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온 지 한 달 남짓 지났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짧은 시간에 너무나도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으면서도 모순적이게도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은 상대적이라고들 하지 않나.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미국에 도착하고 일주일이 되어가던 때가 생각이 난다. 도착하자마자 이틀 만에 개강했던 터라 적응 기간도 채 가지지 못하고 이곳저곳 돌아다녔던 미국에서의 첫 주는 매우 길었다. 그러나 한 달간의 적응기를 겪고 어느새 수업에서 만난 친구들과 밥도 먹고, 건물 위치와 캠퍼스 환경에 익숙해진 채로 보내는 요즘 일주
본교 국어국문학과를 거쳐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전소설과 고전여성문학을 주로 연구하며 고전문학의 대중화 작업에 관심이 많다. 올해 케이무크(K-MOOC)에 ‘한국문화 깊이읽기’ 강좌를 신규로 개설해 강의한다. 주요저서로 『고전서사와 젠더』, 『고전소설, 몰입과 미감 사이』, 『옛 소설에 빠지다』, 주요역서로 『삼한습유 역주』, 『완월회맹연 교주 1』(공역)이 있다. 책 읽기의 중요성에 대해서 부정하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막상 책을 즐겨 읽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글쎄다. 요즘은 시청각 학습 자료가 많아서 학습도 시청 행위
극이 시작되면, 한 여성이 고요한 집안에서 깨어난다. 여자는 두통을 호소하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손목에는 자해의 흔적이 있고 주변에는 수면제로 보이는 알약들이 널브러져 있다. TV 화면에는 이상하게 생긴 표식이 떠 있다. 모든 기억을 잃은 듯 황망하게 집안을 헤매던 여성은 거실에서 딸로 보이는 아이의 사진을 발견하고 순간적으로 짧은 기억을 떠올린다. 여자는 아이의 사진을 가지고 집을 나서는데, 주변에서 사람들이 창밖으로 여자를 촬영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러다 TV에 있던 심볼과 같은 그림이 그려진 가면을 쓴 사람이 총을 들고 쫓아
“인간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관용어로 완전히 자리 잡은 말이다. 동시에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이기도 했다. 인간은 고쳐 못 쓴다니. 내겐 고쳐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어떡하면 좋지? 믿기지 않겠지만,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런 걱정부터 했다.나는 계획적이지 못하고 충동성이 짙다.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한 것은 아니지만 가까운 사람들이 자주 지적하는 정도는 된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내가 당장 하고 싶은 일은 당장 해야 했으며, 갖고 싶은 게 떠오르면 어떻게든 손에 넣어야만 직
2월 새 학기를 시작한 영국 센트럴 랭커셔(University of Central Lancashire)대에서 ‘사진과 매일(Photography and Everyday)’이라는 사진학과 수업을 듣고 있다. 사실 평소 핸드폰으로 사진찍기를 좋아한다는 것 말고는 난 사진의 ‘ㅅ’자도 모르는 사람이다. 하지만 사진에 대해 더 알고 싶기도 했고 교환을 와서 꼭 실습수업을 듣고 싶었기에 보자마자 ‘이건 들어야 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열정 하나만을 가지고 수업에 발을 디뎠다.수업에 들어간 첫날, 기대와 다르게 점차 주눅이 들기 시작했다.
코로나는 인류에게 무엇을 말하는가?코로나 펜데믹이라는 커다란 재앙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허약한가, 새삼 되묻게 된다.오직 인간 본위의 사고방식과 문명이 우주에 대한 이해를 제한해 온 것은 아닌지, 지금이야 말로 인류문명 전부를 고민하고 성찰해야 될 때라는 생각이 든다.코비드-19로 우리 몸은 쇠약해지고 이화동산도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몸이건 공간이건, 너무 혹사해도 안 되지만 너무 안 써도 생기를 잃게 된다. 결국 몸의 문제이다. ‘몸’이란 지성, 감성, 감정, 영혼이 스며 있는 삶 그 자체이다. 세상은 큰 몸이고 우리 몸은 작은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이대학보입니다.2022년이 아직 낯선데, 벌써 3월 개강을 목전에 뒀네요. 여러분의 방학은 어땠나요? 이대학보 구성원들은 학보의 각종 개편을 준비하느라 꽤나 분주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새로운 모습으로 여러분께 인사드릴 것을 상상하며, 꿀 같은 휴식을 반납하고 회의와 발표를 거듭 진행했습니다.2월3일엔 삼청동의 한 회의 공간에서 6시간가량 워크숍을 열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서로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든 요즘, 다양한 부서의 기자님들이 함께 모여 얘기 나눌 기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뜻깊은 시간이었지요.
