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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학등록금과 탈-경계 투쟁에 관하여

닉네임
눈먼-파랑새
등록일
2010-01-31 13:24:11
조회수
7053
대학등록금과 탈-경계 투쟁

잠못드는 한밤중에 든 생각을 글로 옮겨보았습니다. 미친 사람의 글이라고 생각하시고 읽으셔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총학생회 홈페이지가 닫혀있어서 이곳에 올립니다.


혁명은 사랑이다. -체게바라-

언제인가 어떤 아파트 게시판에 “부자 되세요~”라고 끝나는 종이가 붙어있던 것을 본적이 있다. 읽어보니 아파트 집값올리기를 위해 낮은 가격으로 매물을 내놓지말자는 내용이었다. 근래에 부동산 값이 급등한 곳에서는 주민들의 조직적인 ‘집값 올리기’ 담합이 많이 관측된다고 한다. 주민들이 턱없이 비싸게 매물을 내놓고 회수하는 가격왜곡은 기본이다. 다음은 서울경제에 기재된 기사 중의 일부이다. "'전세ㆍ매매목표가'등을 설정하고 '최고의 아파트가 되기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 등의 리스트를 만들어 가격상승을 도모하는 입주자연합도 적지 않다." 그런데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주민들에게 정말 좋은 것일까. 그들의 자식들이 결혼했을 때, 수억대로 부동산가격이 올라가 있어서 동네에서 살지 못할 것을 생각하면 부자가 되기 위한 ‘집값올리기’ 담합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집값이 올라가는데 뭐가 나쁘냐’며 집값담합을 계속한다. 집값담합을 그만두는 것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하는 짓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이 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을 안다.)
대학등록금도 마찬가지다. 대학등록금 천만원 시대, 이제 대학등록금 문제는 단순히 대학생만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예전부터 대학등록금문제는 대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비단 대학생 자녀를 둔 가정만이 아니라, 앞으로 자녀가 대학교에 진학할 가정이라면 누구나 고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였던 것이다. 때문에 등록금 문제는 교육투쟁에 대한 사회적 협력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 누구나 고민해야하는 문제이고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등록금문제가 대학생들의 등록금투쟁이 계속되어왔음에도 어째서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것인지는 의문이다. 어쩌면 우리 대학생들은 외부에 해결을 요구하기만 한 것은 아닐까.

