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신가요? 그럼 무료입니다.”흔히 유럽으로의 교환학생 파견을 생각하면 비용이 많이 들 거로 생각한다. 나 역시 한국을 떠나오기 전 비용 걱정이 많았다. 매 학기 조금씩 돈을 모았고, 직전 학기 인턴을 하며 경비를 끌어모았다. 그러나 독일에 온 지 한 달이 넘은 지금, 누군가 지갑 사정 괜찮으냐고 물어본다면 “생각보다 괜찮다”고 답한다. 이곳에서 나는 바로 학생이기 때문이다.초반에는 독일에서 학생이란 신분이 마치 벼슬이라도 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학생증은 프리패스 입장권과 같다. 학생증만 내밀면 미술관, 박물관은 물론 심
2020년 3월 이후 2년 만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되었다. 언론에서는 ‘일상으로의 회귀’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쏟아내고 있지만, 문득 우리의 일상이 과연 2020년 이전의 그것과 동일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코로나 이후의 일상은 그 이전의 일상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을 띠고 있을 까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날의 꽃잎이 흩날리는 대학 캠퍼스를 오가는 학생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흔적을 까맣게 잊게 만든다. ‘청춘’이라는 단어는 어느 시기에나, 어떤 상황에서도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런데 과연 당사자인 청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2004년부터 본교 국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통일준비위원회 전문위원, 청와대 안보실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고, 2019년 민간통일운동에 이바지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현재 중앙일보 독자위원회 위원, (사)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 민화협 정책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고 (사)한국국제정치회장(2023년)으로 선출됐다. 2021년부터 본교 총무처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한국형 발전모델의 대외관계사』(편저), 『탈냉전사의 인식』(편저) 등이 있다.“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
본교에서 정치외교학과 동아시아학을 전공하고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창원대 사회과학연구소에서 한국과 대만의 이주배경 청소년을 비교 연구하며 대학과 초·중·고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공저로 『민간중국: 21세기 중국인의 조각보』, 『문턱의 청년들: 한국과 중국, 마주침의 현장』을 썼다.“선생님, 다문화 교육 시간은 그냥 자는 시간이에요. 너무 힘들게 가르치지 않으셔도 되어요.”코로나19가 잠깐 주춤하던 어느 날의 고등학교 교실이었다. 문화인류학을 전공하는 인류학자로서 나는 대학에서 ‘문화’를 가르치기도 하지
누군가 우연히 마주한 부모님의 젊은 시절 연애 편지. 그런 걸 찍어 올리면 SNS 상에서 늘 화젯거리가 된다. 소소하지만 아름다운 문장과 사랑 가득 담긴 단어들은 지난 시대의 표상처럼 남아 가슴을 울리기 때문이다.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나의 경우는 엄마가 대학생이던 때 썼던 일기장이었다. 소박한 생김의 그 노트에는 짧게 적은 시구, 친구들과 나눈 필담이 빼곡했다. 스물 몇 살 일상의 기록인데도 마치 문학책을 보는 듯 어휘가 풍부했고 뾰족한 구석이 없어 기분 좋게 술술 읽혔다. 엄마의 일기를 보던 나는 인터넷에서 누군가의 부모님이
1월27일 기업에서 사망사고 등 중대한 인명 피해를 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한다는 내용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이에 따라 산업현장에서 1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는 최대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더불어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거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할 경우에도 사업주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법이
소설/목소리를 드릴게요오랫동안 유토피아(Utopia)를 생각했다. 우리에게 유토피아란 존재할까? 관념의 모습이든, 실재의 모습이든 유토피아의 존립 가능성과 건설 방식에 관해 고민했다. 이 글은 정세랑 작가 소설집 ‘목소리를 드릴게요’를 읽고 썼다.인간은 최초의 유토피아인 어머니의 포궁으로부터 세상이라는 디스토피아(Dystopia)로 추방된다. 따라서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으로의 회귀를 바란다. 살아있는 한 우리는 매 순간 죽음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멈춰서는 안 된다. 멈추는 순간 죽음이니 말이다. 인간의 탄생이 낙
3월29일 오후10시41분. 3번째로 도착한 편의점에서 1시간도 넘게 기다린 끝에 ‘포켓몬 빵’을 손에 넣었다. 1번째 편의점에선 벌써 매진이라 실패했고, 2번째 편의점은 오래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아예 팔지 않는다고 했다. 몇 시간씩 기다리기도 하고 없어서 못 사기도 하는 이 빵이 전국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맛있어서는 아니고 그 안에 ‘띠부띠부씰’이 들어있기 때문이다.유행에 따라 유튜브 등 SNS에서 포켓몬 빵 개봉기도 많이 보인다. 한 편의점에서 팔 수 있는 양을 2개로 제한하고 있는데도 영상 속에는 수많은 포켓몬 빵들이 있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대학보입니다.어느덧 4월이 됐습니다. 요즘은 날이 제법 풀려 가벼운 외투만으로 외출하는 날이 많아지고 있네요. 특히 활짝 만개한 꽃을 볼 때면 이유 없는 행복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평안한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이번 4월은 이대학보에게 유독 특별한 달이었습니다. 혹시 독자 여러분께서도 짐작하셨을까요? 바로 12면 발행이라는 다소 거창한 계획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소 이대학보는 주로 8면을 기준으로 발행을 기획합니다. 8면 기획을 위해서는 약 11편에서 13편, 많게는 14편까지 기