마블의 전작들보다 성별, 인종적으로 훨씬 다양해진 영화 가 개봉하면서, ‘PC’라는 것이 다시 한번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PC란 ‘Political Correctness’의 줄임말로, 한국말로는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하며, 차별 요소를 최대한 없애려 노력하는 것 등을 일컫는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차별이 전보다 더 가시화되고,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여러 매체에서 이러한 ‘PC’를 반영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그러나 ‘PC’에 대해서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도 분명 존재한다.
본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30여년 재직, 인문과학대학장 등을 지냈고 2011년 2월 은퇴했다. 저서로 시리즈, 역서로 『런던 스케치』, 『와인즈버그 오하이오』, 『마음은 외로운 사냥군』 등이 있고. 『돌아오는 길』 『아, 순간들』 『따뜻한 뿌리』 등의 산문집을 냈다. 넬라 라슨의 장편소설 『패싱』으로 제 1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입니다.학기 말에 어수선하지요? 책을 안고 잔뜩 긴장한 얼굴로 강의실로 도서관으로 바쁘게 걸어가는 모습들이, 그립고 부럽네요.나팔꽃 이야기로
『생각이 너무 많은 서른 살에게』 저자. 정보디자인과를 1996년 졸업하고 디지틀조선일보와 CJ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했다. 미국 일리노이공대 디자인스쿨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시카고 모토로라, 샌디에고 퀄컴 등 미국 글로벌 기업에서 UX 디자이너로 일을 하다 한국으로 돌아와 삼성전자 원형 스마트워치 개발을 주도했다. 2018년부터 미국 실리콘 밸리의 구글 본사에서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스무 살의 나는 무서웠다. 집안을 발칵 뒤집고 선택한 디자인 전공이었다. 그런데 나의 미천한 디자인 감각과 실력을 알아채는 데 그리 오래 걸리
‘이번 학기는 피 터지는 수강신청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교환학생으로 선발되고 파견 학교를 배정받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매 학기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느라 머리를 싸매고, 수강신청 날짜만 다가오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나였기에 이번 교환 학기는 한편으로 수강신청으로부터의 해방이라 느껴졌다.이런 해방감은 실제로 수강신청을 해야 할 때가 다가오자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사라졌다. 미국 아이오와대의 수강신청이 한국만큼 치열하지 않다는 것은 파견보고서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방식이 달라서 닥치는 어려움은 미처
“교수님, 그렇게 하면 손해 보는 것 아니에요?”매 학기 꼭 한 번씩은 듣게 되는 질문이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분쟁과 관련된 기초적인 법률 지식을 전달하고 적절한 해결 방안을 함께 고민하는 교과목을 운영하면서, 학생들이 법률적인 대응만을 정답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예를 들어, 지난 1년 이상의 기간 동안 코로나 상황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많은 학생들이 층간소음을 일상생활에서 자주 경험하는 분쟁으로 언급하고 있다. 층간소음 문제로 고통 받고 있는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바람직한 해결 방안
최근 긴 여정을 잠시 멈추고 쉼표를 찍었다. 학기를 보내던 중 돌연 중도 휴학을 선언했다.그동안 생각했던 공부를 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그러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복학할 때 즈음에는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았다. 22년을 살면서 이루지 못한 걸 고작 한 학기 만에 이뤄낼 수 있을 거라는 어리석은 기대를 했다.휴학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강의를 듣는 대신 사람들을 만나는 것, 시험 기간에 대한 자각이 점점 옅어진다는 것. 그런 사소한 것들을 제외하면 모든 게