얼마 전에 이기수씨(대학교육협의회 회장)가 대학등록금이 교육의 질에 비해 싼 편이라고 말한 것이 이슈가 되고 있다. 아마도 지금이야말로 대학 내부에서 균열을 드러낼 그러한 움직임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하다. 영화 쇼생크탈출에서 ‘앤디’가 보여준 기적이 그런 내파적인 시도가 아니겠는가. 잘은 모르겠지만 먼저 대학교육협의회 회장으로 선출된, 비율을 좋아하는 이기수씨의 연봉기준에서 적정한 대학 등록금 수준보다 낮은 현재등록금 수준에 대해 생각해보자. 타대학 총장연봉과 비교해 볼 때 대학총장의 연봉이 1억원 이상이라고 가정한다면, 2009 OECD 교육지표에 근거한 현재 사립대학 등록금연간평균 988만2040원과의 비율은 9.88%이다. 다시 말해서 이기수 대교협회장의 기준에서 연봉의 9.88%가 적정 등록금보다 낮은 등록금의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등록금의 적정수준을 알 수 없지만 현재 등록금을 적정수준이라고 한다면, 이기수씨 기준의 등록금비율을 한국의 GDP가 2천120만원임과 비교해 보았을 때, 현재 연간 대학등록금의 적정수준은 209만4560원이다. 그렇다면 한 학기 등록금의 적정수준은 104만7280원이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한 학기에 내는 등록금평균 494만원과 104만원의 차이는 390만원이다. 2008년 대학생인구가 248만4650명임과 국공립대학 대비 사립대학 비율이 76.8%임을 고려해보았을 때, 사립대학교에서는 190만8211명에게 한학기 약 7조4420억2368만원의 과잉된 등록금을 가져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1억 이상 연봉의 이기수총장과 2천120만원 연봉의 국민에게 있어 등록금의 가치를 비율로 비교해보면, 현재 ‘이기수총장’에게 대학등록금의 가치가 100%이라고 할 때 ‘GDP기준에서의 국민’에게 현재 대학등록금의 가치는 475%이다. 다시 말해 한국 사립대학은 375%의 잉여가치(대학생 자녀가 두 명이면 잉여가치는 2배, 750%로 치솟는다.)와 약 7조4420억원의 과잉이익을 대학생이 포함된 가정으로부터 착취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등록금이 교육의 질에 비해 싸다는 이기수씨의 말을 고려했을 때에 인상된 등록금의 착취비율은 말하기 어려울 정도일 것이다. 대학생이 1235시간, 123일, 4개월을 매일 10시간 이상 일해야 벌 수 있는 한 학기 등록금이다. 일년 등록금은? 2470시간, 243일, 8개월 매일 10시간 이상 일해야 벌 수 있는 것이 일년등록금이다. 이에 더해서 한국사회에서의 반드시 대학교를 나와야한다는 사회적 편견을 고려해보았을 때, 대학교들이 등록금을 인상하는 작태는 도둑질의 차원을 넘어서 협박과 징수, 그리고 착취라는 단어로 다시 발음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외의 각종 객관적인 대학 등록금 관련 자료들을 봐도 그러한 단어선정에 대해 반대할 말이 별로 없을 것이다. (…굳이 여러분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밥을 먹고 매일 얼굴을 맞대는 학생들 중에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 막노동을 하고 수업에 들어오고, 매일 수업이 끝나자마자 알바장소로 뛰어가고, 충당할 수 없는 학비로 인해 유흥업소에서 등록금을 마련하는 학생들이 있다는 것을…, 또한 대학등록금이 학교운영에 푼돈으로 여겨진다는 시사프로그램의 고발도 굳이 여기에 자세히 적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다.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등록금문제가 대학생들의 등록금투쟁이 계속되어왔음에도 어째서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것인가라는 것이다. 모두가 대학교등록금이 비싸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그들은 행위하지 않는 것이다. 여태 대학 학생회에서는 대학생들에게 투쟁참여를 독려하고 외부에 해결을 계속해서 요구해왔다.
이러한 구도는 한국사회에서 매우 익숙하다. 오늘날에 남은 이데올로기는 냉소주의 이데올로기라는 말이 있듯이, ‘정치권이 문제가 있다. 그러나 투표하지 않는다.’는 구도와 판박이다. 현재 선거에 불참하는 이유는 선거를 하여도 크게 변화가 없을 가능성이 높은 보수독점정당체제, 선거에 대한 불신, 자신이 사회적 약자의 위치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등이 있다. 이와 비교해보면 많은 수의 대학생들이 등록금투쟁에 소극적인 것인 것은 참여해도 크게 변화가 없을 가능성이 높은 대학등록금체계, 학생회조직에 자신의 행동이 강제되기 싫다는 마음, 부모님에 대한 의존감, 아직은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 같은 것들이 작용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최근 대학생에 대한 비판에 대한 반대의견을 보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저항하고 행동해야할지 모르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한 만약 움직였을 때 그리 효과가 있을 것 같지 않고, 자신이나 자신의 계획에 피해가 올 수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더할 수 있겠다. (등록금 관련한 대학생들의 학생회에 대한 인식이나 투쟁참여에 대한 설문자료가 있으면 더 나은 해결책이 나올지도 모른다.)

