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생일 이틀 뒤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Cimetière du Père-Lachaise)로 왔다. ‘프랑스까지 가서 공동묘지를? 그것도 생일 이틀 뒤에?’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이곳은 언뜻 보면 그냥 정원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다. 게다가 쇼팽, 에디트 피아프, 발자크, 몰리에르 등 유명한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묘지를 설명해주는 투어도 있다.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도, 상상하기도 힘든 직업이지만, 프랑스에서는 이러한 묘지 가이드를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가기 전에는
2019년 1학기 중간고사 기간, 대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노르웨이 드라마 ‘스캄(SKAM)’(2015)에 과몰입하고 있었다. 시험 기간 때 드라마가 더 재밌어진다는 사실은 불변의 진리로 굳이 설명할 필요 없겠지만 어쩌다 노르웨이 드라마였냐고 한다면 우연히 인터넷에서 외국 드라마 추천 게시글을 봤기 때문이었다. 4년 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있을지는 꿈에도 모른 채 정주행을 시작했다.드라마 제목인 SKAM은 영어로 Shame, 한국어로 번역하면 수치심, 창피를 뜻한다. 총 4개의 시즌으로 이뤄져 있고 시즌별 주인공이
‘프랑스’를 얘기하면 어떤 키워드가 떠오를까? 나는 가장 먼저 ‘예술’이 떠오른다. 루브르 박물관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들, 파리 어디에서나 보이는 에펠탑, 도시 전체를 꽉 채운 오래된 건축물들, 그리고 화가들이 사랑했던 프랑스의 풍경까지... 특히나 프랑스에 예술가가 많은 이유가 궁금했는데, 학생의 신분으로 프랑스에 머물면서 나름의 이유를 찾게 됐다.학생이세요? 그냥 들어가시면 됩니다.교환학생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비자 발급이라고 말할 것이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양과
나는 보통 캠퍼스를 갈 때 버스를 탄다.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분 남짓, 그때 버스에서 자주 마주치는 물건이 있다. 네 바퀴에, 위에는 덮개가 달려있고, 안에는 아기가 타고 있는, 바로 유아차다. 신기하게도 거의 버스에 탈 때마다 본다고 말할 만큼 유아차를 자주 본다.오슬로를 운행하는 시내버스에 타면 버스 중간에 좌석 없이 비어있는 공간을 볼 수 있다. 유아차 내지는 자전거 등을 둘 수 있는 공간이다. 유아차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굴러가지 않게 잡아주는 안전띠가 있어 부모는 그곳에 유아차를 묶어두고 아이와 버스에 탄다. 한국에
“이번 주에 파리 못 가겠는데? TGV(프랑스 고속 열차) 다 취소됐어.” 프랑스에 와서 불편함을 겪는 것 중 하나는 파업이다. 3월7일, 프랑스에서는 6차 연금 개혁 반대 파업의 영향으로 3월8일부터 10일까지 파리를 포함한 여러 프랑스 지역의 교통이 감축 운행됐다. 릴도 그 영향을 피하지 못했다. 주말에 파리나 주변 도시들로 여행 가려던 친구들은 어쩔 수 없이 릴에 머물게 됐다. 그런데 이런 경험은 프랑스에 온 지 약 2달이 된 지금까지 여러 번 겪었다. 처음에는 시위가 있는 날은 위험하니까 기숙사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지만, 이
매주 월요일 아침 9시 반, 나는 사회대 학생 카페 U1으로 출근한다. 사회대 지하에 위치한 카페에 들어가 먼저 기본 블랙커피를 내린 뒤, 테이크아웃 커피잔들을 미리 꺼내놓는다. 10시가 되면 사회대 학생들이 한두 명씩, 가끔은 우르르 들어와서 커피를 주문한다. 아직 노르웨이어가 서툰 나는 영어로 주문을 받고 라떼면 라떼, 블랙커피면 블랙커피를 준비한 뒤 계산을 돕는다.카페 오픈 아르바이트와 다름없는 이 일을 오슬로 시내 카페에서 한다면 시급이 족히 삼만 원은 될 것이다. 하지만 내 시급은 0원이다. 학생카페의 인턴으로, 무료로 봉
편집자주|프랑스 릴 가톨릭대 교환학생으로 파견된 김현수(불문·21)씨가 '미드나잇 인 릴' 칼럼을 2023-1학기 제작기간 중 격주로 연재합니다. 릴 대학에서의 흥미로운 일상을 전합니다.‘선택하신 과목은 수강인원이 초과되었습니다.’ 이화여대, 아니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들은 적어도 한 번씩은 봤을 문구이다. 대학에서는 매 학기 시작하기 전, 자신이 들을 과목을 정하여 수강신청을 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인터넷에 접속하여 각 학교의 포탈 서비스에 들어가서 과목별로 배정된 코드를 입력하여 일명 ‘장바구니’에 과목을 등록해놓은