비건이 유행이란다. 과거 ‘채식주의’는 이효리나 이하늬 등 유명인의 ‘유별난 행보’로 언급될 뿐이었다. 채식주의 일종인 비건이 비로소 진지한 생활 형태로 다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2013년부터였다. “동물을 소비하지 마세요, 동물을 죽이지 마세요.” 꾸준히 공장식 축산업과 환경파괴 문제를 지적하고 그 존재감 을 알리더니 근 3년간은 ‘열풍’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한국채식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채식 인구가 2008년 15만 명에서 2018년 150만 명으로 약 10배 뛰었다고 하니 근거 없는 말은 아니다.그래서 비건은 이제 유별난
수동 필름 카메라를 쓰면 필름을 끼우고 처음 찍는 두세 장은 아예 안 나오거나 이런 식으로 덜 나온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다음 장면으로 쉽게 이전 장면을 잊는다. 그렇게 36장을 다 찍고 현상한 필름을 본다. 그제서야 내가 잡았지만 끝내 놓친 것을 회상한다.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도망간 수백 분의 1초를 그리워한다. 무엇이 찍히다 말았을까. 내가 뭘 보고 셔터를 눌렀더라. 36장을 빨리 채우면 기억이 나서 아쉽고, 느리게 채우면 기억이 안 나서 아쉽다. 36분의 1을 소비할 만큼 마음에 들었던 순간도 제대로 기록하지 않으면 쉽게 사
설치 및 개념미술가, 기획자, 작가로 활동 중인 시각예술가. 본교 조소과를 1997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주로 사회의 내재된 보편적 가치와 무의식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개인의 기억과 삶의 가치를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의문을 가지고 시각화하는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13회 송은미술대상전 대상과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작가상2019’ 후보로 선정된 바 있다. “내가 만일 내 인생의 전환기를 느낀다면 그것은 내가 얻은 바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잃은 그 무엇 때문이다.”(알베르 카뮈)사람들에겐 ‘인생
나에게 식사는 단순히 영양소를 섭취하는 것, 입의 즐거움 그 이상이다. 내게 식사는 내 정체성과 가치관의 일부이다. 1989년 미국의 페미니즘 미술가 바버라 크루거는 작품을 통해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 라고 말했다. 나는 시스젠더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여성으로서 나의 몸과 신체가 지니는 정치성에 대해서 인식한다. 그와 동시에 나는 비건으로서 나의 몸이 지니는 정치성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나는 햇수로 대략 4년가량 비거니즘을 지향했다. 처음에는 머뭇거려지는, 아니 사실 지금도 머뭇거려지는 ‘저 채식해요’라는 말. 나의 가장 큰 정체성
1일부터 코로나19와의 공존이 시작됐다. 정부가 높은 백신 접종률을 기반으로 코로나19와 일상의 공존, ‘위드코로나’를 시행했기 때문이다. 1일 5시를 기준으로 마스크 착용 의무화는 그대로지만 사적 모임은 백신 접종 여부와 상관없이 수도권은 10명, 비수도권은 12명까지 가능하다. 기념식이나 각종 행사, 집회의 경우도 접종 완료자로만 구성될 경우 500명 미만까지는 모일 수 있다. 하지만 위드코로나의 시행과 함께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와 위중증 환자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17일 0시 기준 신규 확진자는
말하고 싶은데 말할 자리가 없는 것만큼 슬픈 일도 없을 것이다. 공간을 허락받지 못한 시위대가 마이크를 놓고, 갈 곳 잃은 전단지가 비 맞고 울듯이 말이다. 그런데 참 우습게도, 이번 학기 학보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말할 공간이 있어도 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학보에는 정기적으로 부장이 글을 쓰는 ‘상록탑’이 있어, 이번 학기에는 2번 글 쓸 기회가 있었다. 본교 재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직원들까지 읽는 대학신문에 대표로 글을 낸다는 것은 뿌듯한 일이다. 특히 사진기자로서 학보에 내 ‘글’을 싣는 일은 드물고, 취재 내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