또한 외부에 호소하는 방식은 당면한 선거에도 사회적 약자를 고려한 투표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사람들 자신이 고액등록금을 납부하는 대학생이나 대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가 될 가능성에 대한 외면 등을 고려한다면, 강한 호응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측면도 생각할 수 있다. 다시말해서 대학등록금 투쟁에서 근본적으로는 의존할 수있는 외부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적인 문제는 대학등록금의 인상문제가 아니라 대학등록금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야당 중에서 큰 규모의 민주당이 ‘뉴플랜’에 반값등록금 공약을 포함했지만, 사학법이 유야무야하게 된 전례를 볼 때, 그러한 공약에만 의존하고 있기에는 불안하다. 그렇기에 그러한 공약이 실현될 수 있는, 또는 외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내부적인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내파적인 행위가 현재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어떤 행동을 통해 냉소주의의 환상을 가로지르는 행위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대학생도 대학등록금이 비싸다는 것을 안다.)

먼저 참여해도 크게 변화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에는 참여를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하고, 학생회 등 조직에의 거부감에는 학생 없는 학생회와 학생회 없는 학생을 지양하는 방식의 따로 그리고 같이하는 저항방법을 제시해야할 수 있어야한다. 부모님에 대한 의존감은 미안함을 통해 극복할 수 있고, 아직은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은 등록금 관련 여러 시사고발 프로그램 다시보기나 사례를 통해 실재감을 높여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따로 그리고 같이’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낮은 투표율을 고려하면 참여자의 희생을 요구하는 투쟁방식은 근본적인 공감대가 없으면, 실현이 어렵다. 때문에 참여자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 방식이지만 강력한 참여방식이 필요하다. (이러한 접근이 희생이 아닌 희생을 이끌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글쓴이가 제안하고 싶은 방법은 ‘휴학투쟁’이다. 만약 많은 수의 대학생들에게 등록금에 대한 윤리적 공감대를 통해 움직임을 이끌어 낼 수 있기만 한다면, ‘휴학’을 통한 저항방식은 학생에게 큰 희생이나 피해를 요구하지 않는 동시에 대학교에게는 등록금에 관련하여 경제적 타격을(그들에게는 작은 긁힘일지라도 많은 수의 학생들이 행동했다는 것에 의미가 크다), 사회에는 등록금문제에 관한 짙은 이슈화를 일으킬 수 있다. 이제 휴학은 대학생에게 있어 옵션이 아니라 필수적이고 전략적인 선택으로 인식된 지 오래이다. 때문에 ‘휴학투쟁’전략은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기에, 입사경쟁에서의 생존과 보통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한 자기계발 노력의 광풍에 휘몰리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욕망을 순풍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등록금에 대한 공감대만 있다면, 대학생들은 어차피 한번을 해야 할 휴학을 다른 학생들과 동시에 휴학하기만 하면 된다는 매우 간단한 투쟁방식을 거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휴학기간을 통해 취업과 유학에 요구되는 영어공부를 할 수도 있고, 군대에 가야하는 사람은 갈 수도 있고, 여행을 가고 싶은 사람은 여행을, 아르바이트를 통해 학비를 벌어야하는 학생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대학생들의 비판적 공부모임을 활성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휴학기간동안 여러 스터디 동아리들과 협력하여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스터디를 할 수 있게 하고, 대학 강사분들의 지도도 부탁할 수 있다. 글쓴이가 보기에는 한국에서 ‘대학적인’ 학문은 학교 외부에서 배울 수 있다. 예로 들자면, 철학아카데미, 문지원화원 ‘사이’,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대중지성의 정원, 수유너머, 사회과학아카데미, 세움 등 여러 곳이 서울에는 존재하고, 접근이 어려운 사람들은 인터넷 강의를 제공하는 아트엔스터디를 통해 공부할 수 있다. 대학생들이 조직한 비판적 공부모임은 앞으로의 투쟁활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필자가 추천하는 강의는 ‘지젝’과 ‘데리다’, ‘비판이론-아도르노와 벤야민’과 ‘문화이론-지젝, 푸코, 라깡, 테리 이글튼, 프리데릭 제임슨, 알튀세르, 루카치, 바르트’ 등의 강의이다. 지젝의 말을 빌어서 말하자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한줄기 빛과 같은 내용의 강의들이다.

