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가디슈에서의 깻잎반찬과 온라인상의 깻잎논쟁. 공감의 힘과 깻잎 떼어주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아하겠지만 이 장면이야말로 공감의 상황이 잘 반영된 사례이다. 영화에서는 마주앉은 상대방이 깻잎을 떼어내기가 어려운 것을 알고 그 난감한 느낌을 교감한 후 그 상황을 빨리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행동으로 나타난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그런 상황이었다면 얼마나 난감했을지 상대방과 똑같이 느낄 수 있었기에 그런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영화를 감상하고 있던 우리도 비슷하게 그 감정을 느꼈다. 이것이 공감이다. 반면 깻잎논쟁에서는 공
“네 이름을 기억해.”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중 등장하는 대사다. 여기서 이름은 정체성을 의미하며, 이 대사는 곧 ‘네 자신이 누구인지 잊지 말라’는 뜻을 함축한다. 독일 헤센 주에 위치한 작은 대학 도시 마르부르크에서 일 년간 유학 생활을 시작한 나는, 스스로에게 ‘나를 잊지 말자’는 일종의 임무를 부여했다. 2월의 마지막 날 이곳에 도착했고, 길었던 오리엔테이션 기간도 끝이 났다. 일주일 동안 오전에는 비대면 프로그램에 참여해 학교에 대한 각종 정보를 전달 받았고, 저녁에는 펍(Pub)에서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며
마음산책 출판사 대표. 본교 정치외교학과를 1985년 졸업했다. 1985년 편집자로 출판계에 입문해 2000년 마음산책을 창업하고 한결같이 출판인의 길을 걷고 있다. 1992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했고 2019년 올해의 출판인 본상을 받았다. 시집 『비밀을 사랑한 이유』, 『나만의 것』, 책 만들며 사는 삶에서 정리한 인문서 『편집자 분투기』, 『책 사용법』, 마음산책 스무 살에 스무 문인과 이야기를 나눈 인터뷰집 『스무 해의 폴짝』 등을 출간했다.아침의 루틴이 된 시집 펼치기를 고백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읽는다기보다 거의
주중에는 애플에서 일하고 주말엔 강원 금진해변에서 서핑을 한다. (직무와 업무에 관한 내용은 애플의 사내 규정 상 공개할 수 없어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부탁드린다.)평균 학점 3.0이 안 되는 문과생이 어쩌다 IT 업계에 7년째 몸을 담고 있다. 이 파도, 저 파도, 내 앞에 닥쳐온 파도를 타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나는 경영학 전공도, 공학 전공도 아닌 인문학도다. 입학식은 귀찮아서 자체 생략했고, 대학에서는 가슴 뛰는 강의를 들어야 한다는 낭만을 고수하며 관심 있는 수업만 골라 들었다. 학교생활보다 경제 활동에 더 열심이었고,
“네가 착한 줄 알았는데 내 예상과 벗어나는 행동을 해서 놀랐어.”2021년 초, 연예계에 가스라이팅 논란이 일며 가스라이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인식이 높아졌다.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조작해 타인이 자신을 의심해보게 만들고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려는 정서적 학대이며 모든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행위이다.가스라이팅 용어의 기원이 된 것은 연극 이다. 이 연극에서는 ‘잭’이라는 남성이 자신이 살고 있던 집 위층의 보석을 훔치고자 가스등을 켠다. 집끼리 가스등을 나눠 쓰는 상태였기에 이
램프를 만지면 소원을 들어주는 요술램프 지니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라비안나이트의 천일야화를 바탕으로 하는 ‘알라딘은 인도의 사회 제도와 구전을 반영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1992년에 최초로 개봉된 후 27년 만에 리메이크를 통해 다시 선보인 ‘알라딘’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이전과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살펴보자.알라딘에서는 신분을 기준으로 등장인물이 네 부류로 나누어지는데 천민, 왕족, 귀족, 노예로 구분된다. 이는 작품이 인도를 배경으로 창작되었기 때문이다. 인도는 여전히 관습적으로 신분 제도가 만연하고
오랜 기간 드라마 입문 수업에서 비극의 전범인 을 학생들과 함께 읽었지만 테베에 퍼진 전염병은 플롯의 ‘발단’일 뿐 수업의 중심 주제가 되지 못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의 공포가 극에 달했던 2020년 봄 학기, 작품 초반에 나오는 역병에 대한 생생하고 구체적인 묘사가 문학적 은유가 아닌 체험적 사실로 읽혀지기 시작했다. 소포클레스가 이 극을 집필한 기원전 430년 경 아테네는 전쟁과 역병이라는 이중의 재난 속에 허덕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인구의 사분의 일의 목숨을 앗아간 역병은 신화 속 사건도, 문학적 상징
영국에 도착한 지 일주일쯤 되었던 날, 설레는 마음을 안고 학교 근처에 있는 펍(Pub)에 처음으로 술을 마시러 나갔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에 분홍색, 파란색 등의 색조명이 벽에 쏘아져 있는 펍에서는 술이 마른 퀴퀴한 냄새가 났다. 설렘 반 긴장 반의 마음으로 기숙사 플랫 메이트 에밀리(Emily)와 함께 테이블에 앉아있는데 에밀리의 친구가 다가와서 말했다. “나 어제 스파이크 당했어(I got spiked yesterday).”처음 들어본 단어에 어리둥절했다. ‘뭔가에 찔렸다는 뜻인가’ 하며 혼자 뜻을 유추해 보기도 했다.
