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파친코(2022)“이 이야기는 여성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견뎌냈다. ”2022년 제작비 약 1000억 원의 블록버스터 드라마 의 마지막 대사는 8부작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된다. 이 대사는 ‘여성’이라는 부분과 ‘견뎌냈다’에서 잔잔한 울림을 주게 된다.는 식민지 시절부터 20세기 말까지, 한민족이 겪었던 디아스포라를 4대에 걸친 한 가족의 일대기로 풀어낸다. 중심인물 ‘선자’의 어린 시절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모습을, 일본으로 건너간 이후에는 일제 강점기 재일 교포들의 생활을, 손자 솔로몬의 일화를 통해
“올겨울에는 아무나 사랑할 거야. 정말 아무나.” 최근 즐겨 보고 있는 드라마 속 염기정 캐릭터가 연신 내뱉는 대사이다. 나의 경우를 한번 생각해봤다. ‘나는 정말 아무나 사랑할 수 있을까?’애석하게도 나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최근의 연애 경험을 통해서 깨달았다. 성인이 되고 나서 제대로 된 연애는 처음이었기에 모든 감정이 어색했다. 만난 지 세 번째 되던 날, ‘이쯤이면 고백할 타이밍인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한 치의 오차 없이 상대방은 사귀자고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처음에는 내가 상대를 좋아하는지도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유명한 이 문장을 나는 대학에 들어와서 온몸으로 느끼는 중이다. 수업 시간표 짜기부터 각종 동아리, 대외 활동 지원, 복수 전공 선택까지. 혼자서 결정해야 할 사안이 너무도 많다. 학기 시간표를 짤 때면 나는 한 과목에 대해 수업 시간, 과제 유무, 시험 일정, 수강신청 경쟁률, 전체적인 밸런스 등 최소 네다섯 가지 고려사항을 검토한다. 그러다 시간표 짜기에 지쳐 막판에 결국 선택하는 것은 ‘무난한 경쟁률과 무난한 수업 일정’을 갖춘 과목이다. 오히려 이런 것보다 중요한, 수업의 내용은 뒷전이 되고 마는 것
일주일 전, 러시아에서 온 교환학생 친구 줄리(Julia)와 쇼핑을 하러 인근 도시 뒤셀도르프로 가는 기차를 타고 있을 때였다. 우리는 어떤 숍에 들러야 할지 열심히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줄리에게 낯선 아주머니 두 분이 다가왔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러시아어처럼 들렸다. 아주머니는 러시아 문자로 주소가 적힌 종이를 줄리에게 내밀며 한참을 이야기했다. 아주머니 뒤에는 5세쯤 된 것 같은 남자아이가 보였다.아주머니와 약 5분간의 대화를 마친 뒤 줄리가 상황을 설명해줬다. 아주머니 일행은 우크라이나 전쟁 피란민이
코로나19 상황이 많이 진정되고 엔데믹을 운운하는 시점, 한동안 미뤄 두었던 인사동 고서점을 방문하였다. 온 세상이 신종 바이러스와 씨름하는 동안 고서들은 제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었던 듯… 고서가 뿜어내는 꿉꿉하지만 은은한 옛것의 냄새가 반가움, 설레임 등과 섞여 뭔지 모를 미묘한 감정으로 다가왔다. 새로 들어온 고서들을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5-60년대 여성백과사전을 발견하고는 착한 가격에 챙겨 나왔다. 고서점을 나와 종로통으로 향한 나는 신촌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대신 길을 건너 동대문 쪽으로 발길을 돌려보기로 했다. 동묘,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대학보입니다.방학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험 기간도 아직은 아니고, 봄이라기엔 덥지만 여름이라기엔 아직은 좀 이른 듯한 요즘입니다. 지극히도 평범한 날들인 것 같지만 이대학보 구성원들에겐 나름 큰 의미가 있는 이번 주인데요. 이대학보는 이번에 발행되는 1642호를 끝으로 올해 1학기 발행 일정을 마칩니다. 이번 학기 열 번의 발행을 마치고 열한 번째 신문 제작의 막바지 과정에 있는 지금, 시간이 언제 이리 흐른 건지도 모를 만큼 바삐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되네요.매주 똑같은 과정을 거쳐 탄생하는 신문이지
