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순간 ‘내가 평생 이 기억으로 살아가겠구나’ 하는 순간이 있다. 마드리드의 햇살이 내겐 그랬다.마드리드에 오게 된 것은 찰나의 선택 덕분이었다. 처음엔 축구를 좋아해 유럽에 교환학생으로 오고 싶었고, 그중에서도 학생 신분으로 살기 좋다는 독일을 꿈꿨다. 독일을 목표로 토플을 공부하고, 학점을 맞추고 파견교 목록이 정리된 엑셀을 훑었다. 다른 학생들처럼 파견 보고서와 블로그 등을 살펴보며 목록을 추렸고, 우선 지망을 전부 독일로 채웠다. 그러다 우연히 어떤 블로그에서 ‘노는 걸 좋아하면 독일 말고 스페인으로 가세요’라는 글을 보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편집국장 김아름빛입니다. 편집국장으로서 여러분께 처음 인사드립니다.지난 학기 기사를 쓰며 매일같이 밤을 샜던 학보실에 있으니 바쁜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게 실감이 납니다. 이대학보 26명의 기자들은 여러분께 좋은 기사, 좋은 사진, 좋은 콘텐츠로 찾아뵙기 위해 고민하고 애쓰며 이번 학기 상반기 첫 발행을 시작했습니다.이번 1676호에서는 개강을 맞아 새로 시작하는 캠퍼스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신입생 입학식, 신입생 OT와 함께 학내외 이슈도 여럿 다뤘습니다. 특히 의과대학, 인공지능대학을 취재한 기자들의 어
설날을 한국에서 보내지 않은 건 처음이었다. 지난 2월, 태어나 처음으로 밟은 미국 땅에서 가재 요리를 먹으며 이방인으로서의 설날을 보냈다. 미디어를 통해서만 겪어본 미국이라 가기 전 여러 걱정이 있었다. 외국인이라고 무시하는 건 아니겠지, 미국인들 사이에 껴서 주눅 드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오랜 기간 날 감쌌던 걱정들이 무색해질 만큼,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있는 미국의 자유로움이 이방인 신분의 나를 반겼다.이름만 들어도 족히 그 유명세를 알 만한 대학들의 캠퍼스도 방문했다. 학생 모두가 저마다의 스타일을 고수한 채 자유롭게 캠퍼
이대학보 창간 70주년을 축하합니다. 지난 70년 동안 이대학보는 이화의 기념비적인 순간들과 학생사회 면면을 글과 사진으로 끊임없이 기록해 왔습니다. 이화의 도전과 성장, 발전의 역사가 이대학보와 함께했습니다.1954년, 휴전협정 후 다시 돌아온 신촌 캠퍼스에서 이대학보는 학생들의 교양 함양과 학업생활을 돕고 대학 사회의 소식을 보도·논평하여 건전한 여론을 형성한다는 목적으로 창간되었습니다. 창간정신에 걸맞게 이대학보는 이화의 젊은 지성들이 마땅히 지녀야 할 사회적 책임의식과 사명감을 공유하도록 하는 데 노력해왔습니다. 1960년대
책/내게 무해한 사람(2018) "넌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지. 그리고 그럴 수도 없을 거야.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구나."두 번째 소설집인 『내게 무해한 사람』에서 최은영은 유약했던 어린 시절의 마음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는, 누구보다도 사랑이 가득한 이들을 그려낸다. 순간의 실낱같은 감정을 잡아채어 유려하게 늘어놓는 문장들을 읽고 있자면 곱씹을수록 청춘에 가까운 문장들이라 생각하게 된다. 마음에 지는 흉터들을 용납할 수 없어 타인을 대하는 데 지나치리만큼 세심하고 예민하게 구는 시기이자, 자신이 누군가의 하루를 망치진
이대학보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편집부국장 김민아입니다.어느덧 한 학기의 마지막 신문이 발행됐습니다. 마지막은 처음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열한 번의 발행을 되돌아보면 계획했던 기사가 무사히 발행되기도, 기획 기사가 예상치 못하게 사라지거나 생기기도 했습니다.우선 ‘시간을 달리는 여자들’ 시리즈가 1675호를 끝으로 마무리됩니다. 나는 어떤 시간을 달리고 있는지 되돌아볼 수 있는 시리즈입니다. 시간을 달리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낼 뿐만 아니라 영상으로도 담았습니다.총학생회(총학) 선거 기간에는 상황을 계속 지켜보며 실시간