2011년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 기자로 입사. 경제부, 사회부를 거쳐 현재 연합뉴스TV 정치부에서 여당 취재를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윤석열 후보는 왜 크로마를 안 찍는 거야?”대선 D-10 저녁, 동생이 내게 물었다. 놀라서 되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대수롭지 않은 듯 짧은 답이 돌아온다. “응, 유튜브.”초록색 배경을 깔고 인물을 촬영하는 크로마키는 대선 개표방송의 토대다. 이걸 찍어야 화려한 그래픽을 입혀 후보들이 뛰고, 날고, 겨루는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 ‘약 빨고 만들었느냐’는 반응은 큰 칭찬이다. 우리 회사
미국에 온 지 한 달 남짓 지났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짧은 시간에 너무나도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으면서도 모순적이게도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은 상대적이라고들 하지 않나.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미국에 도착하고 일주일이 되어가던 때가 생각이 난다. 도착하자마자 이틀 만에 개강했던 터라 적응 기간도 채 가지지 못하고 이곳저곳 돌아다녔던 미국에서의 첫 주는 매우 길었다. 그러나 한 달간의 적응기를 겪고 어느새 수업에서 만난 친구들과 밥도 먹고, 건물 위치와 캠퍼스 환경에 익숙해진 채로 보내는 요즘 일주
본교 국어국문학과를 거쳐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전소설과 고전여성문학을 주로 연구하며 고전문학의 대중화 작업에 관심이 많다. 올해 케이무크(K-MOOC)에 ‘한국문화 깊이읽기’ 강좌를 신규로 개설해 강의한다. 주요저서로 『고전서사와 젠더』, 『고전소설, 몰입과 미감 사이』, 『옛 소설에 빠지다』, 주요역서로 『삼한습유 역주』, 『완월회맹연 교주 1』(공역)이 있다. 책 읽기의 중요성에 대해서 부정하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막상 책을 즐겨 읽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글쎄다. 요즘은 시청각 학습 자료가 많아서 학습도 시청 행위
극이 시작되면, 한 여성이 고요한 집안에서 깨어난다. 여자는 두통을 호소하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손목에는 자해의 흔적이 있고 주변에는 수면제로 보이는 알약들이 널브러져 있다. TV 화면에는 이상하게 생긴 표식이 떠 있다. 모든 기억을 잃은 듯 황망하게 집안을 헤매던 여성은 거실에서 딸로 보이는 아이의 사진을 발견하고 순간적으로 짧은 기억을 떠올린다. 여자는 아이의 사진을 가지고 집을 나서는데, 주변에서 사람들이 창밖으로 여자를 촬영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러다 TV에 있던 심볼과 같은 그림이 그려진 가면을 쓴 사람이 총을 들고 쫓아
2월 새 학기를 시작한 영국 센트럴 랭커셔(University of Central Lancashire)대에서 ‘사진과 매일(Photography and Everyday)’이라는 사진학과 수업을 듣고 있다. 사실 평소 핸드폰으로 사진찍기를 좋아한다는 것 말고는 난 사진의 ‘ㅅ’자도 모르는 사람이다. 하지만 사진에 대해 더 알고 싶기도 했고 교환을 와서 꼭 실습수업을 듣고 싶었기에 보자마자 ‘이건 들어야 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열정 하나만을 가지고 수업에 발을 디뎠다.수업에 들어간 첫날, 기대와 다르게 점차 주눅이 들기 시작했다.