문제는 이러한 투쟁의 결과에 앞선 회의감을 어떻게 불식시킬 수 있는가는 점이다. SBS큐브라는 프로그램에서 방관자효과가 우리시대의 자화상이지만 용기 있는 한 사람이 가능성 있게 보이는 행동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도우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실험결과를 방영한 것이 있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회의감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첫 번째 한걸음과 연대가 중요하다. 하나의 대학만이 ‘휴학투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수십 개의 대학이 함께 행동한다는 점에서 움직임을 시도하는 것에 대한 한걸음을 내딛는 것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에 더해서 대학원생들과의 연대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최근 대학등록금을 상당부분 동결하는 이유가 풍문처럼 나오는 대학원생들의 조교장학금을 축소 혹은 폐지한다는 이야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대학원생들과의 연대도 충분히 가능하다. 또한 대학신문과 대학방송국의 연대와 도움 또한 필수적이다. 학생들의 관심사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문제제기를 계속적으로 유지해줄 수 있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따로 투쟁하지만 동시에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느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작지만 가장 큰 우군을 얻게 될 것인가.

그전에 선행되어야할 과제가 있다. 학생들의 회의감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회의 문제이다. 학생회 없는 학생은, 학생 없는 학생회에 의해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학생이 학생회인 학생회, 국가도 하지 않는 것을(그들은/우리는 못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은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마저 시도하지 않는다면, 사회구조 속에 포섭된 일반시민들은 얼마나 시도하기가 어려울 것인가. 1학년을 마치고 군복무를 갖다가 얼마 전에 복학한 나의 기억에 남아있는 등록금 투쟁 방식은, 연례행사처럼 시행되는 것처럼 보이는 활동들과 물론 결과적으로는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겠지만 외부에 해결을 의존하려는듯한 자조적인 느낌, 등록금 투쟁이라고 써있는 천막만이 서있는 모습들이 기억에 남아있다. 물론 살인적인 등록금현실을 지하철에서 알리던 여대생들도 있었는데, 어떤 노인분이 소리질러서 지하철 밖으로 쫒아냈다는 블로그글을 본 적도 있다. 절실하게 참여했던 대학생들의 노력에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그러나 또한 단순히 해결을 요구하는 방식으로는 등록금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은 어렵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줄 온전한 사회는 이전에도 없었고, 그러한 사회가 ‘고도를 기다리는’ 것처럼 앞으로 올 때는 요원하다. 때문에 등록금 투쟁을 하려고 한다면 발벗고 나서려는 움직임이 절실하다. 글쓴이의 짧은 대학생활 동안, 수업 전에 큰 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외치던 모습은 대학/학과의 선거기간 뿐이다. 혼자서 주체가 대상과의 거리를 전제하고 무작정 말하는 방식으로는 정보를 전달할 수는 있어도 감동을 끌어내기는 어렵고,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Martin Niemoeller의 ‘First they came...'을 읆조리고, 등록금 투쟁의 결의와 의지를 말하던 학생들의 모습은 기억에 없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도 공명하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글쓴이의 오만이겠지만. 누구도 오만과 위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 자리에는 다만 그것을 인정하고 행위하려고 시도하는 몸짓의 흔적 그리고-또는 인정하지도 않고 나르시스적인 온전함과 안락함에의 안주가 있을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First they came...'을 읆조리고 호명하여, 학생들의 잠재성이 스스로 발현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1번으로는 부족하다. 총학생회장/부회장, 단과대 학생회장/부회장들이나 등록금문제에 열망을 가졌던 학생들을 리스트화하여 홍보참여를 원하는 학생들이 2번, 3번은 학생들에게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위해 다른 내용으로, 정장이 아닌 티셔츠 한 장만 걸친 모습으로, 때론 강렬한 목소리로 때론 쉬어버린 목소리로 우리가 여기에 서있음을 먼저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수업을 듣는 학생회원들이 있다면 홍보가 끝나고 자신이 참여할 의지가 있다고 주변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참여유도에 효과적일 것이다. 망각이 있어야 기억이 있을 수 있듯이, 학생들이 사회구조가 강요하는 자기계발적인 주체를 망각하고, 작고 여리지만 단호한 타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때에 억압되어 망각되었던 주체의 기억이 되돌아 올 수 있는 것이다. 과거에 실패한 행동을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 기꺼이 상속받는 것, 그렇기에 정해져 있는 과거이지만 동시에 아직 결정되지 않은 오래된 미래를 현재를 통해 내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 속에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즉, 향후 등록금 투쟁 계획에 대한 학생들의 아이디어 공청회와 브리핑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각종 벽보와 선전물, 3번에 걸친 등록금 투쟁과 공청회 홍보 이후, 학생들의 관심과 기대를 그들의 참여로 이끌 수 있는 공청회를 개최하는 것이 중요하다. 때문에 공청회가 시작한 직후에는 학생회가 그동안 실시했던 등록금 투쟁방식에 대한 반성과 원인분석이 선행해야하고, 이후에 학생들이 생각하는 원인과 해결방책들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이때 나온 학생들의 의견들은 빔프로젝트를 통해 실시간으로 입력하여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다음으로 학생회가 기획하는 ‘휴학투쟁’과 그 협력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하는 브리핑을 하고, 학생들이 생각하는 가능성과 문제점, 그리고 등록금 투쟁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필수적이다. 누구나 발표할 수 있는 분위기 형성이 중요하다. 때문에 만약 발표자나 진행자가 딱빼어입은 정장을 입을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아마도 반은 실패하고 들어갈 수 있다. 학생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청회이기 때문이다. (이 공청회의 또다른 목적은 대학사회의 노마드적 사회화, 다시 말해서 학생과 학생, 학생회와 학생회 사이의 소통 증진에 있다). 이러한 토론결과는 1차, 2차, 3차에 이르는 토론에 의제로 반영되어 투쟁력을 도약시킬 필요가 있다. 논리적으로 맞는 의견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학생들의 참여의지를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투쟁이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통해 회차마다 진화하는 것이다. 또한 2차회와 3차회에는 대학생들의 비판적 공부모임에 대한 홍보가 필요하며, 3차 이후에는 인터넷 공간에서 학생들이 스터디모임을 조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편 각 회차 공청회 이전에는 1차처럼 학생들에게 다가가는 홍보는 필수이며, 공청회가 끝날 때마다 다른 대학교 등록금투쟁회와의 소통이 필요하다.(장소는 서울지하철의 중심부에 있는 동국대가 어떨까 싶다.)이에 더해서 이러한 공청회의 모습을 ‘커널뉴스’와 같은 인터넷 방송과의 연계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하거나, 자체적으로 아프리카tv등의 인터넷 방송을 이용하여 생중계한다면, 학생들의 관심을 지속시킬 수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공청회 이후에도 등록금 관련 시사프로그램을 다시보기를 통해 인터넷 방송으로 내보내는 등의 홍보도 필수적일 것이다.