“교수님 MBTI은 뭐세요?!” 한동안 사적으로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이제 자기보고서 문항을 통해 개인의 성격을 16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주는 MBTI는 일상의 문법으로 자리 잡았다. 심지어 입사지원 시 지원자의 MBTI 유형을 가지고 자기소개서 작성을 요구하고, MBTI가 특정 유형인 경우 지원하지 말라는 채용공고를 해서 사회적인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이쯤 되면 MBTI 광풍, 바야흐로 MBTI 전성시대다.그런데 뿐만이 아니다. MBTI 못지않게 혈액형과 사주(四柱), 타로점, 각종 심리
이 기사가 공개될 무렵이면 내가 일본에 교환학생으로 온 지 80일도 넘어가게 된다. 한국에서 나는 쭉 부모님과 함께 살아서 기숙사 생활을 해본 적도, 자취 경험도 없었다. 그런 내가 용감하게도 홀로 외국에 나온 지도 이제 삼 개월을 채우게 되는 것이다. 새삼스럽게 신기하고, 스스로 뿌듯해지기도 한다. 처음 교환학생을 준비할 때, 당연히 걱정이 많았다. 이렇게 오래 외국에 나와본 적은 물론, 한국에서도 혼자 생활해 본 적이 없으니 두렵기도 했다. 나는 집안일에 서투른 데다 생활력이 떨어지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때문에 물리
33번의 마감 후 퇴임을 앞둔 지금. “찍은 사진 중 제일은 뭐냐”라는 질문을 받고 급하게 내가 찍었던 사진들을 기억해 내지만, 하나를 짚기 어려웠다.하지만 분명히 의미 있는 취재는 있다. 작년 11월, 기자 생활 2개월 차에 이태원 참사 추모 현장에 가기 위해 늦은 밤 기자 3명과 함께 택시를 탔다. 어깨의 그 무거운 카메라 가방보다 마음이 훨씬 무거웠던 밤. 수많은 꽃과 추모 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 소주병에 꽂혀있는 한 송이의 백화. 눈물 흘리는 이들 앞에서 ‘찰칵’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게 어색했지만, 이 현장을 기록해야겠다
테넷(2020)‘이해하려 하지 말고, 느껴라.’라는 이 대사는 '테넷'이 얼마나 복잡하고 난해한 플롯의 구조를 지닌 영화인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영화는 사물의 엔트로피 역행에 기반한 ‘인버전’ 기술을 중심으로, 여러 양자역학과 물리학의 개념을 도입하여 서사를 전개한다. 영화 속 어려운 과학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은 관객이 자신의 영화를 두고 이처럼 고민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영화가 선사하는 새로운 영화적 경험을 체험하고 등장인물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하나의 철학적
편집자주 |그때 학보가 다룬 그 문제, 지금은 해결됐을까요? 본지가 취재한 학내 이슈를 돌아보는 코너 ‘새로고침’을 두 달 간격으로 연재합니다. 본지에서는 교내 일회용품 분리수거 문제, 쓰레기 처리 과정 문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꾸준히 지적했습니다. 이번에는 이러한 현실 속 그린 캠퍼스를 만들기 위한 작은 습관을 실천하고 있는 이화인의 모습을 사진기자의 시선으로 포착해봤습니다. 5년차 페스코 베지테리언 비건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환경에 대해서는 어렸을 적부터 막연한 관심이 있었지만 행동으로 옮기게 된 건 이화에 들어오고 나서입니다. 실
고민 많은 나는 별것도 아닌 일을 크게 부풀려서 걱정하는 아주 몹쓸 재주가 있다. 이 정도면 재주가 맞다. 밖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리면 순간 ‘어, 뭐지… 저거?’ 하는 생각을 필두로 ‘전쟁 난 거 아니야? 아닐 거야. 무슨 이벤트 아닐까? 불꽃놀이일 거야. 소리가 너무 가깝게 들리는데? 지금 집에 라면 있나? 우리 가족은 대피 가방도 준비 안해놨는데. 대피하려면 가방이 몇 개 필요할까? 라면은 얼마나 넣어야 하지? 옷들은? 하… 큰일 아니어야 하는데, 정말 걱정이다…’ 이렇게 걱정들이 내 머릿속으로 끝도 없이 쏟아져 들어온다.