코로나는 인류에게 무엇을 말하는가?코로나 펜데믹이라는 커다란 재앙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허약한가, 새삼 되묻게 된다.오직 인간 본위의 사고방식과 문명이 우주에 대한 이해를 제한해 온 것은 아닌지, 지금이야 말로 인류문명 전부를 고민하고 성찰해야 될 때라는 생각이 든다.코비드-19로 우리 몸은 쇠약해지고 이화동산도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몸이건 공간이건, 너무 혹사해도 안 되지만 너무 안 써도 생기를 잃게 된다. 결국 몸의 문제이다. ‘몸’이란 지성, 감성, 감정, 영혼이 스며 있는 삶 그 자체이다. 세상은 큰 몸이고 우리 몸은 작은
마블의 전작들보다 성별, 인종적으로 훨씬 다양해진 영화 가 개봉하면서, ‘PC’라는 것이 다시 한번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PC란 ‘Political Correctness’의 줄임말로, 한국말로는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하며, 차별 요소를 최대한 없애려 노력하는 것 등을 일컫는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차별이 전보다 더 가시화되고,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여러 매체에서 이러한 ‘PC’를 반영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그러나 ‘PC’에 대해서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도 분명 존재한다.
최근 긴 여정을 잠시 멈추고 쉼표를 찍었다. 학기를 보내던 중 돌연 중도 휴학을 선언했다.그동안 생각했던 공부를 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그러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복학할 때 즈음에는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았다. 22년을 살면서 이루지 못한 걸 고작 한 학기 만에 이뤄낼 수 있을 거라는 어리석은 기대를 했다.휴학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강의를 듣는 대신 사람들을 만나는 것, 시험 기간에 대한 자각이 점점 옅어진다는 것. 그런 사소한 것들을 제외하면 모든 게
본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30여년 재직, 인문과학대학장 등을 지냈고 2011년 2월 은퇴했다. 저서로 시리즈, 역서로 『런던 스케치』, 『와인즈버그 오하이오』, 『마음은 외로운 사냥군』 등이 있고. 『돌아오는 길』 『아, 순간들』 『따뜻한 뿌리』 등의 산문집을 냈다. 넬라 라슨의 장편소설 『패싱』으로 제 1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입니다.학기 말에 어수선하지요? 책을 안고 잔뜩 긴장한 얼굴로 강의실로 도서관으로 바쁘게 걸어가는 모습들이, 그립고 부럽네요.나팔꽃 이야기로
『생각이 너무 많은 서른 살에게』 저자. 정보디자인과를 1996년 졸업하고 디지틀조선일보와 CJ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했다. 미국 일리노이공대 디자인스쿨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시카고 모토로라, 샌디에고 퀄컴 등 미국 글로벌 기업에서 UX 디자이너로 일을 하다 한국으로 돌아와 삼성전자 원형 스마트워치 개발을 주도했다. 2018년부터 미국 실리콘 밸리의 구글 본사에서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스무 살의 나는 무서웠다. 집안을 발칵 뒤집고 선택한 디자인 전공이었다. 그런데 나의 미천한 디자인 감각과 실력을 알아채는 데 그리 오래 걸리
‘이번 학기는 피 터지는 수강신청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교환학생으로 선발되고 파견 학교를 배정받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매 학기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느라 머리를 싸매고, 수강신청 날짜만 다가오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나였기에 이번 교환 학기는 한편으로 수강신청으로부터의 해방이라 느껴졌다.이런 해방감은 실제로 수강신청을 해야 할 때가 다가오자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사라졌다. 미국 아이오와대의 수강신청이 한국만큼 치열하지 않다는 것은 파견보고서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방식이 달라서 닥치는 어려움은 미처
“교수님, 그렇게 하면 손해 보는 것 아니에요?”매 학기 꼭 한 번씩은 듣게 되는 질문이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분쟁과 관련된 기초적인 법률 지식을 전달하고 적절한 해결 방안을 함께 고민하는 교과목을 운영하면서, 학생들이 법률적인 대응만을 정답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예를 들어, 지난 1년 이상의 기간 동안 코로나 상황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많은 학생들이 층간소음을 일상생활에서 자주 경험하는 분쟁으로 언급하고 있다. 층간소음 문제로 고통 받고 있는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바람직한 해결 방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