학부 전공 박사과정)씨의 연구 철학이다. ‘바이놀 유도체’는 L아미노산의 95%이상을 D아미노산으로 변환시키는 유기화합물이다. 이번 연구로 인해 의약품 물질로 쓰이는 D아미노
본교 디자인대학원 박형옥(디자인매니지먼트 전공)씨가 ‘제2회 서울컨벤션뷰로 컨벤션 유치컨테스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 대회는 국제회의 유치 및 개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아이디어를 모집하고자 기획됐다. 박 씨는‘2011년 세계농아인총회’기획서로 입상했다. 그는 “앞으로 관광·컨벤션의 영역에 디자인적 요소를 조합하여 차별화된 영역을 만들어
송희준 교수(행정학 전공)가 정부산하기관 경영평가단 단장에 재임명 됐다. 송 교수는 “평가 첫 해부터 3년 째 단장을 맡게 돼 감회가 남다르다”며 “평가업무의 안정적 마무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산하기관 경영실적평갗는 정부 산하기관의 나태한 경영·낙하산 인사 등의 문제점을 해소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하기 위해 시작됐다.
오지은(화학과·89년졸)씨가 포스코(POSCO)의 첫 여성 공장장이 됐다. 포스코 설립 후 최초의 일이다. 오 씨는 “제조현장의 첫 여성 공장장이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그동안의 지식과 경험을 기초로 남성과 차별화 되는 따뜻하고 섬세한 리더십을 보여주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오 씨는 90년 포스코 대졸 여사원 공채 1기로 입사한 후 포항공대 석사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메달이 나왔다. 금메달 10개·은메달 11개·동메달 8개. 국제종합대회 출전 사상 처음으로 한국이 종합 1위를 거머줬다. 단장인 홍양자 교수(특수체육 전공)가 1월 17일(수)∼27일(토) 열린 2007 토리노 동계유니버시아드에서 한국 선수단을 이끌고 거둔 쾌거다. “대외적으로는 종합 3위가 목표라고 했지만 제 마음속 목표는 5위였습니다
조형예술대학(조형대) 일부 학과 학생들이 열악한 시설·공간 부족으로 수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은 한 강의실을 두 개로 나눠 쓰거나 암실을 이용하기 위해 밤을 새기도 했다. ◆섬유예술학과 섬유예술학과(섬예과)는 조형대 학과 중 두 번째로 학생 수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배정된 강의실 평수는 가장 적다. 섬예과 학생은 작년 2학기 기준, 165명이었다. 1
공학관 B동(제2공학관) 신축 기공식이 1일(목) 오후2시에 열렸다. 공학관 B동에는 각종 실험실과 연구실·공학 도서관이 들어서게 된다. 편의시설인 학생식당과 휴게실·샤워실도 생긴다. 공학관 B동은 지하 3층·지상 5층 규모로 내년 말에 완공될 예정이다. 김명희 공과대학장은 “지난 10년은 세계 최초 여성 공과대학으로서의 기반을 닦는 시간이었다”며 “이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