국어국문학과 2012년 졸업. 독립출판물 와 팟캐스트 을 만든다. 경향신문에 미디어 비평 칼럼 를 연재 중이며 저서 『연애하지 않을 자유』, 『차녀힙합』, 『아니 근데, 그게 맞아?』 등을 썼다. 현대소설 연구자가 되기 위해 폭포 밑에서 수행 중. 책을 사들이기만 하고 읽지는 않는 사람을 일컫는 별명을 정하는 놀이가 SNS에서 흥했다. ‘활자격리소’, ‘출판계의 빛과 소금’, ‘소장학파’, ‘아가리 독서러’, ‘독서댐’…주옥같은 아이디어 속에서 단연 화제가 된 것은 ‘집책광공’이었다. ‘광
한국과 오스트리아는 다른 점이 많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대부분의 상점이 평일 저녁 7시면 문을 닫고, 일요일에는 문을 연 곳을 찾기가 힘들다. 아날로그 친화적인 환경이다. 거의 모든 아파트는 열쇠로 여닫아야 한다. 언제 어디에서 마주하더라도 서로 눈이 마주치면, ‘Guten Morgen(좋은 아침)’ 혹은 ‘Hallo(안녕)’의 인사말을 습관처럼 내뱉는다. 이렇게 내가 살아온 환경과는 다른 것들을 마주하게 될 때, 자연스럽게 한국에서 생활하던 모습들이 겹치곤 한다. ‘이런 점은 한국이 더 낫네 혹은 더 불편하네’와 같은 감상부터, ‘
본교 학부에서 국어국문학을, 대학원에서 한국학(한국어교육)을 전공했다.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 태국 씰라빠껀대학교 한국어학과를 거쳐 현재 미국 하버드대학교 동아시아언어문명학과 한국어 강사로 일하며 학부생 및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고 있다.대학 4학년, 프로듀서를 꿈꾸며 ‘언론고시’를 열심히 준비하던 때에 우연히 수강하게 된 라는 교양 수업이 내 인생의 방향을 한순간에 바꿔 버렸다. 지금은 옛말이 된 듯하지만, 당시에는 미래지향적 느낌이 물씬 풍겼던 ‘세계화’라는 단어에 관심이 갔고, 한국어
리바운드(2023)리바운드는 2012년 부산의 한 고등학교 농구부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과거에 영광을 누렸지만 다 무너져 가는 농구부에 26살 젊은 코치가 부임하면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 영화다. 초등학교 때는 천재 소리 듣는 유망주였지만 키가 자라지 않아 슬럼프가 온 가드 ‘기범’, 부상으로 농구를 포기하고 형편이 어려운 가정 사정으로 내기 농구를 하며 돈을 버는 스몰 포워드 ‘규혁’, 점프력만 좋은 축구선수 출신의 센터 ‘순규’, 길거리 농구만 해온 파워포워드 ‘강호’, 농구 경력 7년 차지만 대회 출전 경험은 없는 만년 벤
10월 22일 오후 4시, 나는 우이천에서 짝지은 원앙들을 보았다. 물 위에선 한없이 평온할 줄만 알았던 저 원앙들이 한껏 몸을 부풀리며 다른 원앙들을 위협할 때가 있었다. 그건 자기 짝에게 공격이 가해질 것 같을 때. 대체 저 말 못 하는 동물들은 뭘 알길래 사랑을 하고, 계산 없이 본능적으로 짝을 지키려 할까. 이런 면에서 보면 일부 동물들은 인간보다 한 차원 높은 사랑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저 원앙들을 보면서 내가 가진 사랑에 대해 둘러보았고, 어떤 태도로 사랑을 마주해야 할지 정의하는 시간을 가졌다.나는 원래도 사랑이 많
이맘때면 시간에 가속도가 붙음을 느낀다. 거리에 수험생을 응원하는 다정함이 가득하고 반짝거리는 캐롤이 들린다. 어느새 연말이 다가온 것이다.일 년이 한 시간이라면 고작 7분30여초가 남은 셈이다. 어쩌면 연말은 초, 분, 시, 달, 년처럼 인간이 나눈 경계에 불과하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결국 거스를 수 없는 광활한 시간 앞에 무력해지지 않으려는 노력이 아닐까. 특히연말은 한 살을 더하는 이상한 변화를 멋지게 포장하려는 듯하다. 두 달의 시간에 포장지를 감싸면서 우리는 설레고, 긴장하고, 또는 무기력해지기도 한다.사실 내게는 그
일본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 후지산, 초밥, 온천, 벚꽃…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아니메(*‘애니메이션’의 일본식 표기)’와 다양한 캐릭터 산업일 것이다.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역시도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드라마를 보면서 처음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교환학생 행선지를 일본으로 정한 것 역시 그 영향이 있다. 그리고 일본에서 지낸 지 두 달이 지난 지금, 직접 느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좋아할 수 있는 생활’에 대해서 말해보고 싶다.막 입국한 후 이번 학기 교환학생들을 처음 학교로 불러 학교생활이나 일본에서의 생활
안녕하세요. 이대학보 독자 여러분. 첫 칼럼을 쓸 때만 해도 더위가 가시지 않은 여름이었는데 어느새 차디찬 바람이 불어 오는 겨울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피부에 닿는 공기의 온도로도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만, 얼마 남지 않은 학보 발행 횟수가 제겐 더 크게 와닿습니다.이번 학기 저희 학보는 아홉 번의 신문을 만들었고, 앞으로 두 번의 발행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번 호는 제2회 이화문예상 수상작들을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자 총 네 면에 수상작과 소감, 심사평을 담았습니다. 기사를 몇 면에 어느 크기로 배치할지 결정하는 지면 레이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