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목소리를 드릴게요오랫동안 유토피아(Utopia)를 생각했다. 우리에게 유토피아란 존재할까? 관념의 모습이든, 실재의 모습이든 유토피아의 존립 가능성과 건설 방식에 관해 고민했다. 이 글은 정세랑 작가 소설집 ‘목소리를 드릴게요’를 읽고 썼다.인간은 최초의 유토피아인 어머니의 포궁으로부터 세상이라는 디스토피아(Dystopia)로 추방된다. 따라서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으로의 회귀를 바란다. 살아있는 한 우리는 매 순간 죽음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멈춰서는 안 된다. 멈추는 순간 죽음이니 말이다. 인간의 탄생이 낙
3월29일 오후10시41분. 3번째로 도착한 편의점에서 1시간도 넘게 기다린 끝에 ‘포켓몬 빵’을 손에 넣었다. 1번째 편의점에선 벌써 매진이라 실패했고, 2번째 편의점은 오래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아예 팔지 않는다고 했다. 몇 시간씩 기다리기도 하고 없어서 못 사기도 하는 이 빵이 전국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맛있어서는 아니고 그 안에 ‘띠부띠부씰’이 들어있기 때문이다.유행에 따라 유튜브 등 SNS에서 포켓몬 빵 개봉기도 많이 보인다. 한 편의점에서 팔 수 있는 양을 2개로 제한하고 있는데도 영상 속에는 수많은 포켓몬 빵들이 있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대학보입니다.어느덧 4월이 됐습니다. 요즘은 날이 제법 풀려 가벼운 외투만으로 외출하는 날이 많아지고 있네요. 특히 활짝 만개한 꽃을 볼 때면 이유 없는 행복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평안한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이번 4월은 이대학보에게 유독 특별한 달이었습니다. 혹시 독자 여러분께서도 짐작하셨을까요? 바로 12면 발행이라는 다소 거창한 계획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소 이대학보는 주로 8면을 기준으로 발행을 기획합니다. 8면 기획을 위해서는 약 11편에서 13편, 많게는 14편까지 기
지난 1월, 프랑스 북부 도시 릴에 도착했다. 프랑스에서 생활하며 보고 겪은 중 가장 낯설게 느껴졌던 것은 ‘프랑스 타임’이라는 것. 이곳에서는 Quart d’heure de politesse, 15분의 예절라고도 하는 이 개념은 약속 시간보다 15분 정도 시간 여유를 두고 참석하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친구가 오후 7시에 집으로 초대했다면 적어도 7시15분 이후에 도착하는 것이 좋다. 사람들을 초대한 호스트에게 집을 정돈하고 음식을 준비할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준다는 의미에서다.실제로, 6시30분에 모이기로 약속한 날 나는 6시
그날은 자격증 시험 전날이었다. 대단한 건 아니었지만 두 달을 쏟은 공부였고 해당 분야의 ‘취준’을 위해서라면 으레 따고 간다는 자격증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입국 허용 소식을 들을 줄이야.불과 하루 전, 계속된 입국 금지에 더는 기다릴 수 없었던 막학기생은 눈물을 머금고 교환학생 파견 포기서를 냈다. 포기 각서를 낸 다음 날 새벽, 입국 금지가 풀렸다는 소설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일 년을 기다렸는데 고작 하루 차이로 운명이 바뀌었다. 타이밍이 참 얄궂었지만 나의 사정을 설명해도 예외는 없었다. 마침 공부하던 곳이 자유열람실이라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에 피티(PT), 필라테스와 같은 고비용의 운동 강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서양에서 들어온 이런 고비용 운동 강풍도 한국식으로 변환됐다는 것이다. 서양인들은 주로 자신의 건강을 위해 헬스를 하지만, 한국인들은 보여주기식의 운동을 한다는 점에서 한국식 패치가 붙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타인의 눈길을 신경 쓰는 국가다. 그래서 특정 행동을 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눈길을 의식해서 하는 사람들이 많다. 헬스장도 똑같다. 초반에 붐이 불 때에 비해서는 다양한 사