계획의 반은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끊임없는 도약이 요구되겠지만 기획의 단계는 한숨 돌릴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등록금 투쟁에서 등록금 혁명으로 이행할 시기이다. 지금까지 다른 대학교 학생들과의 연대, 대학원생들과의 연대, 대학신문 등과의 연대, 인터넷 방송과의 연대까지 이루어내었다. 2차와 3차 공청회 사이에 한 가지 더 시도해야할 과제가 있다. 그것은 청소년들과의 연대로 단지 이것이 대학내부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표현할 가장 어리지만 강력한 힘이다. 이들과 함께 의제를 확장해 나가야한다.(예전에 촛불집회에서 활동했던 청소년 온라임 모임들에게 함께하자고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자기 세대의 몫만을 주장하지 ‘않는’ 20대의 출현을 표현해야하고, 모든 세대가 ‘누구나’ '아무나'인 것처럼, 특수하지만 보편적인 문제인 나의 문제인 동시에 누구나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럴 때에야, 외부인 동시에 내부인 그래서 질서의 경계를 내파하는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이제부터 주장해야할 것은 -대학 등록금에 대한 인식의 근본적인 변혁, -현재의 등록금납부는 대학교가 대학생과 대학생자녀를 둔 가정을 착취하는 것이라는 것을 환기하는 것과 누구나 대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가 될 수 있다는 것, -대학 등록금 상한제의 정착화 그리고 후불제 및 협력제(울산대나 쿠퍼 유니언 대학모델 혹은 학생협력기금의 설치)도입, -대학 등록금을 현재의 1/3~1/2화, -초중고교육에 있어 핀란드식 교육제도와 프랑스식 입시제도 정착요구(준거참조평가 도입)와 그러한 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교원의 육성, -서울에 소재한 모든 대학 명칭의 문화대학화(문화제1대학, 제2대학 등)와 서울 이외지역은 각 지역이름으로 한 대학 명칭화, 윤리적 대학화, -등록금 체결과정에 학생위원평가제 도입, -신문들의 자의적 대학평가 저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최후의 계획이 될 문화대학에 문화비판학과 설치가 그것이다. 프랑스의 경우처럼 사회에로의 관문인 대학이 바뀌면 사회가 바뀐다.