편집자주|노르웨이 오슬로대 교환학생으로 파견된 김해인 선임기자가 2023-1학기 '노르웨이에서 행복을 묻다' 칼럼을 제작기간 중 격주로 연재합니다. 노르웨이에서의 행복을 담은 일상의 순간을 전합니다.노르웨이라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연어, 순록, 겨울왕국, 그리고 비싼 물가. 노르웨이는 북유럽 중에서도 가장 비싼 물가를 자랑하는 나라다. 맥도날드 빅맥버거 약 12000원, 버블티 한 잔 약 9000원, 커피 한 잔 8000원, 맥주 한 잔 12000원, 담배 한 갑 15000원 정도이며, 패스트푸드점이 아닌 번듯한 식당에서 밥
80일. 터무니없이 짧아 보이는 시간이지만 거의 한 학기에 다다르는 시간이다. 어느새 영국 땅을 밟은 지 80일이 됐다.지낼 수 있는 기간의 절반이 넘어간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이제는 귀국 날까지 남은 시간보다 이곳에서 보낸 날이 더 길어졌다. 크리스마스를 주축으로 긴 방학을 가지는 유럽은 12월 초가 지나면 학교에 간다는 느낌도 희미해진다. 그렇게 계산해보니 내게 남은 시간은 2주 남짓. 내 인생의 거창한 전환점이 되리라 예상했던 교환학생은 별것도 없이 막을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교환을 가기 전, 이미 갔다 온 수많은 사람에게 조
2022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이동권 시위가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시민들이 시위를 통해 직접적인 손해를 입으며 ‘멈춤’에 대한 새로운 공론장이 열렸기 때문이다. 전장연은 열차 출입구를 막는 방식으로 지하철 운행을 지연시키며, 원하는 대로 이동하기조차 어려운 장애인 이동권의 현실을 파격적으로 알렸다. 전장연의 행동에 공감한다고 말하는 시민이 있는 반면 전장연 이동권 시위를 두고 일각에선 부정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접근성 낮은 교통시설물과 예산 부족을 문제 삼으며 이어 나간 이 시위가 최근 다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
영국 마트에서는 어디서든 비건 음식을 찾아볼 수 있다. ‘새우 없는 새우튀김’ 같은 대체육부터 팔라펠을 비롯한 식물성 음식까지. 올해 초, 프랑스에서 교환학생을 했던 한 친구는 내게 유럽이 채식 지향의 삶을 위해서 너무나도 좋은 공간이라 말했다. 영국 또한 마찬가지다. 이 나라는 학교 식당에서마저 채식 메뉴를 제공할 정도로 다양한 삶의 방식에 민감하다. 하지만 이들은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다.잠깐,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다고? 재활용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장 충격적인 것을 먼저 언급하자면 이들은 음식물 쓰레기를 따로
한국 내 퀴어 행사로는 가장 규모가 크다는 서울퀴어문화축제(퀴어축제). 365일 동안 단 하루, 15만 명의 사람들은 대한민국 곳곳에서 갑자기 나타나 반나절의 자유와 혐오 세력의 맹공격을 맛본다. 그리고 또다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자신을 숨기고 어딘가로 사라진다. “이 많은 사람이 다 어디로 가는거야?”통계적으로 인류의 10%는 성소수자라는 글을 읽은 적 있었다. 그렇다면 내 친구 중 몇 명이 자신을 퀴어로 정체화할 수 있는 것일까. 지하철에서 마주친 수많은 사람 중, 자신의 성적 지향성이 사회 규범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사
편집자주|영국 센트럴랭커셔대 교환학생으로 파견된 이수영 선임기자가 2022-2학기 '이수영의 영국 갈 결심' 칼럼을 제작기간 중 매주 연재합니다. 영국 대학에서의 흥미진진한 일상을 전합니다. “영어 이름은 사대주의의 산물이야.” 한국에서만 자라온 나는 다들 왜 그렇게 기를 쓰고 현지인을 배려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인슈타인을 발음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름까지 만들어가면서까지 ‘배려’할 필요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국에 와서 ‘외국인’들에게 둘러싸인 지 두 달, 나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이름’을 통해
