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라면 나라가 망한다고 한다.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한다. 이번 총선에서는 한국의 심각한 저출생을 해결할 대책을 공격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정부는 아이를 낳고도 행복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다. 정치권에서 제시하는 정책들은 아이를 낳을 것을 전제에 두고, 아이를 낳아야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제시한다. 돈도 주고, 집도 주고, 아이를 낳아도 변함없이 일을 하게 해주고, 나라가 함께 아이를 돌봐 준다고 한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여성 고용률은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에 뚝 떨어지는 M자형 그래
언제나 필연적인 논리로 이루어진 상황만을 마주할 수는 없다. 세상은 아주 우연히 나를 괴롭게 한다.방송국에서 밤중에 일어난 일을 취재하고 귀가하는 새벽 6시였다. 그날따라 큰일이 없었다. 궂긴 소식이 없었다는 뜻이다. 한 명의 사람으로서 기쁜 일이었다. 기자로서도 반길 수 있을까? 사건·사고를 담당하는 기자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를 기사로 쓸 수 없을 거로 생각했다. 바로 이어, 사건은 기자가 바란다고 생기거나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것도. 내가 느낀 딜레마는 누군가 죽고, 다치고, 범죄를 저지르는, 마냥 유쾌하지 않은 소식을 캐
누구에게나 대학 진학은 쉽지 않은 과제이다. 아무 대학을 가는 것은 쉽지만 내가 원하는 대학을 가는 것은 어렵다는 말은 명백한 진리이다.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 새해 큰절도 올리지 못한 채 2022년 1월 1일 기숙형 재수학원에 입소했다. 입소하기 전에 마지막 한을 다 털어내려고 전국 각지 여행까지 다녀왔지만, 입소하는 발걸음은 아쉬움이 가득 묻어나 있었다. 그래도 새로운 결괏값을 내기 위해서 답답한 마음은 꾹꾹 누른 채 재수학원 생활을 시작했다. 재수학원 시간표에 적응하는 것조차 버겁다. 8교시는 기본이고, 식사 시간을 제
나는 오전9시 아침 수영반의 유일한 청소년이다. 유난히도 더운 날들이 이어졌던 작년 여름, 동네 시립청소년센터의 수영 아침반을 등록했다. 시립청소년센터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수영반의 8할은 할머니들, 남은 2할은 아주머니, 아저씨들과 유일한 청소년인 내가 차지하고 있다. 수강생의 평균연령이 70세쯤 될 것 같은 공간의 유일한 청소년이 나라는 사실에 기분이 묘하다. 우리나라가 초고령화 사회에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수영장에서 깨닫게 된다.초등학교 때 배운 자유형과 배영 복습을 끝마치고 평영 진도를 막 나가기 시작할 때쯤이었다. 나와
새내기 시절 나에게 대학이란 존재는 그저 고등학교 졸업 이후 다니게 되는 학교일 뿐이었다. 고등교육을 거치고 입학에 들어온 나는 졸업요건을 채우고 필수 수강해야 하는 전공 과목들을 찾아 듣는 것에 급급했다.그러나 학보 기자 생활을 하면서 나는 비로소 학생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그저 글을 전문적으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대학보에 들어왔지만, 여러 인터뷰이들을 만나면서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하나씩 알아갈 때 기자로서 가장 큰 뿌듯함을 느꼈던 것 같다.매 학기 학내 이슈를 접하고 다양한
설날을 한국에서 보내지 않은 건 처음이었다. 지난 2월, 태어나 처음으로 밟은 미국 땅에서 가재 요리를 먹으며 이방인으로서의 설날을 보냈다. 미디어를 통해서만 겪어본 미국이라 가기 전 여러 걱정이 있었다. 외국인이라고 무시하는 건 아니겠지, 미국인들 사이에 껴서 주눅 드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오랜 기간 날 감쌌던 걱정들이 무색해질 만큼,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있는 미국의 자유로움이 이방인 신분의 나를 반겼다.이름만 들어도 족히 그 유명세를 알 만한 대학들의 캠퍼스도 방문했다. 학생 모두가 저마다의 스타일을 고수한 채 자유롭게 캠퍼
33번의 마감 후 퇴임을 앞둔 지금. “찍은 사진 중 제일은 뭐냐”라는 질문을 받고 급하게 내가 찍었던 사진들을 기억해 내지만, 하나를 짚기 어려웠다.하지만 분명히 의미 있는 취재는 있다. 작년 11월, 기자 생활 2개월 차에 이태원 참사 추모 현장에 가기 위해 늦은 밤 기자 3명과 함께 택시를 탔다. 어깨의 그 무거운 카메라 가방보다 마음이 훨씬 무거웠던 밤. 수많은 꽃과 추모 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 소주병에 꽂혀있는 한 송이의 백화. 눈물 흘리는 이들 앞에서 ‘찰칵’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게 어색했지만, 이 현장을 기록해야겠다