마지막 3차 공청회와 프리핑에는 발표된 내용의 정리와 이러한 투쟁의 전반적인 로드맵을 확실히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는데, 휴학투쟁을 하면서 대학강사들의 대한 대학교의 착취 철폐를 주장해야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실제로 학생이기주의로만 등록금 혁명이 비추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아킬레스의 방패가 될 것이다. 이제 휴학투쟁을 통한 등록금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글쓴이는 이 혁명이 조용하지만,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투쟁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방학이 시작되기 전에는 참여를 희망하는 인원에 한해서 길거리 및 언론 홍보를 실시하고, 모든 참여자들(대학생, 대학원생, 중고등학생 등)이 여의도 공원 같은 곳에서 궐기대회를 열어서 사회에 행위자들의 의지를 천명할 필요가 있다. 휴학이 시작된 2학기에는 휴학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들의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등록금 혁명자금을 모금하는 것이 필요하고, 대학교에서 ‘도그빌’,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바더마인호프’ 등 윤리와 성찰, 행동을 영화화한 필름들을 상영하여 참여자들이 함께 모이는 문화행사를 진행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에 더하여, 대학생들의 비판적 공부모임을 통한 학생혁명의 연속성을 유지해가야 할 것이다.

얼마 전, 술 취한 장학사들끼리 거리에서 서로 격한 말싸움 끝에 서로에 대한 폭로전을 벌인 적이 있었다. 경찰서에 온 그들은 술에 취해 있었기에 서로에 대해 마구 이야기 했던 것이다. 학교 교장/감이 되려면, 술자리에서 술을 따라 줘야하고, 대신 돈을 내주어야하고, 문지방이 닮도록 왔다갔다해야하고, 뇌물을 주지 않으면 교장/감이 되어도 발령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대학교육 개혁이라니,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가. 그럴수록 우리는 근본적인 고민을 절박하게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들리나요의 가사처럼) ‘조금만 아파도 눈물나는’ 그 사랑의 감수성을 같이 얼굴을 맞대고 생활하는 주변에 있는 학생들을 위해 절박하게 서성이며 고민하는 학생이 현실의 대학에는 필요하다. 학과 커리큘럼이 취업과는 상관없다고 비난하는 것이 아닌, 취업전문학과로 대학을 생각하지 않는, 그러한 ‘같지만 다른’ 대학을 꿈꾸는 학생이 절실하다. 마찬가지로 2008년 촛불이 갈구했던 것은 ‘같지만 다른’ 민주주의였다. 이러한 촛불의 공간이 대학학과로 들어와야 대학과 사회의 계속적인 변혁이 가능할 것이다. 그 공간의 이름은 문화대학 안의 문화비판학과가 될 것이다.

개 한 마리를 구조하기 위해서 구조대원 50명과 헬기 한 대가 움직이기도 하는데, 사람이 곤경에 처해있는데 그것을 본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큰 피해도 없는 상황에서 도와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한 사람이 생각을 행동하면 두 개의 행동(사고와 실천)을 하는 것이며, 두 사람이 행동하면 다섯 개의 행동(2개의 사고와 실천, 그리고 두 사람의 행동)을 하는 것이며, 천명이 행동하면, 삼천구십구개의 행동을 하는 것이다. 행동의 행동을 하는 것이 바로 행위이다.