지금의 내 삶은 몇 챕터 정도에 와있을까? 새해가 시작되고 모두가 신년 목표를 외치던 연초가 얼마 안 지난 것 같지만, 벌써 올해의 3분의 1이 지났다. 나는 뭐든 쉽게 싫증나고 재밌어 보여 시작한 것도 익숙해지면 지루해한다. 매일같이 ‘지겨워’를 연발하기에 ‘분기’, ‘새해’, ‘학기’와 같은 경계선들은 반가운 상징이다. 이 경계선을 만나면 지금의 지루함을 떨쳐내고 새 시작을 할 수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경계선들은 새로움에 대한 설렘이었고, 설렘은 반복되는 일상을 이끌어나갈 원동력이 됐다. 이 원동력에 대한 갈망이 심화된 것
3월 21일 월요일, 학교 안에서 빈티지 의류 마켓이 열렸다. 학생문화관과 같은 스튜던트유니온(Student Union) 건물 2층에 올라가니 후드티부터 가죽 재킷, 알록달록한 셔츠, 청바지 등 다양한 중고 옷들이 걸려있었다. 학생들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건지기 위해 이것저것 대보며 옷을 살펴보고 있었다.학교 안에 빈티지 의류 마켓이라니! 한국에선 볼 수 없는 생소한 광경이 꽤 신기했다. 사실 영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중고 의류 매장(second hands clothing shop)이나 자선중고품 가게(charity shop)를
영화 모가디슈에서의 깻잎반찬과 온라인상의 깻잎논쟁. 공감의 힘과 깻잎 떼어주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아하겠지만 이 장면이야말로 공감의 상황이 잘 반영된 사례이다. 영화에서는 마주앉은 상대방이 깻잎을 떼어내기가 어려운 것을 알고 그 난감한 느낌을 교감한 후 그 상황을 빨리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행동으로 나타난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그런 상황이었다면 얼마나 난감했을지 상대방과 똑같이 느낄 수 있었기에 그런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영화를 감상하고 있던 우리도 비슷하게 그 감정을 느꼈다. 이것이 공감이다. 반면 깻잎논쟁에서는 공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대학보입니다.캠퍼스 곳곳에서 파릇한 봄의 정취를 조금씩 엿볼 수 있는 가운데, 이대학보도 어느덧 3월의 마지막 발행을 하게 됐네요. 매주 한 호수의 신문을 만들기 위해 쉼 없이 달려가는 여정 속에서, 문득 ‘이걸 읽게 될 분들은 어떤 사람들일까’하는 막연한 궁금증이 생기곤 합니다. 오프라인에서 독자분들을 만나 뵙기 어려운 지금, 배포대에 놓인 신문이 줄어들고 이대학보 홈페이지 기사의 조회수가 늘어나는 걸 보면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학보를 챙겨 읽고 있는 중’이라는 걸 깨닫고는 안도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거울 속의 얼굴과 사진 속의 얼굴은 꽤 다르다. 거울은 좌우가 바뀌고 사진은 렌즈에 의한 왜곡이 생긴다. 결국 두 얼굴은 눈으로 보이는 ‘진짜 얼굴’과도 다르며 우리는 자기 얼굴도 모르고 살아간다. 얼굴처럼 스스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특권과 특혜가 그렇다. 특권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처럼 존재하기 때문에 그 정체를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대학에 가면 시야가 넓어진다고 한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지방에서 온 친구들이 생기고 다양한 꿈과 목표들을 만났다. 누구는 로스쿨에 진학하고 싶다고 했고
대한민국의 유리천장은 아직도 굳건하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Economist)가 매년 발표하는 ‘유리천장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들의 직장 내 여성 차별 수준을 나타낸 것이다. 성별 간 임금 차이, 경제활동 참여율, 의회 및 관리직 내 여성 비율 등 10가지의 지표를 통해 산출한다. 2021년 유리천장지수에서 한국은 조사 대상 29개국 가운데 29위를 기록했다. 10년 연속 최하위권이다. 순위가 낮을수록 직장 내 여성 차별이 심하다는 뜻이다.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4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더 이상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대학보입니다.