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의 해부(2023)‘추락의 해부’(2023)를 정성일 평론가의 해설을 곁들여 관람했다. 그의 해석을 인용한 대목에 *표시를 남겼다.개가 공을 굴린다. 공이 낙하한다. 이윽고 아버지가 추락한다. 다니엘의 절규가 이어진다. 영화는 추락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추락의 해부’(2023)는 단연 물리적인 하락만을 논하지 않는다. 겉보기에는 아버지의 죽음이 타살인가 자살인가, 어머니가 유죄인가 아닌가(gulity not guilty)를 다루는 작품이지만 본질적으로는 한 가정에 닥친 심리적 추락을, 그리고 그 파동에 대한 우울한 회복의 과정
가족 사회학, 생애주기 및 세대 분야의 전문가. 본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미국 에모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인간 행위와 사회 구조』, 『여자들에게 고함』, 『사랑을 읽는다』가 있고 그밖에 공저로도 다수의 책을 썼다. 세계일보, 동아일보, 이투데이 등에 칼럼을 연재해 오고 있다. 그의 ‘인간 행위와 사회구조’ 강의는 2020년 케이무크(K-MOOC) 최우수강좌로 선정되기도 했다.최근 모임에서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에겐 버려야 할 두 마리 개가 있고, 키워야 할 두 마리 양이 있다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이대학보입니다. 편집부국장으로는 처음 인사를 드립니다.개강 3주 차에 접어들며 아직은 쌀쌀했던 날씨도 누그러지는 듯합니다. 오늘 등굣길에는 캠퍼스 곳곳에서 연둣빛 목련 꽃봉오리가 돋아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대학보의 개강은 늘 학교의 개강보다 3주쯤 이르기에 기자들은 벌써 한 달 가까이 달려온 셈입니다. 특히나 지난주부터는 학업과 취재를 병행하며 학내 구성원 사이의 소식들을 전하고자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고 있습니다.이런 분주한 움직임의 끝에 매주 이어지는, 밤을 지새우는 끝없는 고민과 치열한 기
어느덧 스페인에 온 지 10주가 넘게 지났다. 서울과 8시간이 차이 나는 마드리드는 날씨부터 음식, 생활 방식 등 많은 것이 다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차이는 대화에 관한 것이다. 대화를 여는 방식부터 하는 이야기까지 모든 것이 낯설었다.스페인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스페인에 거주하는 인구 중 17.23%는 이민자라고 한다. 사실 스페인에 잠시라도 살아본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단골 과일 가게 사장님은 모로코인, 지금 거주하고 있는 집의 주인아주머니는 콜롬비아인, 시내 젤라토 맛집의 점원은 프랑스
책/권태(1999) 삶이 너무나 허무해 모든 일이 무용하고, 덧없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고, 그럼에도 여전히 할 일은 해야 하는 시간이 싫어진 때. 기쁘지 않아도 웃어야 했고, 쉬어가고 싶어도 쉴 수 없었다. 그대로도 좋다는 얘기나,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는 말들도 큰 위로가 되진 않았다. 치, 남의 일이니까 쉽게 말하는 거겠지.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글들은 많지 않다. 때로 글들은 지나치게 감성적이거나 지나치게 이성적이라서 독자가 자꾸만 감정을 제약하게 한다. 여기서는 슬퍼야지, 기뻐야지.