오락적 콘텐츠로 주목과 비판을 동시에 받은 ‘오징어 게임’ 열풍이 분 지 반 년 가까이 지났다. 각종 패러디와 코스튬으로 일상 곳곳에서 일명 ‘오겜 열풍’을 볼 수 있었다. 서서히 흔적이 사라지던 중, 나는 뜻밖의 곳에서 ‘오징어 게임’의 흔적을 찾았다.나는 매주 세 번 초등학생 방과 후 돌봄 기관인 키움센터에서 아동 돌봄 교육을 한다. 센터에는 주로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있고, 아이들은 자유시간이 되면 보드게임을 하거나 술래잡기 놀이, 혹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무궁화 게임) 놀이를 하곤 한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자유시
17일 오후1시18분. 부쩍 더워진 날씨에 나무 그늘을 찾다가 교내에서 텃밭을 발견했다. ‘밟지 마시오’라는 지킴이 표지판 옆에, 얼마 전 심은 듯 파릇파릇한 잎이 올라오고 있었다. 새싹을 감싸고 있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검정 비닐이 아닌 신문. ‘혐오·차별 청산하고 포용의 정치 펼쳐라’라는 제목의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바를 시민에게 물어 적은 기사였다. 재배 시 경작지의 흙을 덮는 자재를 멀치(mulch)라고 한다. 멀치는 토양의 침식을 막아주고, 수분을 유지하며, 땅의 온도를 조절하고, 잡초가 자라는 것을 막아주는 등 다양한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대학보입니다.몇 번이나 문장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니 어느새 동이 트고 있습니다. 이대학보의 일원으로 한솥밥을 먹은 지도 벌써 3학기째, 새벽 작업이 일상화되다 보니 이젠 낮보다 밤에 더 바쁜 사람이 됐습니다.어느새 이대학보는 이번 학기의 마지막 발행을 코앞에 두고 있는데요. 이번 호수를 제외하면 이제 한 호의 기사만이 남아있는 상황입니다. 한 회차의 발행을 끝마치면 이제 저 역시도 ‘이대학보를 만드는 사람’에서 ‘이대학보를 읽는 사람’으로 돌아가겠지요.그동안 독자 여러분께서는 학보를 어떻게 읽으셨나요.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나 예능 프로그램 ‘고딩엄빠’에서 공통적으로 10대 미혼모, 미혼부를 주요 소재로 다루고 있다. 과거에는 10대가 임신했다는 단편적인 사실 자체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최근에는 출산 이후 이들이 삶과 인간관계에서 어떤 변화를 겪는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이런 양상에 대해 어린 나이에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라며 긍정적인 반응도 있으나, 일각에서는 10대들의 임신, 육아를 미화하는 것이라며 ‘새 생명’이라는 명목 하에 감동적인 부분만 부각한다는 우려와 비판도 나오고 있다. 10대 임신이 미디어
영국에 가기 전 친구들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오징어게임 꼭 보고, 방탄소년단 노래를 많이 숙지하고 가.”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K-POP)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다는 뉴스에 장난 반 진담 반으로 한 말이었다.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의 팬은 아닌 터라 조언을 성실히 따르지는 못했지만, 예의상 방탄소년단의 멤버 이름은 외운 후 영국으로 떠났다.교환학생으로 온 곳은 프레스턴(Preston)이라는 영국 북부의 작은 도시다. 시내는 20분 정도면 모두 돌아볼 수 있고 학생들이 놀러 나가는 곳은 대부분 펍과 클럽 몇 군데 정도인 곳이기에
본교 영어영문학과를 1994년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언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디자인하우스에서 잡지 ‘행복이 가득한 집’ ‘럭셔리’ 편집장을 거쳐 현재 부사장직으로 일하고 있다. 호프 자런의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레이첼 카슨이 쓴 『침묵의 봄』을 비롯해 30여 권을 번역했다. 쓴 책으로 『밥보다 책』 『바보들은 항상 여자 탓만 한다』 『비즈 라이팅』 등이 있다.책은 읽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사 놓고 생각나면 읽는 것이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수많은 책이 새로 발행되다 보니 엄청난 기대를 받는 베스트셀러 후보