이맘때면 시간에 가속도가 붙음을 느낀다. 거리에 수험생을 응원하는 다정함이 가득하고 반짝거리는 캐롤이 들린다. 어느새 연말이 다가온 것이다.일 년이 한 시간이라면 고작 7분30여초가 남은 셈이다. 어쩌면 연말은 초, 분, 시, 달, 년처럼 인간이 나눈 경계에 불과하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결국 거스를 수 없는 광활한 시간 앞에 무력해지지 않으려는 노력이 아닐까. 특히연말은 한 살을 더하는 이상한 변화를 멋지게 포장하려는 듯하다. 두 달의 시간에 포장지를 감싸면서 우리는 설레고, 긴장하고, 또는 무기력해지기도 한다.사실 내게는 그
낙엽이 져서 가을인 걸 알았다. 계절의 흐름도 신경 쓰지 못한 채 11월을 마주했다. 작년 겨울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학보에 온 마음을 다하고 있다 보니 어느덧 3학년이 성큼 다가온 걸 눈치채지 못했다. 어느새 코끝에 겨울 냄새가 감도는 지금, 올 한 해를 되짚어 보면 오직 ‘이대학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스물하나의 매 순간을 학보와 함께한 것이다. 다른 이의 일주일은 ‘월화수목금토일’로 이뤄져 있을 테지만, 우리의 일주일은 ‘일월화수목금토’로 이뤄져 있다. 일요일을 통으로 다 바쳐 어떤 기사가 세상에 나가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하
종종 늦진 않을까 생각했다. 현역으로 입시를 마치고 대학에 들어간 친구가 사진 동아리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즐겁게 지내고 있을 때 나는 독서실에서. 고난도 비문학 지문을 풀었다. 늦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늦어도 가고 싶은 길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 컸던 탓에 주변의 온갖 반대와 우려를 피해 독서실로 향했다.혼자 다시 하는 수험생활은 막막하고 두려울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정해진 것 하나 없이, 이미 정해진 것 같은 삶을 사는 주변 친구들과 다른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정해지지 않은 미래가 불안했고, 사계절
“탑승객 여러분, 안내방송 드립니다.”올해 2월,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고파 한국 사람도, 한국말도 들리지 않는 태국으로 훌쩍 떠났다. 여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내려 귀에 처음 들린 소리, 한국어 안내 방송이었다. 여행 동안 한국이 그리웠던 것도 아니었는데, 한국어를 듣자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고였다. 안간힘을 쓰며 듣지 않아도 자연스레 귀에 들어왔다 빠져나가는 한국어. 드디어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고작 일주일 만에 돌아와서 들은 한국어에 눈물까지 맺힌 스스로를 보며 나는 내가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이라는 걸 새삼
“좋아하는 색깔이 뭐야?”“다 좋아”“좋아하는 음식은?”“아무거나 다 잘 먹어”개인의 성격과 취향이 매우 다양해진 세상이다. 사람들의 특별함을 개성으로 표현하고 그런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 당연해졌다. 최근 유행했던 MBTI 검사는 사람들의 성격을 16가지로 표현한다. 첫 만남에서 MBTI 질문은 필수가 되었으며 사람들이 자신의 성격과 취향을 더 쉽게 드러내게 해줬다. 모두가 각자의 색깔을 빛내고 있는 세상 속에서 아직 내 취향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좋게 말하면 어디에나 속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줏대가 없다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
지난 학기의 끝을 떠올린다. 어쩌다 이른 종강을 맞았으나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게는 후편집이라는 역할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후편집은 내용 구성을 마친 영상이 보기 좋도록 어울리는 옷을 입히는 작업이다. 어떤 옷이 어울릴 지 충분히 고민해야 하지만 전날까지 세 전공을 오가며 다변수함수와 메타버스를 논하던 내게 그런 창의력은 솟지 않았다. 아직 종강까지 달리느라 바쁜 동료 기자를 붙잡고 어떤 자막, 효과음, 색상, 모션이 좋은지 질문을 던지는 스스로가 부담스러웠다. 종강을 맞아 오랜만에 찾은 본가에서 편히 쉬기는 커녕 새벽 내내 뜨거