새내기 시절 나에게 대학이란 존재는 그저 고등학교 졸업 이후 다니게 되는 학교일 뿐이었다. 고등교육을 거치고 입학에 들어온 나는 졸업요건을 채우고 필수 수강해야 하는 전공 과목들을 찾아 듣는 것에 급급했다.그러나 학보 기자 생활을 하면서 나는 비로소 학생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그저 글을 전문적으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대학보에 들어왔지만, 여러 인터뷰이들을 만나면서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하나씩 알아갈 때 기자로서 가장 큰 뿌듯함을 느꼈던 것 같다.매 학기 학내 이슈를 접하고 다양한
2월14일, 새벽3시경 게르 안 석탄이 다 떨어 져 난방이 꺼졌다. 꺼질 듯 말 듯한 약한 불씨를 보고 전날 밤 핫팩 여러 개와 패딩을 잠자리 옆에 준비해 두고 잤다. 불이 꺼져 추위가 조금씩 느껴지니 자연스럽게 눈이 떠져 준비해 둔 핫팩과 패딩을 주섬주섬 껴입었다. 다행히 추위는 면했으나 참으로도 낯선 경험이었다.몽골 여행에서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포장도로를 달리는 것도, 밤새 따뜻한 보일러가 돌아가는 것도, 오밤중에 혼자 갈 수 있는 화장실도, 따뜻한 물이 나오는 샤워실도 모두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한국에 돌아와 집으로
스페인어에는 ‘좋아한다’라는 동사가 없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겠지만 사실이다. 대신에 Me gusta, 직역하면 ‘나에게 즐거움을 주다’라는 말을 사용한다.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존재가 곧 내가 좋아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손바닥 속 화면에서 스페인어 강사는 이것이 스페인어 역구조를 이해하기에 가장 기본이 되는 단어라는 간단한 설명으로 강의를 마무리했지만, 나는 이 표현을 알게 된 이후부터 내 감정이 의심스러워져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을 머뭇거리게 되었다.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한 것이 나에게 정말 즐거움을 주는가? 좋
‘아기가 된 기분이다.’ 내가 교환학생을 오고 한 달 동안 일기장에 가장 많이 쓴 문구이다. 교환학생으로 간다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기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중의적인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모르겠는 환경에 던져진 아기처럼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이고, 또 다른 의미는 내가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던 알을 깨고 다른 세상에 나와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나는 오래전부터 미국에서 공부해 보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미국에서 학생으로 생활해 보고 싶었고, 미국 교육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그렇기에
개강 주간이다. 매 학기 개강을 맞이하지만, 유독 이번 학기는 학교에 생기가 가득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마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강의가 병행되던 시기가끝나고 상당수 교양과목과 인문대 전공과목의 강의실로 사용되는 학관이 문을 연 후 맞이한 첫 번째 3월 개강이라 그런 듯하다. 이제야 비로소 긴 코로나 시기가 끝나고 신입생을 맞이한 것만 같다.코로나 시기 동안 대학은 강의만이 아니라 학생들의 각종 대면활동들을 어떻게 원활히 진행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한 반에 배정되면 1년간 일상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는 고등학교 시절까지와는
본교 학부에서 영어영문학을, 통번역대학원에서 통역을 전공했다. 2013년 대학원 졸업 후 7년 반 정도 프리랜서 한영 통역사로 활동했다. 3년 반 전부터 인하우스 통역사로 일하고 있다. 통역사가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 인공지능(AI) 시대에 앞으로도 통역사가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 통역사라는 직업이 궁금한 이들을 위한 정보와 함께, 11년차 통역사로서 숨가쁘게 살아오며 느낀 소회를 적어보려 한다.통역사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의 소통을 돕는다. 주인공보다는 보조자 역할을 한다. 행사MC를 맡는 등 특수한 경우가
전 중앙일보 대기자. 본교 교육학과를 1987년 졸업하 고 동대학원 석사, 서울대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32년간 기자로 일하며 온 라인 편집국장, 논설위원, 콘텐트랩 실장 등을 역임했 다. 2011년 단편소설 ‘흘러간 지주’로 등단해 소설가 로도 활동하며 『이대 나온 여자』, 『적우: 한비자와 진시 황』, 『카페 만우절』, 『여류 삼국지』 등 작품 다수를 썼다. 2022년부터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객원교수로 일한다. “교회엔 성인과 함께 가고, 술집엔 술꾼과 간댔는데, 지옥에서 마귀들과 함께 다니는