직장 생활 6년, 스타트업 대표 5년 차. 본교 건축학과를 2013년 졸업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하면서 건축 공간이 가진 힘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현재 건축 여행 서비스 아키베어를 운영 중이다.졸업장을 받기도 전에 취직했다. 건축학과라는 이유만으로 당연한 듯 대형 설계사무소의 공채를 꿈꿨고, 합격했다. 흔히 말하는 건축학과 졸업 후의 ‘정석’의 길이었다.물론 처음 건축학과를 선택하고 나서는 많은 새내기들과 같았다. 이 길이 맞나 싶었다. 수시로 다양한 활동을 해보며 진로를 의심하고 검증해나갔다. 과연 이 분야가 적성에 맞
생일만큼 부담스러운 날이 또 있을까? 새벽 12시가 되는 순간, 안 보려고 노력하던 핸드폰이 저절로 보기 싫어진다. ‘연락이 왔을까 안 왔을까. 연락이 하나도 없으면 어떻게 하지?’ 등등 걱정이 앞선다. 왜냐하면 생일은 지난 1년 동안 내가 얼마나 주위 사람들에게 베풀었나 검증받는 날이기 때문이다. 애써 외면하다 핸드폰을 집어 잠금화면을 열어보았을 때도 문제다. 주변 사람들의 축하 연락을 읽어버리면, 편지 같은 답장을 줄줄이 써서 보내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선물에도 쇼호스트 같은 반응이 답장에 깃들어있어야 한다. 이렇게 연락이
4월 개강 전 캠퍼스를 거닐 때였다. 학교 중앙광장에서 처음 보는 모양의 큰 라켓을 든 학생들이 공을 주고받는 모습을 봤다. 무엇인지 궁금해져 가보니, ‘라크로스’라는 스포츠 강좌를 듣는 학생들이 코스 홍보를 위해 부스를 연 상황이었다.라크로스는 ‘크로스’라 불리는 라켓으로 경기하는 구기 종목이다. 난생처음 접하는 운동이라 어색했지만 그것도 잠시, 내 키만 한 라켓을 들고 처음 보는 친구들과 땀 흘리며 공을 주고받는 순간 몸에 활기가 돌았다. 그렇게 1시간을 움직였고, 체험 부스에 있던 학생들은 대학 스포츠 센터 안내 책자를 건넸다
영화/산딸기(1957)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던가. 키르케고르의 명언을 곱씹으며 우리는 삶을 돌아본다. 사람은 언제 절망하는가? 노력이 좌절되었을 때, 혹은 사랑이 떠났을 때? 이런 사건은 우리에게 슬픔을 안겨주지만, 절망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삶을 흑백으로 만드는 냉담한 마음이야말로 절망의 친구다. 그 마음은 결국 타인뿐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옥죄는 사슬이 된다. 여기 한 노인이 있다. 의학자로서 평생 명망을 떨치고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다. 아름다운 아내와 장성한 아들까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외롭다. 매사에
소비는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제한된 소득으로 가장 큰 만족을 얻기 위한 경제적 행위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소비는 욕망과 취향, 나아가 문화자본의 획득을 둘러싼 투쟁으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가로지르며 한 사회의 문화적 가치나 권력구조 등이 반영된 사회문화적 행위이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젠더와 소비 이슈가 첨예하게 얽혀 있는 것도 이를 잘 보여준다.역사적으로 여성은 생산영역에서 배제되어 온 만큼이나 소비영역에서도 왜곡된 시선에 시달려 왔다. 1990년 중반 처음 등장한 ‘된장녀’는 이후 ‘신상녀’, ‘명품녀’, ‘귀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대학보입니다.본격적으로 더워지기 전, 봄의 마지막 기운을 만끽하고 싶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네요. 가만히 잔디밭에 누워 가벼운 바람을 맞으며 풀내음을 실컷 맡고 싶은 요즘입니다. 실외에서 마스크를 벗고 다닐 수 있게 된 지 벌써 2주 정도가 지났지만, 얼굴에 직접 닿는 상쾌한 공기가 아직은 조금 어색하기도 하네요. 독자 여러분은 늦봄의 공기를 어떤 방식으로 맞이하고 계신지 새삼 궁금해집니다.매 학기 이맘때쯤이면, 다시 말해 종강하기 전 달의 중순쯤이면 이대학보는 새로운 구성원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이번
나는 도덕성의 기준이 불쾌감에 있다고 믿는다. 이런 관점에서 ‘잘’ 나온 사진은 사람에게 불쾌감이 아닌 쾌감을 선사하는 사진이다. 사진을 찍은 사람, 사진에 찍힌 사람, 또 사진을 보는 사람이 긍정적인 느낌을 받을 때 그 사진이 ‘좋은 사진’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보도사진을 찍다 보면 이 명쾌한 기준에 의문이 생긴다.사진기자는 사진으로 사실을 왜곡 없이 전달할 의무를 갖는다. 사진을 사실과 다르게 조작해서는 안 된다. 이 원칙은 누가 봐도 당연하게 느껴질 것이다. 가끔 이 당연한 원칙이 딜레마를 안겨주는 상황이 있다. 인물사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