새학기가 시작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주가 지났습니다. 어느새 몇몇 수업들은 과제와 발표 공지가 이뤄지고 있는 것을 보면 시간이 참 빨리 가는 것 같네요. 독자 여러분께서도 학교 생활에 무탈히 적응 중이시겠지요? 모두들 모쪼록 새학기의 첫 단추를 잘 꿰고 계시길 바랍니다. 영영 안전할 것만 같았던 학보실에 지난 주 코로나 이슈가 발생했습니다. 학보 구성원 중 확진자와 유증상자가 생긴 것입니다. 이내 대면으로 작업을 계속 진행해도 되는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습니다.사실 요즘에는 화상회의 프
“네 이름을 기억해.”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중 등장하는 대사다. 여기서 이름은 정체성을 의미하며, 이 대사는 곧 ‘네 자신이 누구인지 잊지 말라’는 뜻을 함축한다. 독일 헤센 주에 위치한 작은 대학 도시 마르부르크에서 일 년간 유학 생활을 시작한 나는, 스스로에게 ‘나를 잊지 말자’는 일종의 임무를 부여했다. 2월의 마지막 날 이곳에 도착했고, 길었던 오리엔테이션 기간도 끝이 났다. 일주일 동안 오전에는 비대면 프로그램에 참여해 학교에 대한 각종 정보를 전달 받았고, 저녁에는 펍(Pub)에서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며
마음산책 출판사 대표. 본교 정치외교학과를 1985년 졸업했다. 1985년 편집자로 출판계에 입문해 2000년 마음산책을 창업하고 한결같이 출판인의 길을 걷고 있다. 1992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했고 2019년 올해의 출판인 본상을 받았다. 시집 『비밀을 사랑한 이유』, 『나만의 것』, 책 만들며 사는 삶에서 정리한 인문서 『편집자 분투기』, 『책 사용법』, 마음산책 스무 살에 스무 문인과 이야기를 나눈 인터뷰집 『스무 해의 폴짝』 등을 출간했다.아침의 루틴이 된 시집 펼치기를 고백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읽는다기보다 거의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5일 한 방송사는 "특히 총기가 부족한 상황인 우크라이나가 우리 정부에 소총 수만 정 원조를 요청했지만, 정부가 고심 끝에 지원할 수 없다고 답했다"라는 내용을 보도했다. 이에 국방부는 "정해진 것은 없다"라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그리고 7일, 국방부는 정례브리핑을 통해 살상 무기를 지원하는 것은 어렵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15일에는 지원 품목을 개인용 응급처치키트, 의약품 등 '의무물자'와 천막, 전투식량, 방탄 헬멧 등의 '비무기체계 군수물자'로 결정했
주중에는 애플에서 일하고 주말엔 강원 금진해변에서 서핑을 한다. (직무와 업무에 관한 내용은 애플의 사내 규정 상 공개할 수 없어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부탁드린다.)평균 학점 3.0이 안 되는 문과생이 어쩌다 IT 업계에 7년째 몸을 담고 있다. 이 파도, 저 파도, 내 앞에 닥쳐온 파도를 타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나는 경영학 전공도, 공학 전공도 아닌 인문학도다. 입학식은 귀찮아서 자체 생략했고, 대학에서는 가슴 뛰는 강의를 들어야 한다는 낭만을 고수하며 관심 있는 수업만 골라 들었다. 학교생활보다 경제 활동에 더 열심이었고,
“네가 착한 줄 알았는데 내 예상과 벗어나는 행동을 해서 놀랐어.”2021년 초, 연예계에 가스라이팅 논란이 일며 가스라이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인식이 높아졌다.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조작해 타인이 자신을 의심해보게 만들고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려는 정서적 학대이며 모든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행위이다.가스라이팅 용어의 기원이 된 것은 연극 이다. 이 연극에서는 ‘잭’이라는 남성이 자신이 살고 있던 집 위층의 보석을 훔치고자 가스등을 켠다. 집끼리 가스등을 나눠 쓰는 상태였기에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