보는 순간 ‘내가 평생 이 기억으로 살아가겠구나’ 하는 순간이 있다. 마드리드의 햇살이 내겐 그랬다.마드리드에 오게 된 것은 찰나의 선택 덕분이었다. 처음엔 축구를 좋아해 유럽에 교환학생으로 오고 싶었고, 그중에서도 학생 신분으로 살기 좋다는 독일을 꿈꿨다. 독일을 목표로 토플을 공부하고, 학점을 맞추고 파견교 목록이 정리된 엑셀을 훑었다. 다른 학생들처럼 파견 보고서와 블로그 등을 살펴보며 목록을 추렸고, 우선 지망을 전부 독일로 채웠다. 그러다 우연히 어떤 블로그에서 ‘노는 걸 좋아하면 독일 말고 스페인으로 가세요’라는 글을 보
설날을 한국에서 보내지 않은 건 처음이었다. 지난 2월, 태어나 처음으로 밟은 미국 땅에서 가재 요리를 먹으며 이방인으로서의 설날을 보냈다. 미디어를 통해서만 겪어본 미국이라 가기 전 여러 걱정이 있었다. 외국인이라고 무시하는 건 아니겠지, 미국인들 사이에 껴서 주눅 드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오랜 기간 날 감쌌던 걱정들이 무색해질 만큼,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있는 미국의 자유로움이 이방인 신분의 나를 반겼다.이름만 들어도 족히 그 유명세를 알 만한 대학들의 캠퍼스도 방문했다. 학생 모두가 저마다의 스타일을 고수한 채 자유롭게 캠퍼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편집국장 김아름빛입니다. 편집국장으로서 여러분께 처음 인사드립니다.지난 학기 기사를 쓰며 매일같이 밤을 샜던 학보실에 있으니 바쁜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게 실감이 납니다. 이대학보 26명의 기자들은 여러분께 좋은 기사, 좋은 사진, 좋은 콘텐츠로 찾아뵙기 위해 고민하고 애쓰며 이번 학기 상반기 첫 발행을 시작했습니다.이번 1676호에서는 개강을 맞아 새로 시작하는 캠퍼스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신입생 입학식, 신입생 OT와 함께 학내외 이슈도 여럿 다뤘습니다. 특히 의과대학, 인공지능대학을 취재한 기자들의 어
이대학보 창간 70주년을 축하합니다. 지난 70년 동안 이대학보는 이화의 기념비적인 순간들과 학생사회 면면을 글과 사진으로 끊임없이 기록해 왔습니다. 이화의 도전과 성장, 발전의 역사가 이대학보와 함께했습니다.1954년, 휴전협정 후 다시 돌아온 신촌 캠퍼스에서 이대학보는 학생들의 교양 함양과 학업생활을 돕고 대학 사회의 소식을 보도·논평하여 건전한 여론을 형성한다는 목적으로 창간되었습니다. 창간정신에 걸맞게 이대학보는 이화의 젊은 지성들이 마땅히 지녀야 할 사회적 책임의식과 사명감을 공유하도록 하는 데 노력해왔습니다. 1960년대
책/내게 무해한 사람(2018) "넌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지. 그리고 그럴 수도 없을 거야.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구나."두 번째 소설집인 『내게 무해한 사람』에서 최은영은 유약했던 어린 시절의 마음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는, 누구보다도 사랑이 가득한 이들을 그려낸다. 순간의 실낱같은 감정을 잡아채어 유려하게 늘어놓는 문장들을 읽고 있자면 곱씹을수록 청춘에 가까운 문장들이라 생각하게 된다. 마음에 지는 흉터들을 용납할 수 없어 타인을 대하는 데 지나치리만큼 세심하고 예민하게 구는 시기이자, 자신이 누군가의 하루를 망치진
고민 많은 나는 별것도 아닌 일을 크게 부풀려서 걱정하는 아주 몹쓸 재주가 있다. 이 정도면 재주가 맞다. 밖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리면 순간 ‘어, 뭐지… 저거?’ 하는 생각을 필두로 ‘전쟁 난 거 아니야? 아닐 거야. 무슨 이벤트 아닐까? 불꽃놀이일 거야. 소리가 너무 가깝게 들리는데? 지금 집에 라면 있나? 우리 가족은 대피 가방도 준비 안해놨는데. 대피하려면 가방이 몇 개 필요할까? 라면은 얼마나 넣어야 하지? 옷들은? 하… 큰일 아니어야 하는데, 정말 걱정이다…’ 이렇게 걱정들이 내 머릿속으로 끝도 없이 쏟아져 들어온다.
이대학보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편집부국장 김민아입니다.어느덧 한 학기의 마지막 신문이 발행됐습니다. 마지막은 처음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열한 번의 발행을 되돌아보면 계획했던 기사가 무사히 발행되기도, 기획 기사가 예상치 못하게 사라지거나 생기기도 했습니다.우선 ‘시간을 달리는 여자들’ 시리즈가 1675호를 끝으로 마무리됩니다. 나는 어떤 시간을 달리고 있는지 되돌아볼 수 있는 시리즈입니다. 시간을 달리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낼 뿐만 아니라 영상으로도 담았습니다.총학생회(총학) 선거 기간에는 상황을 계속 지켜보며 실시간
“교수님 MBTI은 뭐세요?!” 한동안 사적으로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이제 자기보고서 문항을 통해 개인의 성격을 16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주는 MBTI는 일상의 문법으로 자리 잡았다. 심지어 입사지원 시 지원자의 MBTI 유형을 가지고 자기소개서 작성을 요구하고, MBTI가 특정 유형인 경우 지원하지 말라는 채용공고를 해서 사회적인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이쯤 되면 MBTI 광풍, 바야흐로 MBTI 전성시대다.그런데 뿐만이 아니다. MBTI 못지않게 혈액형과 사주(四柱), 타로점, 각종 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