편집자주|영국 센트럴랭커셔대 교환학생으로 파견된 이수영 선임기자가 2022-2학기 '이수영의 영국 갈 결심' 칼럼을 제작기간 중 매주 연재합니다. 영국 대학에서의 흥미진진한 일상을 전합니다. 영어 학원에서나 쓸법한 둥근 테이블과 나이대를 가늠할 수 없는 10명의 학생. 교실이라 불러도 되는지 의문스러운 이 공간에서 교수는 천장에 사진을 붙이며 당부했다. “비싼 등록금을 내는데, 제발 학교를 이용하세요! 스튜디오는 여러분을 위한 공간입니다.” 한국 대학에 비해 작고 시끄러운 분위기는 오히려 학원에 가까워 보인다. 영국 대학이 내게 남
편집자주|영국 센트럴랭커셔대 교환학생으로 파견된 이수영 선임기자가 2022-2학기 '이수영의 영국 갈 결심' 칼럼을 제작기간 중 매주 연재합니다. 영국 대학에서의 흥미진진한 일상을 전합니다. 영국은 겨울이 되면 해가 아주 짧아진다. 한국보다 위도가 높아 계절마다 낮의 길이도 더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겨울에는 오후 4시에도 하늘이 어둑해진다는 말마따나 9월의 영국은 밤이 길어지고 날씨가 추워지고 있다. 하지만 온몸으로 느껴지는 짧은 해보다도 더 짧게 것은 바로 가게의 영업시간이다.오후 6시 57분. 센트럴 랭커셔 대학교(Univ
편집자주|영국 센트럴랭커셔대 교환학생으로 파견된 이수영 선임기자가 2022-2학기 '이수영의 영국 갈 결심' 칼럼을 제작기간 중 매주 연재합니다. 영국 대학에서의 흥미진진한 일상을 전합니다. 9월 8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했다. 약 71년의 재위 기간, 백발이 된 왕세자는 드디어 즉위 차례에 다다랐으며, 영국인들에게 가장 오래도록 사랑받았던 여왕은 숨을 거뒀다.당연하게도, 현지 반응은 뜨겁다. 재위 기간이 길었던 만큼 영국 사회 여러 방면에서추모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BBC, 스카이뉴스 등 영국 여러 언론사는 스코틀랜
편집자주|영국 센트럴랭커셔대 교환학생으로 파견된 이수영 선임기자가 2022-2학기 '이수영의 영국 갈 결심' 칼럼을 제작기간 중 매주 연재합니다. 영국 대학에서의 흥미진진한 일상을 전합니다. Personal Pronoun. 나를 지칭하는 대명사. 여느 학생들이 그렇듯, 부푼 마음으로 준비하던 영국 교환에서 내가 처음으로 받은 질문은 나를 무엇으로 부를 것 인가였다.모든 이야기는 온라인 수업 등록(Class Enrolment)으로부터 시작된다. 국내 대학이 개인 신상정보를 묻듯, 영국에서는 수업을 듣기 위해 수업 등록이 필요하다. 내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체크포인트 찰리, 학살된 유럽 유대인들을 위한 추모비······.베를린의 랜드마크 대부분은 전쟁과 분단을 배경으로 갖고 있고, 이 장소들이 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우리나라에는 비긴어게인3에서 태연이 ‘사계’를 부른 공원으로 알려진 Mauerpark 역시 직역하면 장벽 공원이다. 비긴어게인3 베를린편 촬영지 도장깨기를 하던 중에서야 해당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역사적인 유산이라고 하기에는 시민들의 일상에 완벽하게 가려져있었기 때문일까.구글 지도에 장벽 공원이라는 한국어가 함께 표시되지 않았더라면 관광객과 시민들
탭워터(수돗물)가 아니라면 물도 사서 마셔야 하고, 화장실도 돈을 내야 하는 독일은 교통비도 만만치 않다. 대중교통 1회권에 3유로(약 4천원), 1달권에 86유로(약 11만5천원)로 여기서 1회권은 환승을 포함하지 않는다. 갈아탈 때마다 3유로가 추가로 결제되고, 방향을 헷갈려 반대로 탈 때도 마찬가지다. 환승이 잦은 독일 대중교통 특성상, 관광객이 타는 방향을 한두 번 실수했다고 했을 때 사실상 우버와 비용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독일에서 ‘9유로 티켓’은 여름이 주는 선물이다.‘9유로 티켓’은 6~8월 동안 독일
파견교 리스트를 작성하며 영어권으로도 유럽 대학에 지원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교환 학생을 지원해본 벗들은 공감하겠지만, 이때가 가장 마음이 부푸는 시기 아닌가. 자동차와 클래식에 관심이 많은 나는 이게 웬 떡이냐며 영미 대학과 함께 독일 대학으로 리스트를 채웠다. 그리고 베를린 자유대학교에 파견됐다. 함께 파견교 배정을 기다리던 동기가 이 결과에 한참 웃고 나서야 내가 독일어 까막눈이라는 사실에 아차 싶었다. 되돌리기엔 한참 늦은 뒤였다.베를린에서의 1년은 살면서 떠올려본 적도 없는 시나리오다. 언어를 모르는데 학교수업과 행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