지난 1월, 프랑스 북부 도시 릴에 도착했다. 프랑스에서 생활하며 보고 겪은 중 가장 낯설게 느껴졌던 것은 ‘프랑스 타임’이라는 것. 이곳에서는 Quart d’heure de politesse, 15분의 예절라고도 하는 이 개념은 약속 시간보다 15분 정도 시간 여유를 두고 참석하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친구가 오후 7시에 집으로 초대했다면 적어도 7시15분 이후에 도착하는 것이 좋다. 사람들을 초대한 호스트에게 집을 정돈하고 음식을 준비할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준다는 의미에서다.실제로, 6시30분에 모이기로 약속한 날 나는 6시
그날은 자격증 시험 전날이었다. 대단한 건 아니었지만 두 달을 쏟은 공부였고 해당 분야의 ‘취준’을 위해서라면 으레 따고 간다는 자격증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입국 허용 소식을 들을 줄이야.불과 하루 전, 계속된 입국 금지에 더는 기다릴 수 없었던 막학기생은 눈물을 머금고 교환학생 파견 포기서를 냈다. 포기 각서를 낸 다음 날 새벽, 입국 금지가 풀렸다는 소설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일 년을 기다렸는데 고작 하루 차이로 운명이 바뀌었다. 타이밍이 참 얄궂었지만 나의 사정을 설명해도 예외는 없었다. 마침 공부하던 곳이 자유열람실이라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에 피티(PT), 필라테스와 같은 고비용의 운동 강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서양에서 들어온 이런 고비용 운동 강풍도 한국식으로 변환됐다는 것이다. 서양인들은 주로 자신의 건강을 위해 헬스를 하지만, 한국인들은 보여주기식의 운동을 한다는 점에서 한국식 패치가 붙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타인의 눈길을 신경 쓰는 국가다. 그래서 특정 행동을 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눈길을 의식해서 하는 사람들이 많다. 헬스장도 똑같다. 초반에 붐이 불 때에 비해서는 다양한 사
지금의 내 삶은 몇 챕터 정도에 와있을까? 새해가 시작되고 모두가 신년 목표를 외치던 연초가 얼마 안 지난 것 같지만, 벌써 올해의 3분의 1이 지났다. 나는 뭐든 쉽게 싫증나고 재밌어 보여 시작한 것도 익숙해지면 지루해한다. 매일같이 ‘지겨워’를 연발하기에 ‘분기’, ‘새해’, ‘학기’와 같은 경계선들은 반가운 상징이다. 이 경계선을 만나면 지금의 지루함을 떨쳐내고 새 시작을 할 수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경계선들은 새로움에 대한 설렘이었고, 설렘은 반복되는 일상을 이끌어나갈 원동력이 됐다. 이 원동력에 대한 갈망이 심화된 것
3월 21일 월요일, 학교 안에서 빈티지 의류 마켓이 열렸다. 학생문화관과 같은 스튜던트유니온(Student Union) 건물 2층에 올라가니 후드티부터 가죽 재킷, 알록달록한 셔츠, 청바지 등 다양한 중고 옷들이 걸려있었다. 학생들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건지기 위해 이것저것 대보며 옷을 살펴보고 있었다.학교 안에 빈티지 의류 마켓이라니! 한국에선 볼 수 없는 생소한 광경이 꽤 신기했다. 사실 영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중고 의류 매장(second hands clothing shop)이나 자선중고품 가게(charity shop)를
영화 모가디슈에서의 깻잎반찬과 온라인상의 깻잎논쟁. 공감의 힘과 깻잎 떼어주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아하겠지만 이 장면이야말로 공감의 상황이 잘 반영된 사례이다. 영화에서는 마주앉은 상대방이 깻잎을 떼어내기가 어려운 것을 알고 그 난감한 느낌을 교감한 후 그 상황을 빨리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행동으로 나타난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그런 상황이었다면 얼마나 난감했을지 상대방과 똑같이 느낄 수 있었기에 그런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영화를 감상하고 있던 우리도 비슷하게 그 감정을 느꼈다. 이것이 공감이다. 반면 깻잎논쟁에서는 공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대학보입니다.캠퍼스 곳곳에서 파릇한 봄의 정취를 조금씩 엿볼 수 있는 가운데, 이대학보도 어느덧 3월의 마지막 발행을 하게 됐네요. 매주 한 호수의 신문을 만들기 위해 쉼 없이 달려가는 여정 속에서, 문득 ‘이걸 읽게 될 분들은 어떤 사람들일까’하는 막연한 궁금증이 생기곤 합니다. 오프라인에서 독자분들을 만나 뵙기 어려운 지금, 배포대에 놓인 신문이 줄어들고 이대학보 홈페이지 기사의 조회수가 늘어나는 걸 보면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학보를 챙겨 읽고 있는 중’이라는 걸 깨닫고는 안도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거울 속의 얼굴과 사진 속의 얼굴은 꽤 다르다. 거울은 좌우가 바뀌고 사진은 렌즈에 의한 왜곡이 생긴다. 결국 두 얼굴은 눈으로 보이는 ‘진짜 얼굴’과도 다르며 우리는 자기 얼굴도 모르고 살아간다. 얼굴처럼 스스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특권과 특혜가 그렇다. 특권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처럼 존재하기 때문에 그 정체를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대학에 가면 시야가 넓어진다고 한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지방에서 온 친구들이 생기고 다양한 꿈과 목표들을 만났다. 누구는 로스쿨에 진학하고 싶다고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