…모든 혁명은 예측불가능한 형식으로만 예측되고 사후에만 그 의미를 알 수 있기에, 우리는 절박하게 서성거리며 고민해야만 하고 그리고 또한 시도해보지 않으면 그것의 의미를 알 수 없기에 결단을 해야하는 것이다… …누군가와 헤어지는 것은 사랑을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혁명이 사랑이라는 ‘체’의 생각처럼, 우리는 불가능한 사랑을 시도할 수 있어야한다. 왜냐하면 가능성은 불가능성을 그 한가운데에 품고 있어야 가능성이 되기 때문이다. 천상의 아름다운 사랑만이 아닌 동시에 지상의 절박한 사랑을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 人子(사람의 자식)가 하늘에서 그리고 땅에서 그러했듯이 말이다…


눈먼-파랑새 배상




First They came

Als die Nazis die Kommunisten holten,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habe ich geschwiegen;
나는 침묵했다;
ich war ja kein Kommunist.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Als sie die Sozialdemokraten einsperrten,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habe ich geschwiegen;
나는 침묵했다;
ich war ja kein Sozialdemokrat.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다.

Als sie die Gewerkschafter holten,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 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habe ich nicht protestiert;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ich war ja kein Gewerkschafter.
나는 노동 조합원이 아니었다.

Als sie die Juden holten,
그 다음에 그들이 유태인들에게 왔을 때,
habe ich geschwiegen;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ich war ja kein Jude.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다.

Als sie mich holten,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gab es keinen mehr,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der protestieren konnte.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대학등록금과 탈-경계 투쟁


1. ‘대학등록금과 탈-경계 투쟁’ 기안의 취지
-대학등록금이 가난한 대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부동산문제)
-등록금 문제가 교육투쟁에 대한 사회적 협력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것

2. 기안의 목표
-대학 등록금에 대한 인식의 근본적인 변혁
-대학 등록금 상한제의 정착화 그리고 후불제-협력제 도입
-대학 등록금을 현재의 1/3~1/2~최소2/3 수준으로
-학생 없는 학생회, 학생회 없는 학생를 지양하는 학생회의 학생화
-현재 등록금납부는 대학교가 대학생자녀를 둔 가정을 착취하는 것이라는 것을 환기
-대학생들의 비판적 공부모임 활성화
-대학강사에 대한 대학교의 착취 철폐 및 신문들의 자의적 대학평가 저지
-사립대학교의 탈-사립화(특성화 혹은 모든 대학의 문화대학화와 윤리적 대학화)
-대학사회의 노마드적 사회화(학생과 학생, 학생회와 학생회 사이의 소통 증진)
-초중고교육에 있어 핀란드식 교육제도와 프랑스식 입시제도 정착요구(준거참조평가 도입)

3. 기안의 방법
- 기존 투쟁 방식의 한계점과 난관돌파
- 휴학을 통한 저항
- 발 벗고 나서는 행동을 통한 참여유도
- 다른 대학교 학생들과의 연대
- 대학원생들과의 연대
- 대학신문들과의 연대
- 참여자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 투쟁방식(‘따로 그리고 같이’)
- 학생아이디어를 통한 진화
- 인터넷 방송을 통한 생중계
- 등록금 투쟁에서 등록금 혁명으로(대학 간의 연대, 청소년들과의 연대)
- 대학생들의 비판적 공부모임을 통한 학생혁명의 연속성
- 등록금 투쟁자금 모음
- 길거리 및 언론 홍보
- 중고등학생들과의 연대
- 여의도 공원에서 궐기 대회
- 내부적 등록금, 학생협력기금 활성화(등록금 체결과정에 학생위원평가제, 학생옴부즈맨 도입)

4. 향후에 있어서의 계획
- 문화대학에 문화비판학과 설치
작성일:2010-01-31 13:24:11 116.125.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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