‘흐르는 강물에 인생을 맡기지 마라.’ 학창 시절 친언니의 책상 앞에 붙어있던 사설의 제목이다. 공부하기 싫을 때면 몇 번이고 고개를 들어 그 칼럼을 다시 읽었다. 그 스크랩의 잔상 때문인지, 나는 내 인생을 흐르는 강물에 맡기지 않으려 발버둥 쳤다.항상 자유를 갈망하던 학생이었다.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묵묵히 책임감에 응답하는 삶을 시시하게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했고, 납득가지 않는 일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아이였다. 다행히 좋아하는 것의 범주가 넓었던 터라, 고등학생 시절 다양한 활동을 하며 가능성을 확장했고
"서울시가 고립·은둔 청년을 지원합니다.” 요즘 매일 아침 버스에 올라타면 들리는 경쾌한 목소리다. 이 버스에 고립·은둔 청년은 몇이나 탔을까. 비몽사몽인 잠결에도 드는 생각이다.서울시는 정서적·물리적 고립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된 경우를 고립 청년, 외출이 거의 없는 생활이 6개월 이상 지속되고 한 달 이내에 직업·구직 활동이 없는 경우를 은둔 청년으로 규정했다.그들이 말하는 고립·은둔 청년에 해당하는 이는 적어도 그 시간에 출근 버스에 앉아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그 목소리를 듣고, 주변에 있는 고립·은둔 청년을
푸를 청(靑), 봄 춘(春).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세상은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이르는 젊은이들을 청춘이라고 부른다. 청춘이라고 일컫는 나이에 저마다 삶의 새싹을 틔워낸다는 뜻으로 만든 말이 아니었을까. 나에겐, 듣기만 해도 마음속에서 핑크빛 꽃가루가 휘날리는 ‘사랑한다’는 말보다 ‘청춘’이라는 말이 더 설렌다.청춘이라는 말을 좋아해서였을까. 중학생이었던 내 마음속에 드라마 ‘청춘시대(2016)’가 들어왔다. 여대생 다섯 명이 셰어하우스에 모여 살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드라마였는데, 딱 한 명의 주인공 없이 다섯 명
“다시 말해 봐. 그거 말 되는데?”공강 시간에 밥을 먹는데 친구가 소속 학과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놨다. 누구나 무엇이든 조금씩 불만이 있기 마련이고, 친한 친구사이니 지나가듯 하소연한 걸 거다. 하지만 그냥 친구의 푸념 정도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말 되는 얘기였다. 그러니까 기삿거리를 찾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날 친구에게 무슨 일인지 꼬치꼬치 캐묻고 이걸 주제로 기사 기획안을 쓰기 시작했다.어딜가나 늘 ‘말 되는’ 것들을 찾아다니는 나를 보며 나름 기자가 됐다고 느끼지만 그렇다고 기사를 쓰는 게 쉬워진 건 아니다. 학보에
“제가 학보사 기자가 된다면 학보에 24/7 매진하겠습니다!”지난 2022년, 이대학보 108기 면접에서 외쳤던 말이다. 차분하게 이어갔어야 할 면접에서 긴장을 주체하지 못하고 내뱉은 말이었다. 면접이 끝나고 낭패였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긴장하지 않으려고 수없이 연습했던 순간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 같았다. 퇴임을 앞둔 기자가 된 미래의 내가 보면 코웃음을 칠 일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무 살 새내기만 할 수 있는 대사이지 않았을까. 패기 하나만으로 기자 일에 정진하겠다고 한 배짱이 왠지 모르게 눈에 띄었을 것이다.돌
헤어짐은 늘 이런 식이다. 스쳐 지난 이별의 길이를 재면 아마 이 지구 한 바퀴는 거뜬히 돌 텐데 매번 왜 이렇게 낯선지 모를 일이다. 지난밤, 대동제 덕에 쌓인 업무를 끝내고 새벽 1시가 돼서야 택시를 탔다. 다리도 건넜고 이제 집까지는 10분도 채 남지 않았는데 왈칵 눈물이 났다. 어느새 인사를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일까. 차창 사이로 부는 바람에 멋대로 울어버리는 꼴이 2000년대 영화의 바보 같은 주인공처럼 촌스러웠다. 책상 위에 어질러진 카메라, 볼펜, 지난주 발행한 학보. 고개 돌리면 보이는 익숙한 얼굴
이번 겨울, 나는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의 잔디밭에 앉아있었다. 감사하게도 해외취재 프로그램에 선발돼 덴마크에 다녀왔다. 덴마크에 간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은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디자인학도가 아닌 모습으로. 8년 전에는 내가 당연히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디자인의 나라를 찾는다면 아마도 그 공부를 하기 위해서일 거라고 상상했다. 기자를 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나는 기자였다. 취재하러 간 곳에서는 저녁 식사에 초대받아 10명 넘는 덴마크 청년들과 감자수프를 먹었다. 이 또한 상상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